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Reincarnated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
환생마신전-1화(1/390)
환생마신전
소천마 연운휘
하얀 융단처럼 허리까지 내려오는 비단결 같은 머릿결.
나른하고 퇴폐적인 눈빛.
여장을 하면 미소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는 청년이었지만.
정작 천산산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도 그에게 함부로 그런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사술(邪術)의 대법사(大法師).
―구천을 떠도는 망령들의 왕.
―천마신교 소교주.
등등.
그를 가리키는 칭호와 이명은 저 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았으니.
―소천마(少天魔) 연운휘(燕雲輝).
단일 세력으로는 강호에서 최강을 논한다는 천마신교(天魔神敎)의 작은 주인.
당연히 소속을 막론하고 강호인이라면 누구나 그의 시선조차 조심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가 두려운 가장 큰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이것밖에는 안 되는 거요, 사숙? 이러면 조카인 본인이 너무 실망스럽지 않겠소?”
저 독기를 보라.
단 한 줌만으로도 황소를 녹인다는 맹독, 학정홍을 잔뜩 마시고도 쓰러지기는커녕 오히려 눈가로 귀화(鬼火, 도깨비불)를 줄줄 피워대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냉혹하게 웃는 조소는 당장 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였다.
거기다 그 앞에 나뒹구는 술잔이며 이마에 구멍이 뚫린 채 쓰러진 십여 명의 특급 살수들까지.
분명 좋지 않은 몸 상태로도 이런 일들을 해낸 모습이, 연운휘가 어떤 인종인지를 설명해주었다.
독종.
실제로 체질 때문에 무공도 익히지 못했으면서 오로지 이능만으로 신교를 휘어잡고, 끝내 소교주까지 된 그에 대한 평가는 아주 간단했다.
―그가 웃으면 당장 뒤도 돌아보지 말고 튀어라. 그건 그냥 네가 좆된다는 뜻이다.
―그의 눈 안에 들어라. 그럼 평생 너를 보호하는 우산이 되어줄 것이니. 단, 그게 가능하다면.
‘예전부터 그랬었지. 타고난 성질이 고약한 것인지, 아니면 불편한 몸 때문에 성격이 그리 비뚤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쯧!
이 상황을 획책했던 부교주 천하진은 이 모든 게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였던가. 연운휘가 중원에 시찰을 나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소문이 났던지, 무당파의 웬 어린 도사 한 놈이 자꾸만 뒤를 밟아 그를 귀찮게 한 모양이었다.
이에 연운휘는 후기지수의 머리카락을 죄 뽑아서는 빡빡이끼리 잘해보라며 소림사 경내에 던져버리면서 무림맹을 들썩이게 했다.
정파 놈들이 전쟁이라도 일으키자는 것이냐며 길길이 날뛰던 걸 뒷수습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던지.
문제는 이건 아주 작은 예시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이 말고도 연운휘가 저지른 사건 사고는 수두룩빽빽이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사고는 연운휘가, 뒷수습은 천하진이.
문제는 이런 연운휘의 화려하고 거침없는 행보에 젊은 교도들의 지지가 나날이 높아만 가고 있다는 점이었으니.
천하진은 더 이상 천마신교가 망할 사질에 의해 망가지는 것을 묵과할 수 없었다.
“그러게나 말이다. 사질에게 처음으로 가르침을 주려 했는데 잘 안되었어. 면목이 없구나.”
“몸만 무겁지 않았다면 이들처럼 사숙의 머리통에도 똑같이 시원한 바람구멍을 내어줬을 텐데 말이오. 무척이나 아쉽다오.”
“그 역시 뜻한 대로 되지 못할 것 같아 애석하단 말밖에 할 수 없겠군.”
천하진은 여유롭게 대답하면서도 속으로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이 이상 고아 출신 따위가 계속 멋대로 떠벌리게 놔둘 수는 없었다.
어차피 밑 작업은 전부 끝났다.
연운휘의 호위대는 이미 전부 제거된 지 오래.
교주 비전도 익히지 못한 교주를 맞고 싶지 않았던 장로들의 설득도 끝났다.
‘위’에서도 그렇게 해도 좋다는 재가가 떨어졌고.
그렇다면 이제는 제거만 남은 셈이었다.
찰박! 찰박!
천하진은 온통 시체와 피로 가득한 바닥 위를 걷기 시작했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았어도 사승의 인연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아직까지는 천마신교의 자랑스러운 작은 주인이기도 하고.
