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Reincarnated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90)
환생마신전 291화(291/390)
환생마신전
묵비
나는 잠시간 침음을 삼켰다.
묵비의 두 눈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무당산에서부터 궁금했어도 미처 물어보지 못했던 사안이 떠올랐다.
―묵비는 어째서 이렇게 내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걸까?
분명히 그에 대해서는 이름만 알고 있을 뿐,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만나본 적조차 없었다.
심지어 공통으로 알고 있는 지인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이렇게 공법서를 정성스럽게 정리해서 준단 말이지.’
나는 대충이나마 빠르게 두 공법서의 내용을 살폈다.
확실히 묵비가 자랑스럽게 말할 만했단 생각이 들었다.
요악만해문은 일종의 저주문(咀呪文)이었다.
구결을 단순히 암송하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강한 저주를 걸어 상태 이상으로 만들 수 있었다.
갑자기 착란에 빠진다든가, 혹은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져서 판단력이 느려진다든가 하는 식으로.
「망령술과 섞으면 더 강해진 저주독을 넓게 퍼뜨려서 독지(毒地)의 영역을 넓힐 수도 있겠나이다.」
「악귀지옥진과도 잘 어울릴 테니 참으로 안성맞춤인 공법서라 할 수 있을 테니… 어쩌면 이를 토대로 탈마(脫魔)를 노릴 수도 있지 않겠나이까?」
탈마는 도가에서 등선, 불가에서는 열반 혹은 입신이라 부르는 것과 같은 마도의 경지였다. 즉, 성궤나 그 이상에 해당하는 수선의 경지를 통칭해서 말하는 거였다.
전생에도 몇 번씩이나 탈마에 들어보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등봉의 경지까지 닦은 데다가 공법서까지 얻었으니 충분히 노릴 수 있지 않겠냐는 게 이매망량의 의견이었다.
의빙혼명징도 비슷했다.
‘이건 손에 넣은 망령을 단순히 원귀나 망량으로 부리는 게 아니라 육체에 강제 빙의시켜서 생전의 능력을 뽑아내는 기술이라고 보면 되나?’
내가 손에 넣거나 앞으로 넣을 망령은 아주 다양하다. 그리고 개중에는 내가 필요한 무공이나 이능을 지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의 생전 능력을 내가 직접 발휘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전력에는 상당한 보탬이 될 것이다.
또 어디 그뿐일까.
‘만약에 신선이나 대요괴의 망령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내 시선은 저절로 숭흑호에게 향했다.
흠칫.
『무, 뭐냐!? 또 왜 그렇게 뽑아먹을 게 많은 염왕채(閻王債, 사채업자)처럼 나를 봐!?』
숭흑호의 실력은 이미 역귀들을 토벌할 때도 보지 않았던가. 그 무위하며 선술까지도.
하지만 내공 소모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아서 효율적이란 생각은 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만약 내가 그걸 직접 이해하고 써먹을 수 있다면 내공 남용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또 그만큼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야도 손에 넣을 수 있을 테고.
그리고…….
‘만약에 추가로 장생과를 먹을 수 있다면?’
여기서 죽은 신선과 요괴들은 모두 숭흑호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혹은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존재들이다.
비록 혼은 사라졌다지만 백이라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전력 보강에 큰 도움이 될 터.
그때부턴 무공과 사술의 경계선도 사라지게 된다.
등봉과 성법, 두 개의 경지를 초월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사부님이나 대머리 영감님에 버금가는 힘을 손에 넣을 수도 있는 것이다.
두근! 두근두근!
가슴이 이렇게 왈칵 뛰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그만큼 묵비가 제안한 두 공법서는 나에게 있어 새로운 기연, 혹은 새로운 성장을 알리는 안내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귀왕자서의 한계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이를 넓혀주는 역할을 맡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
너무 내 입맛에 맞춘 것처럼 알맞으니 이제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왕이시여?”
나는 공법서를 받다 말고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
묵비의 눈이 살짝 커졌다.
“묵의방주는 처음 날 봤을 때부터 정체를 눈치챘던 것 같던데. 맞소?”
묵비가 슬쩍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단순히 백발과 이매망량을 부린다는 것만 보고 확신하지는 않았을 것 같고. 혹시 다른 방법이 있었던 거요?”
