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Reincarnated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55)
환생마신전-155화(155/390)
비천호리 공손범
당규진은 최근 유수민, 사마선의는 물론 당예원과도 계속 붙어 다니고 있었다.
원래 친분이 있던 데다가 구룡대격전까지 거치면서 친자매처럼 가까워졌던 것이다.
그 때문에 척사삼원이라는 별호도 어느새 척사사원(斥邪四媛)으로 변해 있었다.
오늘도 평상시와 같았다.
운휘와 이철산의 비무를 보고 난 뒤, 강한 자극을 받은 네 사람은 같이 검술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이 옷이 대체 뭔지 아시오? 라마(로마) 지역에서도 제일 잘 나가는 수공예 장인 나파륜이 한 땀 한 땀 공들여서 만든 갑자년 최고의 추동 계절 모음집의 특별 비단으로 만든 학창의란 말이요!”
“대형께서도 너무 아끼신 나머지 함부로 입을 엄두를 내지 못하시다가 이번에 모임을 하시면서 큰맘 먹고 걸치신 건데! 그걸 더럽히시다니!”
“이걸 어떻게 배상할 거냔 말이오!!”
“입이 있으면 대답을 하십시오! 어찌 꾹 다물고만 있단 말입니까!”
공손범은 오물로 더럽혀진 학창의를 말없이 툭툭 털어내고 있었다.
그를 따르던 무인들은 마치 자기 옷이 더럽혀진 것처럼 발끈해서 한 사람을 크게 다그쳤다.
“나, 나는 그저 음식을 나르다가 그만-”
배혜인은 정말이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신은 그저 오랜만에 친구들과 같이 술을 즐길 생각으로 주안상을 옮기고 있었을 뿐인데.
뒤뜰에 날아든 나비에 잠시 한눈을 판 나머지 공손범과 부딪치고 말았다.
그런데 하필 공손범이 무척 아끼던 금의(비단옷)를 더럽히고 말았다.
심미안이 뛰어나지 못한 그녀가 봐도 비싸고 고급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 금의였다.
이걸 변상할 생각을 하니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지금 수중에 가진 돈은 동생 무관에 보낼 돈이었는데… 이걸 주고 나면 한 푼도 없는데 어쩌지?’
몰락한 무가였던 본가는 마지막 남은 전답마저 팔아가며 재능 있던 그녀를 고수로 키우고자 했다.
다행히 배혜인은 괜찮은 재능을 지니고 있었고, 이번에 신 광풍대에 응시할 자격을 얻게 되었다.
합격만 한다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테니 드디어 부모님을 호강시킬 수 있을 거로 기대했는데.
만약 여기서 가문에 또 폐를 끼치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혹시 얼마 전에 있었던 그 일 때문인가?”
그때 공손범이 고개를 들어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배혜인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숨이 막혔다.
“무, 무슨 말씀인지-”
“얼마 전에 내가 그대와 벗들을 무리에 받아주지 않아 억하심정으로 이런 일을 저지른 게 아닌지 묻는 것이다.”
“아, 아닙니다! 이것은!”
“그러면 이 몹쓸 짓이 그저 단순한 실수이다? 구룡대격전에도 참여했던 무인이 그 정도로 감각이 둔하다고?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는 거냐?”
“그, 그건-”
“아니면 서창배가의 비전이 전전대에 실전되어 삼류만도 못하게 되었다더니 그 때문인가?”
“가문을 나쁘게 말씀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것도 아니라면 이걸 나더러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거냐!”
“!”
공손범은 몸이 빳빳하게 굳은 배혜인을 보면서 냉소를 흘렸다.
“그래. 이유가 뭐가 됐든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어차피 이딴 실력으로는 시험도 통과하지 못할 테니. 더 신경전을 벌여봤자 내 정신만 사나울 뿐이지.”
“…….”
배혜인은 머리를 떨어뜨렸다.
주먹을 꽉 쥐었다.
곳곳에서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이 느껴졌다.
공손범의 시선은 싸늘했고, 그의 무리들이 보내는 시선은 조소와 경멸로 가득했다.
“하여간 이래서 없는 것들이란-”
“재능도 부족하면서 왜 굳이 행차에 꾸역꾸역 참여해서는 이런 사달을 내는 거야?”
“내 말이. 오기나 부리다가 딴 사람들 피해나 주고.”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을. 귀찮게.”
자기들끼리 나눈답시고 작게 속삭이는 대화였지만, 배혜인의 귀에는 너무 선명하게 들렸다.
가슴이 무너질 것 같았다.
