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Reincarnated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98)
환생마신전-98화(98/390)
척사삼원(斥邪三媛)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녹존대란 말이지? 멋있네.’
유수민은 말을 타고 움직이는 내내 주변을 든든하게 방비하는 녹의(綠衣)의 무사들을 바라봤다.
옛 광풍대가 당문 최강의 타격대였다면, 녹존대는 당문 최고의 수비대였다더니.
확실히 주변 경계를 서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군기를 넘어 아예 기품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절대 자신들을 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굳건한 느낌.
도귀들을 상대하는 동안 감탄했던 정풍각 요원들과는 또 다른 감탄이었다.
‘이게 바로 사천제일세 서패당문의 저력이라는 거겠지.’
아미파의 규율 역시 엄중한 편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양에 한한 것일 뿐.
오히려 동문지간에는 사이가 아주 좋은 편이어서 격이 크게 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당문은 그게 아니었다.
철저한 상명하복.
하극상은 절대 꿈도 꿀 수 없을 것 같았다.
암존과 녹존대는 구룡현에 입성하던 와중에 뒤늦게 분가의 소식을 접했다고 했다.
그리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가장 먼저 암존과 몇몇 고수들만 선발대로 움직였던 것이고.
그 뒤에 남은 녹존대가 따라붙으면서 혹시 추가로 있을지 모르는 북해종의 병력을 경계했었단다.
그 결과, 운휘 일행은 북해종주의 마수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들이 일 각만 늦었어도 위험천만했을 아찔한 상황이었다.
‘만약 늦었더라면 우린 어떻게 되었을까?’
쉽게 상상이 가질 않았다.
초반 몇 초는 버틸 수 있었을까?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쪽엔 당곤과 옛 광풍대원들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운휘도.
‘그때 보이셨던 살기… 장난이 아니었지. 그런 건 난생처음이었어.’
운휘가 부서진 진법을 열고 나타났을 때 감지되었던 살기.
아주 잠깐 노출된 것에 불과했는데도 유수민은 압도되는 뭔가를 느껴야만 했다.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원초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 살기.
심지어 부동심을 이루던 항마력도 크게 요동칠 정도였다.
그때의 운휘는 도무지 자신이 알던 운휘가 아닌 것 같았다.
‘마도십주를 잡은 거니 당연한 거려나. 그래도 그런 살의는 차라리 마인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어.’
전투가 끝난 뒤에 남은 기파가 그 정도였을진대, 정말 활발하게 전투가 벌어졌을 당시에는 얼마나 지독한 살기를 흘렸던 걸까?
상상이 가질 않았다.
어쩌면 그녀의 부동심이 완전히 박살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던 운휘도 결국 북해종주 앞에서는 태양 앞 반딧불이에 지나지 않았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북해종주가 강해도 너무 강했다는 것.
도귀들 역시 유수민이 그동안 알던 것보다 훨씬 실력이 뛰어났다는 것.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경각심을 가져야 했다.
‘마교가 본격적으로 야욕을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니… 곧 강호도 난리가 나겠지.’
처음 운휘에게 마교에 관한 내용을 들었을 때도 반쯤 긴가민가했던 게 사실이었다.
유수민 역시 도와주겠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마교는 아직 내전 중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직접 도귀들을 만나고, 심지어 북해종주와도 대면해보니 알 것 같았다.
이제는 현실이었다.
‘정마대전(正魔大戰)…….’
강호인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할 법한 사태가 바로 코앞까지 닥친 건지도 몰랐다.
“하아!”
유수민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마교가 중원 침공을 개시한다면 가장 먼저 피해 입을 곳이 바로 사천 무림이었다.
그렇다면 아미파도 덩달아 위험해질 텐데… 벌써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왜 그래? 아직 내상이 덜 나은 거야?”
그때 사마선의가 유수민 옆으로 말을 몰고 다가왔다.
걱정 가득한 순박한 얼굴.
조금 전까지 차가운 얼굴로 마인들을 무참하게 썰어넘기던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아냐. 아무것도. 몸은 다 나았어. 너는?”
“나도 괜찮아. 당가주 덕분에.”
“확실히 남다르셨지.”
유수민은 모든 전투 종료 후에 암존이 일일이 자신들을 진맥해줬던 것을 떠올렸다.
암존은 고생했다며 맥을 가볍게 짚고 난 뒤에 저마다 다른 환을 하나씩 쥐여 주었다.
그런데 그게 효과가 즉방이었다.
먹고 나니 내상이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으니.
아니, 오히려 더 속이 편해진 게 내공 운용이 활발해진 것 같다는 느낌까지 받았을 정도였다.
덕분에 지금은 폐맥대법의 후유증이 모두 사라진 뒤였다.
사마선의도 식심빙독을 말끔하게 몰아낸 상태였고.
다만, 무리해서 상단전을 개방했던 당규진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진 언니는 괜찮으시겠지?”
“너무 걱정하지 말자. 당가주께서도 몸이 너무 놀라서 그런 것뿐이니 크게 우려할 건 아니라고 하셨으니까.”
