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Reincarnated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6)
환생마신전-6화(6/390)
내기할래?
이튿날부터 남궁산영은 조금씩 마수를 뻗쳐 오기 시작했다.
“이걸 어머님이 보내셨다?”
“그, 그렇습니다.”
형삼은 차마 제대로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벌벌 떨면서 쟁반에 든 걸 내밀었다.
탕약이 담긴 그릇.
얼마나 새카만지 뚱한 표정의 내 얼굴이 다 비칠 정도였다.
「소교주!」
‘알아, 나도.’
나 참, 이것들은 뇌가 없나?
너무 이렇게 노골적으로 수상한 의도를 내비치면서 어떻게 맘 놓고 탕약을 마시라는 건지.
어떻게 맞장구를 쳐주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이 탕약은 십중팔구 광증을 일으키는 독약이었다.
가주 방문 행사 때 내가 거한 사고를 칠 수 있도록
「놈들을 당장 징벌해야 하오! 감히 소교주께 이딴 독약을 내밀다니! 명령만 내려주시구려! 이 아이들과 함께 똑같이 음식에다 태우고 오겠으니!」
얼씨구?
아주 충신 나셨구만?
내가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자, 대장거미도 켕겼던지 슬그머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만약 계속 뻔뻔하게 굴었다면 바로 망령환으로 만들어버릴 생각이었는데.
한 번 뒈져서 그런가 눈치 하나만큼은 아주 기가 막혔다.
그나저나 저 장로의 이름이 뭐였더라?
요 몇 달 동안 거미, 거미, 하고만 불러댔더니 정체가 뭐였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뭐, 상관없겠지. 앞으로도 ‘장로였던 것’, 혹은 ‘망령 일(一)’로만 부를 테니.
답답하면 지가 이름 말할 거고. 그래도 기억해줄 생각은 없지만. 낄낄낄.
“대, 대부인께서는 이만하면 이공자도 충분히 죄를 뉘우쳤을 테니 원기를 보강하라며 이 탕약을 보내셨습니다. 암존께서 방문하실 때까지 몸을 돌보는 데 집중하라고…….”
한 마디로 골골대다가 암존의 점수를 깎을 생각 따윈 하지 말라는 의미.
“그리고 앞으로 매 끼니마다 특별히 고안한 영양식을 보낼 테니 이 또한 거르지 말라 신신당부하셨습니다.”
거기다 하루 삼시세끼 꼬박꼬박 독약을 먹여주겠다고 친절하게 설명하신다.
나도 모르게 비웃음이 삐져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좋아. 이만 가봐.”
“저, 그것이-”
“왜? 아직 할 말이 남았어?”
“반드시 꼭 다 드시는 걸 확인하고 오라고-”
애쓴다, 정말.
나는 스스럼없이 그릇을 붙잡아 탕약을 전부 들이켰다.
웩. 맛없어.
“됐지?”
“예? 예! 그렇습니다. 그, 그럼 소인은 물러나겠습니다.”
형삼이 떠나고 난 뒤에야 나는 겨우 웃음을 터뜨릴 수 있었다.
아직도 탕약의 쓴맛이 입가에 맴돌았다.
어디 보자. 재료는 백산초에 혼화정을 배합하고, 광기독을 조금 첨가했나. 얼씨구? 오정환까지 넣었네? 그 귀한 걸?
마약(痲藥)을 넘어 이 정도 수준이면 마약(魔藥)이었다.
그냥 한두 잔을 마셨을 때는 겉보기엔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영약에 가깝다. 원기를 회복할 뿐만 아니라, 단전의 내공까지 부풀린다.
내가 요즘 암존 방문에 앞서 무공 수련에 충실하다는 말을 들었을 테니 꼭 돕는 척하고 싶은 거겠지.
암존 앞에서 그럴싸한 무공도 시연해야 할 테고.
하지만 이 약은 꾸준히 복용하고 나면 독성이 켜켜이 쌓여 뇌문을 다치게 만든다.
그리고.
“이거 세뇌 작용까지 있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
“주사독(朱沙毒)이 있다고.”
「헉! 주사독이라면!」
“감히 나한테 주술을 걸고 있다는 거지. 푸핫!”
주사는 흔히 술사들이 부적을 쓸 때 사용하는 재료이다.
