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Reincarnated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373)
환생마신전 374화(374/390)
환생마신전
보고 나서 결정하자
불과 사흘 전.
녹림투왕은 너무나 오랜만에, 천산을 나온 이후 거의 십여 년 만에 신탁을 받게 되었다.
―백발천마가 곧 너를 찾아갈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죽여야 한다.
자신이 대막종을 박차고 나온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전사면 전사답게 싸움에만 매진해도 모자란데 마신의 개입이 너무 심했으니까.
그래도 녹림투왕은 한때 주교까지 지냈을 정도로 신심이 깊었던 인물.
종파를 떠난 것과 별개로 대위덕에 대한 신앙은 여전히 신실했다.
그렇기에 그는 진심으로 대위덕을 설득하려 애썼다.
백발천마가 하려는 것은 어디까지나 분열한 신교의 재통합.
그가 그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마도란 곧 강자존의 세계이니, 그가 강하다면 마도를 통합할 것이되, 그렇지 못하다면 결국 신교는 분열된 채로 최후를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칠십이사사문 녹림연합의 총표파자로서 백발천마를 맞을 필요가 있었다.
대막종 주교의 신분이라면 대위덕의 명령을 먼저 따라야 할 것이나, 그보다는 총표파자의 신분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거부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신으로서 명을 내릴지니, 신도는 신의 명령을 따르라. 신도는 신도답게 교리의 의무를 지키라. 그러지 않는다면 화가 먼저 닿을 것인즉.
대위덕은 녹림투왕의 기도를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몇 번이고 다시 기도를 올려도 더 이상 답변도 돌아오지 않았다.
“어떡할 거요, 형님?”
“남들 있는 데서는 총표파자나 두령이라 부르래도.”
“그럼 어떡할 거요, 두령 형님?”
“…….”
“어쩌실 거냐니까?”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시부럴! 대막종을 박차고 나온 지가 언젠데 아직도 종 부리듯이 부리는 건지! 젠장!”
따악!
“아악!”
녹림투왕은 반발하던 의형제의 이마를 딱밤으로 때리면서 피식 웃었다.
“아무리 밉다고 해도 경망된 말은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말아라. 아무리 몸이 떠났어도 뿌리는 잊지 말아야지.”
“나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어서 그런 줄 아시오? 답답해서 그러지! 아오, 나 골 안 깨졌는지 모르겠네.”
“한 대 더 때려주랴?”
“미치셨소!? 나 그럼 진짜 죽소!”
녹림투왕은 가볍게 분위기를 풀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천당사적 사이에는 찝찝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때 둘째 과노백이 짧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가뜩이나 혈마교 놈들도 두령더러 직접 천산으로 와서 머리 처박으라 하지 않았습니까? 수로연맹 쪽은 아예 총채주가 갈 것 같고, 하오문도 받는 압박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던데.”
“…….”
“섬서에서 벌어지는 일이 끝나면 대막종주가 이쪽으로 직접 와서 왜 소집령을 거부하는지 이유를 묻겠다고도 했었고. 이대로 가만히 버티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옛 주군은 현재 장성을 들락날락하면서 화산파와 종남파를 못살게 굴고 있다던가.
그 때문에 섬서무림에 있는 여러 산채들에서 어쩌면 좋을지 몇 번이고 문의를 보내왔다.
그때마다 천당채에서는 ‘일단 대세가 기울 때까지 대기하고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대답이 얼마 가지 않으리라는 건 녹림투왕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차라리 이참에 확 재낍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무슨 말이긴! 그냥 우리도 독립하자 이 말이오!”
“우리가 아무리 천산을 나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신교의-”
“아, 답답하긴! 그 빌어먹을 신교가 이제는 옛날 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 않소!? 아닌 말로 우리가 이렇게 자리잡는 동안 그네들이 우리에게 지원해준 것도 없는데? 대막종주는 두 말 할 것도 없고!”
“…….”
“특히 지난 육 년, 아니, 칠 년 동안에는 오죽 우리를 괴롭혀댔소? 이만하면 우리는 우리대로 의리를 지킨 거요!”
다른 천당사적들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과노백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둘째 형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두령 형님.”
“그냥 일어나시지요! 사실 두령 형님의 실력이며 인망이면 신교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누가 말리겠습니까?”
“탈교(脫敎)를 하면 신통도 같이 끊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그만.”
하지만 녹림투왕은 동생들의 반발을 묵살했다.
