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90
“찾은 것 같습니다.”
“찾은 것 같다?”
만후량이 옅은 미소를 흘리며 모용혁문을 바라봤다. 다소 흐릿한 시선이기는 하지만 확실하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게 보였다.
자아를 잃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어차피 눈앞에 있는 이 검성은 만후량의 말을 거역하지 못할 것이니.
“검황 말입니다.”
“……살아 있던가?”
“예, 한쪽 팔을 잃은 노인, 호남 악양에 그러한 자가 있다 합니다. 워낙 은밀하게 숨어 있는 탓에 찾아내는 데 상당히 고생했습니다만…….”
“그가 정말 검황인가? 그리 확신하는 이유는?”
모용혁문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인상을 썼다.
그만한 중상을 입고 산공독에도 당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추측입니다. 다만, 싹이라는 것은 자라기 전에 밟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추측에 지나지 않는데 움직이겠다? 누구인지도 확신이 서지 않는데?”
“말하지 않았습니까? 시기가 너무 절묘하니 가능성은 구 할 가까이 되지요. 군자검. 가면을 쓰고 그리 이름을 댄다 합니다.”
“하! 그놈답군. 또 어디서 재미있는 놀이라도 생각해 낸 것일 테지. 하면, 내공은 찾은 것으로 보이던가?”
만후량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모든 조사를 끝내 놓았다. 악양 인근에 있는 문파 하나가 박살 난 사건이 있기는 했지만, 그가 내공을 되찾은 흔적은 없었다. 만약 검황이 내공을 되찾았다면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내버려 두거라. 만약 정말로 녀석이라 한들 이미 팔을 잃고 내공까지 잃었다. 무인으로서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놈이지 않느냐.”
모용혁문은 콧방귀를 뀌며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어린 시절을 함께해 왔던 친우다. 처음 습격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천운이 있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남궁세가로 돌아간다 한들 절망에 빠질 것이고, 산공독을 해독하지 못했다면 기껏해야 일 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삶이었다. 굳이 쫓아가 목숨까지 끊을 필요는 없을 터.
그러나 만후량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씩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상대는 다름 아닌 검황입니다. 만약 운이 좋아 산공독을 해독하기라도 하면 어쩌시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네. 그것은…….”
“만의 하나, 라는 전제가 달린 이야기입니다. 정파의 많은 이들이 다시금 검황을 바라보며 공경할 것이고, 우리 편이었던 이들 또한 빠져나가겠지요. 검황의 이름이란 그런 것입니다. 또 그리된다면…….”
당연히 그 자리에서 내려오셔야지요?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모용혁문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한순간 몸을 움찔하더니 부르르 떨었다.
또다시, 또다시 그 녀석에게 져야 하는 건가?
순식간에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그것에 더욱 불을 지핀 것은 살짝 다가와 귓속에 중얼거리는 만후량의 한 마디였다.
“또다시 모든 것을 빼앗기실 심산이십니까?”
모용혁문의 눈빛이 바뀌었다. 덜덜 떨고 있던 그가 몇 차례 숨을 골랐다. 그러고는 어느 순간 마음이 차분해졌는지 입을 열었다.
“보낼 아이들은 있는가?”
“그러지 않아도 몇 추려 놓았습니다.”
만후량은 다시금 웃었다.
이미 모든 준비는 끝났다.
악양 인근에 아이들까지 보내 두었으니 모용혁문의 재가만이 남은 것이다. 물론 모용혁문의 입장에서는 달콤하기 짝이 없는 만후량의 제안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럼 원하시는 대로.”
모든 것은 만후량이 짜 맞춘다. 하지만 재가를 내리는 것은 모용혁문이다.
그로써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만후량은 발을 뺄 수 있게 된다. 모든 책임은 모용혁문, 그가 지게 될 것이다.
만후량은 등을 돌리며 보이지 않게 웃었다.
장삼태와 권무진은 수련장에서 운기를 하는 남궁천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지금까지 저런 모습을 한 번도 보이지 않았으니, 정말로 산공독이 해독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장주님은 못하는 게 없어. 천하의 산공독을 치료하다니…….”
“화삼을 얻었으니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지.”
“화삼…… 화삼이라…….”
장삼태는 가만히 생각했다.
시선은 가부좌를 틀고 있는 남궁천에게 두고, 뚫어지게 응시하더니 곧 인상을 썼다.
산공독을 해독하든 말든, 오래 살 것 같지 않은 노인에게 화삼을 주다니.
‘차라리 내게 주지. 정말 아깝다.’
그것 하나면 천하의 고수가 되는 거 아니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저기 툇마루에 앉아 야금야금 당과를 씹어 먹는 단소미가 보였다.
‘같이 영초 찾기라도 해 볼까?’
장태삼은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그것만 있으면 더 강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고 욕망은 늘 화를 부르지.”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귀를 파고들며 들려오는 한마디가 매서웠다. 마치 한 자루의 칼날이 온몸을 관통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그를 옥죄었다.
“커컥!”
장삼태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엄청난 압박감이 밀려왔다. 이대로 쓰러지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다.
“죄…… 커커억! 죄…… 죄송합니다…… 커컥!”
장삼태는 목을 부여잡고 콜록거렸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는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으며, 동공은 곧 풀릴 것처럼 크게 흔들렸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는 있지만, 그래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곁에 있던 권무진조차 손에 땀이 배어나올 정도였다.
