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Reincarnated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317)
환생마신전 318화(318/390)
환생마신전
몽유호접(夢遊胡蝶)
천산. 천마궁.
“…또 신성이 하나 떨어졌군.”
육사도 염계는 태사의에 앉은 채 눈을 감고 있다 말고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역태극이 맺힌 두 눈이 노기로 가득 찼다.
“쓸데없이 욕심을 부리더라니. 결국 사달을 내고 말았군.”
십이사도는 모두 위대한 혈신의 영육이자 화신.
그 때문에 그들 간에는 신성이 서로 심령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심령을 완전히 걸어 잠근 게 아니라면 대충이나마 상대가 뭘 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 신성이 끊어졌다는 것은 곧 그가 죽어 혈신의 품으로 귀의했다는 뜻.
영원토록 이어질 줄 알았던 열두 개의 신성 중에서 벌써 두 개가 없어진 셈이었다.
그것도 모두 한 사람에 의해서.
까드득.
염계는 이를 깨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곧장 재이성으로 달려가 신검천마를 잡아들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여전히 그의 영혼을 가로지르는 상처는 도저히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두두둑!
염계는 양손으로 상의의 저고리를 붙잡아 그대로 뜯었다.
그러자 좌측 가슴팍에서부터 우측 아랫배까지 굵게 지나가는 흉터가 보였다.
그런데 흉터의 생김새가 참으로 끔찍했다.
제대로 아물지 않는 상처 안쪽에서부터 퀴퀴한 악취와 함께 진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고, 흉터의 표면에는 구더기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덩어리를 이뤘다.
청천마왕이 그에게 입혔던 상처는 단순한 상해 따위가 아니었다. 영격을 망가뜨리는 살상이었다.
자칫 불멸이 깨지고 윤회전생의 고리로 떨어질 뻔했으니.
그때는 제아무리 염계도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물론 나도 놈의 복부에다 바람구멍을 내어주긴 했으나, 그래도 내게는 너무나 큰 손실이다.’
청천마왕은 천계의 자기 성역으로 돌아가 치료에만 집중하면 그만이지만, 염계는 여전히 하계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았으니까.
탑이나 천계에 비해 영기도 턱없이 부족해서 치료가 한참이나 걸릴 정도였다.
한때 복마전에서도 손에 꼽히는 투신이었다더니.
확실히 이대로는 다시 재기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사도가 죽었단 말이지? 괴력난신을 통합하는 과정에 그만큼 시간이 걸리겠군.”
절지천통이 벌어졌다고 하나, 인세에는 여전히 많은 수의 신선과 요괴들이 남아 있다.
천계에 올라가지 않았던 이들도 있고, 수천 년 동안 추가로 득도한 이들도 있었으며, 자신들처럼 탑에서 나온 이들도 있었다.
당장 떠오르는 곳만 하더라도 막고야산이나 삼신산, 무계국(無繼國)이라는 곳이 있었다.
이들을 담당하는 것이 원래 팔사도 군방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만큼 다른 사도들이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는 뜻도 되었다.
‘가뜩이나 칠사도, 그 멍청한 것이 맡아야 했던 흑도 쪽부터 공략하느라 시간이 부족했건만.’
그나마 다행인 점은 권마야수종과 진마구음종을 앞세웠던 흑도 공략이 거의 끝을 보아간단 점이었다.
무림인들에게 들킬까 우려되어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나누어 운영하느라 애썼던 것을 고려한다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감당할 겨를은 없다. 그쪽은 어쩔 수 없이 구사도(九使徒)와 십사도(十使徒)를 움직여야 하나?’
구사도와 십사도가 현재 황궁을 담당하고 있고, 접수도 거의 끝났다고 하니 병력에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천마는…… 어떻게든 내가 잡아야겠어. 소천마도 그렇거니와, 저들을 계속 이대로 내버려두는 건 너무나 위험하다.’
사도를 둘이나 죽일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히 신살(神殺)의 방법을 터득했다는 뜻.
혈신의 신성을 터득하여 영생불멸을 이뤘다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졌던 사도들로서는 가장 두려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하루가 무섭게 강해지는 소천마까지 신살을 터득한다면?
정말이지 골치 아픈 수준을 넘어서서 회의 대계가 크게 망가질지도 몰랐다.
그래서 염계는 얼른 완치부터 완료하고, 천산을 크게 일으킬 생각부터 가졌다.
‘정마대전을 최대한 앞으로 당겨야겠군.’
설사 그 과정에서 인과율의 제약이 그를 옥죈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뽑아라.”
염계는 생각을 정리하면서 앞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거기엔 태사의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구백구십구 명의 사람들이 무릎을 꿇은 채로 앉아있었다.
