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Reincarnated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93)
환생마신전 294화(294/390)
환생마신전
오광(敖廣)
동해용왕 오광.
달리 창녕덕왕(滄寧德王)이라 불리기도 한 그는 한때 모든 용왕의 맏형이자 수장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에 관한 전설과 신화도 아주 많았다.
동쪽 바다를 다스리며 권속들과 함께 비바람을 부린다던가?
소싯적에는 거인 반고가 땅을 다질 때 사용했다는 여의금고봉을 계승하던 전사이기도 했고,
칠대성의 막내이자 부처이기도 한 제천대성이 행자 노릇을 할 시절에 새테세라는 괴이가 일으킨 가뭄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세상 곳곳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절지천통과 함께 다른 용왕들이 모두 천계로 올라가자, 오광만큼은 이 땅에 남았다.
“아직 나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은 것 같소. 하늘과 땅의 분리가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누구 하나는 남아야 하지 않겠소?”
인세의 존재들에게 비바람은 아주 중요한 것이니,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천기의 운행을 바로 잡은 뒤에 올라가겠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형제들을 모두 올려보내고 도원향을 만들었다.
여전히 이 땅에 남고 싶어 하던 많은 신선과 요괴들이 모였다.
더 이상 천교니 절교니 하는 옛 구분도, 분쟁도 더 이상 없었다.
드디어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겠군.
오광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나는 청재와 함께 곧장 수목원으로 이동했다.
아직 의념을 인지 감각으로 사용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몸을 움직이는 게 서툴렀다.
의념만으로 육체의 구조를 세밀하게 파악하고 다시 이것을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마치 내 몸이되 몸이 아닌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보이지 않는 실을 마구 움직여서 꼭두각시 인형을 직접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다.
관절의 움직임, 근육의 강직도, 골격의 변화, 내공의 흐름, 혈도와 경맥의 소통, 삼단전의 호응까지…….
특히 상단전을 다룰 때는 자칫 큰일이 벌어질 수 있기에 최대한 많은 집중을 기울여야 했다.
그래도 다행히 나에게는 분심공(分心功)이 있었다.
의식을 잘게 쪼개어 분업을 시도하니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린 정교한 기계장치처럼 육체를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수목원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새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고.
여기에 나는 저주문을 하나 더 얹어도 되겠다 싶어서 요악만해문을 한번 더 발동했다.
순간 의념이 살짝 흐트러지면서 육체가 흐느적댔지만 다시 제 위치를 되찾았다.
‘그래도 무공이나 사술을 제대로 펼치기엔 역부족이겠어.’
나는 몸 상태를 확인하면서 수목원에 들어섰다.
이미 거기엔 팔괘도선과 묵비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왔는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금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네.”
“!?”
나는 살짝 놀라 인면수 쪽을 봤다.
두 달 가까이 정성을 다해 돌봐서 그런지 인면수는 이제 더는 유목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자라 있었다.
나뭇가지에는 여러 열매가 주렁주렁 맺혀 있었는데, 그중에서 인면(人面)이 제대로 새겨진 건 딱 네 개밖에 되지 않았다.
『현재 의식을 가진 열매는 총 세 개일세. 두 개는 자네도 알고 있는 오광과 금사족장, 그리고 추가된 건 왕천군(王天君)일세.』
아무래도 열매들이 들을 수 있으니 조심스럽게 전음을 보낸 것 같았다.
『왕천군이면 절교 일성구군(一聖九君)의 요선이 아닙니까?』
일성구군은 달리 십천군이라고도 불린다. 칠대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요선의 경지에 오른 괴이 중에는 최상급에 속하는 자들.
그만한 존재가 도원향에 있었나?
팔괘도선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내게 팔괘의 제대로 된 쓰임새를 가르쳐준 분이기도 했었지. 도원향은 원래 그토록 강하던 곳이었단 뜻이지.』
대체 제팔사도와 회의 전력이 얼마나 되는 건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팔괘도선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뒷말을 듣지 않아도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았다.
‘아직도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있나?’
사실 촌장보다 먼저 의식을 띠기 시작한 열매가 있었다. 금사족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죽어서 인면수의 일개 거름이 되었단 사실을 믿지 못했다고.