“죄송할 것이 있느냐?”
“헉…… 헉……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단우현이 우두커니 장삼태의 앞에 서자, 장삼태는 차마 그 얼굴을 바라보지 못한 채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스스로도 최근 해이해졌다는 생각을 한 터였다. 단우현이라는 인간을 아군이라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하지만 결코 잊은 것은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이자는 무신의 후예이며, 인간을 뛰어넘은 경지에 오른 자, 천하의 검황조차 인정한 인간이다.
눈앞에서 그리 많은 사람을 죽이고 언제나 공포로 군림했던 것이 엊그제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소 편해졌기에 장삼태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로 인해 장삼태는 죽음을 느꼈다. 그리고 입을 다물었다.
남은 것은 단우현의 용서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내공이 있다고 다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요행만 바란다면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며, 명심하겠습니다.”
단우현은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장삼태가 무슨 생각을 하며 단소미를 쳐다보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 또한 인간이 가진 욕망이었다. 게다가 실제로 그 욕심으로 인해 피해가 생기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장삼태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놈이다.
괜한 피를 흘리고 싶지 않았다.
“허허, 저승사자가 찾아왔나 했네.”
그때, 남궁천이 천천히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가득했다.
그 또한 운기를 하면서 단우현의 기세를 느꼈다. 비록 남궁천을 향해 터트린 것은 아니었지만 간접적인 느낌만으로도 한순간 기운이 흐트러질 뻔했다. 자칫 주화입마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내공은 찾았나?”
“허허, 일 할 정도는 말일세. 앞으로 조금 더 노력을 해야 할 테지. 수년이 걸릴지 수십 년이 걸릴지는…….”
남궁천은 씁쓸하게 웃었다.
일 할을 찾은 것 또한 화삼의 영향이 컸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산공독을 해독하는 것에만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일 할만으로도 온몸에 힘이 솟는 감각이었다.
내공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이렇게나 큰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로군. 겨우 삼 일 만에 자리에서 일어났으니. 최소 보름은 누워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단우현은 피식 웃었다.
해독을 할 당시, 남궁천은 열 시진 가까이 괴성을 질러 댔다. 그 정도로 진을 빼고 심력을 낭비하였으니, 지금 이렇게 멀쩡하게 서 있는 것 자체도 놀라운 일이었다.
“지금은 이름뿐이지만 그래도 검황이지 않은가? 이 정도는 거뜬하지. 허허허.”
남궁천은 웃었다.
사실 해독 과정은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었다. 차라리 죽었으면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버틴 이유는 지금 겪는 이 고통이, 검황이 되기 위해 걸어온 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궁천은 잠시 해독하던 날을 떠올리다, 주저앉아 있는 장삼태를 바라보고는 끌끌 혀를 찼다.
하지만 그의 기분 또한 이해를 한다. 만약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남궁천 또한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장삼태를 일으켜 세웠다.
“욕심을 가지는 것은 꼭 나쁜 것은 아니라네. 사람이란 본래 그렇게 생겨 먹은 법이니까. 하지만 누군가를 이용해서는 아니 되네. 인간의 도를 벗어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그리되는 법이라네. 명심하게나.”
“윽!”
장삼태가 신음을 흘렸다.
남궁천의 목소리는 무척 부드러웠으니 그 말에 뼈가 있었다.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으로 호흡을 골랐다.
‘진짜 뒈질 뻔했네.’
이번만큼은 정말로 목숨이 위험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단소미를 건드린 대가는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아는 장삼태였다.
그는 다시금 해이해진 마음을 다잡았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그래, 목이 아홉 개가 아니라면 그래야지.”
“…….”
목숨이 아홉 개가 되었든 열 개가 되었든 몇 번이고 죽일 자신이 있다는 단우현의 눈초리를 받으며 장삼태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무섭다.
당장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았다.
그것을 꾹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든 정말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이 노부는…….”
“내가 아니다. 저 아이의 힘이지. 나는 그저 거든 것뿐이다.”
다시 생각해도, 단소미가 영초를 발견한 것은 정말 놀랍고도 신기한 일이다. 마치 하늘이 내려준 것 같았다. 그렇기에 천운이라 이야기를 한 것이다.
하지만 영초만 있다 하여 산공독을 해독하였겠는가?
아니다. 단우현의 힘이 아니었다면 해독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심법을 익히고 있기에 내공이 이리 정순하단 말인가?’
남궁천은 몸 안으로 흘러 들어온 단우현의 기운을 아직까지도 느끼고 있다.
도가로 유명한 무당이나 소림, 그리고 곤륜조차 이런 정순한 기운을 가진 이가 없었다.
마치 온 세상의 자연이, 그 섭리가 그의 주위로 몰려들고, 그것들이 온몸을 휘저으며 모든 것을 평온하게 만들어 놓는 듯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느낀 그 한 줄기 빛이 바로 그것이었다.
무신이란 무림공적이 되었던 것으로 보아, 분명 사악한 자였을 텐데, 어찌 이런 정순한 기운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남궁천은 이미 단우현을 무신의 후예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단우현의 심법 또한 무산과 같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의 기운에는 마기나 사기라곤 티끌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정순한 기운에, 남궁천은 혹여 자신이 잘못 짚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머릿속이 더욱 어지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