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96
만후량은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 차를 마시며 정면에 있는 자를 바라봤다. 얼굴이 보이지 않게 복면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날카로운 기도가 느껴지는 것이 평범한 이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런 사내를 바라보는 만후량의 시선은, 마치 벌레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시선조차 제대로 주지 않은 채 차를 한 모금 후루룩 넘긴 만후량이 물었다.
“그래, 어찌 되었느냐?”
“보냈던 수하들의 연락이 끊겼습니다.”
“……흠, 그렇다면 틀림없이 검황이렸다?”
“그것이…… 그런 것은 아니라 판단됩니다.”
“아니라 생각한다? 왜냐?”
시큰둥하던 만후량의 시선이 처음으로 사내를 향해 돌아갔다. 상대의 입에서 나올 말이 몹시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죽은 이들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장원을 습격하고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와중에 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습격은 했다?”
“예, 아이들을 보내 확인을 해 보니, 장원은 이미 폐허나 다름없을 정도로 싸움의 흔적이 격렬했다 합니다. 또한 보냈던 아이들이 죽은 곳은 장원에서 그리 멀지 않았고, 그곳에서 벌어진 싸움의 흔적은 검황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확실한 것이냐?”
“목숨을 걸 수 있습니다. 시신을 확인해 본 결과, 검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검황의 무예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잔학했습니다. 또한 마공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마공…… 마공이라……. 그렇다면 마교의 고수가 숨어 있었던 곳이라는 말이로군.”
“그런 것으로 사료됩니다.”
만후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하들의 추측이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딘지 모르게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콕 집을 수가 없었기에 지금은 그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 장원의 인물들은 죽었느냐?”
“……애초에 검황의 시신을 제외하면 모두 가라앉히라 하였으니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다만, 그자들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합니다.”
“마교의 고수는 살아 있을 테지만 그와 함께 있는 이들은 행방불명이다? 어쩌면 다 살아 있을지도 모르고…….”
“죄송합니다!”
“아니다, 아니야.”
크게 손사래를 치며 만후량은 웃었다. 그들에게 내린 명령은 어디까지나 ‘검황을 죽여라’였다. 비록 실패한 정황이 보이긴 하지만, 그곳에 있던 이가 검황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였다면 그것으로 족한 일이기도 했다.
괜한 피를 봐서 무엇하는가?
만후량은 짧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렇다면 그 양반이 정말 죽은 것일까?”
만후량은 인상을 썼다.
확실히 그 검황의 시신을 눈에 새겼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뒤처리가 깔끔하지 못했던 것은 만후량의 실수였다.
“어쩔 수 없지. 네놈들은 호남의 일에는 손을 떼고 아이들을 물려라. 괜히 꼬리를 밟혀 봐야 좋을 것은 없을 테니.”
“존명!”
“아아, 그리고 그쪽 일은 어찌 되었느냐?”
“순조롭습니다.”
이번에는 만족한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검황이 어찌 되든 간에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눈엣가시였고 모용혁문의 마음을 더욱 크게 흔들기 위해서 그 시신이 필요했던 뿐이었다.
지금 그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만후량이 자세를 고쳐 잡고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이대로 안휘로 가거라.”
“명!”
“이제 그만 남궁세가의 현판을 내려 드려야지. 하하.”
늦은 밤.
단우현은 무너진 장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홍원창을 비롯하여 남궁천과 권무진, 그리고 장삼태마저 우두커니 선 채 단우현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장원은 폐허가 되었다.
담장은 거의 무너져 더 이상 존재한다 말할 수 없었고, 그 화려했던 건물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그에게 안식을 주었던 공간이었기에 씁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처음 이곳에 장원을 지었을 때가 생각나는구나.”
그 한 마디에 모든 이들이 화들짝 눈을 치켜떴다.
단우현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그 목소리를 들은 이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몸이 떨려 왔다.
‘역시 지은 거 맞잖아!’
‘보수를 했다더니…… 하긴 믿는 사람도 없었지만.’
