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Reincarnated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9)
환생마신전-29화(29/390)
두려우신가 봅니다
“으아아아!”
백골망사는 괴성을 지르면서 손에 쥐고 있던 서찰을 확 하고 찢어버렸다.
제자들은 그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눈치껏 행동했다. 시끄럽던 수강시들까지 조용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이미 북받친 그의 울화통은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니.
도와달라는 응급 전언은 이제 사천성을 넘어 감숙성과 청해성에서도 날아오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수천 리도 거뜬히 난다는 괴조라서 그런 걸까?
주는 흑골귀곡이 지난날 소교주의 이목을 피해 비밀리에 준비했던 비밀 목장은 물론, 이제는 분타까지 모조리 작살 내고 있었다.
녀석은 날이 갈수록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아마도 수강시들을 모조리 먹어치우면서 요수로서 완전히 각성을 이룬 탓이겠지.
이전에는 귀곡의 고수들을 만나면 피하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무시해서는 머리통을 부수는 중이었다.
그 때문에 천산에 있는 본곡에서도 불호령이 떨어졌으니.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 것인가!
조금 전 그의 손에 찢긴 서찰이 바로 곡주가 보낸 거였다.
“대체! 대체 무슨 수를 썼기에 고조를 주로 진화시킬 수 있었던 거지……? 대체 어떤 놈들이 있어서!”
정황상 이 일을 저지른 원흉은 ‘당운휘’의 배후로 짐작되는 놈들이 분명했다.
문제는 놈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렇다 할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이 용의주도한 대세력일 게 분명하건만.
마음 같아서는 당장 자신이 직접 움직여 운휘의 멱살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결행 날짜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함부로 움직이는 건 어려웠다.
결국 계속된 피해를 손 놓고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뜻.
곡주가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통보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을 거라는 게 백골망사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 책임은 전부 그에게 전가될 테지.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죠?”
그런 백골망사를 보고 있던 남궁산영도 이젠 불안한 얼굴이 되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항상 자신만만하던 백골망사가 아니던가.
그런데 처음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인다.
운휘를 어떻게든 죽여야만 하는 그녀로서는 하루하루가 좌불안석이기만 했다.
“돈을 그렇게 받아 갔으면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깟 어린애 하나 제대로 잡아 죽이지 못해서 일을 이렇게 키우는…… 컥!”
남궁산영의 타박은 오래가지 못했다.
갑자기 백골망사의 하얀 손이 그녀의 목줄을 잡아챈 것이다.
“닥쳐.”
“당신… 이러고도 무사할……!”
“밖에 있는 수강시들 봤지? 네년을 갈기갈기 찢어서 그놈들 밥으로 줘버리면? 아무도 당신이 여기 온 걸 모르지 않을까?”
“!!”
“그러니 닥치는 게 좋을 거야. 그 혀부터 뽑아버리기 전에.”
“…….”
언제 자신이 이런 수모를 겪어보기나 했던가.
남궁산영의 눈동자가 심하게 요동쳤다.
백골망사에게서 풍기는 귀기가 그녀의 숨통을 옥죄어가고 있었다.
‘마기!!’
하지만 당장 질식사할지 모른다는 위기감보다 더 그녀를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귀기 속에 가려져 있던 또 다른 종류의 기운이었다.
남궁산영은 그동안 백골망사가 기괴한 꼴을 하고 있어도 실력 좋은 방사로만 알고 있었을 뿐, 마교도일 거라고는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골망사를 소개해준 곳이 다름 아닌 그녀의 친정, 남궁세가였으니까!
‘그럼… 남궁세가가 마교와 손을 잡았-’
그녀의 생각이 하얗게 가라앉던 의식 속으로 사라지려던 순간이었다.
탁!
백골망사가 남궁산영을 붙잡고 있던 손길을 놓았다.
“켁, 켁-”
남궁산영은 겨우겨우 숨을 헐떡이면서 두려운 눈으로 백골망사를 바라봤다.
마교!
새외의 최강자이자 사파의 지존, 그리고 오랫동안 중원 무림의 공포이기도 했던 존재를 이렇게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노라니 오금이 저려 왔다.