술력을 불어넣기 가장 편한 매개체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적당히 손질을 해두면 특정 법술을 걸기도 편하다.
아마 독성 때문에 광기에 휩싸인 나를 꼭두각시처럼 부려 먹으려고 수작을 부린 것 같은데.
문제는 그게 하필 대상이 ‘나’라는 거지?
으흐흐. 감히 내게 사술(邪術)로 싸움을 걸다니. 아주 우습… 아니, 재미있을 것 같아 흥미진진했다.
“남궁산영 쪽에 붙은 술사가 있는 것 같은데 한번 찾아봐.”
「그동안 감시했을 때는 그런 걸 낌새를 전혀 알 수 없었는데… 구룡분가에도 숨기고 비밀리에 접선하는 방법이 있다는 뜻이겠구려. 알겠소. 이 환 모에게 맡겨만 주시오!」
대장거미는 앞발로 자신의 가슴을 쿵쿵 두들기더니 새끼 거미들과 함께 우르르 벽을 타고 사라졌다.
나는 가부좌를 틀고 다시 독룡심결을 운용했다.
남궁산영이 미처 모르는 점이 있다면, 주사독도 주사독이지만 아무리 독한 독을 준다고 한들 내게는 당장 간에 기별도 안 간다는 점이었다.
그게 무엇이든 망령독에 미칠 바는 아닐 것이므로.
끼아아아아!
어느새 내공에 완전히 융화된 귀기(鬼氣)가 일으키는 귀곡성을 자장가 삼으면서 탕약의 독을 녹여나가기 시작했다.
휘휘휘……!
* * *
남궁산영의 두 번째 마수도 곧 찾아왔다.
“무사부?”
“그렇습니다. 앞으로 나흘간 짧게나마 제가 이공자의 무공 지도를 맡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한다는 말과 다르게 얼굴에는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고 가야지’하는 따분함이 가득해 별 의욕이 없어 보였다.
뭐, 그런 시선이야 익숙했으니 별반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요즘 정풍각 일이 많이 바쁘지 않아? 이런 델 와도 되는 거야?”
무사부라고 온 이 사람의 정체가 조금 뜻밖이었다.
맹풍기사(猛風奇士) 당곤.
과거 당호산이 이끌던 광풍대의 핵심 대원 중 한 명으로, 지금은 구룡분가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뛰어난 고수였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남궁산영의 파벌이 아니라는 것.
애당초 이 사람은 후계 다툼에 별 관심이 없었다.
아니, 그냥 세상사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언제나 늘어져 있는 걸 좋아하고, 틈만 나면 땡땡이를 쳐서 정풍각주가 노발대발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젊은 시절에 당호산의 목숨을 구해준 은혜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분가에서 쫓겨났을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돌 정도였으니.
그러니 이렇게 남궁산영의 명령을 받고 날 ‘감시’하러 왔다는 게 이상하-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당연히 바쁘니까 이리로 왔죠.”
엥?
“지금부터 딱 한 번! 딱 한 번만 동작을 보여드릴 것입니다. 수련은 알아서 하십시오.”
뻔뻔하기 짝이 없는 태도.
나는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제야 남궁산영의 노림수가 읽혔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게 당곤을 붙이는 것으로 크게 세 가지 이득을 노릴 수 있었다.
첫째는 내 무공 수준이나 혹시 있을지 모를 배후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는 것.
둘째는 날 감시하면서 암존 방문 때 돌발 행동을 펼치는 것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셋째였다.
자신의 파벌이 아닌 ‘진짜’ 고수를 내게 붙여준 것으로 내 무공 수련을 도왔다는 정당성을 얻게 되었다는 것.
그 전에 원기를 보강하라며 영약까지 공급하지 않았나?
차후에 계획이 꼬여 의심을 받게 되어도, 용의 선상에서 빠져나갈 구석을 만든 것이다.
그냥 대놓고 탕약을 마시라고 줄 때는 이런 멍청한 머리로 어떻게 안주인 자리를 차지했나 싶었었는데.
그래도 제법 용의주도한 구석이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문제는 그런 의도가 전부 내게 읽혔다는 거지만.
흠, 장난 좀 쳐볼까?
잘하면 장원 밖으로 나갈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부터 제가 보여드릴 무공은 암영보(暗影步)라고 합니다. 이공자께서도 한 번쯤 들어보신 적이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만.”
얼씨구?
