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Reincarnated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9)
환생마신전-9화(9/390)
한판 땡기자
샤샤샥!
대부인 남궁산영이 머무는 전각의 지붕을 타고 대장거미가 내려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술사와 관련된 정보를 알아내서 소교주께 돌아가야 한다!’
대장거미의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공적을 세워야겠다는 생각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딴 미물처럼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실제로 그는 시시각각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사라지고, 지능이며 이성이 퇴화하는 것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소교주의 눈에 띄어야만 했다.
소교주가 한번 배반한 사람을 절대 용서치 않는 사람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소교주의 자비밖에 기댈 곳이 없었다.
‘가능하다면… 딸아이의 행방을 부탁드릴 수 있을지도!’
대장거미는 배신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떠올리다가 고개를 털었다.
우선은 여기에 집중하자. 무슨 일이 있어도 술사를 찾아야만 뭐라도 콩고물이 떨어지지 않겠나.
‘누구와… 같이 있군.’
대장거미는 여덟 개나 되는 홑눈을 가만히 좁히면서 남궁산영을 응시했다.
때마침 남궁산영 옆에는 낯선 여인이 서 있었다.
처음에는 저 여인이 술사인가 싶었지만, 얼굴 생김새가 남궁산영과 닮아 딸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천엽선자 당규진.
구룡분가의 후계자이면서도 청성파에 입적한 희한한 내력을 갖고 있어서 기억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표현하기 힘든 재능을 타고나, 친부 당호산의 막역지우인 우호 도장이 문하로 거둬들였다던가?
정식으로 도첩에 이름을 올린 건 아니었지만, 천엽선자는 오늘날 청성파를 대표하는 여고수로 신교에서도 정평이 나 있었다.
하지만 대장거미가 당규진을 기억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이 인간 말종만 가득한 이 분가에서 유일하게 ‘당운휘’를 따뜻하게 대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마저도 그녀가 청성파로 훌쩍 떠나면서 없던 일처럼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표독스럽기만 한 제 어미나 남동생보다는 인상이 순하게 생기긴 했군.’
하지만 남궁산영의 혈육이라면 인상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대장거미는 저들이 대체 또 무슨 꿍꿍이를 버리고 있나 싶어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남궁산영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실내를 흔들었다.
“네가 기어코 이 어미의 가슴에 비수를 꽂겠다, 이 말이더냐!”
“어머니가 그동안 운휘의 가슴에다 꽂은 비수에 비할 바는 아닐 테죠.”
“네가 그러고도 정녕 내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이 맞-”
운휘?
소교주를 화젯거리로 삼은 건 확실해 보이는데, 작당 모의는커녕 오히려 모녀끼리 의견 충돌이 크게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신경질적으로.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대장거미는 이해를 하지 못하고 여덟 개의 눈만 끔뻑거렸다.
* * *
파바바박!
내 손에 들린 길쭉한 봉(棒)이 허공에다 수많은 그림자를 남기면서 빠르게 움직였다.
산화봉법(散花棒法).
사천당가의 외가 무사들이 입문할 때 주로 익히는 무공이었다.
자고로 봉은 창, 검, 도, 도끼, 채찍 등 모든 무기의 기본 형태라 할 수 있었다.
장차 검을 익히려는 나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익혀야 할 무기.
밀집을 엮어 만든 허수아비의 팔다리에 짙은 타점(打點)이 만들어졌다.
타점은 절대 미리 표시해둔 지점을 벗어나지 않았다.
파앗!
여기다 마지막 올려치기까지.
서걱, 툭-
허수아비의 머리가 비스듬히 잘린 채 아래로 떨어졌다.
“후우-”
나는 봉을 갈무리하면서 짙게 한숨을 내뱉었다.
내공을 운기하지 않고, 단련을 목적으로 오로지 체력만 가지고 봉을 휘둘러서 그런지 옷이 땀으로 푹 젖었다.
그리고.
파아아-
피로를 덜어내려 내공이 운기된 순간, 단전에서 무언가가 흔들리는 느낌이 났다.
꿈틀!
내공이 조금씩 응집되면서 정(精)이 형성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양광이현(陽光二現).
단전에 맺힌 내공이 본격적으로 특성을 드러내기 시작하여 육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경지.
독룡심결로 치면 본격적으로 독성을 내뿜기 시작한다는 귀룡(鬼龍)의 단계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이때가 되면 독성을 외부로 내뿜을 수 있게 된다. 무기에 담아내는 것도 가능하고.
이렇듯, 단계를 조금씩 쌓아나간다는 성취감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왜 무인들이 이 희열을 잊지 못해서 나이를 먹고도 그토록 무공에 매달리는지 알 것 같단 말이지.
그리고 판돈을 따냈을 때 돌아오는 희열도 여기에 만만찮았다.
“다섯 냥.”
옆에서 일그러진 얼굴로 날 보고 있던 당곤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제기라알! 여기 있습니다! 여기 있어요!”
