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Reincarnated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80)
환생마신전 281화(281/390)
환생마신전
진일보(進一步)
운휘가 떠난 자리.
신도 진인은 이제 다 식어서 김도 나오지 않는 찻잔을 양손으로 감쌌다.
내공을 살짝 불어넣으니 다시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역시 차는 따뜻해야 제맛이지. 너도 들겠느냐?”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고 보니 너는 이런 것보단 곡차 종류를 좋아했었지?”
명화는 계면쩍은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도사가 되어 장문인 앞에서 술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가 없었으니까.
신도 진인도 그런 사실을 잘 알기에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깟 수련이야 마음이 동할 때 하면 되는 것이지, 뭘 그리 눈치를 보고 그러느냐? 마음이 따르는 곳에 생각과 몸도 따르는 법이다.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제자에게는 너무 멀기만 한 깨달음입니다.”
“멀기는. 이미 너는 해내고 있는데.”
신도 진인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말을 이었다.
“이미 도우와 화해를 하지 않았더냐.”
“…….”
“기분이 어떻더냐?”
명화는 난감하다는 듯이 볼을 긁적였다.
“그것이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다?”
“예. 이 길이 옳은 길이다 싶어 선택하긴 했습니다만, 저희가 정말 올바른 선택을 한 건가 의심이 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후련하면서도 찝찝하기도 하고…. 죄송합니다.”
명화는 허리를 숙였다.
신도 진인의 미소가 깊어졌다.
“죄송하긴. 오히려 나는 다행이다 싶은데.”
“예…? 하지만.”
“심마(心魔)란 원래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것이다.”
“…….”
“자신이 하는 선택에 후회는 하지 말되, 경계하고 의심하는 마음은 계속 갖고 있어라. 오만한 것만큼 수양을 갉아먹는 악마도 없으니.”
“…….”
“화해를 했지? 그것은 그동안 네가 소천마에게 갖고 있던 원한을 의심한 데서 나온 진일보(進一步)이니라. 그 의심을 바탕으로 너는 그동안 네 눈을 가리고 있던 장막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게다.”
“…….”
“그리고 다시 네가 한 선택에 의심하고 있지. 이제 곧 다시 궁리를 거듭할 것이다. 신화촌이 올바르지 않은 길을 간다면 제동을 걸 것이오, 그것이 올바르다면 같이 따르는 동반자가 되겠지.”
신도 진인은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산길을 내려가는 운휘의 뒷모습이 보였다. 현허구궁도를 삼킨 혈접이 뒤를 유유히 따르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수양이고 수도이니라. 내일의 네가 오늘의 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고. 축하한다. 너는 이 스승이 며칠 전에야 깨달은 것을 벌써 깨달았느니라.”
“…어찌, 그런 말씀을-”
“그냥 하는 말인 것 같으냐? 이 스승은 진심이다.”
“…….”
“너도 알고 있지 않으냐. 이 스승은 신화촌을 받아들였음에도 여전히 후회와 번민을 거듭하였고, 역병이 터졌을 때는 저들이 범인이라 단정하여 하마터면 큰 사고를 칠 뻔했다.”
“…….”
“내가 그동안 잘못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깨달은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역병에서 겨우 깨어났을 때, 신도 진인은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전부 듣고 깊이 후회했다.
언제나 망집(妄執, 잘못된 고집)을 버려야 한다고 제자들을 훈계했던 주제에, 정작 망집에 사로잡혔던 건 바로 그 자신이었으니까.
도사라고 해서 다 같은 도사가 아니고, 마인이라고 해서 다 같은 마인이 아니거늘.
어찌 그동안 자신은 잘못된 흑백논리에 갇혀 살았던가.
역귀를 부린 흑풍괴라는 신선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만한 술사라면 살아생전 엄청난 도를 쌓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무당파를 피로 물들이는 참상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그리고 정작 위기에 빠진 무당파를 구한 것은 오래 전부터 갈등을 겪었던 마교의 소교주였으니.
흑과 백이 머릿속에서 뒤섞였다. 정과 마가 혼잡해졌다. 그동안 진리라 믿었던 상식이 모두 와르르 무너졌다.
