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Reincarnated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79)
환생마신전 280화(280/390)
환생마신전
십오 호의 우울
「어?」
「저것이 갑자기 왜 저런 반응을…?」
혈접은 오래전에 당호산에게 받았던 물건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쓰임새를 도저히 알 수 없어 품 안에 넣어두고 잊었었던 물건이었는데.
갑자기 지금 왜……?
“이건-”
뭔가를 깨달은 듯 신도 진인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던 그때였다.
은은하게 붉은 빛무리를 내뿜던 혈접이 현허구궁도에 닿은 순간.
파스스스……!
갑자기 현허구궁도가 잘게 부서졌다.
“!!!”
“!!!”
“!!!”
나를 비롯한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충격을 받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고.
휘휘휘휘휘!
갑자기 현허구궁도의 가루가 모두 혈접에 빨려 들어간다 싶더니.
번쩍!
붉은 빛살이 세상을 가득 채웠다.
* * *
십오 호는 어깨가 축 처진 채로 쭈그리고 앉아 나뭇가지로 바닥을 박박 긁었다.
어디 꿀이라도 떨어졌는지 개미 떼가 우르르 같이 몰려다니면서 나뭇잎을 나르고 있었다.
「아아…. 너희들은 무척 즐거워 보이는구나.」
「거기 앉아서 무슨 청승을 그리 떠시는가?」
십오 호는 위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푸드덕!
그림자가 머리 위로 드리웠다.
십오 호의 얼굴에 살짝 혈기가 돌았다.
「온마!」
「여기서 뭐 하고 계시나? 소교주께서는 이미 자리를 떠날 준비를 하고 계시는데.」
십오 호는 그제야 운휘 일행이 떠나려는 걸 보고 볼을 긁적였다.
「아, 그렇군요…. 저도 이만 일어나야겠습니다….」
십오 호는 흐느적흐느적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도무지 자네 같지 않아 보이는군.」
십오 호는 언제나 활달했다.
한 번씩 너무 도가 지나쳐서 운휘를 짜증 나게 만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뛰어다니고 이따금 들어오는 신입 훈육도 도맡아 처리했다.
최근에는 악귀형옥에 재미가 붙은 것 같던데.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일이라면 일이긴 합니다만….」
「소교주께 간언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다면 내게 털어보시게. 별 도움이 못 되더라도 혼자서 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십오 호는 온마를 빤히 쳐다보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온마는 이매망량 중에서도 대장 역할을 하고 있어서 이따금 고민이 있는 망량이나 원귀가 있으면 상담을 들어주기도 했다.
「그것이-」
「그것이?」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어, 어서 가시죠. 소교주께서 기다리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온마는 슬쩍 자리를 피하려는 십오 호의 어깨를 재빨리 덥썩 붙잡았다.
「자네, 조금 전부터 나를 제대로 보고 있지 않군.」
「그, 그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역시나.
십오 호는 이번에도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려서는 온마에게 얼굴을 보여 주지 않았다.
온마의 눈이 깊어졌다.
「무슨 일이 있는 게로군! 얼굴을 보여 주시게! 어디 다친 곳이 있다면 빨리 치료해야 하지 않겠나! 아니면 역병에 감염이라도 된 겐가?」
「아, 아닙니다! 그런 건-」
「어허! 어서 보이래… 으잉?」
「이, 이래서 보, 보, 보여드리지 아, 않으려 해, 했던 건데!!」
십오 호는 양팔로 얼굴을 가렸지만 전부 가릴 순 없었다.
한쪽 얼굴이 시퍼런 멍에 잠겨 있었다.
웅묘(熊猫, 판다)가 따로 없었다.
크흠!
온마는 자기도 모르게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삼키면서 물었다.
「…대체 얼굴이 그 꼴이 뭔가?」
「맞았습니다….」
「으잉? 누구에게??」
온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십오 호는 비록 막내 취급을 받고 있어도 마신전에서 똑같이 망량이 되는 데 성공했다.
웬만한 망령이나 잡귀 따위는 얼씬도 하지 못할 텐데?
「저, 그, 그것이 시, 신입에게-」
엥?
