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84
“뭣들 하느냐! 당장 모든 이들을 추포하여 관아로 압송하라!”
“예!”
쩌렁쩌렁-!
이른 아침, 포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풍검문 내부로 쳐들어갔다. 대문을 부수고 눈앞에 있는 하인들을 순식간에 억류하더니, 본당과 외당으로 달려가 모든 제자들을 붙잡았다.
격렬하게 반항을 하는 이들은 우르르 몰려가 두들겨 패고, 그래도 듣지 않는다면 화살을 쏘아 시체로 만들었다.
포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하인들과 제자, 심지어 풍검문주의 가족까지 붙잡아 포승줄로 묶었다.
한순간에 풍검문 전체가 크게 들썩였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넋을 잃었다.
그간 풍검문도들의 행동이 다소 도가 지나치기는 하였지만, 홍원창이 돌아옴과 동시에 이리도 빠르게 정리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듣기론 말일세, 죄 없는 사람을 죽이려 하다가 걸렸다더군.”
“어이쿠, 그 이외도 많을 텐데 아주 제대로 걸렸어.”
“작살이 났네, 작살이 났어. 이제 이 악양이 조금 조용해지겠네그려. 하하하!”
사람들은 이번 일을 크게 반겼다.
포승줄에 묶인 채로 끌려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통쾌한 표정을 지었다. 풍검문의 위세를 업고 양민들에게도 자주 수작질을 부렸기에, 저들에게 좋은 감정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내심 이렇게 되기를 바란 이들 또한 적지 않았다.
그 때문에 모든 이들이 현령의 업적을 또다시 칭찬했다.
‘뿌듯하군.’
홍원창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뿌듯함을 느꼈다.
예전에는 많은 이들이 현령이라는 위치 때문에 고개를 숙이기는 했으나, 존경 어린 시선을 보내지는 않았었다.
홍원창은 크게 악행을 일삼는 현령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백성을 돌보는 어진 현령도 아니었다.
한데 지금은 어떠한가. 모든 이들이 홍원창을 향해 동경 어린 시선을 보낸다.
이 일이 또다시 왕부에 알려지게 되면 그만한 포상이 나올 것이고, 그만큼 홍원창의 지위는 올라갈 것이다.
홍원창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요즘에는 홍진랑도 아비를 동경하며 따른다.
아들에게 존경받는 아비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는 느껴 본 자만이 알 것이다.
심지어 녀석이 요 근래 했던 말 중 가장 그를 기쁘게 했던 것은 ‘저도 아버지처럼 좋은 현령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말이었다.
홍원창은 뿌듯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홍원창은 슬그머니 품을 만졌다.
오늘 새벽 장원으로 가 후자령과 그 제자들을 포박하는 와중에, 단우현에게 받은 것이다.
비급이다.
장삼태와 같은 것으로, 고작해야 태극권이지만 홍원창은 실망하지 않았다.
이 태극권은 단우현의 풀이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 장삼태의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너는 삼태 녀석보다 더 재능이 없는 놈이다. 해서 조금 풀어 놓았으니 익힐 수 있다면 어디 한번 해 보거라.”
단우현이 홍원창에게 내리는 나름의 포상이었다.
홍원창으로서는 황제에게 받은 포상보다 더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대대손손 가보로 물려준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물건이었다.
홍원창은 당장 집으로 달려가 이 비급을 열어 보고 싶었다. 익히고 싶었다. 오래전 접었던 무인의 꿈을 비로소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가 히죽 웃음을 지으며 언성을 높였다.
“조금 더 속도를 높여라!”
“예!”
줄줄이 끌려가는 풍검문 사람들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아이고, 힘들구나.”
“하……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어디서 넘어지기라도 했는지 남궁천은 절뚝거리기도 하고, 삭신이 다 쑤신다는 표정이었다. 이에 단소미가 안절부절못했다.
“허허, 걱정 말거라. 어제 좀 과했으니 말이다.”
“뭐가요?”
“일 말이다.”
단소미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제 분명 아침, 점심 일은 장삼태가 전부 하였고, 남궁천은 놀기만 했다. 딱히 일을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일이 과했다고 할까?
