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82
뭔가 이상하다.
후자령은 그런 생각을 하며 인상을 썼다. 현승 유약중에 의해 장원에서 쫓겨나야 했을 놈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고, 돈을 받고 일 처리를 해야 할 놈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며칠 어딜 갔겠거니 생각했는데, 벌써 열흘이 넘도록 연락이 없으니 무슨 사달이 벌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되었지?’
후자령은 문득 지금까지 자신의 행보를 곱씹어 보았다.
악양으로 들어온 이유는 바로 무신의 비보를 찾기 위함이었다. 전설로만 떠돌던 그 말을 확인하기 위해서 동정호 인근을 샅샅이 수색해야 했고, 그 덕분에 장원이 필요했다.
필요했다?
아니다.
사실 인근에 천막을 치고 시작하였다면 벌써 무언가를 알아냈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하지 않았던 것은 무엇이냐.
바로 자존심이다.
그깟 장원이 뭐기에.
그 장주라는 놈의 당당하고 뻔뻔한 행태가 눈에 거슬려, 처음에는 단순히 괴롭힐 속셈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한데, 이것이 점차 뜻대로 되지 않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그 일에만 집중을 하며 놈들에게 이를 갈게 된 것이다.
그 와중에 유약중까지 사라졌다.
“무…… 문주님!”
그런 생각을 하며 인상을 쓰고 있을 때, 느닷없이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후자령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크, 큰일 났습니다. 아, 악록산 절벽 아래에서 시, 시신 한 구가 발견되었는데…….”
“해서?”
“그…… 유, 유약중이라 합니다!”
“뭐…… 뭐라고!”
“지금 시신을 수습하여 관아로 들어갔습니다. 이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되었지만, 입고 있는 옷과 명패로 미루어 틀림없다 합니다!”
깜짝 놀란 후자령이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이렇게까지 확신을 기하며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틀림없는 것 같았다. 왜 갑자기 그가 죽어 시신이 되었단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을 하던 후자령이 까득 이를 갈았다.
‘놈들……!’
틀림없이 놈들이다.
장원에서 나가겠다고 말을 한 다음 날, 놈들은 여전히 장원에 머물고 있었으며 유약중은 사라졌다. 당연히 놈들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또 일이 꼬였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후자령이 채비를 하고 관아로 향했다.
‘멍청한 놈들! 이렇게 벌집을 건드렸구나.’
유약중이 죽은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연이어 자신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놓은 그놈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현령이 없는 지금, 조금만 놈들을 선동한다면 장원을 빼앗는 건 일도 아니었다.
관아에 도착해 보니, 그 근처는 이미 어수선하기 짝이없다.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쑥덕거리기 바빴다. 몇몇 포졸들은 보아선 안 되는 형태의 것을 보았는지, 한쪽 구석에서 시퍼런 안색으로 주저앉아 토악질을 하고 있었다.
후자령이 관아 안으로 들어서려 하자, 포졸들이 그의 앞을 막았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소?”
“현승이 죽었다 들었는데 맞는가?”
“……맞소.”
잠시 후자령을 뚫어져라 보던 포졸은 이내 후자령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바로 현승과 함께 다니던 풍검문의 문주임을 말이다.
순간 포졸의 시선이 험악해졌다.
“내 그를 죽인 이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현승은 자살이요.”
“뭐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가! 자살이라니? 멀쩡했던 사람이 어찌 그런 짓을 해!”
“이미 그리 결론이 났소.”
“겨, 결론이 났다니! 엄연히 현승을 죽인 이가 있는데!”
“아, 글쎄. 그 사람이 죽였는지 안 죽였는지 증거나 있소?”
“…….”
“우린 뭐 놀고 있는 줄 아나. 바쁘니 어서 가쇼.”
후자령은 한껏 얼굴을 붉혔다.
고작해야 포졸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때려잡을 수 있는, 고작해야 그런 상대에 지나지 않다. 눈앞에 있는 이 포졸 또한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인데 말투와 행동거지가 거침이 없다.
풍검문을 무시하는 처사라 여긴 후자령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자네, 내가 누구인지…….”
“무슨 소란이더냐.”
포졸을 향해 위협을 가하려던 후자령은 돌연 들려오는 소리에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인간이 있었는데, 기억을 더듬다 곧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현령!’
후자령은 관아로 들어서는 홍원창과 잠시 시선을 마주했다.
날카로운 눈매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공이 고강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자에 불과한데, 바라보는 순간 느껴지는 이 묘한 감각은 무엇인가?
“아이고, 현령님 오셨습니까? 아니, 이자가 자꾸 현승을 죽인 범인을 알아냈다고 하며 헛소리를 하고 있습니다요.”
“호오? 현승을 죽인 범인이라? 그게 누구인가? 나도 알고 싶다네.”
홍원창은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표정으로 후자령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는 아무런 적의조차 없었는데, 후자령은 묘하게도 압박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후자령이 보이지 않게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동정호 서쪽에 장원 한 채가 있는 거 아십니까?”
“물론이네.”
“그곳 사람들이 바로 범인입니다.”
그 말을 들은 홍원창은 잠시 신음을 삼켰다. 곁에 있는 포졸들까지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였는데, 후자령은 그 연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장원의 뒷배가 바로 이 현령이라는 것을 말이다.
“저는 악양을 지키는 풍검문의 문주로서, 이 일을 좌시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현령께선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시는 것 같으니…… 이 일을 왕부에 전하려 합니다만?”
후자령이 은연중에 홍원창을 압박했다.