모두 약에 취한 듯 눈가에 동공이 풀린 상태.
천산산맥에서 끌어모은 신도들이었다.
하지만 염계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그들은 일제히 무릎 밑에 뒀던 단검을 뽑더니 일제히 자신의 좌흉을 찔렀다.
퍽! 퍼퍼퍼퍽!
그러고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아래로 쭉 내리긋자 엄청난 양의 출혈과 함께 팔딱팔딱 뛰는 심장이 드러났다.
“혈신이시여, 저의 심장을 받아주소서!”
“혈신이시여, 저희의 생육으로 죽음에서 부활하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영혼을 당신의 피안으로 이끄소서!!”
광신도들은 제 손으로 일제히 자기 심장을 쥐고서 바깥으로 뽑았다.
엄청난 양의 피가 천마궁을 더럽히는 가운데.
휘휘휘휘……!!
피가 강을 이루면서 천천히 염계 쪽으로 몰렸다.
인신공양.
산 자의 심장과 피륙을 삼켜 자신의 상처를 보듬는 것이다.
꿀렁꿀렁-
염계의 흉터가 피를 잔뜩 빨아먹으면서 조금씩 낫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요력도 더욱더 발작을 일으켰다.
끼아아아아아!!
* * *
“교주의 꿈을 엿보고 싶다고?”
새로운 천마궁이 지어질 곳으로 장소를 이동하던 중에 사심마유가 눈을 크게 떴다.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너.”
“?”
어쩐지 사심마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언제부터 그런 음침한 취향을 갖고 있었던 거냐?”
“…….”
“이놈아, 아무리 그래도 안 된다! 네겐 그래도 부모와 같은 사람인데 그런 음탕한 취미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대체!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러면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돌겠네. 진짜.”
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검지로 꾹꾹 눌렀다.
하지만 사심마유가 어째 오해할 만도 했다.
꿈이란 본디 나의 의식과 통제를 벗어나 무의식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것.
그렇기에 신비롭고, 또 그렇기에 은밀하면서도 개인적인 욕망과 사생활이 복잡하게 어우러지기 마련이다.
당연히 그런 것을 타인에게 들킨다는 것은 내면을 훤히 드러낸다는 말과 똑같으니, 당사자로서는 치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무작정 내가 그걸 들여다봐야겠다고 말했으니 저런 반응을 보여도 이상하지 않겠지.
무엇보다.
‘이 영감님, 곤대 치고는 눈치도 빨라서 내 감정이 어떤지도 이미 알고 계시는 것 같고……. 하여간.’
일단은 이 영감님의 오해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 같았다.
“사부님이 겪고 계시는 병환 말입니다.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 드시지 않으십니까?”
나는 내 등에 업힌 사부님을 조용히 돌아봤다.
팔사도를 처치할 때는 그토록 큰 존재감을 자랑하던 분이셨건만.
이렇게 업고 보니 조금 왜소한 체구를 갖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작은 어깨로 그동안 십만마도의 운명을 업고 계시느라 얼마나 많이 힘드셨을까.
그리고 지난 육 년간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병환에 얼마나 모진 고생을 하셨을까라는 생각까지도.
“이상하다니?”
“사부님께서 그러시더군요. 병환이 있었기에 지금의 경지에 오르실 수 있었다고.”
“그야 억지로 병마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닌가?”
때때로 저주나 독을 이기기 위해 깊은 깨달음을 얻는 이들이 있었다.
고승들이 십년면벽을 하는 것과도 비슷한 이유였다. 속세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과 깨달음을 얻고 싶다는 궁구 사이에서 수도 없이 방황하다가 끝내 깨달음을 얻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사심마유도 사부님이 겪는 병마도 독만큼 지독하니 그런 게 아니냐는 말이었지만.
“아뇨. 단순히 그런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너, 뭔가를 알아낸 게 있는 거로구나?”
사심마유의 질문에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면(嗜眠)을 겪는 중에 저희가 감지하지 못한 뭔가를 앓고 계시는 게 분명합니다. 그 때문에 탈각의 경지에 오르셔도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시는 거고 말입니다.”
사부님과 대화를 나누는 내내 나는 자꾸만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었다.
「확실히 소교주께서 당하시기 전까지 교주께서 깨어나신 적은 없으셨지요.」
「그러다 갑자기 조금씩 눈을 뜨셨다는 것은 원래 깨실 수도 있는데 그동안 그러지 않았다는 뜻….」
「이는 그러실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숨어있단 뜻일 것입니다.」
마치 잠드는 동안에는 의식이 인세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사부님의 행동이나 말투, 그리고 언뜻 보이는 무공의 체계가 현재 강호 무림의 것과 궤를 달리하는 경우가 종종 보였다.
