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Reincarnated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71)
환생마신전-71화(71/390)
나란 남자, 죄 많은 남자
“아.”
나는 검지로 볼을 긁적였다.
확실히 아미파와 청화산장의 후계자들이라면 이렇게 의전을 갖출 만하지.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나로서는 조금 계면쩍은 만남이 될 것 같았다.
당시에 반쯤 이성을 잃고 난리를 쳤던 것이기에 나로서는 흑역사라면 흑역사라 할 수 있었으니.
“마침 오시는군요.”
저 멀리서 두 여인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화려한 듯 화려하지 않게 가볍게 치장한 두 여인은 누가 보더라도 눈이 저절로 돌아갈 만큼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했다.
유수민이 밝고 화사하다면, 사마선의는 목란이라는 별호처럼 고고하면서도 차가운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우리 구룡분가의 남정네들이 곳곳에서 바짝 긴장하며 마른침을 삼키는 게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다.
“민 매! 선 매!”
당규진이 가장 먼저 앞으로 달려가 두 여인을 맞았다.
촉산교연이라는 모임에서 만나 서로 친해졌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었다.
“언니,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럼! 민 매도 잘 지냈지? 어쩜 이렇게 더 고와졌을까?”
“호호호. 언니도 참. 언니야말로 예뻐지셔도 너무 예뻐지셨는데요. 혹시 요즘 좋은 거라도 드세요? 피부가 너무 맑아서 제 얼굴이라도 보이겠어요!”
“실은 요새 송풍산에서 백은목초라는 걸 뒤로 받아서 먹고 있거든. 그런데 정말 효과가 좋은 것 같아. 피로 회복에도 좋은 것 같구. 민 매도 정보 알려줄까?”
“정말요? 저도 알려주세요!”
“송풍산 아래 저잣거리에 있는 은목약방이라는 곳에 가서 내 이름을 말하면 싸게 줄 거야. 내가 미리 말해둘게.”
“우와!”
“그런데 정말 내가 써서 그런 게 아니라, 그거 꾸준히 먹고 바르고 나니까 피부가 보들보들해지는 게 세수할 때도 잘 느껴져서-”
저게 그 말로만 듣던 ‘여자들의 우정 시간’인지 뭔지 하는 그거지? 칭찬으로 마구 도배된다는?
주로 사교성이 좋아보이는 당규진과 유수민이 대화를 나누고, 사마선의는 옆에서 쭈뼛대면서 조금씩 대화에 섞이는 식이었다.
다들 눈이 아주 반짝반짝하는 게 무슨 중요한 대화를 그렇게 나누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세 사람의 대화는 한참 동안 그렇게 이어진 후에야 끝났다.
“어후! 이야기 나누다 보니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자세한 이야기는 안에 들어가서 마저 나누자.”
그렇게 수다 떨고도 아직 본론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역시나 여자들의 세계는 아주 미묘하고도 무서운 것이었다.
당곤도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 있는데, 당규진이 유수민과 사마선의를 데리고 이쪽으로 왔다.
“며칠 만에 뵙습니다, 유 소저. 사마 소저.”
“이곳에서 다시 뵙게 되니 새롭게 보이시네요. 그러고 보니 이번에 소분가주가 되셨다면서요?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유수민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옆에서 사마선의의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시선이었다.
* * *
천하십대고수 검존 청천검제의 대리 자격으로 온 사마선의는 유수민과 함께 빈객청으로 안내되었다.
헤어지기 마지막 전까지 내게서 시선이 떼어지지 않았었는데… 이것 참.
“표정이 좀 재수 없어 보이십니다만?”
앞머리를 가볍게 넘기고 있는데, 당곤이 동태 눈깔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참 죄가 많은 남자야, 그렇지?”
“…또 무슨 헛소리를 하시려는 겁니까?”
“아니, 그렇잖아. 거울 봐봐. 내 이름으로 말하기가 좀 그렇긴 하지만, 내가 사실 한 인물 하잖아? 이러니 중원의 수많은 소저가 내 얼굴만 보면 심란해지는 마음에 도저히 주체를 못 하고-”
“헛소리 맞으시군요. 그만 듣겠습니다.”
“크! 인물 좋아, 머리 좋아, 재능 뛰어나, 신분도 좋아, 인품도 고고해, 뭐 하나 빠지는 게 없구만. 나란 남자, 죄 많은 남자.”
“…….”
당곤은 이제 귓등으로도 듣는 척하지 않았다.
