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85
천산마교.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마교의 교주이자 오황의 일인, 천마황 사도학이다.
그는 웅장한 권좌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그 표정은 마치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거운 얼굴이었다.
“그래, 그래서 어찌 되었느냐?”
“풍검문이 악양으로 들어가 그곳을 장악했습니다.”
“호오, 거기까진 총사, 자네의 예상대로로군.”
“그리 움직이게 만들었으니 당연하지요.”
총사 동방구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세간에는 제갈세가의 지략을 제일로 치지만, 마교의 총사 동방구 또한 제갈세가 못지않은 지략을 지녔다. 그렇지 않았다면 마교는 진즉 제갈운에게 농락을 당했을 터였다.
욕심이 많은 후자령을 움직이는 것은 무척 간단했다.
삼천의 유해가 있는 곳에 발을 딛고 싶어 했으나 불가능했고, 대신 또 다른 무신의 비보를 쫓고 있는 그들에게 동정호에 대한 이야기를 퍼트리는 것 정도는 매우 쉬운 일이었다.
그 당시, 이미 악양에는 상당히 많은 문파와 세가들이 들어서려 하는 상황이었기에, 마교의 고수들을 몇몇 파견하여 은밀하게 풍검문을 도왔다.
왜 풍검문이었을까?
동방구에게는 풍검문이 최적의 선택이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고, 죽는다 하여도 무림맹이 크게 움직이지 않을 문파.
더불어 현재 문파의 근거지 또한 악양으로 이동할 수 있는 문파.
그렇게 추스르고 추스르다 보니 남은 곳이 바로 풍검문이었다. 덕분에 그들은 원치 않게 마교의 손에 끌려 다니는 꼴이 되었다.
“그러다 놈들이 한 장원을 장악하려 했습니다.”
“장원이라?”
“예, 그곳과 마찰을 빚더니 결국…….”
“하하하!”
사도학은 이미 서찰로 대강의 내용은 알고 있었다. 동방구가 움직였던 풍검문이 무너졌고, 그 제자들과 모든 이들이 추포를 당한 채 북경으로 끌려갔음을 말이다.
궁금했던 것은 그 과정이었다.
한데 들으면 들을수록 재미있었다.
“군자검…… 군자검이라……. 그놈이 그런 소리를 했다더냐?”
“예, 저희 아이들이 북경으로 압송되기 직전 옥에 들어가 놈을 심문한 결과, 스스로를 군자검이라 밝혔다 합니다.”
“처음듣는 별호구나.”
그 말에 동방구가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처음 듣는 별호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형극에서나 쓰이는 별호이니까.
“최근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형극의 주인공입니다. 요즘에는 극단에서 극을 꾸미기도 합니다.”
“호오? 그런 극이 있었는가?”
“예, 제법 재미있다 합니다만…….”
“하하하! 그럼 호남에 있는 고수는 그 극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겠군.”
“어디까지나 자칭입니다, 교주. 정말로 믿으셔선 안 됩니다.”
“뭐 어떠냐. 제 입으로 군자검이라 했으면 군자검인 것이지. 그래, 그밖에 다른 것은 없더냐?”
“장원에는 세 명의 사내들과 한 명의 노인, 그리고 나이 어린 여아가 있습니다.”
“고작해야 넷이라? 그렇다면 군자검은 그들 중 한 명이겠구나.”
“예, 그리 사료됩니다.”
“재미있구나, 정말 재미있구나.”
동방구는 사도학의 웃는 모습을 바라보며 기쁨을 금치 못했다.
오황, 그리고 천마라는 자리에 오르면서 모든 이들을 내려다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어 버린 존재다.
그런 그가 누군가에게 흥미를 나타낸 적이 있었던가?
없다.
설사 검황이라 하여도 사도학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자기 자신이 그보다 강하다는 것을 이미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자가 누군가에게 관심을 보내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하지만 동방구가 진짜 보고해야 할 것은 다른 것이다.
“하지만 조사를 해 보다 안 사실입니다만…….”
“그래, 또 무엇이 있느냐?”