“응. 알겠어.”
사마선의는 당규진이 있는 뒤쪽 마차에 시선을 주다가, 슬쩍 앞에 있는 다른 마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운휘와 암존 등이 앉아있는 마차였다.
그걸 본 유수민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저 마차에 타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
분명히 운휘 공자와 관계가 그렇고 그렇다고 했었지?
‘…선의가 조건이 꿇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에 독화를 어떻게 이겨?’
유수민은 대체 이 사실을 어떻게 친구에게 전해줘야 할까 싶었다.
그런데.
“민아.”
“응?”
“나 강해지고 싶어.”
갑자기 뜬금없는 말.
유수민은 살짝 눈을 크게 떴다.
고삐를 쥐는 사마선의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가는 게 보였다.
꽈악.
순간 유수민은 뒤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정말 바보였구나. 선아의 진짜 마음도 모르고.’
사마선의가 온종일 운휘가 타고 있는 마차만 빤히 쳐다보고 있기에 또 짝사랑이 도진다고만 여기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런 게 아닌 것 같았다.
지난 전투에서 운휘와 정풍각은 맹활약을 펼친 데 반해 그녀들은 힘겨운 전투를 벌이지 않았던가.
사마선의는 아무래도 거기서 깊은 분노를 느끼는 것 같았다.
도귀들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약한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무력감.
허탈함.
그런 감정들이 그녀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사마선의가 운휘에게 느끼는 감정도 연애 같은 말랑말랑한 감정 따위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보다 훨씬 높은, 우상(偶像)과도 같은…….
“할 수 있을까?”
사마선의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중얼거리는데, 유수민이 사마선의의 고삐 쥔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얹었다.
“할 수 있어. 너라면.”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너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어. 그러니까 같이 노력하자.”
“응……!”
두 사람은 머지않아 다가올 적을 향해 같이 전의를 불태웠다.
그리고 곧 일행 앞에 구룡분가의 장원이 나타났다.
* * *
두 가지 소식으로 구룡분가가 들썩거렸다.
첫 번째 소식은 암존의 방문.
갑작스러운 방문이었다.
곧 도착할 거란 기별은 있었지만 이렇게 일찍 도착할 줄 몰랐기에 미리 의전을 준비하지 못한 수뇌부가 비상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일반 빈객들에게는 큰 충격을 주지 못했다.
암존이 올 거라는 건 모두 다 알고 있었던 데다가 두 번째 소식이 지닌 무게가 훨씬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바로 승전보였다.
그것도 아주 압도적인 승전보.
―마교 북해종이 구룡분가에 마수를 뻗쳤다더라.
―하지만 신기에 다다른 구룡분가의 방호 체계가 별다른 피해 없이 마인을 모두 척살했다더라.
―납치됐던 천엽선자와 정월현녀, 백검목란도 사실 납치된 게 아니라 마인들을 꾀어내기 위한 공작(工作)이었다더라.
빈객들은 두려워했고, 또한 환호했다.
그동안 천산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던 마교가 다시 준동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모두를 충격으로 빠뜨렸지만.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뛰어들어 협과 의기의 정신을 떨친 세 재녀(才女)의 전과가 무척 감동적이었다.
척사삼원(斥邪三媛).
일부 빈객들 사이에는 벌써 세 사람을 그렇게 부르기 시작하기도 했다.
그리고.
―소분가주가 마도십주 칠초탈명의 목을 베었다더라.
여기에 하나 더 얹은 소식은 환호를 아예 열광으로 바꿔놨으니.
마도십주가 무엇이던가!
차기 천마신교의 미래를 이끈다고 알려진 열 명의 후기지수들이었다.
심지어 그것도 말이 후기지수이지, 이미 젊은 나이에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 일가(一家)를 이룬 고수이기도 했다.
특히 칠초탈명 구민채는 마도십주의 말석에 앉았어도, 북해종주의 혈통이기에 그 이름의 무게가 남달랐다.
그런데 구룡분가의 후계자가 그를 꺾었단다.
얼마 전에 백골망사와 북풍귀의 목을 꺾었다던 그가.
마교 침략군의 선봉을 꺾어버린 것이다!
“구룡분가에 잠룡이 숨어 있었구나!”
“이제 그 잠룡이 깨어나려 용틀임을 시작했으니!”
“용이 하늘을 오르고자 하면 대지가 흔들리고 하늘이 열려 비바람이 몰아치는 법!”
“그 비바람은 바로 광풍일지니!”
“바야흐로 잠들었던 광풍대의 옛 정신이 살아나려는가!”
그리고 이러한 술렁거림은 곧 다른 의문으로 귀결되었다.
―마도십주를 꺾었다면 그 역시 무위가 초절정에 달한 천재라고 할 수 있는바.
―그렇다면.
―사천제일 후기지수의 자리를 노려볼 법도 하지 않을까?
* * *
쿵쾅쿵쾅.
