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Reincarnated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15)
환생마신전-115화(115/390)
내 손녀다, 이거야!
암존이 나를 찾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저 비무에서 보였던 모습에 관해 칭찬하거나, 의문을 던지지 않을까 하는 추측뿐.
이에 대한 대답도 전부 생각해뒀기에 별다른 걱정이 없었다.
망령들 역시 마찬가지라, 오히려 자기네들끼리 쓸데없는 논쟁으로 시끄러웠다.
「앞으로 신교를 일으키셔야만 하는 소교주가 아니시오! 그러니 당연히 백도 명문가와의 혼약은 불가능하외다!」
「소속을 따지기 전에 상대의 신분을 생각해야! 무려 암존의 손녀요! 혈맹(血盟)을 맺으면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생각이나 해보셨소?」
이 논쟁 언젠가 봤던 것 같은데 말이야.
왜 기시감이 느껴지지?
「뿌리를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오! 뿌리! 중원의 것들은 우리의 적이오! 반드시 섬멸해야 할 대상!!」
「에잉, 고리타분하긴! 지금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아직도 뿌리 타령이오?」
「뭐라!?」
「우리의 처지부터 생각하시오, 제발 좀! 저들이 우리의 오랜 주적이었다고 하나,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처지에서 당문은 아주 좋은 기반이 될 텐데 그걸 걷어찬단 말이오?」
「어허! 그래도 우리의 근본은 천산이거늘! 천산은 세상으로부터 배척받은 이들의 낙원이었다! 그런데 그들을 등에 업는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 그렇게 잘난 낙원이어서 우리가 또 통수 맞은 거요? 하여간 현실 따윈 모르는 곤대(昆代)들이란.」
「곤대? 그건 또 뭐야? 오래될 곤에 세대 대… 이, 이놈이!!」
「헹? 이제야 아셨슈?」
「이 새끼가!」
「거 나이도 같이 먹는 처지끼리 이 새끼 저 새끼 하지 마슈. 듣는 새끼 기분 나쁘니까.」
「뭐 인마!?」
우당탕탕. 오늘도 두 진영의 의견 다툼은 평행선을 달리는 중이었다.
논쟁에 참여하지 않은 망령들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늘여 놓았다.
「암존과 광풍난협의 관계는 악어, 악어새 관계와 다를 게 없사옵니다. 그런 면에서 고려해 보자면, 사실 ‘당운휘’인 소교주의 난데없는 파혼 선언은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요.」
「어쩌면 당문 내에서 그동안 쌓은 입지는 물론, 앞으로 사천 무림에서의 활동마저 완전히 막혀버릴 우려가 큽니다.」
「암존이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라고는 하나, 과연 일개 혈족이 자신의 얼굴에 먹칠하는 걸 가만히 두고만 볼지 의문이옵니다.」
확실히 나와 당예원의 혼인은 당문의 단단한 결속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당문과 나아가 맹을 내 것으로 삼으려는 내 계획에도 큰 도움이 될지 몰랐다.
천지봉황 당예원이야말로 암존의 후계자 위치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받으니까.
그러니 그냥 눈 딱 감고 혼사를 진행해도 되었지만, 오랜 고민 끝에 이건 아니란 결론을 내렸다.
이성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그래도 우선 혼사 결정은 최대한 미뤄두는 편이 좋긴 할 것 같사옵니다.」
「동감이옵니다. 선택지는 최대한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니!」
「그런 면에서 보자면 마음에 둔 정인이 따로 있다는 명분은 쉽게 건드리기 어려운 명분일 터.」
「역시 소교주의 술책은 하늘에 닿아있사옵니다!!」
조금 전까지 서로 격하게 다투던 망령들도 이제는 다 같이 뻐꾸기가 되어서 나를 떠받들기 바빴다.
하여간 이 인간들, 이러랴 저러랴 참 바쁘다, 바빠.
다만, 딱 한 가지 이들의 착각을 고쳐줄 부분이 있었다.
‘술책이라고 생각해? 전혀 아닌데?’
「오잉?」
「…예?」
‘술책 아니라고. 그 말 진심이야.’
「!!」
「저, 저, 저, 정인이 저, 저, 정말 이, 있단 마, 마, 말씀이시옵니까!?」
‘어.’
「헉!」
「대, 대체 언제-」
「저, 저희가 알기로 분명히 소교주께서는 연애 한번 못 해보셨었-」
「그, 그렇다면 환생 이후에 정인을 두셨다는 말씀이 아니셨사옵니까? 하지만 항상 소교주 곁에는 저희가 붙어있는데 어떻게 정인을 만드실 수 있-」
「호, 혹시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그림 속 처자를 좋-」
‘뒈질래? 요즘 망령환 안 만드니까 아주 살맛 나지?’
「죄, 죄송하나이다.」
망령들은 재빨리 넙죽 바닥에 엎드렸다.
「대체 언제 정인이 생기신 건지 여쭈어도 되겠사옵니까?」
나는 아무 대답 없이 그저 입을 꾹 다물었다.
