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86
“혈마라…….”
장원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남궁천은, 단우현이 했던 이야기를 되새기며 생각에 빠졌다.
혈마.
처음 듣는 이름은 아니다.
천 년 전, 중원이 어지러웠을 당시 나타난 존재이다. 하지만 무신에 의해 토벌되었고, 그 이후로는 혈마라는 이름이 거론되는 일은 없었다.
한데, 단우현은 마치 혈마를 알고 있다는 듯이 그 이름을 꺼냈다. 마치 실제로 그를 보았던 사람처럼.
‘이상한 일이지. 나조차 모르는 것을 어찌 그가……?’
의아함은 배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단우현의 정체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는 존재.
그간의 이력이 알려지지 않은 게 이상할 만큼 전능한 무위를 가진 존재.
하지만 지금은 그의 정체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이 그의 한 마디였다.
‘최강이었으나 최고는 아니었다라…….’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남궁천은 여전히 단우현의 정체에 대해, 그리고 그가 했던 말에 대해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뜻 모를 말인 만큼 생각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홀로 생각에 빠져 있던 나궁천은 생각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처음이로구나.”
장원에 들어온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장원의 뒤편 언덕인 이곳은 처음 발걸음을 하였다. 단순히 경치를 구경하며 생각을 좀 정리하고 싶어서 찾아온 것인데, 주위 풍경이 탁 트여 보이니 이만큼 좋은 곳은 없는 것 같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던 남궁천의 시야에 희미하게 봉분이 들어왔다.
이런 곳에 봉분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다가가 그것을 바라보던 남궁천은 고개를 갸웃했다.
세 개의 봉분, 그리고 그곳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위패 세 개.
위패의 글자를 읽어 내리던 남궁천은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태공진, 남주련, 천무광…… 엇……?”
남궁천은 눈을 껌뻑이며 한동안 그것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하늘을 바라봤다.
내공이 사라져 몸에 이상이 온 것일까. 괜스레 눈이 침침한 기분이었다.
한 손으로 눈을 비비며 다시금 봉분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오히려 그 글자들은 더욱 선명하게 보일 뿐이었다.
심지어 봉분은 만든 지 얼마 되어 보이지도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마교, 혹은 다른 단체들이 유해를 가지고 간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차마 파 볼 수도 없고, 파 본다 한들 삼천의 유해라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봉분의 흙 색깔로 보아 이것은 만들어진 지 불과 몇 달 안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시기며, 위패의 이름까지 이렇게 똑같은 것이 과연 우연일까.
문득 남궁천은 남궁소혜의 말을 떠올렸다.
“할아버님, 사람이…… 천 년 동안 살 수 있을까요?”
왜 갑자기 그 말이 떠오르는 것인가?
남궁천은 불길한 마음으로 상황을 조합했다.
단우현의 모든 것, 그의 행동, 그가 내뱉은 말을 하나둘씩 떠올리며 조각조각 그것을 맞춰 봤다.
하나둘, 그 의문의 조각들이 맞춰지는 듯, 아닌 듯하면서 결국 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가설이 세워졌다.
하지만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허허, 아무리 가설이라지만 말도 안 되지 않은가.”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삼천의 유해의 의문, 단우현의 정체를 풀기 위해 남궁천은 곧바로 단우현을 찾아갔다.
“삼천의 유해?”
“그렇다네. 장원 뒤 언덕에 갔더니 그들의 이름이 적힌 위패가 있었네.”
움찔-!
권무진과 장삼태가 몸을 움찔했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저것만큼은 남궁천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최대한 언덕으로 가는 것을 막고 있었는데, 결국 걸리고야 말았다.
권무진과 장삼태의 시선이 단우현을 향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군.”
“거짓말 말게나. 봉분은 몇 달 전에 만든 것으로 보였고, 위패의 이름 또한 같네. 저것은 틀림없이……!”
“동명이인일 테지.”
“그…… 그럴 리가…….”
