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Reincarnated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6)
환생마신전-16화(16/390)
만점(滿點)
두주불사(斗酒不辭).
오늘에서야 이 단어가 누구를 위한 건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정말 괜찮습니까, 누님?”
“웅? 괘차눈데?”
“…….”
전혀 안 괜찮아 보이시는데요?
헤실헤실.
당규진은 뺨이 아주 빨갰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저쯤 되면 취해서 쓰러질 법도 한데.
문제는 첫 잔을 마신 이후로 쭉 저런 상태로 술을 입에 들이붓고 있다는 점이었다.
벌써 뒤쪽에 쌓인 술독만 몇 개인지 모르겠다.
당곤도 그렇고, 원래 당씨 성을 가진 인간들은 죄다 이렇게 술고래인가?
“그래서 그 인간이 능글맞게 웃으면서 다른 사매들이랑 어울리는데, 아주 꼴불견도 그런 꼴불견이-”
나는 원래 술자리를 좋아하는 거지, 술 자체는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주로 이야기를 듣는 쪽이었다.
당규진이 토설하는 내용의 대부분은 청성파에서의 생활상들.
이야기하는 내내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숨 막히는 구룡분가와는 전혀 다른 따뜻함이 그곳엔 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당규진이 청면귀면근이라는 특이한 재능을 갖고도 이토록 올바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건, 단순히 천지일기문의 법문 때문이 아니라 청성파 특유의 분위기 덕인지도 몰랐다.
덕분에 나도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청성파 이대 제자들의 계보를 쫙 꾈 수 있었고.
“그렇습니까?”
“그렇다니까! 너도 들으니까 짜증나지?”
“뭐, 전 그 일을 겪어본 당사자가 아니니 뭐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습니다만-”
“다만?”
“한 가지만큼은 알 것 같네요.”
“응? 뭘?”
“누님, 대사형이라는 분을 좋아하시는군요?”
“미, 미쳤어!?”
당규진이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삿대질을 해댔다.
대사형이라는 인간이 하는 말에 일희일비하고, 다른 사매들이랑 어울리면 왠지 모르게 속에서 천불이 난다며?
그게 연애 감정이 아니고 뭐야?
「으잉? 본인이 알기로 소교주께선 연애를 하신 경험이 전무한 걸로 아는데? 그런데 어찌 이리도 잘 연애 상담을-」
「원래 잘 모르는 분야일수록 이론에 더 빠삭한 법 아니겠소?」
「오오, 과연! 그동안 소교주께서 무공을 익힌 적은 없었어도 한번 익히기 시작하시니 너무나 능숙하게 하셨던 것과 같은 이치인 건가!」
「역시 하늘에 닿으신 영명함이신-」
이것들 아무래도 나 멕이는 거 같은데, 맞지?
“아니면 말고요.”
나는 술잔을 내리면서 싱긋 웃었다.
당규진의 얼굴은 이제 익다 못해 아주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그러다 자다가 칼 맞는 수 있어?”
누이에게 술주정으로 칼침을 맞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얼간이 취급받지 않을까.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앞으로 왠지 곧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길 것 같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실실 나왔다.
“…뭔가 수상한데.”
당규진이 두 눈을 새초롬하게 떴다.
“설마요. 저 결백합니다. 순수, 결백, 청렴의 화신, 당운휘. 모르십니까?”
“아냐. 역시 수상해.”
“크흠! 그나저나 그 대사형이라는 분은 언제 오신다구요?”
“그게 왜 궁금한 건데?”
“그냥?”
“콱! 이게 진짜 죽으려고!”
당규진이 하산하는 시기에 맞춰서 청성파에서도 암존에게 안부 인사차 차기 장문인이 될 대제자를 보낸다고 한다.
나는 이걸 장난스럽게 포장했지만, 사실 조금 진지한 내용이긴 했다.
아무래도 청성파에서 당규진 핑계를 대고 암존의 저의를 파악하고자 싶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들 입장에서는 암존이 갑자기 직속 특무대를 만든다고 발표하니 식겁하겠지.
이참에 신교를 핑계 삼아 사천 무림을 아예 일통하다 못해 서부 무림 전체에 영향력을 확대하려 들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현재 암존이 가진 명성이나 야망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다만, 당규진은 아직 그런 물밑에서 흐르는 거대 세력 간의 대립이나 협상까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확실히 이 부분은 암존 방문 때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잘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실 수도 있을 테고-」
아직 확실한 그림이 보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씩 현 무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보이는 것 같았다.
“하여간 진짜 또 쓸데없는 소리 하면 죽어, 아주 그냥.”
“네네. 조심하겠습니다. 그래도 가르쳐 달라는 건 농담이 아닙니다. 누님께는 저희와 같은 가족이시잖아요? 그러니 동생으로서 당연히 인사는 드려야죠.”
당규진은 영 찝찝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명분이 명분이라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거의 근방에 도착하셨다는 서신은 받았어.”
“좋습니다. 기억해두겠습니다.”
“…역시 수상해.”
