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95
사도학은 한순간 검을 거두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세가 느껴지고 있다. 그렇게 많은 무인들과 부딪쳐 보았지만, 이렇게까지 온몸이 찌릿찌릿한 경고를 보내는 이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러고 보니 저자에게는 빚이 있다.
방심을 했다고는 하지만 처음 일격으로 쓰러진 것.
그리고 두 번째.
또다시 방심으로 일어난 일이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든 저 사내에게 되갚아 줘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수염이 잘린 것을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마교의 정점.
마황이라 불리는 자.
그의 자존심을 되찾아야 했다.
“제법 좋은 기세로군. 방심을 했다고는 하지만 이 내가 쓰러진 이유가 있구나.”
단우현을 바라보고 있는 사도학의 몸에서 뭉실뭉실 검은 기세가 흘러나왔다.
틀림없는 마기(魔氣)였다. 지금까지 남궁천을 상대할 때와는 명백히 다른 기세다.
“방심?”
그러나 단우현은 피식 웃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기 짝이 없는 그 기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또한 말투에는 상대의 말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본디 무인이란 적의 역량을 파악하는 것 또한 실력의 한 부분이라 여긴다.
그런 식으로 본다면 지금 사도학은, 초행길에 나선 무림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누구보다 위에 서 있었던 자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 생각했다.
단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원을 부순 벌을 받아야 하겠구나.”
“벌? 네놈이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그런 소리를 입에 담는구나!”
“알고 싶지도 않고 흥미도 없다.”
사도학은 게슴츠레 눈을 좁혔다. 가만히 단우현을 바라보며 그 역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 이래서 무림을 알지 못하는 놈들은 겁이 없는 법이다. 실력이 조금 있다고 눈앞에 있는 상대를 알아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가.
어이가 없어 웃었다.
결국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보게, 그만두는 것이 어떤가? 괜한 소란을 일으키는 것은 좀…….”
“그만두라고? 나는 저놈과 붙어 보기 위해서 먼 길을 왔다. 한데 예기치 않은 기습에 두 번이나 혼절을 했지 않나! 그런데도 가만히 있으란 말이 네놈 주둥이에서 나오느냐!”
“끄응-.”
남궁천은 한숨을 쉬었다.
광견이라는 별호를 지니고 있었던 사도학이다. 무공에 대한 갈망은 오황 중 으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여서, 그의 취미는 숨어 있는 은거기인들을 찾아내어 한번 붙어 보는 것이기도 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예정되었던 일이다.
말릴 수도 없었다.
‘심지어 단 장주도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이고…… 하긴, 장원이 꼴이 되었으면 그럴 법도 한가?’
남궁천은 주변을 둘러봤다.
고작해야 반각 여 정도 도망을 친 것에 지나지 않은데, 건물 대부분이 박살이 났다. 누가 보면 치열한 싸움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단우현 또한 가만있지 않으리.
저 보라, 저 눈빛.
결코 좌시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미묘하게 웃는다.
비웃는 건지 아니면 그저 내뱉는 실소인지.
사도학의 말에 단우현이 잠시 웃더니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삼태는 소미를 보고 있거라. 무진이는 뒤로 물러서고.”
“예!”
힘차게 대답을 하며 권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우현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남궁천의 행동으로 보아 예사로운 인물이 아니다.
그런 고수들과의 싸움을 지켜볼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은 기연은 없다.
그러나 장삼태는 달랐다.
단우현의 곁에 붙은 그는 바닥에 ‘퉤!’ 하고 침을 뱉더니…….
“아이고…… 뒈지는 줄 알았네. 시벌! 야이 미친 노친네야! 미치려면 곱게 미쳐야 될 거 아니야!”
그 말에 사도학이 눈썹을 들썩였다.
이 중원 천지에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저러한 말을 입에 담지 못한다. 그만큼 높은 위치에 있고, 또한 누구도 얕보지 못할 무력을 손에 쥐고 있으니까.
사도학이 비웃음을 머금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검은빛 한 줄기가 빠르게 뻗었다.