중원인으로서 지난 육 년 동안 천산에 갇혀 있었다던 마인들이 다시 자기 소굴을 튀어나오려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주변에 알려야 할 의무가 있었지만.
그동안 그들의 교두보 역할을 했던 자신의 지난 생활을 돌이켜보고 있으려니 나중에 돌아올 만인의 비난이 두렵기만 했다.
무엇보다 두고두고 자식들의 앞길을 가로막게 될 게 분명했다.
당규진이 의절을 선언했어도 자신의 배로 낳은 딸이었다.
당유창은 한번 꺾였을지언정 아직 갈 길이 창창하게 남아있었다.
이 사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비밀로 해야만 했다. 반드시!
“이제야 좀 순순해진 얼굴이로군. 이래서 짐승 같은 중원의 것들을 다스리려면 매를 들어야 한다니까?”
백골망사의 두 눈에서 기이한 광채가 흘렀다.
“이봐, 쩐주님.”
“…왜 그러시죠?”
“그동안 우리 합이 제법 잘 맞았어. 그렇지?”
“…….”
“그런데 다시 맞춰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
“무슨 말을-”
“둘째 놈.”
“!”
“당운휘라고 했나? 하! 이렇게 보니 이름도 아주 그 작자와 똑같군! 재수 없게! 하여간 당신도 그놈을 찢어 죽이고 싶잖아. 그렇지 않아?”
남궁산영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치맛단을 잡는 손에도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런데 나도 이젠 그놈을 찢어 죽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거든? 그러니까 다시 잘 지내보지 않겠냐고 말하고 싶은 거야, 나는.”
남궁산영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지금까지 돌아가는 걸 봐서는 운휘, 그놈의 배후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덩치가 큰 게 확실해. 이 마인이 보낸 자객이 실패한 것만 봐도 그렇고.’
현재 남궁산영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운휘의 배후가 이들의 정체를 알아냈을 때였다.
그랬다간 자신의 정치적인 생명이 바로 끝장일 테니까.
당장 알아내지 못했더라도 계속 뒤를 추궁하면 금방 알아낼 터.
그러니 그 전에 이들의 말대로 운휘와 배후를 전부 지워야만 했다.
‘이미 나는 기호지세야. 친정도 마교와 손을 잡은 게 확실한 이상 나도 거기에 올라타서 마지막까지 달리지 않으면 안 돼.’
분가주 자리에 이어 가주 자리를 얻지 않으면 모든 게 실패하고 마는 삶이 되고 말았다.
남궁산영의 두 눈이 기이한 광기로 일렁거렸다.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죠?”
백골망사의 입술 끝이 비틀렸다.
이걸로 되었다.
마귀의 손을 잡은 이상 이제 남궁산영은 돌아갈 곳이 없었다.
“그건-”
백골망사가 천천히 운을 뗐다.
* * *
검선(劍扇) 제작 의뢰를 맡기고 돌아오니, 당규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누님?”
“뭐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당규진의 얼굴에는 짙은 피로와 수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날카롭게 번쩍이는 귀기가 숨어 있었다.
귀면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얼굴이 아주 비장한 것이 꼭 어딘가 전쟁이라도 치르러 가는 사람 같사옵니다.」
「천지일기문의 진력이 흐트러지고 있을 정도이니 아무래도 분노를 잔뜩 품고 있는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무엇이 이토록 이 착한 여인을 화나게 만든 것일까?
내가 어서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당규진이 천천히 입을 뗐다.
“혹시 어린 시절의 일들, 얼마나 기억해?”
어린 시절?
조금 난감한 질문이었다.
그러니 적당히 둘러댈 수밖에.
“거의 나지 않습니다.”
“…혹시 떠올리기가 괴로워서 그런 거라면.”
“과거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당규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지금부터 잘하면 되는 거죠. 제겐 미래가 훨씬 더 중요하니까요.”
“!!”
당규진의 눈이 살짝 커졌다. 동공이 흔들렸다.
그러다 그녀가 무언가를 다짐한 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그럭!