“있었지요.”
“뭐요?”
“목소리.”
“?”
“영혼에서 나는 목소리가 소천마와 같았습니다.”
묵비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묵의방의 전신인 묵가에서는 제사와 같은 허례허식은 필요 없다면서 귀신과의 소통을 중요시합니다. 그 때문인지 제겐 이따금 찾아와서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해주는 귀신들이 있습니다.”
그제야 나는 묵비가 나와 비슷한 이능을 타고났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귀곡청(鬼哭聽)의 이능을 갖고 계신 거로군.”
“예. 맞습니다.”
귀곡청.
귀신의 목소리를 듣는 이능을 말했다.
사자안만큼이나 타고난 사람이 극히 드물기도 했다.
“그들이 말해주더군요. 왕의 목소리가 이전 귀왕의 목소리와 똑같다고 말입니다.”
정확하게는 내 영혼이 내는 파장을 말하는 거겠지.
귀신이란 존재들은 원래 사람의 육성보다는 영혼의 파장을 읽고 사람을 구분하니까.
“그러면 날 가리켜서 계속 왕이니 뭐니 하고 불렀던 것도-”
“친구들이 그리 부르니 저도 그런 호칭이 입에 배어서 말입니다. 혹시 불편하시다면 고치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으니 그건 마음대로 하시오.”
“감사합니다. 여하튼 워낙에 오래전부터 왕에 관한 이야기를 이것저것 많이 들었던 터라, 저도 모르게 그만큼 내적 친밀감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 귀신이란 것들이 나에 관해서 뭐라고 지껄였을지를 모르니 좀 찝찝한데.
「으음? 소교주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과 다르게 귀신이나 망령들에게는 잘 대해주는 편이셨었나…?」
「그, 글쎄올시다. 나도 본 적은 없어서.」
「하지만 소교주만큼 한결같은 분도 찾기 어려운데, 다른 귀신들이라고 해서 다르게 대우하시진 않았을 것 같은데…?」
「에잉, 답답한 것들. 딱 보면 모르겠나? 나는 그 귀신이란 것들의 속내가 딱 보이는구만.」
이매망량 중 하나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곰방대를 입에 물면서 잔뜩 잰 체했다.
「으잉?」
「자네는 이유가 뭔지 안다는 건가?」
곰방대를 문 이매망량이 바닥에다 재를 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마다. 그야 당연히 소교주께 잘 보이기 위해서겠지!」
「!?」
「아……?」
「까닥했다간 소교주께 모가지가 낚여서는 어떻게 부려 먹힐지도 모르잖나? 그 전에 알아서 순순히 바짝 엎드리고 기는 게 최선이라 여긴 게지. 뇌물인 게야, 뇌물.」
「그, 그렇군!!」
「과연… 괴이들도 두렵게 만드는 소교주의 인성…. 소교주께선 과연 전설이시도다…!」
이매망량이 맘대로 지껄이는 소리는 그냥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묵비가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이 공법서들도 그 친구들과 같이 의논 끝에 고른 것들이었습니다.”
“이 공법서들이?”
“예. 무엇보다 도원향을 무너뜨린 만큼 회라는 곳이 강하다고 하니, 왕께서도 그만큼 즉각적인 전력 증강에 필요하실 것 같아서요. 그 친구들이 꽤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나는 두 공법서를 가만히 보다가 품 안에 슬며시 갈무리했다.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소.”
“과찬입니다. 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찾아주십시오.”
묵비는 밝게 웃었다.
「…저 말을 그 귀신 친구들이 들었다간 경기를 일으킬 것 같은데.」
「그러게나 말일세. 안 된 친구들이로군. 미리 명복이라도 빌어두세나.」
* * *
두 공법서의 구결을 전부 외우고 난 뒤, 나는 삼매진화를 일으켜 전부 불살랐다.
화르륵!
생각보다 활활 잘 타네. 죽간으로 만들어서 그런가?
요악만해문과 의빙혼명징을 살피고 난 뒤에 내가 내린 결론은 아주 간단했다.
‘잘못 사용했다간 마도의 술수 중에서도 극악에 가깝게 빠질 수 있는 것들이야. 차라리 나만 익히고 지우는 게 나을지도.’