어서 자신에게 씌운 허튼 짓거리를 풀고 해방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데, 청재와 청궁이 골치를 많이 썩였단다.
그러다 지쳤는지 다시 깊은 잠이 들었지만, 술사들은 머리를 맞대고 깊은 고민에 잠겼다.
그만한 격을 지녔던 존재들이 쉽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게다가 백(魄)만 남아 일개 괴이로 되살아났다고 하면 분노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일개 족장이 그 정도로 분노하는데, 그보다 상격인 촌장이나 왕천군의 반응은 어떨까?
팔괘도선도 나의 미묘한 표정을 읽었던지 헛웃음을 흘렸다.
『왕천군의 반응도 다르지 않아. 아니, 다르다면 다르겠군. 오히려 격노했으니까. 전사로서 죽었으면 죽은 대로 놔둘 것이지, 어찌 망자를 희롱하느냐고. 그 때문에 어떻게 말을 붙이지도 못했어.』
왕천군은 그나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금사족장보다 나았다는 의미였다.
큰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촌장의 반응이 가장 걱정이었었는데… 다행히 원래 그의 성격이 성격이라 그런지 현실을 잘 받아들였어. 우리 사정도 이해해 주었고.』
듣기로 오광은 깐깐하게 도원향을 통치하던 것과 다르게 성격은 꽤 유쾌한 편이라고 했다.
『지금은 저기서 술사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네.』
팔괘도선이 가리킨 곳에서 술사들은 어떤 열매와 한창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간간이 웃음소리도 들리는 걸 봐서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그곳에 합류하기 전에 따로 짚이는 게 있어서 물었다.
『그런데 인면이 맺힌 열매가 총 네 개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면 남은 하나는-』
『아, 그것 말인가? 사실 그게 문제이긴 해.』
팔괘도선이 계면쩍은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도저히 정체가 뭔지 알 수가 없었거든. 나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고, 서랑도 모른다더군.』
『혹시 회 쪽의 사람인 건-』
『아닐세. 그것도 이미 확인을 거쳤어. 기질만 보면 분명히 도원향의 촌민이 맞아.』
『…그럼?』
팔괘도선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아주 먼 과거에 눈을 감았던 존재가 아닐지 싶네.』
『!!』
『보다 정확한 건 그가 의식을 차려야만 알겠지만.』
* * *
나는 작은 의문을 뒤로한 채 술사들이 있는 곳에 합류했다.
『내가 봐도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꼴이 조금 우습긴 하지. 그러니 자네들도 나처럼… 오, 새로운 손님이 오셨나?』
열매가 사람의 얼굴을 한 채로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떠벌리는 모습은 확실히 괴이(怪異)했다.
「소마들 역시 비록 괴이로 전락하긴 했사옵니다만, 저런 상황을 겪는다면 쉽게 적응하지 못할 것 같사온데-」
「용왕이었던 존재라 정신력이 강한 건지, 아니면 원래 사람이 긍정적인 건지….」
「확실히 듣던 대로 걸물이긴 걸물인가 봅니다.」
나도 저렇게 되어서는 좋은 말로도 괜찮겠다고 말하지 못할 것 같은데.
하지만 오광은 아주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진심으로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듯.
나는 그에게 포권을 취했다.
“연가 운휘라 합니다. 창녕덕왕을 뵙습니-”
『아, 아니군. 손님‘들’이었구만?』
“!?”
『뭘 그리 놀라나? 내가 누군지 안다면서?』
핏.
오광은 실웃음도 흘릴 줄 알았다.
『괴이 중에 음(陰)한 기운을 받아들인 것은 요괴라 하고, 양(陽)한 것을 주식으로 삼은 것은 영물이라 하지. 하지만 용은 괴이 중 으뜸이라, 음한 것에서도 양한 것에서도 비롯될 수 있다네.』
확실히 나도 만나본 적 있던 초도는 영물이라기보단 요괴에 가까웠다. 광성자도 그랬으니 퇴치했던 거겠지만.
반면에 오광은 망자과가 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선한 기질이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비바람을 관장하며 인간의 농작물이 번성할 수 있도록 했다는 선신(善神)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나도 다시 괴이로 회귀하지 않았나? 그러니 자네의 뒤편으로 거무스름하게 보이는 친구들도 나와는 먼 관계가 아니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인사를 나누지 않게 하는 것도 이상했다.