허리춤에 매단 검이 흔들렸다.
청성파를 대표하는 고수들이나 가질 수 있다는 청강검(淸鋼劍).
그녀는 지금 사천당가의 가솔이 아닌 청성파의 검수로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그렇단 말이지. 알겠어. 고마워.”
당규진이 활짝 웃었다.
“나 잠시 볼일이 생겨서 자리 비울 테니까 누가 물으면 그렇게 대답해줘. 가주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돌아올게.”
당규진은 내 대답은 듣지 않고 조용히 사라졌다.
「소교주께 하려던 말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무엇이었을까요?」
“글쎄.”
나는 당규진이 사라진 방향을 가만히 바라봤다.
아무래도 나와 남궁산영 사이에 벌어진 갈등에 대해서 뭔가를 고민하고 있는 눈치였단 말이지?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너, 조용히 따라가 봐.’
「명에 따르겠나이다!!」
망령이 때마침 근처 나무에 앉아있던 종달새에 빙의하며 힘차게 날아올랐다.
부디 별다른 사고는 치지 말아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반대로 돌렸다.
* * *
아무래도 오늘은 손님이 많은 모양이었다.
백색전에는 형삼이 마당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고, 공자님, 그것이 안쪽에-”
“불청객이 와 계시네.”
무슨 일인가 싶어 기감(氣感)을 안쪽으로 돌려보니 익숙한 기질이 감지되었다.
「저, 저! 후안무치한! 여기가 대체 어느 안전이라고-」
「자객을 보냈다가 일처리가 잘 안되었으니 똥줄 타서 온 게 아니겠소?」
「하긴 정파인인 주제에 흑골귀곡의 술사 놈들과 손잡았다는 소문이 쫙 퍼지면 인생이 곧 나락 아니겠소? 아무래도 소교주를 떠보기 위해 온 것 같소만.」
‘나도 같은 생각이야.’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이래서야 자신이 자객들의 배후라는 걸 대놓고 증명하는 꼴이 아니냔 말이다.
“뭐 마려운 똥개 새끼처럼 그만 빨빨 돌아다니고 차나 한잔 가져와. 꼭 한잔이다. 두 잔이 아니라.”
곧 저승으로 가실 분한테 뭣 하러 아깝게 마실 걸 나눠줘?
“…괜찮으시겠습니까?”
“안 괜찮으면?”
“아, 아닙니다!”
부리나케 부엌 쪽으로 뛰어가는 형삼을 뒤로 하고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안에는 남궁산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란 듯이 내 방 여기저기를 꼼꼼하게 살피고 다니면서.
“보시다시피 뭐 가져가실 것도 없습니다만?”
“사춘기 남자애가 두 달 내내 갇혀 지냈으니 퀴퀴한 냄새라도 날 줄 알았는데 제법 환기를 잘하고 있었나 보구나.”
“누구와는 다르게 뒤로 켕기는 게 없어서 말이죠.”
남궁산영은 탐탁지 않은 듯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봤지만, 나는 오히려 콧방귀를 꼈다.
그래서 뭐?
그렇게 노려보면 뭐 어쩔 건데?
남궁산영은 한참 동안 나와 눈싸움하다가 자리에 앉았다. 아니, 앉으려 했다.
“여기 앉아라. 이야기 좀 나누- 꺄아악!”
그녀가 앉으려던 의자가 갑자기 뒤로 슬쩍 밀린 덕분에 남궁산영은 우스꽝스럽게 땅바닥에 뒹굴고 말았다.
소령(騷靈, 폴터가이스트) 현상.
망령을 시켜서 의자를 몰래 움직인 것이다.
‘잘했어.’
「소교주의 명령이시라면 웃으며 똥통에라도 들어갈 수 있나이다! 소마는 그저 제 이름 석 자만 기억해주셔도 감사할-」
「다음에는 저를! 저를 시켜주시옵소서!!」
주의 탄생 이후 망령들의 충성 경쟁은 참으로 눈물겨웠다.
“너!!”
“이런. 똑바로 보고 앉지 그러셨습니까?”