굳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사실 따지자면 서로 마음을 확인한 정인이라기보다 나의 일방적인 호의에 불과하긴 하지만.
망령들도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두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렸다.
* * *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난협전에 들어선 지금.
나는 암존과 같이 장원의 뒤쪽에 마련된 산책로를 같이 거닐고 있었다.
암존이 지나간다는 소식이 들려서 그런지 산책로는 한적했다.
‘대체 무슨 이유로 나를 부른 거지?’
암존은 앞장서서 유유히 걸으며 풀잎 감상에만 집중할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있었다.
뒤에서 묵묵히 따르던 나로서는 그의 생각을 알 수 없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워낙에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양반이 아닌가.
또 무슨 해괴한 짓거리를 꾸미려는지 알 수 없으니 오히려 긴장되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 작자가 소교주께서 안절부절못하는 걸 재미있어하는 것도 같사옵니다.」
「입가에 슬쩍 미소가 걸리는 것이 이 상황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투로도 보이옵니다…?」
진짜 그런 거면 좀 빡치겠는데.
「어째 사람 속을 박박 긁는 면은 소교주와도 흡사하신 면이 있… 히이익!」
뭐 새꺄?
허튼소리를 하던 망령 놈을 도끼눈으로 째려보는데, 갑자기 암존이 입을 열었다.
“흐흐! 기껏 같이 산책하자고 해놓고 정작 당사자가 아무 말도 없으니 답답해 죽겠지? 저 괴짜 같은 양반이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나는 뜨끔했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았다.
“아닙니다. 하시려는 말씀을 머릿속으로 정리 중이시겠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예. 그렇습니다.”
“아닌 것 같은데?”
“아닙니다.”
“아닌 게 아닌 게 아니야. 자네 얼굴에 다 쓰여 있다구.”
이중부정도 아니고 삼중부정은 대체 뭐야?
“태어나서 그런 불경은 생각도 해본 적 없습니다.”
“자네 입에서 불경 어쩌고 하는 말이 나오니 영 어색한걸?”
“…….”
“우리 둘 사이가 아닌가? 그러니 내게만 조용히 귀띔해 보게. 빡쳤었지?”
우리 둘 사이가 어떤 사이인 건지.
“절대 아닙니다.”
“정말?”
“예.”
“정말정말, 정말로?”
“정말정말, 저어어엉말로 진심입니다.”
“아닌 것 같은데?”
“…….”
아, 이 양반이 진짜 열받게 자꾸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거야!
“흐흐흐. 빡쳤군. 빡쳤어.”
“…아닙니다.”
“한쪽 눈썹이 꿈틀거리던데? 성궤에 오른 내 눈썰미는 절대 피하지 못하지.”
“영양소가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근육의 작은 경련이었을 뿐입니다.”
“하하하하. 그래. 그런 걸로 해두자고.”
“…….”
한 대만.
진짜 딱 한 대만 때리고 싶다!!
이 양반, 성격이 이 정도였나? 사람을 질리게 하는데 아주 도가 텄네, 도가 텄어.
“사실 내가 자네를 살펴봤던 건 손녀 사윗감으로 어떤가 확인해 보기 위해서일세.”
저 말을 듣고 나니 얼음물을 확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암존이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자네, 알고 있었나 보구만? 호산이 여태 말하지 않았을 거로 생각했었는데 말이야.”
“예, 뭐… 어쩌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가? 오랜만에 약혼녀를 만나본 소감은. 예쁘지?”
“예쁘… 시긴 하더군요.”
“그냥 예쁜 게 아니지! 사천제일화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니까!”
“그런 별호도 있었습니까?”
“으잉? 몰랐나?”
“예. 그런 쪽으로는 별 관심이 없어서.”
“나이도 젊은 놈이 어찌 그리도 이성에 관심이 없는가! 그리고 자네 약혼녀인데! 당연히 알고 있어야지!”
“…….”
“뭔가 떨떠름한 얼굴인데?”
“…아닙니다. 정정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더구나 성격은 또 얼마나 좋은지 아는가? 매번 장난기 많은 이 할애비가 밉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매번 옆에서 쫑알쫑알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해주는 게 얼마나 귀여운지.”
“…….”
“재능은 또 얼마나 뛰어난데? 저 나이에 무려 녹존대의 부대주일세. 남들은 내 손녀이니 받은 우대가 아니냐고 묻지만, 허튼소리! 녹존대가 어디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던가? 아무리 내 직속이라고 해도 자기네들이 아니다 싶으면 절대 말 안 듣는 반골들이라네. 그런 놈들이 인정한 아이가 바로 내 손녀다, 이거야!”
“…….”
“게다가-”
이러다간 귀에 딱지라도 앉을 것 같았다.
이 양반, 사람들 앞에서는 멋있는 척이란 척은 다 하더니 알고 보니 순전히 손녀 바보였다.