툭 하고 내 손바닥 위로 전낭이 떨어졌다.
흐흐흐. 무게를 보니까 딱 다섯 냥이었다.
한 번쯤 밑장빼기 같은 걸 시도 해볼 수도 있는데도 그러지 않는 걸 보면 이 아저씨도 참 양심적이란 말이지?
“인상 좀 펴. 무사부라는 사람이 귀여운 제자의 성취에 축하는 못해줄 망정 그렇게 인상을 찡그리고 있으면 어떡해?”
“제자라는 사람이 매일 존경해야 할 무사부의 주머니를 갈취하고 있는데 그럼 어떡합니까! 저 이제 진짜 빈털터리란 말입니다!”
“그러게 왜 자꾸 내기를 하자는 거야?”
“열 받아서! 열 받아서 그런다 왜! 나도 좀 따야 할 거 아냐!!”
이제는 그렇게 깍듯하던 예의마저 갖다버리고 울분까지 토한다.
도박이 이래서 무섭습니다, 여러분. 절대 빠지지 마세요. 빠지면 사람이 이렇게 변해요.
당곤에게 무공을 배운지 벌써 열흘이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착실하게 당곤을 털어먹었고(?), 이제는 주요 십팔반병기의 입문공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보신경(步身輕)과 권장지각(拳掌指脚)만 해도 무궁무진한 세계가 펼쳐져 있는데,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주제에 무기술까지 섭렵하려 한다니.
당곤도 처음에는 적극 반대했다. 앞으로 익혀야 할 암기술이나 하독술도 많으니 무기까지 단련하는 건 무리라고.
하지만 나의 완강한 주장(‘쫄리심?’이라고 도발하니 바로 넘어오더라)에 결국 하나둘씩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대신에 내기를 걸었다. 이참에 날 털어먹어야겠다나 뭐라나.
그리고 보인 결과는 지금과 같았다.
“아니, 대체 분명히 봉을 쥔 건 어제가 처음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진짜 밑장빼기하다 걸리면 아주 죽어?”
“어허! 이공자에게 감히 그게 무슨 말본새인가!”
“그게 싫으시면 본전에 가서 대부인께 말씀드리시던가.”
영혼까지 털린 당곤은 이제 순 똥배짱이었다.
“쉽게 이해하라고. 내가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하기도 좀 그렇지만, 난 광풍무도 천재라고? 설마 이런 기본 입문공이라고 다르려고?”
“그거야 광풍무는 당가 무학의 종합체이니까요! 원체 어렸을 때부터 당가의 무학을 보고 자랐으면 어느 정도 ‘흐름’을 쫓아서 형을 익힐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십팔반병기는 애당초 연원부터-”
당곤은 억울하다는 듯 푸념을 한참 늘여 놓다가 곧 한숨을 내쉬었다.
“에효! 이런 말을 해서 뭐하겠습니까. 결국 전 오늘도 털렸는데.”
“그래서 판돈도 쥐꼬리만큼 낮춰줬잖아. 무사부의 재정까지 걱정하는 나 같은 어여쁜 제자가 어디 있어?”
“그 쥐꼬리만 한 액수가 제 월봉의 절반입니다만!?”
더 자극했다간 진짜 폭발할 것 같았기에 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이 두 번째 초식에서 발이 자꾸 우측으로 틀어지던데. 여기선 허리 반동을 어떻게 줘야 하는 거야?”
“…하여간 얄밉다니까. 내가 어쩌다 이런 양반한테 코가 꿰여서는! 아오!”
당곤의 장점이라면 이렇게 툴툴거리면서도 가르침에는 절대 소홀함이 없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나도 빠른 속도로 무공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무공은 천마무고를 외우면서 쌓은 이론이 전부.
약했던 실전과의 간극을 빠른 속도로 메울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산화봉법을 익히면서 의아했던 부분이나 궁금했던 점을 묻고 난 뒤에야 수업을 겨우 마칠 수 있었다.
* * *
여섯 시진이나 되는 수업이 끝나고 나면 향하는 곳도 항상 정해져 있었다.
“또 오셨군요, 공자님! 어서 오십셔!”
“그래그래. 나처럼 매상을 꾸준히 올려주는 사람도 없지?”
“그럼요, 그럼요. 자리는 늘 모시던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음식과 술은…?”
“어제와 같은 걸로.”
“빠르고 편안하게 뫼시겠습니다! 얘들아, 다들 뭣들 하느냐! 어서 공자님 뫼시지 않고!”
청풍객잔을 꾸준히 방문한 것도 똑같이 열흘째.
그때마다 한 상 가득히 술과 음식을 시켜대니 주인장은 나와 당곤을 볼 때마다 굽힌 허리를 펴지 않았다.
“혹시 이 객잔의 주인이 공자님이십니까?”
“응? 무슨 소리야?”