남궁산영은 벌떡 일어나 내게 삿대질해댔지만, 내가 그랬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기에 더 화를 내지 못했다.
“후우! 정말이지. 두 달 전부터는 어째서 이렇게도 천둥벌거숭이가 된 건지! 내가 너를 그렇게 가르치질 않았거늘. 우선 앉아라. 논의 나눌 게 있-”
끼익!
“이이! 너 또-”
“전 정말 여기 가만히 있었습니다? 보시지 않았습니까?”
끼이익!
“…이것 좀 어떻게 좀-”
끼이이익!
“아아아악! 이 망할 의자가 진짜!!”
남궁산영은 의자에 앉으려고 할 때마다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의자가 계속 움직여대니 나중에는 아예 힘으로 눌러서 앉으려 했지만 역시나 의자는 남궁산영을 거부했다.
다른 의자로 바꿔도 마찬가지.
결국 남궁산영은 씩씩 대면서 애꿎은 의자 다리를 걷어찼다.
그 꼴을 보고 있으려니 꼭 경극이라도 보는 것 같았다.
“이런. 아쉽네요. 저도 어머니와 깊이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게 아주 많았는데. 아무래도 의자에 귀신이라도 들렸나 봅니다.”
「소교주께서 한번 원한을 품으시면 아주 작은 일에도 좀생이처럼 구신다는 걸 저 여인은 모르는 모양이오.」
「저런, 쯧쯧! 저런 사소한 일 하나하나도 사사건건 방해해서 사람을 피 말리게 만드는 것이 바로 소교주의 특기이시거늘. 저걸로 화를 내면 쓰나. 이제 시작이실 텐데.」
남궁산영은 부들부들 떨면서 나를 노려보다가 화를 겨우 삭이면서 입을 뗐다.
“좋다. 네가 대체 무슨 술수를 썼는지 몰라도 나와 긴히 말을 섞고 싶지 않은 듯하니 짧게 할 말만 하고 떠나마.”
나는 알아서 잘 골라 듣겠다는 투로 능글맞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르르!
의자 등받이를 쥔 그녀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가는 게 보였다.
역시 사람 속을 박박 긁어대는 것만큼 재미난 것도 없단 말이지? 낄낄낄.
“무의미한 감정 소모는 이제 여기서 그만하자.”
남궁산영의 두 눈이 깊게 착 가라앉았다.
“너도 알다시피 구룡분가의 차기 분가주 자리가 네게 돌아갈 일은 없다. 규진은 청성파에서도 손꼽히는 기재로 통하고, 유창은 네게 비무에서 패배하긴 했어도 외가를 남궁세가로 두고 있다. 남궁이 발 벗고 나선다면 네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한들 사람들은 네게 줄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제게 알아서 포기하고 물러나라?”
“그래. 네가 독립하는 데 필요한 게 있다면 무엇이든 말해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마. 고개를 조아리라고 한다면 고개를 조아릴 거고, 무릎을 꿇으라면 꿇으마. 그러니 부디-”
이 말만 본다면 사실상 남궁산영은 내게 항복 의사를 표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식들의 앞길만큼만은 막지 말아 달라고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다.
예전의 ‘당운휘’라면 아주 잘 먹혔겠지.
하지만 내 눈엔 훤히 잘 보였다.
그녀의 음험한 속마음이.
「감히 소교주께 심계(心計) 싸움이라니. 이 멍청한-」
무엇보다 당규진이 마지막에 보였던 씁쓸한 모습이 잊히질 않았다.
나도 결국 웃음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핏.
입술 사이로 실웃음이 새어 나왔다.
조소였다.
“난 또 무슨 개소리 하시려나 했는데 진짜 이렇게 개소리하시깁니까?”
“!?”
남궁산영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너-”
『마교 놈들과 손잡았다는 소식이 분가주님의 귀에 들어갈까 두려우신가 봅니다?』
“!!!”
아무래도 백골망사와 손잡고 나를 방심하게 만든 뒤에다 등에 비수를 꽂을 모양인데.
누구 맘대로?
환생마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