“그런데 그렇게 어여쁜 내 손녀를 채가겠다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절대 안 돼!”
전 데려가겠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만?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이걸 핑계로 약혼을 없던 것으로 한다면-
“하지만, 뭐, 그래도.”
암존은 턱을 짚으며 나를 위아래로 살폈다.
마치 물건 품평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얼굴도 반반하고. 무공 실력도 제법이고. 이 정도면, 험험! 나쁘지 않을지도.”
“…….”
“하지만 정식으로 혼례도 치르기도 전에 허튼수작부터 부리면… 알지? 재미없는 거야.”
암존은 아주 흉악하게 눈 뜨면서 녹색 광채로 일렁이는 독수(毒手)를 슬쩍 들어 보였다.
“그래도 사내 새끼가 되어서 겁먹고 꼬리부터 말면 내 실망이 아주 클 게야.”
…제발 둘 중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하나만.
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검지로 꾹꾹 눌렀다.
아무래도 여기서 오해를 미리 정리해 두지 않으면 두고두고 이 양반한테 계속 시달릴 것 같았다.
「…혹시 당신 손녀와 혼인할 생각은 없다고 말씀하실 생각이시옵니까?」
‘어. 그럴 건데?’
「아, 아니 되옵니다! 절대 아니 되옵니다!」
「큰일 나십니다!」
망령들이 넙죽 엎드려서는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뭐가 큰일 난다는 거야?’
「손녀 사랑이 아주 지극하다 못해 비뚤어져서 손녀 괴롭히기가 취미인 괴짜가 아니옵니까! 자기 손녀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착하고, 참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양반이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손녀가 차였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게… 그렇게 되나?
난 그냥 다시 생각하자고 말하는 것뿐인데?
그야 잘 납득되게 설명하면 될-
「이런 양반에게 소교주의 이성과 논리가 제대로 먹힐 거로 생각하시면 오산이시나이다!!」
……젠장.
나는 슬쩍 암존을 바라봤다.
부리부리하게 뜬 두 눈에 광기가 한가득이었다.
헛소리하면 즉각 독수를 날리겠다는 살의가 아주 충만했다.
이래서야 나도 섣불리 말을 꺼내기가 힘들지 않은가.
그래도 이걸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텐데.
그러다 문득 암존이 앞서 했던 말 중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가주님, 한 가지만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뭐냐? 다른 여자가 있다거나 이런 비슷한 소리를 한다면 바로 여기서 묻힐 줄 알거라.”
“…….”
“설마 진짜 그런 것이냐? 정말로 죽고 싶은 게야?”
“아, 아닙니다. 그런 거.”
“말을 더듬는 꼬락서니가 마음에 들진 않지만. 하여간. 그러면?”
“조금 전에 하셨던 말씀 말입니다.”
“조금 전?”
“분가주께서 제게 혼약에 대해 말하지 않았을 거로 생각하셨었다던 말씀 말입니다.”
“아, 그거.”
“혹시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게 왜 궁금한데?”
“…안사람을 맞는다는 것은 인륜지대사이지 않습니까? 그런 만큼 더더욱 신중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잠시 말꼬리를 흐리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저는 방계 중에서도 서출입니다. 분가주께서 아무리 젊은 시절에 위명을 날리시고 가주님의 오른팔이었다고 하나, 그렇다고 해서 제 출신이 변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따지자면 남궁가를 외가로 둔 유창이 예원 아가씨에 어울릴 텐데 어째서 제가 선택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어떤 정치적 거래가 있었던 거라면 원점부터 다시 고민해 보고 싶습니다.”
“…….”
암존은 침묵에 잠겼다.
다행히 내 노림수가 잘 먹힌 것 같았다.
「오오, 확실히 이런 명분이라면 통할 것도 같사옵니다.」
「아무리 적서 구분이 없고 실력 위주인 당문이라고 해도, 신분 차이가 아예 없을 수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암존과 당호산이 적극적으로 밀어붙인다고 해도, 내가 신분을 핑계 삼아 자꾸 혼인을 미루다 보면 원로원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당예원은 단순히 혈맹을 위한 도구가 아닌 차기 가주가 될지도 모르는 적통 중의 적통이었으니까.
분명히 순혈주의자들 중에서는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슬쩍 그쪽으로 물꼬를 틀어보려는 건데, 어째선지 날 보는 암존의 시선이 영 곱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네도 딱히 이 혼인에 관심이 없나 보군.”
그런데 그런 작은 술수가 머릿속에 수많은 정략적 계산으로 난무한 암존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단번에 내 의도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암존의 꼬장을 상대해야 하나 경계심이 드는 와중에 한 가지 단어가 귀에 거슬렸다.
자네‘도’라고?
나 말고 당예원도 이 혼인에 관심이 없다는 걸까?
아니나 다를까.
“역시 남녀의 인연이라는 게 어른들이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이뤄지는 건 아닌가 보군.”
암존의 입가에 처음으로 쓸쓸함이 감돌았다.
환생마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