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Reincarnated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80)
환생마신전-80화(80/390)
의기투합하지 못하도록
“…그러니까 이게 전부 다 어르신께서 제작한 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란 말씀이지 않습니까?”
당호산은 반쯤 폐허가 된 백색전의 연무장을 보면서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검지로 꾹꾹 눌렀다.
갑자기 들린 엄청난 폭발 소리에 설마 북해종이 벌써 쳐들어온 건가 싶어 허겁지겁 달려왔더니 당축융이 친 사고란다.
그걸 듣고 얼마나 뒷골이 땡기던지.
구경 나왔던 빈객들을 아무것도 아니라며 모두 숙소로 돌려보내는 것도 일이었고, 폐허가 된 백색전의 잔해를 수습하는 것도 일이었다.
‘배고프다고 찡얼대던 도왕을 미리 식당으로 안내하지 않았었으면 자신을 암살하려 했다며 더 길길이 날뛰었겠지.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군.’
어쩌면 북해종주를 분가 깊숙한 곳까지 끌어들이려던 기존의 계획을 폐기해야 했을지도 몰랐다.
문제는 그런 커다란 사고를 치고도 당축융은 뭐가 그리 재미난 지 싱글벙글 웃고 있단 점이었으니.
‘거기다 이곳에 남은 흔적들은 도무지-’
당호산의 두 눈이 아주 예리하게 연무장을 훑었다.
폭약과 암기의 흔적 위로 짙게 남은 검풍의 흔적들.
그것은 마치 광풍처럼 이곳저곳을 마구잡이로 휩쓸고 다니는 듯하였으나, 잘 벼린 칼날처럼 아주 예리한 절삭력을 지니고 있었다.
단순히 암기만 폭발한 게 아니란 증거였다.
‘휘아가 남긴 흔적이랬지? 그 아이의 광풍이 또 한 단계 상승했군.’
손에 맞는 무기를 쥐어서 강해진 걸까, 아니면 그냥 깨달음의 발로인 걸까?
이유가 뭔지 몰라도 운휘의 성장은 정말이지 눈이 부실 정도였다.
풍화정에서 나눴던 손속보다 또 발전해 있었다.
이 정도라면 이제 그도 가볍게 여길 수 없을 것 같았다.
‘특히 이 폭발적으로 퍼지는 광풍의 성질은 폭급하다기보다 악랄하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정도야.’
만약 이 광풍에 노출된 대상이 있다면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검풍에 한없이 유린당하다가 쓰러지지 않을까?
어째서 이걸 두고 당축융이 겁풍을 운운했는지 알 것 같았다.
‘휘아와 어르신… 서로 의기투합하지 못하도록 막아야겠어.’
구룡분가 최고의 사고뭉치 두 사람이 손을 잡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당호산은 그런 교훈 아닌 교훈을 깨닫고 있었다.
“뭐, 그런 셈이지. 후후후! 어떤가? 오랜만에 힘 좀 써봤는데. 역시 이 늙은이의 솜씨가 어디 가진 않지?”
“어르신의 솜씨를 대체 누가 의심하겠습니까?”
그랬다간 머리통이 화포에 처맞고 터져 나갈 텐데요.
당호산은 목 언저리까지 올라온 그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억지로 삭여야만 했다.
“그렇지? 후후후! 그러면 나는 볼일도 끝났으니 다시 야방으로 가보겠네. 에잉. 할 일도 많은데 이리저리 왔다 갔다가 하려니 귀찮아 죽겠어.”
귀찮다는 투와 다르게 얼굴엔 기대가 가득했다.
당호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전에 귀제갈이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이다.
“가주께서 예정하셨던 시일보다 일찍 도착하셔서 노반야방에 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혹 지금도 계십니까?”
“몰라. 원아가 슬슬 찾아올 때가 되었다고 하는 걸 봐서는 떠났을지도 모르지.”
“…설마 이번에도 녹존대에 아무 말도 하시지 않고 가출하신 겁니까?”
“그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아마 눈에 단단히 불을 켜고 달려들겠지?”
“…….”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다르게 암존이 얼마나 철없는지를 잘 아는 당호산은 대충 상황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으레 있는 일이었다.