‘신살을 획득하신 것도 그렇고. 그런 건 절대 그냥 깨우칠 수 있는 게 아니야. 어디서 보시고 난 다음에 자기의 것으로 삼으신 거지.’
천마구검을 모두 깨우치고 본격적으로 운술검해를 터득하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확실히 육체의 상태만 봐서는 이미 병마가 다 나앗어도 이상하지 않았지……. 이상하게 기력이 고갈된 것만 빼면. 그 ‘무언가’가 뭐냐는 게 관건이로군.”
사심마유도 그제야 뭔가 짚이는 게 있는지 턱을 가만히 짚으면서 생각에 잠기다가 물었다.
“하면 그 꿈은 어떻게 엿보려는 것이냐? 자칫 무의식에 빠져버리면 답도 없는 것 알고 있겠지?”
술가에서도 꿈과 영혼은 밝혀진 것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훨씬 많은 미지의 영역.
타인을 조종하기 위해 무의식에 함부로 접근했다가 비명횡사하는 술사들의 이야기는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그건…?”
“현허구궁도 때와 마찬가지로 이걸 써보면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조용히 혈접을 꺼내 보였다.
* * *
혈접에 대한 사용법은 아직도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걸 우연히 확인한 오광이 해준 말이 좋은 암시가 되어줬다.
「으음? 이건 막야(莫耶)가 만든 몽유호접(夢遊胡蝶)과 상당히 비슷하구만?」
“이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그동안 혈접에 대해 알아보려 해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건만.
처음으로 이를 알아본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사실 그렇게 잘 알지는 못한다네. 막야와는 그리 깊은 인연을 맺진 못해서.」
“막야라면 간장과 막야의 그-”
「맞네. 구야자의 딸이자, 월왕 합려에게 억울하게 죽은 간장의 아내였던 막야를 말하는 걸세.」
“!”
「세간에는 보검을 만든 것 때문에 구야자와 간장이 더 유명했었네만, 사실 우리 같은 신선요괴들에겐 막야가 훨씬 더 유명했었지. 술가 쪽 지식도 해박해서 보패나 법기를 만드는데 아주 탁월했었거든. 이 곰방대도 사실 그 친구가 만들어 준 것이고.」
오광은 어느새 내 옆에 나타나 장난스럽게 곰방대를 입에 물고 연기를 내뱉었다.
후우우-
「막야는 갖가지 기물을 만들면서 심심풀이로 자기만의 법기를 만들기도 했었지. 몽유호접도 바로 그중 하나일세.」
“사용법에 대해서 혹시 알고 계십니까?”
오광은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까진 모르겠군. 사실 나도 물건을 의뢰하러 그 집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봤던 것이라서. 듣자하니 뭔가 신기한 물건들을 잔뜩 만들고 있더구만. 간간이 검도 만드는 것 같았고.」
오광은 혈접을 더 꼼꼼하게 살피면서 말했다.
「그래도 날갯짓하는 걸 봐서는 제대로 작동은 하는 모양이로군? 잠금장치가 해제되어 있으이. 방법만 알면 금방 사용할 수 있을 듯싶네만.」
결국 아주 자세한 건 알아내지 못한 셈이었다.
하지만 혈접의 제작자가 누구이고, 원래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낸 것만 해도 큰 성과였다.
때론 그 이름에 실제 기능이 암시된 경우도 있으므로.
몽유호접(夢遊胡蝶).
풀이하자면 ‘꿈속을 노니는 나비’가 된다.
즉, 호접몽(胡蝶夢)이라는 단어처럼 이 보패를 활용하면 꿈이나 이면 세계 같은 숨겨진 뭔가를 탐험할 수 있단 뜻이었다.
현허구궁도의 내부를 탐색했을 때처럼.
그러니 혈접을 이용하면 사부님을 괴롭히는 기면증에 대해서도 원인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부님이 나를 구원하였듯이, 이번에는 내가 사부님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돌아와야 한다. 꿈은 파도와 같아서 이따금 풍랑이 치는 경우가 많다. 자칫 거기에 휩쓸리면 네 존재가 교주의 무의식에 흩어져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것을 가져가거라.”
나는 사심마유가 건넨 마선장을 꽉 붙잡았다.
이것은 그와 연결되어 있으니 여차하면 동아줄이 되어줄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혈접에 내공을 한가득 불어넣었다.
파라락!
그 순간, 혈접이 날갯짓하며 날아올라 사부님의 머리맡을 맴돌았고.
번쩍!
눈앞에 시야가 점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