단우현은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사실을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을 안다. 그렇다면 굳이 변명거리를 생각해 내는 것보다, 낯짝 두껍게 나가는 편이 편할 터였다. 특히 남궁천 같은 사람을 상대로는 말이다.
“저들이 삼천이라는 증거가 있는가?”
“아니, 그런 것은 없네만…… 저, 정황상…….”
“저들은 내 지인이다. 그저 묘를 옮겨 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불과 몇 달 전에 말이다.”
“아니,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일세…….”
“이름이 같다 하여 삼천의 유해라고 한다면 이 중원에는 살아 있는 삼천들이 수두룩하겠군.”
“윽……!”
남궁천은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단우현의 말이 옳다.
같은 이름을 지닌 자들이라면 얼마든지 있다. 삼천과 이름이 같은 이들을 한데 모은다면 군대도 말들 수 있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그래도 우연치곤 너무 절묘하지 않은가…….’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답답한 마음에 남궁천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남궁천이 아니었다.
“자네 혹…… 나에게 숨기는 것이 있는가?”
“숨기는 것이라? 뭘 말하는 거지?”
남궁천은 웃음을 흘리고는, 머릿속에 떠오른 가설을 정리하며 호흡을 골랐다.
사실 입 밖으로 내뱉는 것조차 창피한 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하나, 일순 저 무표정한 놈의 얼굴을 바꿀 수 있는 한 마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네 혹시…… 무신과 관계가 있는 자인가?”
움찔-
단우현의 눈썹이 들썩였다.
한순간이기는 했지만 남궁천이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그의 눈썰미는 무림맹에서도 익히 소문이 자자했다. 작은 움직임조차 놓치지 않는다.
“역시 맞는 모양이로군. 그 젊은 나이에 그 강함, 그리고 천 년 전의 일을 알고 있다는 말투, 심지어 삼천의 유해로 추정되는 위패와 봉분도 있으니……. 발뺌할 수는 없을 테지.”
“하하.”
“내 보기에 자네는 무신의 후예일세.”
“……?!”
“무, 무신의 후예라고?”
그 말에 놀란 것은 오히려 권무진과 장삼태였다.
신묘할 정도로 강한 단우현의 무위 배경이 무엇인지 늘 궁금했는데, 정말로 단우현이 무신의 후예라면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했다.
“분명 이 호남 땅에서 무신의 기연을 얻은 것일 테지. 그래서 혈마와 무신에 대한 것 또한 알고 있는 것일 테고…….”
두 사람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남궁천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모든 조각들이 하나둘씩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가끔 단우현은 무신에 대한 좋은 이야기가 나오면 웃음을 짓고, 나쁜 이야기가 나오면 기분이 언짢은 듯 보였다.
“삼천의 유해를 가지고 온 것은 후예이기에, 그들의 넋을 기르려는 것이었던가?”
“하하하.”
한데 단우현은 웃었다.
지금까지 내세운 남궁천의 모든 말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긍정하는 것도 아닌 얼굴로 웃고 있었다. 마치 재미있는 옛이야기를 들은 어린아이의 얼굴이다.
세 사람은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도대체 진실은 무엇일까?
“재미있는 가설이다만…… 어떤 의미에선 맞기도 하고 또 어떤 의미에선 틀리기도 하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뭐, 그렇다는 것이지.”
피식 웃음을 지은 단우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 생각을 하든 그것은 너희들의 자유라 여기는 것처럼.
그 탓에 세 사람, 특히 남궁천은 더욱 궁금증이 일었다.
도대체 이 인간은 정체가 뭘까?
무림맹과 마교, 그 많은 이들이 있는 섬에서 세 구의 유해를 가지고 나올 정도에 대범함과 실력을 지닌 자.
비록 내공이 없다고는 하지만, 검황인 자신의 단 일 초식도 허용하지 않고 패퇴시킨 인물.
답답함에 남궁천은 단우현을 향해 소리쳤다.