암존이 장난을 치고, 손녀 당예원은 늘 뿔이 나 있고.
‘…나중에 원아를 만나면 뭐라도 따로 챙겨줘야겠군.’
개인적으로 친부처럼 존경하는 암존이긴 했지만, 그 옆을 호종하는 건 사람의 인내심을 참 많이 요구하는 행위이긴 했다.
“그러니 나는 이만 가보겠네. 잘 부탁함세. 으흐흐흐!”
당축융이 가벼운 인사와 함께 자리를 떴다.
‘이걸 대체 언제 다 끝내지?’
할 일도 산더미처럼 쌓여 죽을 것 같건만.
당호산은 땅이 꺼지라고 짙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에이, 제기랄! 갑자기 왜 소나기가 이렇게 내려?”
툴툴거리면서 손님으로 북적대는 청풍객잔에 발길을 들이는 이가 있었다.
남들보다 한 치는 더 작은 키.
당축융이었다.
“실례합니다, 손님. 먼 길을 들르시느라 고생하셨을 것이나, 보시다시피 자리가 현재 모두 만석이라 주문받기가 힘든 상태입니다. 죄송합니다.”
당축융은 옷깃에 묻은 빗물을 털어내다 말고 조심스럽게 허리 숙여 사과하는 점소이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손님이 이리 많아 고생이 많으시구만. 그리고 이미 나는 일행이 있어서 말이야.”
“아, 그러십니까? 혹 예약자 성함을 여쭤봐도-”
“노반이라는 이름으로 예약해뒀다네.”
“아, 별실을 예약하신 분이시군요. 이미 선객이 와 계십니다. 이리 오시지요!”
“고맙네.”
점소이는 건물 뒤쪽에 있는 별실로 당축융을 안내했다.
당축융은 객잔 내부를 훑어보면서 가볍게 혀를 찼다.
사람이 많아도 참 너무 많다 싶었던 것이다.
‘이들이 전부 우리 못난 형님을 멀리서나마 구경하려고 온 양반들이란 게지?’
세상 사람들은 말한다.
암존이야말로 중원을 새외의 야욕으로부터 지켜주는 거인(巨人)이라고.
하지만 당축융은 그런 표현들이 아직 너무 낯간지러웠다.
어렸을 때부터 매번 서로 멱살 잡고 티격태격하던 친형이라 그런지 그런 평가를 듣고 나면 ‘왜?’라는 의문이 가장 먼저 들었으니까.
귀여운 손녀를 괴롭히기 위해서 매번 사고를 치고 다니기 일쑤인 말썽꾸러기.
아직 철이 들려면 반백 년을 더 살아야 할 것 같은 철없는 노인네.
뭐 이런 평가라면 고개라도 끄덕일 텐데.
‘언젠가 저 민낯을 확 한번 벗겨봐야 하는데 말이야.’
지금도 봐라.
눈에 불을 켜고 한창 자신을 찾아 헤매고 있을 손녀딸에게서 도망쳐야 한다면서 접선(?) 장소도 이런 희한한 곳으로 하지 않았냔 말이다.
당축융이 툴툴대는 동안 별실의 문이 활짝 열렸다.
암존은 문을 등진 채 바깥 풍경을 가만히 구경 중이었다.
“왔나?”
“아니, 사람이 왔으면 손 들고 인사라도 해주던가, 최소한 눈이라도 마주쳐야 할 것 아니오?”
“네놈이 너무 작아서 눈 마주치기가 어려운 걸 왜 나한테 따지는 게야?”
“허! 말하는 본새 하고는.”
당축융 앞에서 절대 꺼내서 안 되는 금기어가 딱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장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신장이었다.
특히 신장 부분은 잘못 건드렸다간 당축융 특제 화포의 매운맛을 한 사발 들이켜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폭발 사고로 잃어버린 팔다리야 이제 의수와 의족으로 대체할 수 있었지만, 신장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친형이라는 작자가 그걸 아무렇지 않게 건드리고 말았으니.
당축융은 아주 잠깐 고민했다.
‘그냥 눈 한 번 딱 감고 터뜨려봐?’
