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Reincarnated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
환생마신전-2화(2/390)
다시 눈을 뜨니
얼마나 세상 위에 떠 있었을까?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눈이 번쩍 뜨였다.
“-러니 알겠느냐? 가주께서 왕림하실 날에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삐이이-
귓가가 왱왱 울렸다.
그 위에 이명까지 더해졌다.
마치 수십 마리의 벌 떼가 주변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차분, 그리고 또 차분해야 할 것이다. 제 주제를 명심하거라. 가주께서 여쭈는 것에는 예의를 다하되, 속으로는 항상 네 주제를 알고 알아서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네 거처인 백색전에서 일절 밖으로 나오지 말 것이며-”
그래도 어떻게든 의식을 되찾으려 노력하니 주변 소리가 하나둘씩 구분되기 시작했다.
흐릿했던 세상도 점점 명확해지면서 제 색깔을 되찾았다.
표독한 눈빛을 한 여인이 이쪽(아마도 내가 빙의한 몸인 것 같았다)을 노려보고 있었다.
한 손에 피 묻은 회초리를 든 채로.
엥?
피?
아무래도 혼이라도 나고 있던 모양인데… 사람이 뭘 얼마나 잘못했기에 회초리에 피가 묻도록 때려?
이런 경우는 전혀 상정하지 못했기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실패를 우려했던 것과 다르게 원신전륜겁은 무사히 성공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에 새롭게 맞이하게 된 생도 전생(前生)만큼이나 기구한 모양이었다.
원신전륜겁은 애당초 죽은 지 얼마 되지 않거나, 임종을 눈앞에 둔 육체에만 시전이 가능하다.
기존의 영혼이 앉아있던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기 때문인데, 그렇다는 건 지금 내 영혼이 내려앉은 육체도 원주인이 죽었다는 뜻.
아무리 이 육체가 미워도 그렇지, 사람이 다 죽어갈 정도로 매질이라니.
일개 노비라도 이렇게 대우하지 않을 텐데.
…아니면 어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범죄자 같은 건 아니겠지?
원한 많고 그러면 귀찮은데…….
혹시나 해 육체에 남은 기억들을 빠르게 뒤져봤다.
하지만 결과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이 육체의 나이는 올해야 겨우 열일곱. 아직 아이였다.
눈앞에 있는 저 여인은 이 아이의 계모.
팔을 내려다보니 하얀 피부 위로 붉은 핏자국과 멍자국이 가득했다.
옷도 대체 언제 빤 건지 비단옷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여인과 다르게 때로 가득하고 악취도 심했다.
그동안 이 아이가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좆같네, 진짜.
나도 사람 같지 않은 인간들이 득실대는 마도(魔道)에서 살아왔다지만, 이런 인간은 볼 때마다 혐오감이 저절로 일었다.
“아줌마.”
“…뭐?”
뭐라고 혼자서 자꾸 떠들어대던 목소리가 갑자기 뚝 그쳤다.
마치 고장 난 뚝딱이 인형 같구만.
딱딱하게 굳은 그녀의 동공 위로 낯선 아이가(전생의 나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잘생겨서 마음에 들었다) 차갑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입 냄새나. 면상 좀 저리 치워줄래?”
“!!”
순간, 여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주 보기 좋았다.
* * *
“네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기 전까지 그곳에서 밖으로 나올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거라!”
콰앙!
나는 어느 이름 모를 전각에 유폐되고 말았다.
“너희들도 절대 저 아이에게 물도 음식도 내어줘서는 안 될 것이야! 만약 저번처럼 또 불쌍하다며 몰래 챙겨주다 걸리거든 뒤주에 묶어서 우물에다 던져버릴 것이니 그리 알도록!”
거 아줌마 화통을 삶아 드셨나. 성량이 아주 기가 막히시구만.
낄낄거리는 나와 다르게 시녀들은 벌벌 떨면서 힘없이 대답했다.
아무래도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닌 모양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씀을 하신 겁니까, 도련님? 마님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께서! 도련님 때문에 저희까지 전부 고생하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나와 같이 전각으로 딸려 들어온 집사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경멸에 책망하는 눈빛도 보내는데… 허!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어이가 없어서.
그러고 보니 이놈, 여기 오기 전에 노골적으로 그 아줌마의 명령을 듣고 있었지?
“뭘 그렇게 보십니까?”
“왜? 그냥 보고 있으면 안 되나?”
아직 육체의 잔존사념을 전부 읽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천마신교의 작은 주인이었던 나도 한 번쯤 들어봤던 곳이었으니까.
―당문 구룡분타(唐門九龍分陀).
달리 ‘구룡분가’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독과 암기로 유명한 사천당가가 운영하는 분가였다.
구룡현은 서쪽으로 포달랍궁의 서장, 곤륜파가 있는 청해, 남쪽으로는 천룡사와 점창파, 오독문 따위가 있는 운남과 물줄기가 이어지는 주요 교통 지역.