현허구궁도를 운휘에게 그냥 내어줘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도인이면 어떻고 마인이면 또 어떤가. 도인보다도 훨씬 나은 마인이거늘.
현허구궁도가 보다 운휘에게 잘 맞을 거로 생각했던 게 바로 그 때문이었다. 무당산에 남아있어봤자 또 수십 년 동안 먼지만 잔뜩 쌓일 테니까.
“내일의 무당파 역시 오늘의 무당파보다 나을 거라 생각하니 참으로 기쁘기가 이를 데가 없구나.”
“스승님…….”
명화는 신도 진인의 따스한 눈빛을 받고 어쩐지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산하(山下)에 아직 속가의 사람들이 모여 있겠지?”
“예. 그렇습니다. 모두 스승님께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길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신도 진인이 가볍게 웃더니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벽면에 걸려 있던 죽간이 날아와 그의 손에 잡혔다.
“가져가거라. 이제부터는 네가 장문인이다.”
“스, 스승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말씀을 거둬주십시오!”
명화는 바닥에 넙죽 엎드리면서 이마를 바닥에 찍었다.
신도 진인이 건넨 것은 무당파의 장문령부, 자반죽간(紫斑竹簡)이었다.
신도 진인이 장난기 섞인 미소를 지었다.
“거두기 싫구나.”
“스승님!!”
명화로서는 식겁할 따름이었지만.
“말하지 않았느냐. 너는 이미 이 스승의 깨달음을 따라잡았노라고. 그러니 이 무당을 잇는다고 한들 뭐에 문제가 있겠느냐?”
“하, 하오나-”
“장강의 뒷물결은 앞물결을 천천히 밀어내는 법이다. 너와 소천마를 보니 알겠다. 이미 뒷물결은 이만큼이나 밀려왔단다.”
“…….”
“그렇다면 그 뒤를 깨끗하게 양보하고 앞으로 더 많이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 늙은이들이 해야 할 도리.”
신도 진인은 명화의 흔들리는 눈을 보면서 더 크게 웃었다.
“정식 계승식은 닷새 뒤에 진행하마. 산하의 제자들을 데리고 사천으로 가거라.”
“!”
“그리고 거기서 어디 네가 그토록 꿈꾸던 무당의 기상을 맘껏 펼쳐보려무나.”
명화의 심장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남존이 산문을 활짝 열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순간이었다.
* * *
일노는 단목인체와 함께 자소봉의 산길을 올랐다. 단목인체의 등에는 신녀가 업혀 있었다.
‘남존이 결국 일어나려는 건가?’
단목인체의 목적은 신녀 보호 말고도 중원 강호의 동향 파악도 있었다.
당문을 중심으로 한 정의맹의 움직임이 어떻게 되는지, 무제성과의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에 대한 무당과 소림의 반응이 어떻게 되는지.
제이의 무림맹이 설립될 가능성은 없는 건지, 혹은 무림맹을 넘어선 새로운 패도무문이 들어서는 건지까지.
총령 고원에 갇힌 성마교는 외부 소식이 너무 소중했고, 이를 하나하나씩 점검하면서 대전략을 고쳐나갈 필요가 있었다.
그런 단목인체의 눈에 남존무당의 결집은 당연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귀중한 정보였다.
그리고…….
요 며칠간 남존무당을 관찰하면서 내린 결론은 하나.
―반드시 소생반악을 제거해야만 한다.
너무 극단적인 결론이었지만, 단목인체는 확신을 가졌다.
원래는 소생반악이 소천마인지만 파악하려 했지만 이젠 그런 것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강호의 주된 동향이 전부 너무 그 작자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어. 이대로는 자칫 잘못했다가 본 교도 같이 휩쓸릴 판이다.’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소생반악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
정의맹은 물론이고 남존무당까지 그에게 완전히 감겨들지 않았는가.
거기다 광풍군에서도 대단한 입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정치력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천하를 논할 정도였다.
문제는 신녀가 여전히 이에 관해 아무런 언질도 없단 점이었다.
여기서 단목인체는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이만한 술수는 소천마…… 그놈이 벌이던 것과도 비슷해. 그런데 만약 정말 소천마여서 앙마신화종을 부활시키기라도 한다면. 그땐.’