나는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하여간 그쯤 되면 장원이 많이 시끌벅적해지겠습니다. 외부로 나가 있던 혈족들도 많이 모일 테고… 암존에 대한 의례도 준비하랴, 각지에서 손님도 맞으랴, 어휴! 이럴 때는 그냥 백색전에 콕 박혀 있는 게 최고일 것 같은데요?”
“그렇겠지? 그보다 너는 다른 재미난 일 없어? 너야말로 속세에 있으니까 연애 같은 게 일상일 거 아냐?”
“없습니다, 그런 거. 서자 출신에 병신 취급받던 사람을 누가 좋아합니까?”
“왜 없다고 생각해? 게다가 약혼자도 있잖아?”
“…있었나요?”
“응? 몰랐어?”
“금시초문입니다만.”
잠깐만. 나 이거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아.
태중혼약이라고 맺어진 약혼자가 마음에 안 들어서 걷어찼더니, 알고 보니 전 약혼자가 힘숨찐 놀이 중이던 절대고수… 이거 꼭 해보고 싶었는데 정말 해볼 수 있는 건가?
그동안 연락 한번 없던 걸 봐서는 안 좋은 소문 듣고 일부러 잠수 탔던 것 같기도 하고.
“누굽니까, 제 약혼자라는 사람?”
“어머어머. 아버지께서 진짜 말씀 안 해주셨구나. 궁금해?”
“사실은… 아뇨. 별 관심 없습니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얼굴 한번 안 본 사람과 결혼하라니 말이나 되나. 하물며 그 사람은 ‘당운휘’와 약혼을 한 거지, 나와는 전혀 무관하다.
그냥 지금처럼 서로 없는 관계 취급하면 알아서 흐지부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저쪽도 그걸 원할 테고.
“아니면 내가 참한-”
“안 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거든?”
“소개받아볼 생각 없냐고 물으시려던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죠. 누님부터 먼저 시집가시면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난 그런 거 전혀 생각 없는데?”
“그럼 저도 없습니다.”
“우씨. 하여간 한 마디를 안 져.”
* * *
술친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원래 술친구가 참석한 건 몇 시진이 지나서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공자. 옛 친구란 놈들이 자꾸 발목을 붙잡아대서 떼어놓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다, 당곤 숙부!?”
당규진은 이제 넘어갈 듯 말 듯 할 정도로 취했다가 정신이 번쩍 든 것 같았다.
당곤이 엷게 웃었다.
“여기서 또 뵙는군요, 공녀님. 이전에 수색전에서 뵙고 따로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제가 먼저 인사드리러 갔어야 했는데요!”
당규진은 안절부절하지 못하다 재빨리 내게 전음을 보냈다.
『너 술친구라는 사람이 설마 당곤 숙부였어?』
술친구 불러도 되겠냐는 질문에 내 친구는 자기 친구도 된다며 얼마든지 부르라고, 누나로서 술 문화를 가르쳐주겠다고 호기롭게 외치던 사람은 온데간데없었다.
『제 술친구한테 주도(酒道)를 가르쳐주겠다고 호언장담 하셨죠? 으흐흐! 기대하겠습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왜 진즉에 당곤 숙부라고 말을 안 했어!』
『안 물으셨으니까요?』
『너어는 진짜-』
당규진은 이제 아주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다가 재빨리 옆자리 의자를 뒤로 쫙 뺐다.
“여기 앉으세요, 숙부!”
“험험!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당곤은 착석하고는 탁상에 한가득 올려진 음식들을 바라봤다.
“오늘도 엄청나게 시키셨습니다. 제 앞으로 달아놓은 건 아니시겠죠?”
“오, 그래도 되나?”
“오늘 비무를 좀 치르시더니 혹시 머리라도 다치셨습니까?”
이제는 아주 독설이 입에서 떨어지질 않으시구만.
나는 당곤의 술잔에다 죽엽청을 한가득 따라주었다.
당규진은 중간에서 뭔가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로 나와 당곤을 번갈아봤다.
『너-』
『네?』
『왜 당곤 숙부께 예의 없게 말을 놓는 거야!?』
『음… 어쩌다 보니까요?』
『미쳤어?!』
사실 나도 당규진이 당곤을 ‘숙부’라고 부를 때 얼마나 식겁했는지 모른다.
지난 열흘 내내 무사부라고 호칭하긴 했어도, 거의 하대에 가까운 평대를 해댔으니까.
당곤도 여기에 별 개의치 않았었고.
『당곤 숙부가 어떤 분이신지 알아? 아버지와 결의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의형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분이시라구! 청성혈사 때 위기에 빠지셨던 아버지를 구명하고, 가주님으로부터 ‘기사(奇士)’라는 칭호까지 하사받았었는데!』
당규진의 설명에 따르면 당곤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구룡분가에서 가지는 입지가 아주 큰 것 같았다.
본인이 그걸 딱히 내세우지 않았을 뿐.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전각의 각주쯤은 쉽게 꿰찼을 거라고.