네 사람은 어색하게 웃었다.
어찌 되었든 단우현이 이 장원을 고작 하루 만에 지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주님! 이 삼태가 깔끔하게 고쳐 놓을 테니 말입니다.”
“하하, 그러하냐?”
“예! 그 늙은이 돈도 많은 것 같고 사지 멀쩡하니 실컷 부려 먹으면 그만이지 않겠습니까?”
슬그머니 다가온 장삼태가 웃으며 말했다.
그 또한 단우현 못지않게 이 장원에 애착이 있었다.
처음 들어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따지고 보면 일 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너무나도 많은 추억들이 있었다.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만큼 말이다.
그렇기에 이곳은 장삼태에게 있어서도 보금자리였다.
갈 곳 없는 그에게 이곳은 집이고 고향이며 가족들의 품이었다.
이것은 단우현이나 장삼태나 같은 생각이다.
“빨리 고쳐야 할 터인데……. 관부의 신세를 언제까지 질 수는 없으니 말이야.”
“하하하! 어인 말씀이십니까? 주군! 이 홍원창의 집이 주군의 집이지 않습니까?”
순간 단우현이 묘한 시선으로 홍원창을 바라봤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협이라는 소리를 한 것 같은데, 뜬금없이 주군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권무진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그때 단우현이 ‘아!’ 하며 무언가를 떠올렸다.
분명, 비급 하나를 적어 준 것이 있었지?
그 때문인가?
주군이라는 말이 영 거슬리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좋다 생각했다.
“그리 말을 해 주니 고맙구나. 한데, 이곳에 손님이 왔었나 보군.”
단우현이 슥- 발밑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기이한 발자국 몇 개가 나 있었다. 흔적을 지우려고 노력을 한 것 같기는 했지만, 아주 작은 흔적까지는 미처 다 지우지 못한 것 같았다.
“이곳에도 있구나.”
남궁천 또한 다른 이의 흔적을 찾았다.
마치 무너진 장원의 내부를 뒤져 본 것 같았다.
한 사람이 아닌 수 명. 포졸이나 다른 누군가가 이곳에 오지 않았으니 불청객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틀림없네. 자네가 말했던 그놈들이야. 아마도 확인을 하러 온 것일 테지.”
저벅저벅-
단우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장원 한 바퀴를 돌았다.
곳곳에서 미처 지우지 못한 흔적들을 발견하고는, 그들이 사용했던 경공을 떠올리며 발자국을 확인했다.
틀림없다.
“뭐 하는 놈들일까…….”
“쫓아 보겠는가?”
“아니다. 이미 늦었을 테지. 꼬리를 잡기에는 너무 늦었어.”
장원이 무너지고 홍원창의 집으로 들어간 것이 벌써 나흘 전이다. 그간 단소미를 달래랴, 쓰러진 사도학의 몸을 돌보랴 정신이 없었던 탓에, 장원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진작 찾아왔다면 잡았을지도.
단우현은 쯧 혀를 찼다.
아쉽기는 하지만 거기까지.
언젠가 또다시 잡을 수 있을 테지.
“일단 돌아가도록 하지.”
지금은 장원을 고치는 일이 시급했다.
단우현 혼자서도 그 정도 일은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기는 하지만, 사실 홍원창의 집에 살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었다.
‘그래, 그때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단우현은 전문적인 목수가 아니었다. 또한 집을 지어 본 것도 처음이었다.
손재주가 좋았던 탓에 머릿속에 있는 형상 그대로 집을 지을 수는 있었지만, 목수들처럼 완벽하게 지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가 지어 놓았던 장원은 화려해 보이기는 하나, 곳곳에 틈이 많았으며 또한 약했다.
겨울이 다가오니 알게 되었다.
찬바람이 쌩쌩 들어와 단소미가 부들부들 떤 일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것들을 모두 보완하여 완벽하게 장원을 지을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단우현의 눈에 투지가 깃들었다.