나는 결국 헛웃음을 흘리면서 온마를 불러 백귀야행의 일부와 함께 오광에 인사하도록 했다.
『호오, 재미난 친구들이 아주 많구만. 산 자인 인간이 이렇게 많은 이매망량을 거느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오광은 손이라도 있으면 제 턱을 쓰다듬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마을이라도 온전히 남아있다면 같이 여기 남아서 수선(修仙)하지 않겠냐고 꼬드기고 싶은 정도란 말이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긴. 나로서는 그냥 보이는 대로 말할 뿐인 건데. 그보다 자네, 영근은-』
『그딴 꼴이 될 거라면 그땐 나를 대체 왜 그렇게 만든 거요? 그냥 자유롭게 풀어주기나 했을 것이지!』
오광의 자유분방한 태도가 탐탁지 않았던지, 숭흑호가 팔짱을 낀 채 심통 난 표정으로 내려봤다.
오광이 싱긋 웃었다.
『그야 나는 여기 마을에 남아서 열심히 고생하고 있는데, 자네는 밖에 나가서 희희낙락하려 하니까?』
『그,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요!?』
『그럼. 말이라고 하지, 양이라고 하겠나?』
『!?』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이네만. 마을에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젊은 친구가 노인네를 도와줄 생각은 못 할망정 농땡이를 피우려는 건가? 먼저 나서서 하겠다고 해도 모자란 판인데. 젊었을 때는 고생도 사서 한다고 했거늘!』
『무, 무슨 곤대 같은 말을…!』
『그새 잊었나? 젊은 친구가 벌써 기억력이 그래서야 원…. 나, 곤대 맞아. 솔직히 촌장직도 맡기 싫은데 나이가 많다고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았던 거 아닌가?』
『이, 이이…!!』
숭흑호는 분통이 터지는지 주먹으로 가슴을 두들기더니 갑자기 내 쪽을 홱 하고 노려봤다.
“?”
『이제야 알겠다!!』
“뭘?”
『너를 상대하고 있으면 자꾸 누군가와 닮았단 생각이 들었었는데! 촌장과 판박이였어!!』
어쩐지 오광의 성격이 왜 이렇게 좋은 것 같나 했더니.
“저런 녀석을 두고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오오, 이천 년만에 내 노고를 알아주는 젊은 친구를 만났구만! 아주 싹수가 좋아! 자네 정말 수선해볼 생각 없나?』
『이이이이!!』
숭흑호가 부들부들 떨거나 말거나.
오광과 나는 아주 잠깐이지만 서로에게 깊은 호의와 동질감을 느꼈다.
좋아. 분위기는 이만하면 풀어진 것 같고.
나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결례되지 않는다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흠.』
여태 유쾌하던 오광의 얼굴에 깊은 시름이 더해졌다.
그리고 깊은 한숨까지.
역시나.
그는 아무래도 죽기 전의 기억을 되도록 미루고 싶어 최대한 유쾌한 척 굴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나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지금까지 기다린 것도… 솔직히 내 입장에선 최대한 인내에 인내를 더한 결과였으니까.
사부님이 무사하신지, 그리고 무사하시다면 어떤 처지인지, 얼마나 더 버티실 수 있는지,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었다.
“부탁드리겠소이다, 촌장. 도원향의 일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알아야 뭐라도 도와드릴 수 있지 않겠소? 그리고 이 친구는 애타게 사부를 찾고 있소.”
『…사부?』
팔괘도선이 나서자 오광이 눈을 살짝 동그랗게 떴다.
“마을에서는 선자라 불렸다 들었소. 서랑, 그 아이의 사부가 바로 저 친구의 사부요.”
『그, 그게 사실인가!?』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고.
『아아…! 자네가…. 그래. 자네에게서 풍기는 기질이 어쩐지 익숙하더라니…. 이매망량의 귀기 때문에 놓치고 있었군…. 이런.』
오광은 차마 말을 쉽게 잇지 못하더니 갑자기 두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미안하네. 나는… 죄인일세. 자네에겐 면목이 없네.』
“!?”
그 순간,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