장삼태나 권무진의 입장에서, 그저 뭔가가 보이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한데,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장삼태의 곁에 있던 단우현이 손을 움직이자, 허공에서 무언가가 터졌다.
장삼태는 깜짝 놀라 그대로 주저앉았다.
“뭐…… 뭐야…….”
틀림없이 죽이기 위한 일격이었다.
그러한 낌새를 느낀 장삼태가 마른침을 삼키며, 허겁지겁 뒤로 물러서더니 단소미가 있는 곳을 향해 내달렸다. 이곳에 있다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성격이 불 같은가 보군. 말 한 마디에 살수를 쓰다니.”
“흥! 어떤 무인이든 모욕을 듣고 가만히 있을 이는 없을 것이다.”
단우현은 그 한 마디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맞는 말이기도 했다.
다만 상대가 약자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고작해야 훈계로 그칠 수 있는 일로 죽이고자 한다면, 무인이 아니라 살귀나 다름없다.
작게 한숨을 쉰 단우현이 손을 움직이며 까닥였다.
“그렇군. 하면 와 보거라. 네 위치를 깨닫게 해 주지.”
사도학의 얼굴이 붉어졌다.
상대를 얕보며 내려다보는 저 시선.
지금까지 사도학 본인이 했던 그 눈빛이었다.
자신보다 위는 없고, 오로지 아래만 있다는 걸 확신하는 강자의 눈빛.
그 시선이 사도학 자신을 향하고 있으니 울분이 치솟았다.
검을 들고 있던 사도학의 몸에서 짙은 마기가 흘렀다. 그것은 결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 강자의 기세였다.
한순간이기는 하지만, 권무진은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서 있던 그 자리에서 굳어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이 기세! 설마?!’
왜 지금까지 깨닫지 못하였는가?
남궁천과 안면이 있고 마공을 쓰는 자.
심지어 그 수준이 검황과 비견된다고 한다면 이 중원에는 오로지 한 사람밖에 없다.
마황 사도학.
그 이름을 깨닫는 순간 권무진은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자칫 이 자리에서 단우현이 당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들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길, 오황의 실력은 비등비등하지만, 마공의 특성상 그 파괴력만큼은 으뜸이라 했다.
하나, 단우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며…….
“오거라.”
……하고, 슬쩍 손을 내밀었다.
검을 쥐려 하지도 않았다.
검도 없이 사도학을 상대하려는 단우현이, 권무진의 눈에는 그야말로 자살행위를 하는 것과 다름없이 보였다.
“이놈!”
사도학이 화를 내며 달려들었다.
쾅!
격렬한 소리와 함께 무수히 많은 파편들이 날아올랐다. 고작해야 움직인 것에 지나지 않으나, 그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사도학의 몸이 사라지더니 어느새 단우현 앞에 나타났다.
눈을 치켜뜨고 있었음에도 권무진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조금 전 남궁천을 쫓아다닐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쯧쯧.”
한데, 남궁천이 혀를 찼다.
슬쩍 몸을 튼 단우현의 목덜미 사이로 검이 스쳐 지나갔고, 어느새 뻗어진 그의 손가락이 사도학의 미간에 닿아 있었다.
“억?!”
“같은 수가 두 번 통할 상대는 아니지.”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날아든 사도학의 기습을 움직이지도 않고 피해 내고, 오히려 역공을 했다.
단우현이 저대로 지법을 날린다면 사도학은 피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사도학의 칼 또한 단우현의 목덜미에 있었다.
단우현이 죽는 것은 한순간일 터.
사도학은 물러서느냐, 앞으로 나아가느냐의 상황에 직면했다.
사도학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의 사전에 물러선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그대로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사악-!
바람 가르는 소리가 격렬하게 귀를 울렸다.
단우현의 목이 날아갈 것이라 생각을 하며 질끈 눈을 감았던 권무진은,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자 천천히 눈을 떴다.
“이 무슨……!”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노리고 있을 때는 먼저 기세에 눌린 이가 지는 법이다. 사도학은 이미 단 장주의 기세에 눌렸구나.”
“예?”
“……모르겠으면 그냥 보거라.”