천마신교의 역대 교주들 중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마도천하를 활짝 열 수 있겠지.
성마교는 그걸 위한 일개 발판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만약 몸을 계속 갈아탈 수 있다면…… 영원토록 저 작자를 당해낼 자가 어디 있을까?’
설사 소생반악이 소천마가 아니더라도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마도에 두고두고 위험이 될 수 있는 작자를 사전에 처치할 기회가 될 테니.
‘어쩔 수 없다. 광마검호(狂魔劍豪)를 움직일 수밖에.’
북해종에 소수도귀가, 유령종에 백명유령이 있다면, 단목인체가 몸담은 검마상무종에는 광마검호가 있었다.
오로지 검에만 미쳐 날뛰는 미치광이들.
강해질 수 있다면 자신의 영혼 따윈 아무렇지 않게 마왕에게 팔 수 있는 작자들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결심을 굳힌 단목인체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 * *
아무리 들여다봐도 혈접에 대한 비밀을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내공을 불어 넣어봐도 그대로 흡수해 버릴 뿐, 아무런 변화도 반동도 느껴지지를 않았다.
‘그냥 내공을 튕겨내기만 하던 예전과 비교하면 오히려 나아졌다고 해야 하나?’
지금은 최소한 이렇게 자기 힘으로 날아다니고는 있으니까.
거기다 내 쪽으로 돌아오라고 손짓하니 원래 있었던 옷자락 사이로 다시 들어가기까지 했다.
『환수나 도선에게 보여 주고 도움을 구하시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분명히 만만치 않은 내력을 품고 있는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도원향에 가는 길에 부탁해보려고.』
흡혈귀마의 충고에 따라 나는 두 사람에게 혈접을 보여줬다.
“뭐? 현허구궁도를 삼켜?”
팔괘도선은 함괘의 깃털을 사용하지 못했다는 내 말에 크게 놀랐다가 곧 자초지종 설명을 듣고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신비한 물건이로군. 내력만 들어서는 법보나 보패에 버금가는 물건인 것 같은데. 그래. 어디 한번 연구해 보자. 도원향으로 가는 길이 적어도 심심하지는 않겠구나.”
우리는 명화가 무당파의 새로운 장문인이 되는 등극식에 끝까지 참석했다가, 그들이 모두 산을 내려와 서쪽으로 향하는 것을 모두 확인한 후에야 도원향으로 가는 길에 몸을 실었다.
다만, 목적지는 먼저 호북과 호남의 성계 지점에 있는 동정호로 잡았다.
팔괘도선과 함께 도원향을 방문한 적이 있다는 동정어옹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동정어옹이 어떤 사람이냐고? 글쎄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팔괘도선은 잠시간 고민에 잠겼다.
동정어옹에 대한 정보는 대강 알고 있었지만, 과연 그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을 못하는 게 아닐지 싶을 정도로 과묵한 사람이지. 그만큼 낚시에 미쳐있고.”
“일행에 포함해도 되겠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시게. 입도 엄청 과묵하니까. 한번 맺은 은원은 절대 잊는 법이 없는 참된 강호인이기도 하지.”
팔괘도선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도움을 빌려 역병에서 벗어난다면 그만큼 자네의 충실한 친구가 되어줄 걸세. 내 이름을 걸고 단언하지.”
“그렇습니까?”
팔괘도선이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기에 조금 의외였다.
세간에 알려지기로 동정어옹은 너무 괴팍한 나머지 삼괴(三怪)의 일원으로 꼽히기도 했으니까.
말 그대로 낚시가 아니면 세상만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
그런 만큼 대체 뭘 낚으려는 건지 아무도 모르는 사람.
그런 정도로 이해했었는데 아무래도 평가를 달리 해도 되는 모양이었다.
“그보다 이 혈접이란 건 말이네만.”
“뭔가 밝혀낸 게 있으십니까?”
팔괘도선과 사심마유는 요 며칠 이동하는 내내 밤잠도 설쳐 가면서 혈접 연구에 매진했다.
이런저런 사술을 걸어봐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나에 비해, 두 사람은 워낙에 아는 지식이 많아서 그런지 뭔가를 알아내기라도 한 것 같은 눈치였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네만.”
팔괘도선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탑에서 나온 물건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