때마침 그의 품속에는 비상시를 대비한 특제 소형 환살노(渙殺弩)가 들어 있었다.
옛 광풍대가 주로 쓰던 석궁.
당축융이 갖고 있는 것은 크기는 작아도 일회용으로 만든 까닭에 화력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제아무리 초절정고수라도 한 방에 보낼 위력은 된다고 자부하기에 저 뻔뻔한 낯짝에다 터뜨려주면 아주 볼만해질 것 같은데…….
“쓸데없는 짓일랑 하지 말고 여기 와서 앉아.”
쳇! 하여간 눈치 빠른 영감 같으니라고.
“집으로 잘 가던 사람을 갑자기 붙잡고 왜 부른 거요? 가뜩이나 바빠 죽겠구만.”
당축융은 암존의 맞은편에 앉아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때마침 점소이들이 미리 주문했던 음식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술도 있었다.
“한 잔 들 테냐?”
“일 없소. 말하지 않았소? 나 할 일이 산더미라니까? 할 말 있거든 빨리하기나 하시오.”
“하여간 지랄 같은 성격하고는. 뭐, 항주 안찰사도 제깟 놈이 싫으면 안 하는 게지.”
암존은 끌끌 웃으면서 호리병의 뚜껑을 열었다.
뽕!
바람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그윽한 향이 퍼졌다.
당축융은 암존의 잔에 채워지는 술을 보고 있노라니 입에 저절로 군침이 도는 것 같았다.
“으험험! 그런데 무슨 술을 시킨 거요?”
“고정공주.”
“으잉? 그거 황실에나 납품하는 거 아니오?”
“이 몸이 바로 사천의 황제나 마찬가지일진대 마시지 못할 리가 있나?”
오만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었다.
만약 금의위나 동창의 위사들이 들었다간 당장 역모죄로 체포해도 할 말이 없는 광경이었지만, 암존은 오히려 그럴 테면 그렇게 해보라는 식이었다.
그만큼 제아무리 황실이라 하여도 이 사천의 땅에서는 자신을 함부로 할 수 없을 거라는 자신감에서 발로한 자부심이었다.
실제로 그에게서는 제왕에게서나 느껴질 법한 기품과 권위가 풍기고 있었으니.
이때만큼은 당축융도 친형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언제부턴가 친형은 이따금 자신이 모르는 모습을 보여줄 때가 종종 있었다.
“마시고 싶으면 빨리 말해. 한 통 비우고 나서 또 뒤로 구시렁댈 생각하지 말고.”
“젠장! 거 사람이 한번 발을 빼더라도 두 번 정도는 권할 수 있는 거 아니오? 이리 인심이 야박해서야 어찌 사천의 황제를 운운하는 건지.”
“원래 군주는 무치(無恥)인 법이지. 끌끌끌.”
“그런 말을 자기 입으로 하면 부끄럽지는 않소?”
“말했잖나. 무치라고. 하여간 말 질질 끌지 말고 선택해. 마실 거야, 말 거야?”
“주시오!”
“오늘 일 많다며?”
“일이야 아랫놈들이 하지, 어디 내가 하나?”
“하하하하! 그래. 아주 좋은 자세야! 자고로 짬이란 아랫사람들에게 때려야 제맛이지.”
당예원과 녹존대가 들었다면 당장 반란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을 대화를 아무렇게나 나누면서 두 개의 잔이 꽉 찼다.
“으으음?”
“맛이 좀 독특하지?”
“맛있긴 한데, 그 뭐라고 해야 하나-”
“맛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게 신기한 게 바로, 이 고정공주의 특징이지.”
“안휘의 땅에서 길러 올린 샘물로 만들어서 그런가?”
여러 의미가 담긴 대화였다.
안휘는 바로 동제남궁이 수백 년간 터를 잡은 영지였으므로.
“에잇, 안 되겠구만. 이깟 술 따위, 빨리 다 마셔서 해치워버려야지 원.”
“좋은 생각이로군.”
남궁세가가 장강의 물줄기를 틀어쥐고 싶어 하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파악됐던 사실이었다.