최근에 신입이 있었던가?
아니. 따지자면 딱 한 명이 있긴 했다.
그걸 신입이라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자네, 혹시 숭흑호에게 깝죽거렸나?」
「…….」
「알아서 매를 번 거였구만?」
「하, 하지만 그, 그놈도 시, 시, 신입이지 않습니까! 저는 기강 확립 차원을 위해서-」
온마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숭흑호가 지금은 운휘에게 호구처럼 당하고 있어도 명색이 수천 년을 산 신선 출신이다.
그런데 설마 그런 녀석에게 개겼을 줄이야.
숭흑호로서는 어이가 없었겠지.
그래도 주먹질 한 방으로 끝낸 건 운휘의 눈치가 보여서 그런 것일 거다.
십오 호는 여기에 깊은 좌절감을 가진 걸 테고.
「자네도 생전에는 사술을 닦던 술사였다면서? 그런데 숭흑호게에 까불 엄두가 나던가?」
「그러면 어찌합니까! 신입들은 이제 제 말은 듣지도 않는 것을요….」
온마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야 자네가 그동안 저지른 죗값을 치르고 있는 거지 않나.’
사실 그동안 십오 호가 신입 훈육이라면서 오죽 많은 망령을 괴롭혀 댔던가.
제 딴에는 선배들에게 배운 갈굼을 똑같이 내리갈굼을 준답시고 시도한 거겠지만.
문제는 그의 후배들은 대부분 한꺼번에 들어오면서 그들끼리 동기 문화(?)가 만들어졌단 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데 뭉친 동기들은 십오 호를 무시하기 시작하고.
나아가 십오 호보다도 영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십오 호의 입지가 계속 쭈그러들었다.
‘십육 호는 구채성에 빙의해서 도마북해종을 수습하러 가고, 남궁성과 암혼대는 백면유령으로 물갈이되어 살마유령종을 접수하고 있었지 아마?’
그래서 십오 호 제 딴에는 기강 문화를 다시 잡아보기 위해서 오랜만에 기수(?)에 혼자뿐인 숭흑호를 잡아보려 했던 건데.
‘역으로 털린 게고.’
사람이 누울 자리도 알아서 누워야 하는 법이건만.
그걸 무시한 결과, 십오 호는 이제 입지랄 것도 없어지게 된 것 같았다.
온마는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못 본 척하고 무시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서야 백귀야행의 분위기만 우울해질 게 분명했다.
「선배로서의 위엄을 되찾고 싶은 게지?」
「바, 방법이 있겠습니까?」
「우선 이렇게 해보게.」
온마는 부리를 십오 호의 귓가에 갖다 붙이면서 뭐라고 작게 중얼거렸고.
곧 십오 호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 * *
여기가 어디지?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새카만 어둠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다만, 그것은 단순히 어둡다거나 두렵다거나 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이상하게 포근한 느낌이 들게 만드는…….
나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신도 진인이나 명화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이매망량도 마찬가지.
흡혈귀마나 온마의 기척도 감지되질 않았다.
그렇다는 건 혈접이 나를 어디론가 이끌고 왔다는 건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갑자기 발밑으로 새하얀 빛살이 올라왔다.
발아래를 내려다봤다.
어둠을 따라 광점(光點)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곧 순식간에 퍼져나가면서 길쭉한 강을 이뤘다.
은하수였다.
옥황상제가 견우와 직녀를 떨어뜨려 놓기 위해 흘려보내기 시작했다던 강.
언제나 지상에서 올려다보기만 하던 것을, 이토록 가까운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경험은 너무나 신비로웠다.
여기가 대체 어디인 걸까?
현허구궁도의 안?
아니면 혈접이 부린 이상 현상?
대체 정체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우주홍황(宇宙洪荒)의 신비가 바로 눈앞에 체현되었다는 것.
그 광경이 사뭇 내 넋을 빼놓을 정도로 아름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곳을 어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영영 갇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바로 그 순간.
화아아악!
갑자기 은하수가 이쪽으로 날아왔다.
“!!”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걸 피할 새가 없었다.
순식간에 은하수가 일으킨 해일에 휩쓸리고 말았으니까.