천마황, 사도학이 벌떡 용좌에서 일어섰다. 흥미진진한 표정이 얼굴에서 드러났다.
호남,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의 얼굴이 반짝이는 것이, 마치 옛이야기를 듣고 영웅을 선망하는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동방구가 피식 웃었다.
“장백산에 일이 있었을 당시, 장원에는 현 장주라 불리는 단우현이라는 자와 그 딸밖에 없었다 합니다. 흑도회의 일이 터졌을 때에는 한 사내가 더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푸하하하! 그렇군, 그랬어! 그놈이로군! 군자검도 재미있기는 하지만 정녕 이 몸이 찾던 것은 그놈이었어!”
“예, 추측이 정확할 것입니다. 또한 제갈운은 아직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만…….”
“또또 뭐가 있단 말인가?”
동방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가장 중요한 대목이 바로 이것이었다.
“지난번, 무신과 삼천의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그래, 구황 그놈이 배신을 하고 도망간 것 말이더냐?”
“예, 그곳에 그 단우현이라는 자가 나타났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알게 된 것은 실로 우연이었다.
구황의 실마리만 찾다 보니 정작 그 안에 있었던 것을 보지 못했다. 우연찮게 현령이 그곳에 있었다는 말을 들었고, 그것에 대해 조사하다 보니 단우현이라는 자 또한 그곳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도 절묘하지 않은가.
“오호…… 그것은?”
“그 단우현이라는 자가 수상하다는 말입니다.”
“하하하하!”
사도학은 미친 듯이 웃었다.
정말로 오랜만이다. 이렇게 웃는 것은.
그만큼 동방구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재미있고 흥미로운 내용들로 가득했다.
이제 곧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던 사도학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동방구는 결코 허언을 하지 않는 자다. 또한 확신이 없으면 입에 담지 않는 자다.
그렇기에 지금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구 할은 사실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그렇다면 결국, 그 많은 정마의 고수들을 속이고 삼천의 유해를 가지고 간 것이 단우현이라는 자, 사라진 구황과 죽은 시신들 또한 그자의 짓이라는 말이 된다.
사도학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내 놈을 직접 만나 보마.”
“……교를 비우실 수는 없습니다.”
“당분간 네놈과 부교주가 알아서 맡거라. 무림맹도 현재 모용혁문 그 머저리 같은 놈 탓에 어수선하니 특별한 일은 없을 것이다.”
동방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도학이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말릴 방도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단, 최근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주시하거라.”
동방구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사도학이 말한 일련의 사건이란, 몇몇 무림인들이 목내이처럼 말라 비틀어진 채 죽어 발견된 것을 뜻한다.
중원 곳곳에서 발견되었고, 죽은 자들은 정사마의 구분이 없었다.
처음에는 음양쌍마와 같은 놈들이 다시 나타난 것은 아닌가 하며 조사를 시작하였지만, 시체에 새겨진 것들을 보면 그놈들의 수법은 아니었다.
마교인들도 습격을 당했으니 응당 그 보복을 해야 했다. 그렇기에 동방구는 그 추적을 멈추지 않았으며 지금도 중원 곳곳을 감시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이 생긴다면 전서응을 날리겠습니다.”
“알겠다! 하하!”
사도학은 또다시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움직였다.
남궁천은 저녁 식사가 끝난 후, 단소미를 무릎에 앉혀 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림에 대해 조금도 관심이 없는 단소미를 어떻게 해서든 꼬드길 심산인지, 옛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이 중원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단다.”
“얼마나요?”
단소미의 물음에 남궁천은 ‘음-’ 하며 신음을 삼켰다.
많은 이들이 무림이라 말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였을까?
아마도 소림이 세워진 그 시기, 달마대사가 있고 삼천이 있고 무신이 있었던, 그 혼란스러운 시기였던 것 같다.
당시는 정사마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으며, 오로지 무공을 숭상하는 이들이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자 혼란스러웠던 때라고 들었다.
“천 년은 더 되었구나.”
“와……! 그렇기에 오래되었어요? 소미가 몇 번 죽었다 다시 태어나야 천 년이 되는 거예요?”