“나 참, 늙은 몸으로 그리 움직이니 당연히 아프지, 안아플까.”
“네놈 정말 한 대 맞고 싶으냐?”
“틀린 말 하나 뭐…….”
장삼태는 혀를 내둘렀다.
어제 후자령과의 싸움을 눈앞에서 본 것이 바로 장삼태다. 그때 남궁천이 무슨 짓을 했는지 떠올리니, 그가 온몸에 삭신이 쑤실 법도 할 것 같았다.
장삼태는 단우현을 힐끗 바라봤다.
‘저 괴물 하나도 모자라서 늙은 노괴라니……. 나 참, 진짜…….’
장삼태는 어제 일을 떠올리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남궁천은 후자령의 검을 막아 내며 몸을 틀 수 없는 상황을 몇 번이나 겪었다. 뼈가 바스라지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남궁천을 몸을 틀었고, 그대로 검을 내질러 승기를 잡았다.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신위였다.
과연 검황은 검황이다.
“만약에…… 만약에 말인데, 그놈이 거기서 우측으로 공격했으면 어쩔 뻔했소?”
장삼태가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남궁천에게 물었다.
급박하게 몸을 트는 순간, 남궁천은 분명 허점투성이였다.
다행히 검이 좌측으로 파고들어 와 아슬아슬하게 스쳤기에, 그 빈틈을 노린 남궁천의 검이 후자령에게 완벽하게 파고들어 갔다 할 수 있었다.
한데 반대로 우측으로 검이 들어왔다면 어땠을까?
죽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았지만 장삼태의 답은 ‘살았다’였다. 그만큼 남궁천의 신비한 몸놀림은 장삼태의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어쩌긴 뭘 어째? 나려타곤이라도 펼쳤을 테지.”
“나, 나려타곤이라니, 영감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잖소?”
“허허, 이놈이 아직도 뭘 모르는구나. 세상은 항상 승자만을 기억하는 법이다. 살아남은 놈이 이기는 것이고, 그게 바로 강자이지. 나려타곤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선의 선택이지 않느냐?”
“그런 거요?”
장삼태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단우현을 바라봤다.
그가 알기론 무림인들은 나려타곤을 펼치지 않는다 했다. 그렇게 스스로 굴욕을 자초할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들었다.
그렇기에 검황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소 놀라웠다. 그리고 놀란 표정은 권무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단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소리다. 강호에서는 살아남은 놈이 강자이지. 목숨과 자존심을 맞바꾸는 짓을 하는 놈이야말로 천하의 둘도 없는 머저리다.”
“자, 장주님까지 그런 소리를 하면 틀림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장삼태는 뭔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해서 권무진을 돌아봤지만 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저 새끼는 오늘따라 왜 저렇게 입을 다물고 있어?’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기에 상당히 낯설었다. 단소미도 장삼태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권무진에게 다가서지 않았다.
‘저 자식,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인석아! 내 말은 믿지 않고 장주 말은 믿는 것이냐?”
“그거야 뭐, 장주님은 천하제일 같고 영감님은 뭐, 그냥 노인네 같으니…….”
“이런 썩을 놈이!”
남궁천이 손을 뻗어 금나수를 펼쳤다. 오른손이 급하게 움직이며 장삼태의 손에 들려 있는 빗자루를 빼앗아 들었다. 퍽! 퍽!
그러고는 곧장 비를 무기 삼아 장삼태의 머리를 두들겨 댔다.
“아이고! 나 죽네!”
“네놈은 어째 맞아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느냐? 그래, 입방정을 떨면 맞을 것이라 생각 안 하느냐? 뇌가 없는 것이야?”
“아, 거참! 고만 좀 때리쇼! 영감님이 맨날 이리 때리니 그러지 않소!”
“이놈이 어디서 말대답을 해?”
“대답하라고 물어본 거 아니오?!”
“이 썩을 것이……!”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단소미가 어색하게 웃었다. 매일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볼 때마다 어찌 저럴까 싶었다.
보통 몇 대를 맞으면 그다음부터는 조심하게 되는 것이 정상인데, 장삼태는 매일같이 대들고 매일같이 맞았다.