「소교주의 인물이 빼어나긴 빼어나시지. 전생도 그렇거니와 현생도 그러하시고-」
「‘운휘’라는 이름에 무슨 마술 같은 게 걸려 있나? 나도 다음 생에 태어나면 꼭 저런 이름을 가져야겠어-」
「그런데 소교주께서 말씀하신 내용 중에 하나는 조금…」
‘조금?’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뛰어나시다는 거였습니다! 인품! 소교주의 인품이야말로 세계제이이이일!」
그 뒤로도 손님 응대는 저녁까지 이어졌다.
암존이 이제 방문하기로 한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손님의 수도 계속 늘어나는 건 알겠는데, 이걸 혼자서 도맡아 처리하려니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다.
혹시 당호산이나 귀제갈이 내게 소분가주 자리를 쥐여준 게 이걸 대신 짬처리 시키려고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음모론까지 생각날 정도였으니까.
…응?
아니겠지? 에이, 설마.
나는 방명록에 적힌 명단을 쭉 살펴봤다.
―아미(峨嵋).
―청화(淸花).
아직 먹도 다 마르지 않은 것 같은 유수민과 사마선의가 남긴 글자에 이어서.
―천룡(天龍).
―점창(點蒼).
―오독(五毒).
―기련(祁連).
―공동(??).
―뇌음(雷音).
―형산(衡山).
.
.
운남 무림을 대표한다는 천룡사와 점창파, 그리고 오독문은 물론, 사천과 맞닿아 있는 감숙성의 기련산문와 공동파까지.
심지어 새외의 뇌음사나 중원의 중부 지방으로 분류되는 호남성의 형산파까지 직접 사람을 보냈을 정도였으니.
이 방명록만 봐도 암존이 중원 무림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누구나 다 알 만한 문파들만 거론해서 그렇지, 그보다 작은 중소 방파들까지 합치면 이미 방명록은 몇 권으로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아마 이들의 속내는 각자가 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혹시 암존의 눈에 띌 수 있을까 싶어 잔뜩 기대하고 있을 테고, 또 누군가는 암존의 정확한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바짝 긴장해 있을 테지.
그들 면면이 전부 각자가 소속된 문파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대표들이기에 뛰어난 고수이기도 하다.
즉, 현재 구룡분가는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용담호굴(龍潭虎窟)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으니.
배교자 놈들은 바로 그런 구룡분가에서 무려 암존을 암살하려는 획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암존이 그걸 알고도 아무렇지 않게 승부를 받아준다는 점이었고.
아니, 그런 정도를 넘어서서 아예 이번 기회에 서부 무림을 통째로 날름 삼키려 하고 있었다.
저 많은 빈객이 알게 되면 소스라치게 기겁할 무시무시한 배포가 아닐 수 없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간에 미친놈투성이로네, 정말.’
아무리 약한 자는 살아남지 못하는 세계가 강호라지만, 이건 참 난도가 빡세도 너무 빡센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래도 어쩌겠나. 나 역시 그런 미친놈들뿐인 다툼에 직접 뛰어든 것을.
그리고 거기서 반드시 나는 승리를 거둬야만 했다.
“이제 오늘은 더 손님이 오시지 않을 것 같으니 이만 들어가도록 하시죠.”
해가 거의 다 졌을 때쯤, 당곤은 더 이상 별다른 기별도 없자 의전을 정리하고자 했다.
「으음?」
「뭔가가 오는 것 같사옵니다!」
그때 망령들의 목소리에 내 시선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당곤도 무의식중에 나를 따라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원으로 다가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무, 무슨-”
짐을 한가득 실은 마차와 수레가 끝도 없이 줄지어 다가왔다.
그동안 수많은 빈객을 응접했지만, 분가의 가솔들도 모두 놀랄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
이건 아예 사절단이라고 하는 게 옳을 것 같았다.
사절단은 분가 앞에서 멈췄다.
대표가 앞으로 나서서 방명록에다 두 글자를 남겼다.
―금검(金劍).
“문주님과 주모님을 대신하여 인사드리겠습니다. 금검문의 총관, 나진배라고 합니다.”
“당문 구룡분가의 작은 주인, 당운휘입니다. 먼 길을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금검문이라면 도성현에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던 혁우기인지 뭔지 하는 놈이 있는 문파가 아니었나?
옆 동네에 살면서 무슨 짐을 이리 바리바리 싸 들고 왔어?
“구룡분가의 당곤이라 하오. 대체 이 많은 짐은 다 무엇이랍니까?”