“분명히 당유창의 절기가-”
“예. 암영기였지요. 암영보와 호환되는 기공으로, 은밀하면서도 빠른 내력 수발이 가능하여 암기술이나 하독술에 아주 용이합니다. 암영보 역시 마찬가지구요. 대부인께서 꼭 이걸 가르쳐야 한다고 하셨으니… 뭐, 제겐 결정권이 없었습니다.”
암존 앞에서 자신의 아들과 비교하게 하여 망신살을 주시겠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팟, 파파파팟-
당곤은 뒷짐을 쥐면서 천천히 발을 옮겼다.
느긋한 걸음. 하지만 움직임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백색전의 작지 않은 마당을 따라 당곤의 신형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저렇게 빠르게 움직이면 무슨 바람이라도 불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마치 어두운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처럼 아주 은밀했다.
그동안 제대로 배운 무공이라곤 당문체기공이 전부인 ‘당운휘’라면 절대 따라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절기.
“여기까집니다.”
당곤은 수십 개의 잔영을 마당에 넓게 퍼뜨렸다가 조용히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여전히 산보라도 나온 것처럼 느긋한 걸음이었다.
“바닥에다 발자국도 찍어놨으니 그대로 수련만 하시면 될 겁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제가 아니라 정풍각주께 가셔서 여-”
“다 익혔어.”
“-쭈시면 될… 예?”
내 뻔뻔한 대답에 당곤의 나른한 얼굴에 조금 금이 갔다.
“다 익혔다고.”
“…암영보를 다 익히셨단 말씀이십니까?”
“어.”
“단순히 보기만 하셨는데?”
“어. 별거 없던데.”
“…….”
당곤의 얼굴이 이제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화를 조금 참는 모습이었다.
“……암영보는 소싯적에 천재라 불리던 저 역시 형(形)을 익히는데 족히 닷새는 걸렸던 것입니다. 광풍대의 다른 대원들도 족히 열흘은 걸렸었지요. 초식의 뜻을 탐하는 데는 평균적으로 석 달을 필요로 했구요.”
자기 스스로 천재라고 부르다니. 이놈도 어지간히 낯짝이 참 두껍네.
“그런데 그딴 말씀을 하시면-”
“내기할래?”
“…내기라면?”
“내가 암영보를 제대로 익혔으면 은전 서른 냥.”
“…….”
“정풍각의 월봉이 열 냥 정도 된다며? 석 달치 월봉은 되어야 내기할 맛이 나지. 안 그래?”
당곤은 이제 별 미친놈을 다 보겠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러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흠흠! 무공은 아주 신성한 것입니다. 당가의 혼이 담긴 암영보의 가치는 더 뛰어난 것이구요. 그런 노름 따위에 얽혀서야-”
“쫄?”
“…….”
“쫄았네. 쫄았어.”
“…….”
“천하의 정풍각 각원이, 청성혈사의 주역이었던 광풍대원이 쫄았어. 맹풍기사니 뭐니 해도 별 것 없구만. 됐다. 됐어. 나 혼자 수련하지 뭐.”
빠직! 빠지직!
내가 속을 박박 긁어댈 때마다 당곤의 나른했던 얼굴 위로 혈관이 잔뜩 떠올랐다.
내가 돌아서서 나서려는데 막강한 기세가 휘몰아쳤다.
고오오!
“지금… 그 말씀, 제대로 이행하셔야 할 겁니다.”
걸렸다!
나는 도박판에서 떡밥을 덥석 문 호구를 충동질할 때 짓던 야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돈이나 가져와.”
“……후우! 말씀하시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람을 열 받게 하는 게, 아주 능통하시군요. 그럼 어서 시작하시-”
당곤이 무슨 말을 꺼내려던 그때였다.
팟!
내 신형이 움푹 꺼졌다.
당곤이 눈을 크게 뜨는데, 순간 은밀한 바람이 당곤의 허리춤을 스치고 지나갔다.
당곤이 화들짝 놀라 뒤로 돌아봤다.
손이 허리춤을 뒤졌다.
분명히 그가 정풍각을 나올 때 챙겼던 전낭이 없었다.
“이거 찾아?”
전낭은 내 손에 있었다.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전낭을 위로 던졌다 놨다 할 때마다 당곤의 두 동공이 미친 듯이 떨렸다.
환생마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