단소미가 자그마한 손가락을 몇 번이고 쥐락펴락하며 셈을 했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이라는 것은 언제 태어나고 죽을지 알 수 없으니, 단우현도 그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 탓에 단우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허허, 백 년을 산다 쳐도 열 번을 죽고 태어나야 하는구나.”
“……너무 길어요.”
“자, 어쨌든 이 무림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천 년도 더 된 옛날임이 분명하구나. 그리고 이 무림의 시대의 문을 연 것이 바로 무신과 삼천, 그리고 소림의 달마대사라 할 수 있지.”
“무신……? 삼천?”
“삼천은 무림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아직까지 별호에 하늘 천(天) 자를 달 수 있는 이가 없는 것만 보아도 그들의 위대함을 알 수 있지.”
‘삼천? 삼천?’ 하며 단소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럼, 무신은요?”
“무신은 말이다,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누구도 뛰어넘은 이가 없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존재란다.”
“우와! 그렇게 강해요?”
“그의 일검에 하늘이 갈라지고, 그의 발길질에 태산이 무너진다 했다. 또한 전설이기는 하지만, 수만의 무인들과 대적하고도 멀쩡하게 살아남았다고 하더구나.”
단소미는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참인지 거짓인지 모를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대단해요! 어떻게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죠?”
그 물음은 옆에 있던 남궁천이 받았다.
“허허, 노부도 그리 생각한단다. 시대가 같았다면 제자로 받아 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야.”
“할아버지는 무림인이라는 그 사람들 중에서 으뜸 아니에요? 소혜 언니가 매일 그랬는데…….”
“허허허, 그렇기는 하지…….”
남궁천은 멋쩍게 대답하며 한숨을 쉬었다.
당시의 무림은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험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시기에 천하를 발아래 두고 우뚝 선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때 단우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받아 줄 생각 없으니 턱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허? 내 자네의 제자가 되고 싶다 하지 않았네. 이 이야기는 무신의 이야기일세.”
“무신도 받아 주지 않았을 거다.”
“그건 모르는 일이지.”
“아는 일이다.”
남궁천은 기가 찬 나머지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제가 볼 때는 그 무신이라는 사람도 대단하지만 할아버지가 더 대단해요. 왜냐하면 무신은 지금 소미 곁에 없지만, 할아버지는 소미 곁에 있으니까요.”
“허허허! 그거 참 고맙구나.”
남궁천은 단소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단소미는 가끔 반로환동을 한 전설의 인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린애답지 않은 말을 하기도 했지만, 본능적으로 상대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말재간이 있었다.
“그럼 할아버지가 있는 그 무림에서 최고는 무신이고, 그다음이 삼천이네요?”
“허허허, 그래, 맞다. 모든 사람들이 그리 생각을 하지.”
단소미는 삼천이 누구고 무신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남궁천의 말에 ‘응응!’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틀렸다.”
“뭐가 틀렸단 말인가?”
그때, 단우현이 술 한 잔을 목넘김하며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남궁천을 바라보며 살짝 표정을 뒤틀었다.
그것은 마치 무언가를 떠올리며 분노하는 눈빛이었다. 타오르는 홍염과도 같은 기세가 눈빛에 머물러 있었다.
“최강이 무신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최고는 아니었지.”
남궁천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다른 누가 있었던가?
남궁천이 짧게 생각을 하다 이내 한 사람을 떠올렸다.
“소림의 체계를 세운…….”
“달마도 아니다.”
“허, 그럼 대체 누구란 말인가?”
질문에 대답도 없이 단우현은 또다시 술잔을 들이켰다. 금세 술잔을 내린 단우현이 손에 힘을 주는가 싶더니, 술잔은 ‘파삭!’ 소리와 함께 가루가 되어 버렸다.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단소미도, 남궁천도,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경청하며 서 있던 장삼태와 권무진도 놀랐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입이 열렸다.
“혈마……. 그가 바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자다.”
가루가 된 술잔이 훨훨 바람을 타고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