오늘은 특별히 십 년 묵은 여아홍을 즐기고 있는데, 술잔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던 당곤이 이상한 소리를 해댔다.
“아니면 지분이라도?”
“없어. 그런 거. 대부인께서 내게 그런 걸 잘도 챙겨주시겠다.”
“…그럼 왜 매일 여기로 오시는 겁니까? 다른 객잔도 많지 않습니까.”
왜긴 왜야. 누굴 기다리고 있는 거지.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오늘도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열흘째 허탕이었다.
혹시 이 주변에는 앙마신화종의 신도가 아무도 없는 걸까?
분명히 구룡현에도 비밀 지부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니면 내란 중에 전부 죽거나 다친 걸지도.
이유를 모르니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머릿속을 잔뜩 지배했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꾸준히 표식을 남겼다.
그래도 언젠가 단 한 명이라도 이 표식을 발견할 수 있길 바라면서.
“왜? 술맛 없어?”
“그럴 리가요. 맛있습니다. 그런데, 음! 아닙니다. 뭐, 저도 술을 싫어하는 건 아니니.”
당곤이 매번 투덜거리면서도 나와 이렇게 어울려주는 건, 사실 내가 그에게서 따내는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얹어서 고급주를 사주기 때문이었다.
일개 가솔이 이런 고급주와 고급음식들을 매일 즐길 수 있는 사치를 어떻게 누리겠나. 나 덕분에 할 수 있는 거지.
물론, 내게도 그만한 웃돈이 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럼 어디서 조달하냐고? 어디서 조달하긴. 전부 본전 앞에다 외상으로 걸어두고 있지.
한 달 뒤에 청구서를 받아 보면 아주 기겁할 거다. 그러니 제게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마셨어야죠, 어머니. 낄낄낄.
“그보다 소식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식?”
“오늘 낮에 일공녀께서 돌아오셨습니다.”
“…누님이?”
“예.”
나는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당규진.
나는 실제로 본 적이 없지만, ‘당운휘’의 잔존사념에는 그녀에 대한 기억이 아주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이 콩가루 같은 집안에서 유일하게 그가 기댈 수 있었던 사람으로.
실제로 그동안 당규진은 ‘당운휘’에게 자주 서신을 보내왔다.
잘 지냈느냐, 불편한 곳은 없느냐, 무공 수련은 잘하고 있느냐, 날씨가 좋으니 산책하러 나가는 건 어떻겠느냐. 하나 같이 걱정과 염려로 가득한 서신들.
감금 생활을 하던 중에도 꾸준히 도착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답장하지 않았다.
딱히 ‘당운휘’로서의 정체성이 없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문제는 당규진이 당장 ‘당운휘’에게 호의를 보여도, 앞으로도 그럴 수가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나는 이제 본격적으로 남궁산영을 잡아먹기 위해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럼 그때 가서도 당규진이 ‘당운휘’의 편을 들 수 있을까? 글쎄. 당연히 친모인 남궁산영의 편에 설 것 같은데.
“멋진 모습으로 돌아오셨겠지?”
그래도 ‘당운휘’와 계속 괜찮은 관계로 남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뭐, 잘 될 진 모르겠지만.
탁!
나는 당곤과 가볍게 부딪친 잔을 바닥에다 내려놓았다.
“그럼 이만하면 됐겠지?”
“정말 시작할 생각이십니까?”
“응.”
“장원이 곧 난장판이 되겠군요.”
“걱정된다는 것 치고는 너무 웃고 있는데?”
“아, 그렇습니까? 이런 실수.”
당곤은 씰룩대는 입꼬리를 어떻게든 누르려 했지만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하긴 옆에서 보고 있으면 아주 재미있어 죽을 거다.
옆에서 하는 불구경과 싸움 구경만큼 재미난 것도 없는데 그걸 같이 즐길 수 있다고? 아, 이건 못 참지.
몸도 어느 정도 만들어졌겠다, 암존 방문도 얼마 남았겠다, 나는 이제부터 아주 신명 나는 쥐불놀이를 할 예정이었다.
* * *
“이… 걸 적색전에 말씀이십니까?”
내가 건넨 서신을 받은 형삼의 동공이 미친 듯이 떨렸다.
적색전은 삼공자 당유창이 사는 곳. 이걸 갖고 가려니 호랑이 굴에 뛰어드는 심정이겠지.
“왜? 싫어? 딴 애 시킬까?”
“아, 아닙니다! 공자님의 말씀을 잘 전달 드리도록 하겠습니닷!”
“그래그래. 아, 참고로 만약에 옆으로 샜다는 말 같은 거 들리면 뒈진다?”
“며, 명심하겠습니다앗!”
거 참, 작게 말해도 되는데. 시끄러워 죽겠네.
잘 다녀오라면서 형삼의 어깨를 두들겨 줄 때마다 녀석의 얼굴에는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뭔가가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서신의 봉투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당유창 친전(親展).
나랑 비무 한판 땡기자, 좆만아.
환생마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