사도학은 눈을 떴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감각이 몰아쳐 왔다.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만큼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기억을 더듬었다.
이윽고 하나의 생각을 떠올리며 허탈하게 웃었다.
“졌구나…… 이 내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기습 때문이라 여겼다. 하지만 당시의 일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니, 격의 차이를 확실히 느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허-’ 하며 또다시 어이없이 웃었다.
이 천하의 마황이라 불리는 사도학이…….
“깨셨어요?”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분명 아무런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는데 아이가 있었다. 아니, 느끼지 못한 것이 아니라 몸의 감각이 다소 상실된 것 같다.
그만큼 크게 당한 것이다.
“사흘 동안 잠만 주무셨어요.”
동그란 눈동자가 뚫어지게 사도학을 바라봤다.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는 그 눈빛. 그저 눈앞에 있는 상대에 대한 걱정만이 가득해 보였다.
사도학은 인상을 썼다.
“너는 분명……?”
“단소미라고 해요!”
“그렇구나.”
“할아버지는요? 아, 할아버지 맞죠?”
“……사도학이다.”
사도학은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답했다.
그는 어린아이들이 싫었다.
시끄럽게 떠들기만 하고 철없이 행동하여 남에게 민폐만 준다. 심지어 떼까지 쓰면 그야말로 가관이다.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목청이 터져라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면 한 대 때려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 그의 앞에 어린아이가 있었다. 비록 여자아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다.
“물 드실래요?”
“되었다.”
“밥 드실래요?”
순간, 지난 일이 떠올랐다.
사도학은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 하며 입에서는 길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
“…….”
둘은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사도학이 대답을 하지 않으니 단소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결국 끙끙거리며 한참을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저기, 죄송해요!”
“응? 뭐가 말이냐?”
시큰둥한 대답이 돌아왔다.
또 무슨 사고를 친 건가?
벌써부터 앞이 아찔했다.
“그 수염…… 소미가 그랬어요.”
“그렇…… 뭐라?”
“하…… 하지만, 악의는 없었어요. 조, 조금 지저분해서 다듬어 주려고…….”
사도학은 인상을 썼다. 화가 끓었지만 고개를 숙이며 울먹이고 있는 아이에게 언성을 높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또 한 번 한숨을 쉬었다.
“되었다. 지나간 일이니.”
“헤…… 헤헤.”
“웃지 말거라. 그리고 잘못한 아이는 벌을 받아야 하는 거다. 저쪽에서 벽을 보고 손을 들고 서 있거라.”
“에?”
단소미는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어떠한 잘못이 있어도 대부분 사람들이 그저 웃으며 받아들였다.
장삼태는 물론이고 권무진이나 남궁천까지.
단우현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단소미는 쭈뼛쭈뼛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난인 줄 알았지만 부랴부랴 눈을 치켜뜨는 사도학을 보고 있자니 차마 ‘장난이죠?’ 하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그마한 두 다리로 쪼르르 벽 앞에 서고는, 두 손을 들어올리기 전에 또다시 힐끗 사도학을 바라봤다.
“저, 정말로 해요?”
“당연하지 않느냐!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네에.”
단소미가 손을 들었다.
그러고도 힐끗힐끗 고개를 돌리며 사도학의 눈치를 살폈다. 저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혼나는 일을 제대로 겪어 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얼마나 감싸고 키운 건지.
“헤헤.”
그때, 단소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벌을 받고 있는데도 웃음이 들리니 딴짓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쏘아봤다.
“뭐가 그리 웃기더냐?”
“그, 치만, 왠지 기분이 좋은걸요. 다른 사람 누구도 소미한테 이러지 않으니까요.”
“하!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그런 것이지. 그리 자라면 커서 뭐가 될 것 같으냐?”
“으음-!”
단소미의 짧은 신음이 들렸다.
한참을 생각을 하더니 획 고개를 돌려 사도학을 바라봤다. 어느새 만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미인?”
“어이쿠, 참 지랄도 풍년이구나.”
사도학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약간 모자란 아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