조용하던 백색전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의제! 의제에에에!”
콰앙!
방문이 부서져라 활짝 열렸다.
“괜찮은가! 몸은! 다친 곳은 없나아!”
사자도왕은 헉헉거리면서 땀을 흘렸다.
먼 귀주에서도 단걸음에 달려올 정도로 체력이 좋은 그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얼마나 급하게 달려왔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마교 놈들과 크게 한 푸닥거리 했단 말만 듣고 달려온 것 같은데… 내가 승전했단 소식은 못 들었나?
“보시다시피 멀쩡합니다. 괜찮아요.”
“아니! 그런 건 모르는 일이야! 후유증이라는 것은 몇 년 후에 갑자기 나타나도 이상하지가 않아! 잠깐만 살펴보겠네!”
“전 정말 괜찮은데-”
“어허! 가만히 있어 보게!”
사자도왕은 내 말 따윈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데.
암존이 직접 치료도 해줬고, 흑룡기도 계속 돌아다니면서 자기회복을 하고 있는 중이고.
사자도왕은 맥을 짚고 난 뒤에도 영 못 미더웠던지 나더러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어보라는 둥, 팔을 이리저리 돌려보라는 둥, 이것저것 시키기 바빴다.
나로서도 누군가에게 호의를 받는다는 게 나쁜 기분은 아니어서 웃으면서 따라줬다.
그런데 이 양반, 진짜 웃기네.
그토록 한번 보고 싶었던 암존이 근처까지 왔는데도 거기로 안 가고 여기로 바로 오고.
좀 감동인데?
「험험! 생긴 것은 당장 녹림에 들어가도 총표파자 자리 정도는 쉽게 씹어먹게 생겼거늘-」
「보는 것과 다르게 잔정이 많은 치인가 봅니다.」
「술 한 잔 나눴을 뿐인데 소교주께 홀라당 넘어 가버린 셈이니, 나중에는 간이고 쓸개고 간에 다 갖다 바치겠사옵니다.」
사자도왕은 한참 뒤에야 겨우 내게서 떨어졌다.
그래도 얼굴에 어린 근심은 도저히 떠나질 않았다.
“…다행히 응급처치는 잘 되었나 보군.”
“가주께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래도 당분간은 무리하지 말고 각별히 조심하게. 되도록 속이 편안한 죽이나 미음을 먹고, 한 끼 정도는 보양식으로 챙기고.”
“예. 명심하겠습니다. 이 우제(愚弟)를 챙겨주시는 건 역시나 형님밖에 계시지 않으십니다.”
“험험험! 그야 아우님을 이 우형이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길… 으응? 자, 자네들 대, 대체 언제부터 여기 있었나……?”
사자도왕은 헛기침을 하다 말고 갑자기 주변을 살폈다.
여태 내게 정신이 온통 팔리느라 주변 사람들이 있는 걸 이제야 눈치챈 모양이었다.
당곤이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귀제갈은 가면 너머로 웃고 있었고.
아마 그렇겠지.
세간에 알려진 사자도왕의 인상과 아주 달라서 놀란 거겠지.
특히 내게서 상황 보고를 받고자 찾아왔던 당호산은 아예 팔짱을 낀 채로 뚱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당문이요. 치료는 사자문주께서 염려하시지 않아도 아주 완벽히 잘하고 있을 터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오이다.”
“흐험험험! 나, 나야 곧 비무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몸조심하라는 의미로다가……! 어이쿠! 시간이 이렇게 늦었구만. 약속이 있었는데. 그럼 먼저 가보겠네.”
사자도왕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부리나케 자리를 떴다.
쾅!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나는 웃음이 나와서 가볍게 실소를 흘리다 말고 당호산의 눈총을 맞게 되었다.
“그새 사자문주를 꼬드겨서 호형호제하고 있었던 것이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런 게 어디 ‘어쩌다 보니’ 될 일이더냐? 너 때문에 꼬일 배분을 생각하니… 하아!”
당호산은 머리를 짚었다.
하긴 사자도왕의 배분은 아무리 낮게 잡아도 암존보다 반 배분 정도 낮을 뿐이니 골치겠지.
그로서는 아들이 자신에게 숙부뻘 되는 사람을 의형으로 모시게 된 셈이니까.
물론 나는 그런 그의 골칫거리를 그냥 모른 척 무시했다.
당호산의 눈가에 깊은 주름이 졌다.
그때 귀제갈이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빈객들 사이에 사자문주와 관련된 희한한 소문이 돌더군요.”
무슨 소문?
“사자도왕이 아주 호탕하게 웃으면서 빈객들 앞에서 자신의 아우가 마교 놈들 뚝배기를 깨고 다닌다고 자랑하고 다녔다는 소문이었지요.”
“…….”
“그 아우가 누구냐고 다들 궁금했었는데, 우후후! 아무래도 그 대상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저절로 내 쪽으로 향했다.
아무리 뻔뻔한 나라고 해도 여기선 계면쩍은 얼굴로 볼을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환생마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