“형님!”
“우리가 지닌 기반이 모두 대막종에서 비롯되었고, 또한 그 가르침이 신으로부터 내려온 것은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뿌리를 잊어버리면 우리도 그저 그런 왈패 같은 산적들과 다를 바가 없어지는 것이다.”
“…….”
“…….”
“…….”
“…하면 두령 형님은 어쩔 생각이십니까? 탈교하실 생각이 없다면 신탁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닙니까?”
천당사적은 답답했다.
녹림 수장으로서 정체성과 교인으로서의 정체성.
녹림투왕이 지금 보이는 자세는 너무 모순적으로만 보였으니까.
“신탁은 우선 미뤄둔다. 이를 이행할지 말지는 백발천마를 직접 보고 나서 결정하자.”
녹림투왕은 자신의 애병인 벽룡월(劈龍鉞)을 꽉 쥐면서 눈을 빛냈다.
“나는 대막종의 주교이기 전에 스스로 신교의 교도라 생각한다. 너희들은 신교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을지 모르나, 나는 달라. 우선 확인 뒤에 결정을 내리고 싶다.”
천당사적은 모두 입술을 꾹 다물고서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형이 한번 결심을 내리면 절대 부러지지 않는 대쪽 같은 심성을 지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가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면 신탁은 무른다. 하지만 아니다 싶으면…… 신탁이 발동되기도 전에 이 벽룡월로 머리통을 깨버릴 것이다.”
* * *
그리고…….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정신을 잃었었나?’
녹림투왕은 흐릿한 시야 속에서 정신을 겨우 깼다.
머리가 거세게 울리는 느낌.
다시 잠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지금 다시 잠에 들면 두 번 다시 깨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이상한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서 억지로 정신을 되찾았고.
‘가면…?’
자신이 하얀 가면을 쓴 마인과 겨루고 있단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백발천마! 그렇다면-’
『다시 잠들어라.』
‘신이시여…?’
『그것이 네가 이제 유일하게 나에 대한 신앙과 숭배를 입증할 방법이니.』
‘…어째서.’
『그러니 다시 잠에 들어라. 너의 신인 나를 위해 영혼을 바치는 것이다.』
쾅! 쾅쾅쾅쾅!!
‘자신’은 백발천마와 격전을 치르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자신이 아니기도 했다.
거칠게 휘두르는 도끼질에 땅거죽이 뒤집히고, 손도끼를 휘두르는 손속에 세상이 쪼개졌다.
녹림투왕은 전사와 투사들이 많기로 유명한 대막종에서도 종주를 제외하면 최고라 불릴 만큼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지만.
그리고 십 년 안에 성궤의 그림자를 밟을 자신이 누구보다 있었지만 결단코 아직까진 이만한 신위를 뽐낼 수는 없었다.
동작 하나하나, 경력 하나하나, 보법 하나하나에 막대한 크기의 묘리가 담겨 있었으니까.
이것이 정말 자신이 익힌 척룡벽월결(剔龍闢鉞訣)이 맞나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만약 이 무공이 완성형을 이루면, 아니, 그걸 넘어서서 대성을 이루어 새로운 경지로 넘어서면 이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말 그대로 신기(神奇)이자 신기(神技).
신의 재주였다.
하지만 그만큼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다가왔기에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녹림투왕은 육체를 통제해 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단단히 무언가에 묶인 것처럼.
실로 연결된 꼭두각시 인형이 된 것만 같았다.
파지지지지직!!
백발천마가 핏빛 뇌기를 화려하게 불태우고 있었다.
핏빛 뇌기는 자색전포와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려서 불길하면서도 가슴을 오싹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그런데 그 뇌기가 자신의 의식 근처에도 똑같이 맴돌면서 공명하는 중이었다.
녹림투왕은 저것의 충격으로 자신이 잠깐이나마 정신을 차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신이시여. 당신에게 신도란 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이까?’
자신의 몸을 지배 중인 대위덕의 의념은 온통 악의로 가득했다.
이 몸뚱이가 망가져도 전혀 신경 쓰지 않겠다는, 오로지 도구로 사용하여 백발천마를 죽이고 말겠다는 살의로 충만했다.
『어떤 의미냐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저희는-’
『신에게 신도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
‘…신이시여, 그 말씀은 도저히.’
『왜?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그… 렇나이다.’
『본분을 망각하지 말지어다, 어리석은 백성아.』
대위덕에게서 진노가 느껴졌다.