저들을 바라보던 단소미는 문득 남궁천을 향해 작게 중얼거렸다.
“할아버지 싸웠어요?”
남궁천과 장삼태의 대화를 곱씹어 보니, 남궁천이 누군가와 싸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말에 남궁천이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다, 소미야. 이 할애비가 싸움이나 할 사람으로 보이더냐?”
“그치만…….”
단소미가 머뭇거렸다.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자면 그런 느낌이었는걸.
“싸우는 건 좋지 않아요! 우리 아빠도 안 하는 걸요.”
순간 들려오는 소리에 세 사람의 표정이 멍해졌다.
장삼태는 무어라 말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지만 차마 입을 떼지 못했고, 권무진과 남궁천은 묘한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그렇죠, 아빠? 싸움 같은 건 하면 안 되죠?”
“그래, 맞다. 싸우는 것은 나쁜 일이지.”
“거봐요! 아빠도 말하잖아요! 그러니까 두 번 다시 싸우지 말아야 해요.”
단소미는 또랑또랑하게 언성을 높이며 팔짱을 끼었다.
그 행동은 마치 세 사람을 훈계하는 것 같았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남궁천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허허, 기가 막혀서 진짜…….”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남궁천이다.
권무진과 장삼태 또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차마 입을 열 수가 없는 것인지 굳게 다물었다.
단우현의 시선이 칼날처럼 날카로웠던 탓이다.
“그 이야기는 이제 되었고. 풍검문 일이 해결되었으니 일단락되었군.”
“예, 뭐…… 현령이 뒷수습을 해 주고 있으니 장원 일이 알려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장삼태가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답했다. 조금 전 단소미의 이야기가 아직도 충격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또 언제 악양에 새로운 문파가 들어올지…….”
권무진이 걱정스러운 투로 입을 열었다.
현재 호남에서는 발견된 무신과 삼천의 흔적 때문에, 이들과 관련한 기연을 찾기 위해 더 많은 이들이 유입될 터였다.
이번 일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해서 말일세.”
그때, 남궁천이 단우현을 바라봤다.
그러나 한 차례 머뭇하더니 곧 입을 다물었다. 말을 해 봐야 통하지 않을 것이라 여긴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우현이 인상을 썼다.
“할 말이 있으면 해 보거라.”
“아니, 자네에겐 통하지 않을 것이니 굳이 말은 않겠네.”
“……해 보거라.”
남궁천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단우현은 기필코 들어 봐야겠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입을 열지 않는다면 강제로라도 입을 열게 하겠다는 기세가 느껴졌다.
저런 사람을 두고 어디 싸움 한 번 안 하는 이라 하는가?
단소미가 잘못 알아도 단단히 잘못 알았다.
“차라리 현판을 내걸고 세가를 세우는 것이 어떤가? 악양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가라 소문이 난다면, 오히려 귀찮은 일들이 다소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데?”
“불가(不可). 헛소리군. 오히려 귀찮은 일이 더 늘어나기만 할 거다. 애초에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모든 일들을 홍원창에게 떠넘길 필요도 없었지.”
단우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 않아도 계속해서 원치 않은 날파리들이 모여드는 실정이다. 만약 세가를 세워 그 영향력을 퍼트린다면, 그것을 짓누르겠다고 당당히 칼을 쥐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역시……. 그래서 내 말을 하지 않으려 했던 것 아닌가.”
남궁천은 쓴맛을 다시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이자를 무림에 발을 디디게 하는 것은 무리인가.’
아마도 단우현은 남궁천의 뜻을 단박에 파악했을 것이다.
“당분간 상황을 보도록 하지. 좋은 생각이 날지도 모르고…….”
“허허, 알겠네.”
남궁천은 곱게 물러섰다. 지금 밀어 봐야 소용이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던 만큼, 이곳에 새로운 고수들이 여럿 있음을 단우현 또한 모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풍검문 또한 누군가에게 이용당한 것인지도 모르지.’
남궁천은 그러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유인즉, 호북에서도 그리 크게 이름조차 없었던 풍검문이, 단박에 악양을 장악했다는 것 자체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