두 마도공법(魔道功法)은 사용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세상에 해악을 일으키기 십상이었다.
실제로 요악만해문과 의빙혼명징은 사타왕이나 그에 준하는 성 급의 대요괴가 익혔던 공법으로 보였다.
어쩌면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고 촌장의 장서고에 봉인되어 있던 것도 전부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하지만 내게 이보다 더 잘 어울리고 요긴하게 쓰일 공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두 마도공법을 익히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나 충동 따위를 천마호심공으로 억제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가부좌를 튼 채로 깊은 명상에 잠겼다.
파스스스……!
삼단전을 한껏 개방한 순간, 사룡기공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내공이 밖으로 새어 나오면서 서서히 마기(魔氣)로 변했다.
그리고 순수마가 깨어나면서 그것은 다시 훨씬 농도가 깊은 천마기로 화했다.
두근! 두근!!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이번엔 요악만해문의 구결을 암송했다.
파직! 파지직!!
끼아아아아-
한껏 개방한 천마기 위로 뇌기 같은 것이 벼락처럼 튀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누군가에게 저주를 쏟아붓기 위해 한껏 흉포해진 순수마가 꿈틀거렸다.
꾸어어어어어!
순식간에 저주가 수십수백 배로 증폭하면서 실내를 가득 채웠다.
요악만해문이 폭주하기 직전, 나는 그 많은 저주를 외부세계가 아닌 내면세계로 끌어들였다.
저주가 해일처럼 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쿠르르르-
* * *
“대…… 인?”
“왜 그러지?”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십니다!”
“…난 괜찮다. 신경 쓸 필요 없어.”
꼴깍!
청재는 운휘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지? 본격적으로 공법을 익히셨다더니 그 때문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단 하룻밤 사이에 사람이 달라져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 싶었다.
눈 밑이 퀭하게 내려앉은 건 예사였다.
눈빛은 잘 벼린 칼처럼 날카로웠고 말투도 매끄럽지 못했다.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짜증과 노기가 다분하게 묻어났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긴 마찬가지.
평대를 써도 최대한 예를 다했던 이전과 다르게 지금은 다시 자연스럽게 하대가 나왔다.
무엇보다…….
‘마기가 강해도 너무 강해지셨어.’
마치 천마군림보를 다시 펼치고 계신 듯한 기분이었다.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웠다.
반면에 괴로운 건 운휘도 마찬가지였다.
‘머릿속이 너무 어지러워. 인지 판단도 어렵고. 계속 이런 수련을 해야 하나?’
사실 지금 그가 겪고 있는 상태이상은 요악만해문을 자기 자신에게 써보면서 발생한 후유증이었다.
그가 이런 희한한 행동을 한 건 전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칠대성 급 대요괴가 만든 것으로 추측되는 공법서의 부작용과 후유증을 미리 확인하기 위해서.
인외(人外)와 인간은 어디까지나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자칫 발동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요악만해문은 운휘가 그냥 발동하기엔 많은 문제가 있었다.
저주문을 원하는 대상에게 쏘는 것까지는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저주 발동이 실패했을 시, 반발력이 더 크게 돌아온다는 점이었다.
성공한다고 해도 발동의 후유증이 시전자에게 남았다.
저주는 어디까지나 주술의 영역.
주술은 언제나 쌍방의 희생을 같이 강요하는 술법이었다.
하물며 원래대로라면 괴이가 감당해야 할 수준의 후유증이 인간에게 가당키나 할까?
대답은 ‘아니다’였다.
곧바로 인지부조화가 일어났다.
감각이 교란되면서 내가 인지하고 있는 세계가 정말 인지하고 있는 그대로가 맞나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거기다 저주문을 자기 자신에게 덧씌웠으니.
판단력까지 흐려지면서 정신세계가 빙글빙글 돌았다.
상단전이 필요 이상으로 과열되면서 자칫 흔들리기까지 했다.
바로 그때, 사룡기공이 저절로 일어났다.
흑룡은 의식에, 적룡은 육체에, 황룡은 호흡에, 청룡은 신진대사에 똬리를 틀면서 운휘를 괴력난신(怪力亂神)으로 이끌었다.
인위적으로 운휘를 인외로 만들어 후유증을 모두 감당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운휘는 새로운 성장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백룡의 씨앗을 틔울 방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