그러니 마지막은 그의 손으로 장식해줄 아량쯤은 남아있었다.
* * *
사부.
사부께서 그토록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씀하시던 신뢰의 대가가 고작 이것이었습니까?
정말 순진하십니다.
거 보십시오.
결국 제 말대로 저 빌어먹을 작자가 우리 뒤통수를 이렇게 후려치지 않습니까?
나는 천마궁에서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계실 사부님을 뵙는다면 그렇게 전하고 싶었다.
신검천마(神劍天魔).
한때 강호를 위진시키던 그분이 못난 제자의 망가진 단전을 치료해 보겠다며 대법을 연구하시다가 주화입마에 빠지지만 않으셨어도, 저놈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일 따윈 없었을 텐데.
나는 원래 타고나기로 단전이 망가진 상태로 태어나서 절대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흔한 기초 호흡법도 익힌 적이 없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지, 아니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큰 불행인지는 몰라도 내게는 남들과는 다른 특이한 재능이 있었다.
―사자안(死者眼).
나는 죽은 사람을 볼 줄 알았다.
아니, 죽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괴력난신… 세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것들과 대화를 나누고 때때로 부릴 줄도 알았다.
사부님이 그런 나를 발견한 것이다.
‘너는 절대 특이한 것이 아니다. 특별(特別)한 것이지.’
그날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또 헛것을 보고 거짓말을 해댄다며 동네 아이들에게 두들겨 맞고 굴다리 밑에 버려진 나에게 사부님이 손길을 내미셨던 그날을.
‘저 하늘 너머에 ‘탑’이 나타난 이래. 간혹 너처럼 상단전이 극도로 발전하거나, 독특한 영근(靈根)을 갖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단다. 그러니 그 재능은 잘못이 아니란다. 오히려 축복이지.’
특별.
축복.
그건 항상 ‘나는 왜 사는 걸까’ 하는 후회만 품고 살던 나에겐 세상을 보는 시선을 바꿔주는 마법의 단어였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은 특별한 만큼 항상 특별한 일을 해내곤 했지. 너 역시 그럴 게다.’
‘정말…… 요?’
‘그래. 그러니 나를 따라오겠느냐? 네가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도 특별해지는데 이 늙은이가 한 몫 거들어주마.’
그 뒤로 나는 사부님 밑에서 사자안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여러 술수를 배우기 시작했다.
음양술, 복서, 방술은 물론, 사마외도의 비밀스러운 수법이나, 머나먼 서역의 점성술이며 악마술, 심지어 불멸을 추구한다는 옛 배화교 비의(秘儀)까지.
누구보다 끈질기게. 또 누구보다 악독하게.
비록 사부님처럼 직접 손에 검을 쥐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분의 치세를 도울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수많은 편견과 손가락질 속에서도 사부님을 닮고 싶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그리하여 천마신교를 떠받치는 세력들, 구대마종(九大魔宗)과 칠십이사사문(七十二邪邪門)의 후계자들을 모두 따돌리고 이 자리에 앉을 수 있었으니…….
하지만 그런 위업도 오늘로 끝난 모양이었다.
“갈 때 가더라도 하나만 물어봅시다, 사숙.”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녀석의 입가에 웃음기가 다분하다. 승자의 미소일 테지.
저 낯짝을 깨부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서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무엇이냐?”
“사숙을 충동질한 배후가 대체 누구요? 간댕이가 소갈딱지만도 못한 사숙이 이런 거창한 계획을 주도했을 리는 없고. 판을 깔아준 쥐새끼가 있을 것 아니오?”
천하진의 얼굴이 아주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너를 권좌에서 끄집어 내리는 것은 나와 장로들의 결의로-”
“개지랄하지 마시오. 그쪽은 그럴 만한 깜냥이 안 된다니까?”
“이놈이!!”
더욱더 일그러진 녀석의 얼굴에 어린 감정은 딱 두 가지였다.
낭패.
그리고 열등감.
원래 이놈은 이런 놈이었다.
사부님이 멀쩡하시던 시절에는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 숙이고 다니기 바빴던 병신 새끼.
“누구지? 흑골귀곡주? 뇌정혈문주? 아니면 집마도전주? 그도 아니면? 내가 모르는 제삼자라도 있나?”
“……!”
“제삼자로군. 흑막이 있었어. 설마 사부님을 저리 만든 것도 거긴가?”
“닥쳐라!!”