신교에서 중원 무림과의 충돌에 대비해 만든 백서(白書)에도, 전쟁이 벌어지면 반드시 점거해야 할 일 순위로 꼽은 요충지이기도 해서 기억에 남아있었다.
당연히 사천당가에서도 패권 유지를 위해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이에 당대 가주 암존(暗尊) 당문혁은 소가주 시절 자신과 함께 사천 무림을 종횡했던 오른팔 광풍난협(狂風亂俠) 당호산에게 구룡현의 보호를 맡기게 되었다.
당호산은 자신이 이끌던 광풍대(狂風隊) 대원 몇몇과 함께 분가를 꾸리게 되었으니.
그게 바로 이 구룡분가의 시작이었다.
당호산은 강호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명망가였다.
사실상 사천당가가 구파의 청성파와 아미파를 물리치고 사천 무림의 지배자가 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영웅이었으니까.
그가 뿌린 암기에 목숨을 잃은 교도들의 숫자도 적지 않아 반드시 주살해야 한다는 보고를 받기도 했었는데… 그런 자의 자식으로 빙의했다?
내가 자리 잡은 ‘당운휘’는 당호산이 술김에 잠자리를 가졌던 시녀의 소생이었다.
즉, 서자라는 뜻.
당호산은 하룻밤의 실수에 불과했던 당운휘를 거두긴 하되, 결코 자식 취급은 하지 않았으니.
그래서 물려준 무공도 외부 가솔들이 익히는 당문체기공(唐門締氣功) 따위가 전부.
이런 판국이니 다른 가솔들도 당운휘를 홀대할 수밖에 없었고, 특히 대부인인 남궁산영(아까 그 아줌마)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매질까지 해댈 정도였다.
“…….”
아무리 무작위로 빙의 대상을 골랐다지만, 그래도 하필 내려앉은 곳이 이런 상태이니 할 말이 없었다.
이래서 내가 옛날부터 도박, 그것도 주사위나 야바위 같은 건 아예 학을 뗐던 건데… 하아!
아버지, 어머니, 가족 환경, 전부 이 정도면 내 전생과 비교해서 누가 더 불우한가 내기를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나마 배다른 누이 한 명이 이따금 당운휘를 챙겨주던 것 같았지만, 지금은 분가에 있지 않으니 제외.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고, 이제 어떻게 하실지나 말씀해보십시오! 대체 이 일을 어떻게 책임지실 거냔 말입니다!”
거기다 직속 집사란 놈은 이 불쌍한 아이를 안타까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왜 대들었냐면서 힐난하기까지 한다.
꼭 어린 시절에 시비 걸던 동네 꼬맹이들이 떠올랐다.
나중에 사부님의 제자가 되고 나서 내가 어떻게 했더라?
뚜벅, 뚜벅-
“?”
말없이 다가가니 집사가 왜 그러느냐는 투로 멀거니 바라봤다.
날 바라보는 눈길엔 여전히 경멸감이 가득했다.
짜아악!
나는 뒤도 돌아볼 것 없이 그의 싸대기를 걷어붙였다.
“도, 도련님?”
집사는 시뻘게진 뺨을 붙잡으면서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이 꽉 깨물어.”
“무슨-”
“난 분명히 꽉 깨물라고 했다.”
짜아아악!
고개가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이러시면 저도 가만히 있지 못합니-”
짜아아아악!
“마님께서 아시-”
짜아아아아아아악!
“그, 그만!”
짜아아아악! 짜아아아악! 짜아악! 짜아아아아악!
난 쉴 새 없이 집사의 뺨을 후려쳤다.
고개를 들 때면 반대쪽을 후려치고, 숙이면 뒷덜미를 강제로 붙잡아 다시 때렸다.
내 손도 떨어져 나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팠지만… 뭐, 굴다리 생활을 나도 그냥 멍청하게 당하기만 한 건 아니었거든?
주먹으로 한 대를 맞으면 짱돌로 뒤통수를 후려치는 게 원래 ‘연운휘’였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신검천마의 제자가 되고 나서는 날 괴롭히던 놈들을 찾아 줄줄이 감옥에다 처넣었고, 소교주가 되고 나서는 탄광에다 노역꾼으로 밀어 넣었다.
사부님은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냐며, 미래의 교주가 되어야 할 몸이니 이젠 신도들의 옛 잘못도 품어야 한다고 하셨지만.
글쎄?
예나 지금이나 제 생각은 여전히 그대롭니다, 사부님. 당신께서 하신 말을 전부 믿지만 이것만큼은 양보하지 못하겠습니다.
눈에는 짱돌. 이에는 몽둥이. 하나를 당했을 때 열 배로 되갚아 주지 않으면 항상 당하는 건 내 쪽이었다.
짜아아아아아악!
“사, 사, 사, 살려 주, 주, 주십시오, 도, 도, 도련님……!”