마치 ‘나’라는 존재도 별무리에 휩쓸려 똑같이 별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번쩍!
다시 한번 더 세상이 반전했다.
“당 도우, 정신이 드시오? 당 도우!”
정신이 멍했다.
어렴풋이 들리는 목소리.
흐트러지는 감각을 겨우겨우 붙잡고 하나씩 더듬어 나가니 겨우 시야가 다시 돌아왔다.
신도 진인이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괜찮… 습니다.”
나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이 멍했다.
대체 내가 무슨 일을 겪었던 거지?
비록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지만, 내가 겪은 경험은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기묘했다.
“후우……! 갑자기 현허구궁도가 그렇게 되면서 도우께서도 정신이 홀리신 것 같기에 얼마나 놀랐던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현허구궁도! 현허구궁도는 어찌 되었습니까!?”
혈접이 갑자기 튀어나와 현허구궁도를 먹어치운 기억이 났다.
혹시 꿈은 아닐까 했지만, 신도 진인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어린 걸 보고 직감했다.
텄구나.
그럼 혈접은 어디로 간 거지?
파라라락!
그때 붉은 나비가 내 시야를 절반으로 가로지르고 갔다.
그것을 잡아보려 손을 뻗으니, 혈접은 아주 자연스럽게 손가락 틈 사이로 빠져나가면서 내 검지 위에 앉았다.
혈접이 다시 날개를 파르르 떨었다.
마치 맛있는 먹이라도 먹은 것처럼.
대체 이놈의 정체가 뭘까?
당호산은 과거 광풍대와 함께 우연히 구한 물건이라고 했었다.
뭔가 기묘한 장치가 되어 있는 건 확실한데 정체까진 파악할 수 없었다고.
그런데 삼봉진인이 남겼다는 유품을 먹어치운 걸 봐서는 분명히 뭔가가 있는 게 확실한데…… 그게 대체 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동안 평범한 물건처럼 있던 것에 처음으로 생기가 불어 넣어졌다는 것.
혈접은 이제 생동감을 띠고 있었다.
실제 나비처럼 날개를 파르르 떨기도 하고, 더듬이를 움직이면서 마치 나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신비한 물건이로구려.”
신도 진인이 다가왔다.
내가 손길을 거두자 혈접이 다시 가볍게 날아올라 어깨 위에 앉았다.
그걸 붙잡아보려 하기도 했지만 느릿한 날갯짓으로 얼마나 잘 피하는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면목이 없습니다, 장문인. 대체 이를 어떻게 배상해야 할는지.”
암담했다.
어떻게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보물을 내가 훼손했으니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허허허허. 그럴 필요 없다오. 어차피 구궁도는 도우께 드리려 했던 것이니까.”
내 눈이 살짝 커졌다.
신도 진인이 포근하게 웃으면서 이제 김이 다 샌 찻잔을 들었다.
“사실이라오. 원래 구궁도는 본 파의 보물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많은 외적의 노림수가 되었던 것이기도 하거든. 아마 신창이 막지 않았다면 흑풍괴가 노렸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을 게요.”
“…그건 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본 파에서도 구궁도의 비밀을 조금이나마 열어본 것은 신창이 전부였던지라…. 차라리 그럴 것 같으면 땅 속 깊숙한 곳에 봉하거나, 주인이 될 만한 사람을 찾아주자는 게 장로들의 의견이었소.”
“그렇다면.”
“그 주인으로 도우를 낙점했던 거지. 도우는 술법과 무공, 정과 마 등 강호의 양면을 모두 다 정통하게 꿰뚫고 있으니.”
“아.”
“우리 무당과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고 말이오.”
신도 진인이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이 양반에게 이런 면모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니 괘념치 않으셔도 된다오. 대신에 나중에 구궁도의 비밀이 풀리거든, 본 파에도 공유해주실 수 있으시겠소?”
“그야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배려 감사합니다.”
나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가지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혈접의 정체가 뭘까?
그리고 백일몽으로 꿨던 그 은하수는 또 대체 뭐였을까?
바로 그 순간.
쩌걱-
심장 한편에서부터 마치 뭔가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껍질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