그래서 진심을 담아 진지하게 당곤에게 포권을 취했다.
“무사부님.”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갑자기 별 해괴한 짓거리를 다 본다는 표정이었다.
“그동안 숙부님과 분가주님의 관계도 잘 모르고,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사죄드리겠습니다. 받아주십시오.”
“……술맛 떨어지니 제발 그만하십시오. 이렇게 좋은 술과 음식들을 앞에 두고 뭐 하는 짓거리입니까?”
당곤은 아예 반대쪽으로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봤죠?』
『…말도 안 돼!』
이미 나와 당곤 사이에는 이런 관계가 어울렸다.
인제 와서 예의를 차린다고 차려봤자 서로 손발만 오그라들 뿐이지.
“광풍대 친구들과는 이야기 잘 나눴어?”
“…보셨습니까?”
뭘 그렇게 놀라?
들켜서는 안 될 장난을 몰래 치다가 들킨 사람처럼.
“어. 관객석에 당태, 당진 각주와 같이 있더만? 그렇게 노골적으로 서 있는데 못 알아보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친구들 만나느라 늦었다더니. 그 친구들이 바로 이 친구들이 아닐까 싶었다.
“허! 비무를 치르느라 한창 정신이 없으셨을 텐데 그건 또 언제? 하여간 눈썰미 하나는 대단하십니다.”
광풍대.
구룡분가의 사람이라면, 특히 후계자라면 신경 쓸 수밖에 없을 단어에 당규진이 조용히 우리 눈치를 살폈다.
당곤은 볼을 긁적이다가 술잔을 내밀었다.
“맨정신으로 이야기하기는 좀 어렵고, 한 잔 주시겠습니까?”
“얼마든지.”
또르르-
당곤은 술잔이 차자마자 단번에 비웠다.
“크으! 역시 이 맛이지.”
“내 품평하고 있었지?”
“…일단은. 네, 뭐.”
“어땠어?”
“어땠을 것 같습니까?”
“만점(滿點).”
“정말이지, 자신감 하나는!”
“그럼 아냐?”
“맞습니다! 맞으니 더 짜증나는 거고요! 하여간 사람이 어떻게 겸손이란 게 없습니까, 겸손이?”
“그게 또 내 매력 아닐까 싶은데.”
“이래서 내가 맨정신에 이야기 해주기 싫었던 건데!”
당곤은 툴툴대면서 술잔을 내려놓았다.
탁!
“앞으로도 좋은 모습 계속 잘 부탁드린답니다.”
“그래? 좋아.”
“…뭐 다른 건 더 안 물어보십니까?”
당곤은 그답지 않게 슬쩍슬쩍 내 눈치를 봤다.
“음? 더 물어볼 게 있나?”
“아니, 그런 거 있잖습니까? 공자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는 시선은 달라졌는지, 다른 인사들의 평가는 어떨지 등등.”
“아니. 그걸로도 충분해. 내게서 가능성은 봤다는 거잖아?”
단순히 재능만 보였다고 호들갑을 떨거나, 바로 내 앞에서 딸랑이를 흔들어 댔다면 오히려 내가 실망했을 것이다.
그런 기회주의자들은 내 쪽에서 사양이었으니까.
저들만 나를 판단하는 게 아니다. 나도 옛 광풍대의 수준과 역량을 가늠해보는 거지.
“뭐, 그렇긴 합니다만-”
“그럼 우리 무사부님의 생각은 어떤데? 여전히 내가 열흘 전처럼 부족하다고 생각해?”
“…….”
당곤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미간을 좁혔다.
그렇다고 말은 하고 싶은데, 내가 또 잘난 척하는 꼬락서니를 볼까 봐 저러는 모양이었다.
“음훼훼훼! 대답 나왔네! 그럼 충분하다니까!”
“…그 웃음 좀 어떻게 안 됩니까?”
“이게 내 매력이지!”
“매력은 개뿔!”
당곤은 툴툴대면서도 슬쩍 웃고 있는 것이, 이미 나에 대한 호의로 가득했다.
사실 광풍대는 손에 쥘 수 있으면 좋고, 쥐지 않아도 딱히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장차 광풍대의 인사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였으니까.
오늘 일로 사실상 당유창이 후계 구도에서 탈락하고, 당규진과 내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남궁산영은 이제 나를 어떻게든 축출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려 할 것이다.
본격적인 대립이 벌어졌을 때, 그들이 내 편을 들어줄 수 있을 것이냐?
그런데 당곤의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그래 줄 것 같았다.
아니더라도 최소한 중립은 서려 할 것이다.
옛 광풍대는 구룡분가의 기둥.
나는 광풍대의 정체성인 광풍무를 완벽하게 선보였고, 실력까지 입증해 보였다.
그들의 환심을 샀으니 천금을 주고도 얻지 못할 탄탄한 기반을 마련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자, 이제야 비로소 내가 원하던 대로 판이 깔렸다.
그럼 이제.
저쪽은 과연 어떤 패를 꺼낼까?
환생마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