자신들은 그럴 의도가 전혀 없다고 대외적으로 발표하고 있으나, 최근 대운하를 비롯한 동정호가 있는 호남성까지 진출한 것을 본다면 그들의 의도를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암존은 남궁세가를 견제하고자 했고, 언젠가 제거할 속셈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얼마 남지 않았다.
아마도 이 자리는 그것을 위한 첫 단계에 대해 논의를 나누려는 의도일 터였다.
‘특무대… 하여간 거기에 완전히 정신이 홀라당 빼앗겨서는.’
몇 번 순배를 돌고 나니 호리병은 금세 바닥을 보였다.
탁!
암존은 잔을 내려놓으면서 물었다.
“어때 보이던가?”
주어를 생략한 질문이었지만, 그 대상이 운휘라는 건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특무대의 중심이 될지도 모를 아이.
당축융은 곰방대를 문 채로 가볍게 콧방귀를 꼈다.
“보고 계셨을 것 아니오?”
“옆에서 직접 보던 것과는 다를 수 있으니까. 검을 제대로 깨우친 것 같던데?”
“맞소.”
“어땠지?”
“아주 살벌하더이다.”
푸우-
당축융은 허공에다 연기를 내뿜었다.
시선은 천장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직 약관도 되지 못한 놈이 뭐가 그리도 심중에 후회와 통한이 가득한 건지. 쯧! 그걸 죄다 검으로 쏟아내는 것 같았소.”
“광풍과 잘 어울리는군.”
“잘 어울릴 뿐이오? 오히려 더 극성맞아지면 맞아졌지, 약해지지는 않을 것 같았소!”
“내가 정확하게 본 게 맞았어.”
“그 부채를 두고 겁풍이 될 아이라고 하셨었지? 맞았소. 그 아이는 겁풍이 될게요. 어쩌면 맹(盟)도 날려버릴지도 모를!”
당축융은 운휘의 검선에다가 겁풍선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건 겁풍선을 제작할 당시 암존이 중얼거린 혼잣말에서 흘러나온 단어였다.
“그럼 그렇게 한바탕 전부 쏟아내고 나면? 어떨 것 같던가?”
종종 그런 경우가 있다.
처음에는 확실한 목적의식이 있어서 경주마처럼 달리지만, 정작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기력이 전부 다 빠진 채로 남은 생을 그저 흐르듯이 사는 경우가.
운휘도 그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잠깐 들었지만, 당축융은 오히려 어이없다는 투로 코웃음을 쳤다.
“전부 쏟아내? 걱정하지 마시오. 그건 절대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으음?”
“나중에 직접 보고 나면 알게 될 거요.”
당축융은 운휘가 한바탕 쏟아내던 광풍이 아직도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 같았다.
당시 겁풍선은 폭력적이고 악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건 겉모습에 불과할 뿐 실제로는 울고 있었다.
아주 지독하고 처절하게.
“새로운 광풍대주는 오로지 그놈의 것이오.”
“확신을 가지는군.”
“확신이 아니오. 사실이지. 그놈이 아닌 광풍대라? 글쎄. 생각하기도 힘든데.”
암존은 조금 묘한 눈빛으로 당축융을 바라봤다.
그 역시 겁풍선에서 묻어있는 운휘의 재능을 읽었기에 그런 시험을 했던 것이지만, 당축융이 이토록 극찬하는 경우는 극히 보기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운휘의 어떤 모습이 당축융의 환심을 사로잡은 것일까?
‘사람 보는 안목은 이놈이 나보다 훨씬 나을 텐데… 흠! 고민이로군.’
당축융은 가만히 고심에 잠긴 암존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말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눈치로 보이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네.”
“어떤 부분에서?”
“재능, 독기, 안목, 실력, 성격, 심지어 호산 그 아이의 자식이라는 부분까지. 모든 면에서 확실한 아이이긴 해.”
“그런데 뭐가 문제란 거요?”
“바로 그게 문제라는 것일세. 대주가 될 자격은 충분하다 못해 아주 넘치지. 하지만-”
순간 암존의 입가에 맺혔던 미소가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다.
감정 하나 없는 모습에서 당축융은 등골이 저절로 오싹해지는 공포를 맛보고 말았다.
“그 부대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데 어찌 대주가 될 수 있겠나?”
“!?”
환생마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