녹림투왕은 영혼이 압살될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너희 신도란 것들은 우리 신들을 기쁘게 하도록 만들어진 종에 불과할 뿐이다.』
‘!’
『쯧! 아무래도 내가 그동안 너희들을 너무 풀어주고 있었나 보군. 모두 내가 너무 마음이 모질지 못한 탓이로다. 어찌 종 따위가 주인에게 이리도 개갤 수 있단 말인가. 이번 일이 끝나면 버릇을 단단히 고쳐놔야겠군.』
‘…….’
『그러니 쓸데없는 말을 하려거든 닥치고, 너는 그냥 네 몸을 제물로 내게 바칠-』
“지랄하고 자빠졌네.”
대위덕은 녹림투왕을 압박하다 말고 백발천마가 차갑게 던진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네놈이!』
“이봐, 투왕. 저딴 멍청한 소리를 언제까지 듣고 있을 생각이지?”
녹림투왕의 시선이 백발천마에게 향했다.
백발천마의 두 눈은 자줏빛 귀화의 테두리를 따라 금색으로 반짝여 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내 생각이… 보이는 건가?’
“보이니까 이런 말을 하는 거지. 하여간 두 번 말 안 할 테니까 결정해. 날 받아들일 거냐, 말 거냐?”
녹림투왕은 잠에서 깨어날 무렵에 얼핏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나를 받아들여라, 투왕. 너를 해치기만 하는 잡신과 다르게 내가 널 바르게 인도해 주마.’
인도…….
자신이 무슨 신이라도 된단 말인가?
‘당신을 받아들이면 이 엿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나?’
『허튼소리 말아라! 인간 따위가 어떻게 신통(神通)을 함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단 말이냐?』
대위덕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가면 너머로 마주친 백발천마와 녹림투왕의 시선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녹림투왕은 백발천마의 두 눈이 호선을 그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난 당신을 모른다.’
“나도 널 모르지. 하지만 모든 인간관계가 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 아닌가?”
‘…인간관계.’
“어쩌면 잘 맞을지도 모르고. 안 맞으면 안 맞는 대로 헤어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퍼어어어어엉!!
백발천마는 대위덕이 내려찍던 벽룡월을 거칠게 튕겨 올렸다. 강기가 충돌한 자리로 불꽃의 기둥이 높게 치솟았다.
“나는 천마이다. 마도를 이끌 자격은 충분히 된다고 생각한다만.”
운휘는 이미 녹림투왕의 영혼을 깨우면서 그 안에 자리 잡은 심상을 대부분 읽은 상태였다.
녹림투왕이 대위덕의 신탁을 거부했던 것도. 신교에 대한 충성도. 백발천마의 그릇을 확인해보고 싶다는 진심도.
‘옆에 둔다면 두고두고 큰 벽이 되어줄 사람이다.’
운휘는 녹림투왕을 그렇게 판단했다.
그리고 욕심이 생겼다.
마군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강렬한 욕심이.
그리고…….
“의형제들, 수하들과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면서? 신교에 다시 충성을 바치고 싶다면서? 그러니 와라. 나에게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보여줄 테니.”
‘…큰소리와 다르게 당신의 그릇이 부족하다면 어쩌지?’
핏.
운휘는 별 걱정할 걸 다 한다는 투로 실웃음을 흘렸다.
“그땐 얼마든지 떠나보내주지.”
‘좋아….’
녹림투왕은 무겁게 마음을 먹었다.
‘일단 그대를 믿어보겠다. 이 엿 같은 족쇄만 우선 풀어줘.’
“그러지.”
『무슨 짓을 하려는-』
대위덕은 허튼짓하지 말라고 소리치려다 도중에 말을 끊고 말았다.
운휘의 자색 동공의 주변이 금색 테두리로 물들고 있었다.
『…네가 어떻게 화, 화안금정을!』
화안금정은 세계의 이면 속에 보이는 진실도 모두 읽어드리는 공법.
당연히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신통도 그 눈에는 훤히 드러났으니……!
대위덕은 황급히 물러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운휘가 혈앙검을 쥐고서 혈성강기를 날리고 있었다.
스걱!
순간 천계와 인세를 잇던 신통의 실이 너무나 허망하게 잘려 나가고 말았다.
『으, 으아아아악!! 이런 미친놈이!』
그리고 그것은 대위덕의 본체에도, 여기 있는 의식에도 막대한 타격을 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