“그렇다고 자네가 무신 본인일 리는 없지 않은가! 도대체 자네 정체가 무엇인가!”
단우현은 오랜만에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세 사람이 자신의 정체를 파악하려 애를 쓰는 모습이 제법 귀엽기까지 했다.
“내 이름은 단우현이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그 사실은 변함이 없지.”
“그야 자네 이름이니…….”
“그리고 이곳은 나의 장원이고, 너희들은 내 식솔이다. 그것이 변하지 않는데 정체가 무에 필요가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군자검?”
“커컴!”
“크음!”
웃음을 지은 단우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슬슬 오후가 되어 가는 시간이다. 어제 늦게 잠을 잔 단소미를 깨워 밥을 먹여야 했다.
천천히 소미의 방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남궁천은, 확 인상을 쓰며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권무진과 장삼태가 다가와 있었다.
“정말로 무신의 후예일까요?”
“영감님 추측이 분명하다니까! 딱 들어맞잖아!”
“크흠, 단순한 추측이기는 하네만…… 들어맞는 부분들이 없지 않아 있지.”
더군다나 단우현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또한 맞지 않으나 틀리지 않다고도 했다.
그것은 결국 무신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긍정한 셈이 되는 것이다.
그 사실에 모든 이들의 마음이 들떴다.
천하제일의 고수.
고금을 통틀어 누구도 넘지못하는 거대한 하늘.
그것이 무신이며 단우현은 그 후예이다.
천하의 검황이라 한들 가슴이 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 그럼 저희가 지금 모시고 있는 분이야말로…….”
남궁천은 인상을 썼다.
권무진의 입에서 어떠한 말이 나올지 상상이 갔다. 천하 오황 중 한 사람인 검황이라는 칭호조차 이제는 그의 앞에서 무색하리만큼 초라하게 변해 버리는 순간이었다.
“천하제일일지도 모르는 자이네.”
남궁천이 씁쓸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사실 봉분을 발견하기 전까지만 해도, 남궁소혜의 말을 떠올리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어떤 기인의 제자가 아닌가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왜 중원에 많지 않은가?
천 년간 내려온 무림 역사상, 무수히 많은 기인들이 있었다. 천기자, 혈풍마, 패권황, 음양노괴, 무진자, 소음도 등.
굳이 이렇게까지 이름 있는 고수가 아니더라도, 강하기는 하나 조용히 은거를 택한 채 제자만 기르는 자들 또한 널리고 널려 있었다.
하지만 저 삼천의 유해를 보는 순간 남궁천은 깨달았다.
단우현은 분명 저들과 관련이 되어 있다. 유해를 빼돌린 직후 봉분을 만든 것이 그 이유다.
무림맹이든 마교이든 사파이든 간에, 유해를 찾으면 가장 먼저 그 뼈를 조사해 기맥이 어떤 식으로 흘렀는지를 확인하려 했을 테니 말이다.
물론 명목상으로는 선조의 유해를 거둔다는 것일 테지만, 그 안을 파고든다면 결코 좋지 않은 꼴을 보았을 것이다. 남궁천은 그것을 확신했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그러니 자네들은 지금 이곳에서 들은 모든 것들을…….”
“함구하겠습니다.”
“아니, 왜?”
장삼태는 단우현이 무신의 후예라는 것에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은 그에게 무공을 배우고 있으니, 자신 또한 무신의 후예의 제자가 되는 셈이었다.
온 무림인들에게 칭송받으며 엄청난 부와 권력을 쥘 것이라 상상하며 눈을 반짝이던 순간, 장삼태는 두 사람의 싸늘한 시선을 느꼈다.
“다, 다물겠습니다.”
당장 주둥이를 도려내고 혀를 뽑아 버리려는 권무진의 살기와, 이빨을 모조리 아작 내려 하는 남궁천의 살기를 느끼며 장삼태는 숨을 죽였다.
‘이런 썅…….’
결국 그의 꿈은 한낮의 꿈으로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