고작해야 악양의 일개 현령이다. 아무리 왕부와 황실의 총애를 받는다 한들, 이렇게까지 말을 한다면 앞날을 위해서라도 그놈들을 버려야 하는 법이다.
후자령은 득의양양한 얼굴로 홍원창을 바라봤다.
자, 이제 어쩔래? 이대로 포졸들을 끌고 장원으로 간다면 내 한번 용서해 줄 수도 있지.
후자령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그 순간.
헛기침을 내뱉은 홍원창이 슬그머니 그를 향해 다가왔다. 누가 무슨 짓을 한다 해도 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무공을 지닌 후자령은, 아무렇지 않게 다가오는 홍원창을 주시했다.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다 들었네. 아주 재미있는 일들을 벌였더군. 한데 잘 듣게나.”
작게 중얼거린 홍원창이 그 입을 후자령의 귀에 바짝 붙였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 흘러나왔다.
“칼자루를 쥔 것은 나지, 자네가 아니야. 편히 살다 가고 싶다면 장원의 일에서 손을 떼게. 그곳은 자네 따위가 넘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네.”
순간 후자령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홍원창은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바로 한 뒤, 후자령의 어깨를 툭 하고 쳤다.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한 그 모습에 후자령은 이를 갈았다.
어느새 등을 돌리고 관부 안으로 들어서는 홍원창을 바라보며, 후자령 또한 거칠게 등을 돌렸다.
아직까지도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돈 채 사라지지 않았다.
‘그깟 장원이 뭐라고 저리 감싸는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러한 일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호북에 있었을 때만 하여도 비록 그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현령 따위가 무시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다.
그 때문에 지금 이 상황이 그로서는 매우 수치스러웠다.
그렇다면 보여 줄 수밖에.
이 풍검문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 악양을 지배하면서 흘린 피가 결코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또한 칼자루를 쥔 것은 현령 따위가 아니라, 바로 후자령 자신임을 깨닫게 해 줄 것이라 다짐했다.
바득바득 이를 간 후자령이 시선을 돌리자, 곁에 있던 제자가 고개를 숙였다.
“아이들을 모으거라. 오늘 그 장원의 주춧돌 하나 남기지 않고 박살을 내 버릴 것이다.”
“알겠습니다.”
사사사삭-!
일련의 무리들이 빠르게 장원을 향해 나아갔다.
하나같이 손에 칼을 쥐고 살기를 풀풀 풍기고 있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본디 무림인, 그것도 무림맹에 소속되어 있는 정파의 인물들이라면, 무공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손대는 것을 금기시한다.
하지만 금기 따위가 무에 중요하단 말인가.
힘 있는 자가 나약한 자를 굴복시키는 법이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 온 인간의 본능이고, 또한 그 까닭에 힘을 가지기 위해 사람들은 그토록 노력을 하는 것이다.
또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 쓰지 않는 것 또한 웃긴 일이지 않은가?
“보인다. 단 한 놈도 살려 두지 말거라!”
“예!”
문주 후자령의 명에 제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노련하게 장원으로 향했다.
그곳이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살기는 폭발하듯 치솟았다.
이윽고 담장을 넘어 안으로 파고들려는 순간.
퍼걱-!
느닷없이 날아온 돌멩이가 한 사내의 머리를 후려쳤다. 얻어맞은 그의 몸이 허망하게 아래로 떨어졌다.
죽지는 않은 듯 신음을 흘리기는 했지만 다시 검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담장을 넘으려 했던 이들이 멈춰 섰다.
이내 안에서 또다시 ‘퍽!’ 하는 거친 소리가 들리더니, 작은 신음과 함께 고요한 침묵이 감돌았다.
“거봐, 내 온다 하지 않았소?”
“허허, 이것 참…….”
때마침 말소리가 들렸으나, 방향은 담장 안이 아니라 그들의 뒤쪽이었다.
담장 안에서는 돌멩이가 날아들고, 등 뒤에는 사람이 있다?
후자령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누구냐, 네놈들은?”
“그건 이쪽이 할 말이라네. 이런 야심한 밤에 복면을 쓰고 남에 집 담장을 넘는 이유를 좀 알려 주게나.”
후자령은 말을 내뱉은 노인에게 가만히 시선을 주었다.
목소리로 보아 틀림없이 노인이었다. 달빛에 살짝 보이는 손도 자글자글한 주름이 가득했다.
아마도 지난번 장원에서 보았던, 갓을 쓴 늙은이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노인은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인지,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요즘 어린애들에게 인기가 있는 군자검인지 뭔지 하는 가면이었다.
“이상한 취미를 가진 늙은이로군.”
“늙은이가 아니네.”
“뭐라?”
예상치 못한 말에 후자령이 당황했다.
목소리는 물론이고 자글자글한 손 주름, 더군다나 가면 사이로 드러난 새하얀 수염은 틀림없이 노인의 그것이었다.
한데 제 입으로 노인이 아니라 하니, 후자령은 잠시 황당함을 내비쳤다.
한쪽 팔이 없는 듯 옷자락만 펄럭이는 노인이 칼을 쥐고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후자령은 미친놈을 보는 시선으로 노인, 남궁천을 바라봤다.
후자령의 속내를 읽은 모양이니, 노인은 손에 쥔 검을 슬쩍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이 노부는…… 군자검이라 하네.”
그 한 마디에 후자령과 제자들이 풉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군자검이라는 별호는 예전에 많이 쓰이기는 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쓰는 자가 없었다.
이야기 속 등장 인물의 별호로 쓰인 후, 어린아이들의 동경의 대상이 된 까닭이었다.
후자령이 표정을 비틀며 중얼거렸다.
“노망난 늙은이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