나진배가 푸근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지난날에 소분가주께서 도성현에 방문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미처 알아내지 못하고 그냥 떠나보낸 것에 저희 문주께서 많이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소분가주와 본 문 간에 아무런 인연이 없다면 모를까, 후계자들 간에 좋은 어린 시절의 인연이 있는데도 말이지요. 이에 저희 문주께서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사죄의 의미로 암존과 귀 분가에 도움이 될 만한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우정을 돈으로 살 테니까 예전에 섭섭한 게 있었으면 전부 잊어달라는 거잖아?
「헉! 소교주시여! 이 마차에 실린 것들, 전부 금괴이옵니다!」
「최소 수십 관은 되어 보이거늘, 허-」
「험험! 원래대로라면 소교주께 시건방진 모습을 보인 이것들에 치도곤을 내어도 부족할 것이나, 이만하면 성의를 봐주셔도 될 듯하옵나이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옵니다!」
당곤은 이를 어떡하면 좋을지 헛웃음을 흘리며 나를 쳐다봤다.
그냥 일반적인 돈이었다면 그냥 내쫓았을 텐데, 이렇게 많은 수레를 가져오니 그냥 거부해서 돌려보내기에도 난감했던 것이다.
나는 슬쩍 사절단 쪽을 봤다.
아니나 다를까.
그 속에는 혁우기도 섞여 있었다.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움찔 몸을 떨었지만, 곧 총관 나진배의 눈총을 받게 되자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지난번에는 제가 몹시 큰 결례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어린 시절의 인연이 있었다고 하나, 소분가주께서 구룡분가를 대표하는 후계자라는 신분임을 망각하고 저지른 제 실수였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소분가주!”
혓바닥이 길어지는 걸 보니 아무래도 오는 내내 자기네 총관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린 모양이었다.
“다시 사죄드리겠습니다.”
“사죄드리겠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소분가주!”
“용서해주십시오, 소분가주!”
나진배와 금검문의 문도들이 모두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무림이라지만, 이 정도로 굴욕적인 자세를 보이기란 쉽지 않았다.
더구나 분가에는 현재 보는 눈들이 많았다.
금검문이 이렇게까지 고개를 숙였는데도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구룡분가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꼴이었다.
사실 나도 혁우기란 놈이 있었단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거든?
그러니 이걸 받고 적당히 골려 먹다가 싹 잊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소교주시여!」
‘어. 나도 느꼈어.’
아주 잠깐 마주쳤던 혁우기의 동공에 맺힌 탁기(濁氣)가 내 눈에 밟혔다.
아주 미약하지만, 그건 분명히 마기였다.
정확하게는 도마북해종의 빙백마기(氷魄魔氣).
북해종의 끄나풀이 바로 이 사절단에 숨은 것이다!
‘드디어 나타났나 본데.’
녀석들이 빈객들의 틈바구니에 섞일 것쯤이야 이미 풍화정의 눈으로 확인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사천 무림의 오랜 터줏대감 중 하나인 금검문까지 여기에 이용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무사부, 이놈들 사 번 빈객청으로 안내해줘.』
『…설마? 예. 알겠습니다.』
사번의 ‘사’는 여기서 숫자 사(四)가 아닌 죽을 사(死)를 의미했다.
이미 신교의 간자들로 분류하거나, 의심된 자들을 따로 모아둔 곳.
감시망도 이곳을 중심으로 편제가 짜여 있었다.
물론 너무 노골적으로 한데 모아두면 의심을 살 수 있으니, 적절한 분산배치와 함께 중간중간마다 신분을 숨긴 아군을 같이 배치해둔 상태였다.
“사해가 동도라는데, 사천의 친구 사이라면 그런 장난이야 얼마든지 웃으면서 칠 수 있지요. 너무 괘념치 않으셨으면 합니다. 무사부, 부탁드릴게.”
“절 따라오십시오.”
당곤은 금검문도들을 데리고 분가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는 멀거니 서서 자색요안을 활짝 열어젖히며 그들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어찌나 잘 갈무리했는지 좀처럼 쉽게 마기를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중단전의 흑룡기까지 개방한 순간, ‘귀’가 조금씩 트이면서 원래대로라면 읽을 수 없을 사람들의 여러 사념을 조금씩이나마 읽을 수 있었다.
천이통의 이능을 아주 잠깐 섞은 것이다.
덕분에 한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봇짐을 짊어진 어느 금검문도.
얼굴도 기파도 너무 평범해서 스치듯이 보게 된다면 그냥 지나칠 것 같은 사람이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수상쩍은 사람이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녀석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구민채. 너구나.’
바로 그때, 녀석이 걷다 말고 아주 잠깐 뒤를 돌아봤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환생마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