‘너희들까지, 정말-’
사실 그들 대부분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배혜인과 같이 의리를 다지던 친구들이었다.
수많은 명가와 명문이 즐비한 사천 무림에서 겨우 간판만 달고 있는 중소 문파의 후계자들.
하지만 그들은 전부 사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고 언젠가 자신의 힘으로 사문을 부흥시키리라는 야망에 불타 있었다.
그래서 암존이 신 광풍대의 문호를 연다고 했을 때 열광했다.
그리고 행복에 부풀어 행차에 몸을 실었다.
거기서 그들은 의기를 다졌다.
자신들도 절대 명가와 명문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자. 우리의 의기도 뛰어남을 세상에 보여주자고 매일 다짐했다.
하지만 공손범이 그들에게 손을 뻗었을 때, 그 의기는 바닷가 모래성처럼 너무 손쉽게 무너졌다.
후암팔성 공손범.
떠오르는 신예 공손범.
그의 선택을 받은 이들은 이제야 세상이 알아주기 시작했다며 어깨가 한껏 높아졌다.
반면에 선택받지 못한 이들은 어깨가 가라앉았다.
공손범은 그들에게 딱 한 마디만 던졌을 뿐이었다.
너희들은 재능이 없다. 시험에 떨어질 것 같은 사람들까지 데려갈 의무는 없다.
배혜인도 선택받지 못한 축에 속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배척이 시작되었다.
분명히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웃던 친구들은 비웃음을 던졌고, 의기를 다지던 동료들은 경멸 어린 시선만 보냈다.
다른 파벌인 척사사원을 들어가고 싶어도 명가와 명문의 자제로 이뤄진 그들 무리에 끼기란 요원했다.
‘아버지 말씀이 맞았어….’
강호에서 만난 이들에게 너무 많은 마음을 주지 말라던 말씀.
이 강호는 무정(無情)하고 비정(非情)할지니. 너무 많은 정을 주게 되면 언젠가 그것이 너의 뒤통수를 칠 것이라고 하셨었다.
그런데 그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이 강호에 의리나 낭만 따윈 없었다.
“변상은…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다만 일말의 사정을 두시어 시간만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배혜인의 머리가 더 무겁게 아래로 떨어졌다.
공손범의 조소가 더 커졌다.
“시간? 얼마나?”
“일 년, 아니, 이 년이라면 충분히-”
“이 금의의 값은 제대로 알고나 말하는 거냐? 네가 정말 그 안에 다 갚을 수 있다고?”
공손범이 금의의 가격을 말했다.
배혜인의 눈가가 떨렸다.
상상 이상의 가격이었다.
“그, 그 정도는-”
“서창배가의 집을 팔고 하인들을 전부 내놓아도 절반에 못 미칠 것 같은데?”
“…….”
“거기다 원가만 그러하지, 이걸 받느라 내가 기다린 시간이 삼 년이었다. 그런데 또 이걸 주문해서 기다릴 시간이며 네가 배상할 시간의 이자까지 더한다면… 하!”
“…….”
“네년 역시 강호를 살아가는 무인이니 기루의 기녀처럼 웃음을 팔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어떻게 배상할 건지 계획을 말해줬으면 하는데.”
“…….”
“그게 아니면 그냥 말만 번드르르하게 한 거였나?”
“…….”
공손범의 힐난이 쏟아질 때마다 배혜인의 머리가 더 깊게 가라앉았다.
주변 사람들의 조소가 커졌다.
그들과는 관계없는 교관들이나 다른 무인들의 시선도 이쪽으로 쏟아졌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비웃고, 경멸하고, 비난하는 것 같았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 같았다.
배혜인은 한없이 위축되었다. 공손범의 목소리 하나하나가 마수가 되어 그녀의 숨통을 옥죄었다.
“어떻게 할 거냐?”
배혜인이 숨이 너무 막힌 나머지 쓰러질 것 같던 그때.
툭!
그녀를 지나쳐 공손범의 발끝에 뭔가가 묵직하게 떨어졌다.
배혜인에게는 그것이 하늘에서 동아줄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돈이 잔뜩 든 전낭이었다.
“그거면 원가격은 물론 피해보상까지 확실하게 하고도 남을 겁니다.”
단호한 어조와 함께 배혜인 옆으로 누군가가 섰다.
배혜인은 얼결에 고개를 들어 그쪽을 쳐다봤다.
그녀가 언제나 멀리서 선망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당규진이 서 있었다.
그 뒤로 못마땅한 눈을 한 유수민이나 무표정한 얼굴을 한 사마선의, 그리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당예원까지.