콰아아아-
천하진은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지 검게 물든 흑옥수(黑玉手)로 내 목을 꺾으려 들었다.
그로써 난 확신을 가졌다.
사부님도, 나도 이렇게 된 데에는 누군가가 흑막에서 조종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천마신교를 집어삼키는 게 목적이라는 것까지.
당연한 말이지만, 나 역시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할 생각 따윈 없었다.
“날 죽일 때 죽이더라도 딱 한 가지 사실만큼은 떠올려야 하셨소, 사숙.”
콰드득!
천하진의 거친 손길에 내 모가지가 돌아갔다.
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소리와 격렬한 고통.
하지만 나는 웃었다.
천하진의 얼굴이 순간 질린 기색이 되었다.
목이 돌아가도 떠들어대는 꼴이 녀석에겐 기괴하게 보일 테지.
그러다 뒤늦게 내가 뭘 노리려 하는지 깨닫고 창백해지고 말았다.
“너 설-”
늦었어, 새꺄.
“성물인 마룡검(魔龍劍)은 초대 천마께서 남기셨다는 사리가 섞인 최고 마도구이기도 하지.”
나는 무릎 맡에 놔뒀던 마룡검에다 손을 갖다 댔다.
언제 필요할지 모르니 사부님께서 항상 구비하고 다니라고 하셨던 교주의 성물.
그만큼 추억도 많이 담긴 물건이었건만.
…이걸 내 손으로 부서뜨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상단전에서 비롯된 내 술력이 전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 순간, 마룡검이 검집과 함께 유리창처럼 산산조각났다.
와장창!
수없이 비산하는 흑색 검면 조각 위로 하얗게 질린 천하진은 물론, 그 뒤에 있던 마영단이나 장로들의 얼굴까지 전부 비쳤다.
악귀처럼 웃는 내 얼굴까지도.
“그러니까-”
영폭지옥염의(靈爆地獄炎儀).
영혼을 불살라 지옥불을 세상에 끄집어올리는 술수.
신교의 최고 마도구를 제물로 삼은 만큼 그 위력은 아주 대단할 것이다.
아무리 못해도 소교주전이 있는 쇄천봉 하나쯤 날려버릴 정도는 되지 않을까?
“다 뒈져라.”
―!
그 순간, 세상이 백색으로 물들었다.
* * *
의식이 점점 멀어져 간다.
.
.
다 뒈졌나?
아마 다 뒈졌을 것이다.
그런 폭발에서 살아남았다면 오히려 실력을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다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편하게 눈 감을 수 있냐면은 그건 또 아니었다.
아직 사부님은 천마궁에 누워계시고, 흑막은 누군지 알아내지도 못했다.
놈들의 마수가 또 언제 뻗쳐 올지 모르는 이상 편히 눈을 감기가 힘든 일.
그러니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되살아날 방법을.
하지만 육체도 폭발에 완전히 산화한 마당에 ‘연운휘’로 다시 깨어날 수는 없으니.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내가 아닌 다른 몸으로 깨어난다면?
옛 배화교의 대법 중에 원신전륜겁(原神轉輪劫)이라는 게 있다.
노환이나 부상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옛 배화교주들이 신선한 육체로 갈아타기 위해 만들어낸 대법(大法).
하지만 십중팔구는 실패하고, 설사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영혼과 육체의 불일치로 끝내 죽고 말아 금기로 분류되었으니.
하지만 나로서는 딱히 이걸 피할 이유가 없었다.
실패해봤자 죽는 거고, 성공한다면…… 새 기회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사부님을 구하고, 흑막을 찾아 제거할 기회.
때마침 주변엔 폭발에 쓰다 남은 마룡검의 잔재 마기도 남아있었다.
그걸 통제하면서…… 천천히 허공으로(혹은 생각되는 곳으로) 손을 뻗었다.
순간, 검은 하늘에서부터 구원의 빛 한 줄기가 내려오는 듯하더니 내 손끝에 닿았다.
그 광경이 마치 운휘(雲輝), ‘구름 속의 빛’이라는 내 이름과 같다고 생각하면서 정신을 잃었다.
그 이름은 이름 없이 살던 내가 사부님을 처음 만났던 날에 얻은 이름이기도 했다.
환생마신전
서장
―탈각자(脫殼者).
인간의 한계를 벗어던지고 하늘 위에 자리 잡은 ‘탑’을 오르려는 절대자와 반선(半仙)들을 가리켜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환생마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