횡으로 휘두른 사도학의 칼날은 허공을 갈랐다.
분명 단우현의 목을 잘랐어야 함이 옳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멀쩡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으며, 오히려 사도학이 네 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크윽……!”
장력에 얻어맞았다.
미간에 닿아 있는 손가락을 신경 쓰고 있었고, 지법이 펼쳐지기 전에 단숨에 목을 베어 내면 된다고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손은 하나가 아니다.
단우현은 왼손을 뻗으며 장력으로 사도학의 가슴을 후려쳤고, 동시에 사도학이 휘두른 검을 몸을 비트는 것만으로 피해 내는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선보였다.
사도학이 더욱 울화가 치민 것은…….
‘저 자식!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어!’
이 중원 어느 누구도 그를 적대한 채 멀쩡히 서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저놈은 뭐란 말인가? 여전히 표정조차 드러나지 않은 얼굴 때문에 더욱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왜 그러나? 생각없이 찾아온 곳에서 뜻하지 않은 일을 겪으니 당황했나?”
“쓸데없는 소리 말거라.”
“정곡을 찔렀나 보군.”
단우현은 피식 웃었다.
그러곤 주위를 둘러봤다. 거의 일 년 가까이 정 붙이고 살던 장원 대부분이 망가졌다. 이 값은 반드시 받아 낼 것이라 다짐했다.
“팔다리 하나 정도는 가져갈까 했지만, 망가진 장원을 고쳐야 하니 몸은 멀쩡한 게 좋겠지. 그럼 머리인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사도학이 언성을 높이며 이를 갈았다.
단우현이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작은 소리지만 들리지 않을 리 없다. 입신의 경지에 올라와 있는 사도학의 청력은 짐승의 것보다 몇 배 이상 뛰어나니 말이다.
그러나 단우현은 신경 쓰지 않고 손을 까닥였다.
“뭐 하느냐? 다시 오거라.”
여유 가득한 한 마디가 사도학의 마음에 또다시 불을 지폈다. 반드시 저 빌어먹을 얼굴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의지를 피워 올리며 사도학이 움직였다.
그의 몸에서 마기가 흐르며 희미한 잔상을 만들어 냈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고 있는 모습은 마치 마귀(魔鬼)가 걸어오는 것처럼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처…… 천마군림보……!”
권무진은 저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오로지 마교의 정점만이 쓸 수 있다는 절대적인 보법.
무수히 많은 사파인들을 무릎 꿇게 만들었다는 무공.
단순히 보법이 아니라, 그 마귀가 사람의 심령을 제압해 버린다고 한다.
심지어 사도학 본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흐릿한 검은 마기들이 잔상을 만들어 내며 다가오고 있었고, 그 모든 것들이 하나같이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고 있었던 탓에, 남궁천조차 누가 사도학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재미있구나.”
단우현은 가만 그 상황을 바라봤다.
온 주위가 시커멓게 물들고 있었다. 주변 전체가 그의 몸에서 흐르는 마기로 가득하였고, 그것은 곧 하늘마저 가려 버릴 듯했다.
그 무시무시한 마기는 단우현조차 집어삼킬 것 같았다.
“이런 것을 흔히 마기라고 하던가?”
단우현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어려운 상황임이 분명한데도 여유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내 천천을 손을 뻗자 그의 주위로 바람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잔잔하게 다가오는 검은 기운을 보면서도 초조함을 느끼지 못하는 단우현의 마음을 대변하듯, 바람은 산들산들 불어와 그의 손아귀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모인 바람은 자그마한 구체를 만들더니, 곧 맹렬한 속도로 돌며 거센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마치 검은 기운마저 집어삼킬 듯!
이윽고, 손아귀에 있던 바람이 터지자…….
촤아아악-!
사방의 암흑이 걷혀 나갔다.
갈가리 찢겨 날아간다.
마기든 마공이든, 바람의 칼날을 막아 내지 못한 채 어둠은 그렇게 사라지고, 사도학은 온몸에 피를 뿌리며 떠올랐다.
“크아아악!”
그의 괴성이 가득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