그녀들 네 사람이 내뿜는 기백은 너무 대단해서 배혜인을 옭아매던 압박감을 단숨에 씻어냈다.
여태 공손범을 등에 업은 채 기세등등하던 무인들이 당황하며 살짝 뒷걸음질 쳤다.
오직 공손범만이 제자리에 서서 싸늘한 조소를 지을 뿐.
“돈이라.”
공손범은 뒷짐을 쥔 채로 가볍게 발을 굴렀다.
쿵!
지면이 떨리면서 전낭이 가볍게 허공에 떠올랐다.
공손범이 뒷짐을 풀어 손을 앞으로 내밀자 전낭이 딸려왔다.
일순 네 여인의 눈가에 이채가 어렸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뤄진 허공섭물의 기예.
아무래도 구룡대격전에서 보였던 무위가 전부가 아닌 모양이었다.
최소 초절정의 중순에는 들어야 보일 수 있는 완벽한 내공의 완급 조절이었다.
“말씀하신 대로 이 정도면 충분한 가격이긴 할 것 같소. 하지만 구룡분가의 장녀께서 대신 변상하실 줄은 몰랐소. 서창배가와 교분이 있었던 모양이오.”
“없었어요.”
당규진은 공손범에 대한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공손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그럼 어째서 나서신 거요? 결코 적은 돈이 아닐 텐데.”
“핍박받는 사람이 있으면 돕는다. 그 외에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요?”
“협의 정신이라는 거요? 아주 허울 좋은 말이로군.”
공손범은 전낭을 가볍게 던졌다가 받았다.
철그럭 소리가 났다.
“뭐, 나는 값만 제대로 받았으니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그러면 그 좋은 협의 정신, 많이 떠들고 다니시오.”
공손범이 다시 뒷짐을 쥐고 무리와 함께 자리를 뜨려는데 갑자기 당규진이 앞을 가로막았다.
공손범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이건 또 뭐요?”
“변상은 끝났으니 이제는 공손 소협이 배 소저에게 사과할 차례예요. 그 뒤에 있는 분들까지도 전부.”
공손범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가 사과해야 한다? 잘못한 것은 저쪽인데?”
“변상과 관련되지 않은 부분까지 거론하면서 배 소저를 비난하시지 않았나요? 거기다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요. 이것은 배 소저의 체면과도 관련된 일이니 사과하세요.”
당규진의 눈매는 단호했다. 만약 말에 따르지 않으면 엄벌을 가하겠다는 듯.
공손범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뒤쪽에 선 다른 세 여인도 쳐다봤다.
그녀들도 똑같은 눈매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공손범의 가슴 한편에 뭔가가 꿈틀거렸다.
어린 시절, 자신이 아무리 도와달라고 소리치고 애원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명가와 명문의 위선자들.
“못하겠다면?”
공손범은 도발하듯이 한쪽 입술 끝을 비틀었고.
“그렇다면 행차의 질서와 치안을 담당하는 집법인(執法人)으로서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겠죠.”
차차창!
당규진은 차가운 어투와 함께 검을 뽑았다.
공손범의 파벌들이 일제히 기수식을 갖추고, 남은 세 여인도 일제히 검을 뽑았다.
당예원이 손가락마다 암기를 꽂은 채 말했다.
“당신들, 전부 그 무기를 내려놓는 게 좋을 거야. 머리통에 바람구멍 하나씩 내고 싶지 않으면.”
“!”
“!”
“!”
무인들은 일제히 몸을 부르르 떨었다.
녹존대 부대주의 손속이 얼마나 매서운지 이미 구룡대격전에서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유수민이나 사마선의도 모두 내로라하는 고수들이었다.
하지만 무인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공손범을 더욱더 보호하듯이 에워쌌다.
척사사원에 대한 적개심도 숨기지 않았다.
공손범이 당규진을 직시하며 말했다.
“집법인이고 나발이고 간에 나는 절대로 내게 검을 들이댄 자를 용서하지 않소. 그래도 계속하시겠소?”
“필요하다면.”
“그렇다면, 뭐-”
파앗!
공손범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당규진과 세 여인의 눈이 커졌다.
그들 모두 공손범의 기척을 바로 눈앞에서 놓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당규진의 뒤편에서 명부의 귀신처럼 나지막하게 들렸다.
“본격적인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서열을 한번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는 수밖에. 내 안 그래도 꼴사납기만 하던 당신네의 실력을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지.”
콰르르릉!
공손범의 절기, 벽산장(劈山掌)이 천둥 같은 파공성을 일으키며 당규진의 뒤쪽 목덜미를 노렸다.
퍼어어억!!
환생마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