결국 집사는 호빵처럼 퉁퉁 분 얼굴로 내 다리를 붙잡았다.
이도 후두둑 몇 개 빠져 멍청해 보였다.
“내가 왜?”
“제가 주제도! 주제도 모르고 설쳤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그러니까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주둥이를 털어대는 놈을 내가 왜 살려줘야 한다는 거야?”
“그, 그건!”
협박을 할 때는 제대로 해야 한다. 이러다간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막다른 골목으로 사람을 내몰고 공포를 자극해야만 내 목소리가 심연에까지 제대로 닿는다.
츠츠츠-
순간, 내 눈가 위로 자색 빛줄기가 불길처럼 피어올랐다.
자색요안(紫色妖眼).
상대의 심령을 뒤흔들어 내 존재를 단단히 각인시키게 만드는 술수(術數).
내가 소천마로서 휘하 신도들을 휘어잡을 때 애용하던 방식이기도 했다.
아마 지금쯤 이 집사에겐 내가 인두겁을 뒤집어쓴 귀신의 형상쯤으로 보일 터였다.
덜덜덜…….
아니나 다를까. 집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했다.
차마 내 눈도 함부로 마주치지 못했다.
“형삼, 당신은 어머니가 고향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내 전문 집사로 뽑았던 사람이지. 한낱 하인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인생을 끄집어 올려줬는데도, 은혜에 감사하기는커녕 이딴 모습을 보여?”
“다, 다시는 불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자비를!”
구룡분가가 아무리 종가에서 떨어져 나온 분가라고 해도, 당씨 성을 쓰는 곳이다.
사천당가는 강호의 모든 세가들 중에서도 가장 규율이 엄격하기로 유명한 곳. 구룡분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하극상은 당연히 사형. 상관능멸죄만 해도 반병신으로 만들어 내쫓는 건 일도 아니었다.
쫓기고 나서도 문제였다. 세상 어느 누가 당가의 눈 밖에 날 각오를 하고 저런 놈을 고용할까?
사천의 땅에서 당가가 가진 무게란 그만큼이나 대단했다.
공포로 물든 채로 싹싹 비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이제야 겨우 내 말을 들을 자세가 되었다 싶었다.
“그럼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할 수 있지?”
형삼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공자! 이공자가 달라지셨다!’
형삼은 백색전에서 나오자마자 헐레벌떡 뛰기 시작했다. 마치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지금부터 딱 한 시진(2시간) 주겠다. 그 안에 내가 주문한 물건들, 전부 찾아와. 그렇지 않으면… 뭐, 알아서 생각하라고.’
귀화처럼 일렁거리던 그 눈빛.
북해처럼 차갑던 그 목소리.
머리 한편에 강하게 자리 잡은 운휘의 새로운 모습은 이전의 유약하던 모습과 전혀 달랐다.
그동안 저런 모습을 숨기고만 있었던 건지, 아니면 대부인의 매질이 심해져 꾹꾹 쌓였던 것들이 폭발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그 화가 자신에게 미칠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 때문에 형삼은 ‘이공자가 만약에 허튼 수작을 부리거나, 어디 수상한 행동을 한다면 바로 보고하도록’이라고 했던 남궁산영의 신신당부도 잊고 말았다.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다고……! 시키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잡아먹히고 말 거야, 으으으!’
형삼은 분명히 보았다. 운휘의 뒤쪽에 자리 잡은 커다란 악귀의 얼굴을.
톱니 같은 이빨이 자글자글하던 그 악귀는 당장에라도 자신을 먹어 치울 것 같았다.
물론, 허깨비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한번 단단히 박힌 공포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불과 한 시진.
그 안에 전부 처리하려면 최대한 서둘러야만 했다.
* * *
“으으. 술력도 없이 사술을 쓰려니 골이 다 울리네.”
형삼을 쫓아낸 뒤. 나는 침상에 적당히 걸치고 앉아 관자놀이를 검지로 꾹꾹 눌렀다.
내가 그동안 익힌 술수는 전부 뇌문(腦門), 상단전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칼이 무섭다고 무공도 제대로 닦지 못한 몸뚱이로 자색요안 같은 상위 술수를 쓰고 나니 후유증이 꽤 컸다.
그래도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제대로 기반을 닦으려면 마음대로 부릴 만한 종이 하나쯤은 있어야 했다.
아마 형삼은 평생 나를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
환각으로 무의식에다 나에 대한 공포심을 단단히 각인시켜뒀으니.
“자, 그럼 한번 슬슬 살펴볼까?”
그러다 두통이 어느 정도 가실 때쯤에 가부좌를 틀고 꼿꼿하게 허리를 세웠다.
이제 이 몸뚱이를 확인할 시간.
내 예상이 맞는다면, 이 몸뚱이는 원래 장애가 있던 내 육체보다 딱 한 가지 유리한 지점이 있었다.
관조(觀照)로 살핀 곳.
배꼽 오른쪽 아래.
단전이 있었다.
환생마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