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Of Witches RAW novel - Chapter (1243)
#1243
1.
키벨레 페리윙클은 운이 좋다.
이 명제에 반박할 수 있는 마녀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야 이명부터가 ‘행운의 마녀’ 아닌가?
갓 대마녀의 경지를 이룩해 싸가지 밥 말아 먹었던 시절에도 뭐하나 콩고물 떨어지는 거 없나 기웃거리던 마녀가 운동장 하나는 가득 채웠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통제를 포기하는 대가로 손에 넣은 행운의 힘은 운명의 실낱 중 가장 반짝이는 황금실만을 가져와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세계의 편애를 받았다.
“…음.”
가지런히 정돈한 예쁜 손톱 끝이 톡톡, 테이블 위에 놓인 편지 모서리를 튕겼다.
[기다리겠습니다] [신시우가]고작 두 줄짜리 편지는 약속을 전달하기 위한 편지라고 보기 힘들다.
약속을 잡는데 가장 중요한 시간과 장소가 빠져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키벨레 페리윙클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당한 시간 적당한 장소로 향한다면 거기에 신시우가 기다리고 있을 게 뻔하니까.
코인 100번을 보지 않고 던져도 앞뒤를 모두 맞출 수 있는 그녀에게 이 정도 수수께끼는 답이 훤히 보였다.
신시우가 이 편지로 그녀를 불러낸 이유 또한 말이다.
“프러포즈라….”
결혼식을 앞두고 연인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꽃바람.
저녁 식사자리에서 어찌나 다들 티를 팍팍 내던지 뭔가 열심히 궁리 중인 오 자매를 제외하곤 다들 근사한 시간을 보낸 모양이다.
부럽기도하고 내심 기대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크게 마음을 짓누르는 것은 혼란스러움이다.
그 혼란을 간략히 축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결혼해도 되나?
내 선택은 맞나?
신시우의 선택인 건 맞나?
과연 프러포즈를 받고 그와 결혼하는 게 모두를 위한 선택일까?
언제나처럼 모든 일이 너무나도 순탄하게 흘러갔다.
그의 연인들은 하나같이 크고 작은 에피소드, 갈등과 고난을 딛고 맺어진 것에 비해 키벨레는 거저로 사랑을 손에 얻었다.
그날의 비극 이후 한 번도 누군가를 마음에 들여본 적 없던 키벨레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신시우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본래 연인을 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신시우 하렘의 막차자리를 자연스럽게 꿰찼으며, 우연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코앞에 버진 로드가 깔렸다.
이 결혼은 분명 막대한 행운이 될 것이다.
예전 야시장에서 처음 만났던 풋내기 코찔찔이 남자 마녀는 어느새 세계관 최강자가 되었다.
무력으로만 최강이 아니라 규모 면에선 진리진명 학술회를 가뿐히 뛰어넘은 헤세드 학회의 학회장이다.
인맥은 또 어떠한가?
그에게 크고 작은 은혜를 입은 마녀도 한가득 이고, 시우의 연인은 그 자체로 강력한 대마녀로 연결(그것도 겁나 끈끈하게)된 파벌이다.
과거 아주 작은 호의 몇 개를 베풀었다는 것만으로 그의 아내가 될 자격을 얻었다.
이제 순리대로 흘러가게 두기만 한다면 모든 영광과 명예와 권력이 덩굴째로 굴러떨어진다.
마치 누군가 정해둔 것처럼.
“아 몰라몰라. 머리 아퍼.”
고민은 흰머리 날만큼 했다.
잠 한숨도 안 자고 매번 같은 생각으로 머리를 감싸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뭐 있어.”
키벨레는 오랫동안 갈등하던 문제에 대한 답을 내렸다.
그리고는 가방을 챙겨 약속장소로 향했다.
2.
“회장님, 늦어서 미안.”
“늦긴요. 기가 막히게 딱 맞춰 왔는데요?”
약속 장소는 신촌.
약속 시각은 오후 4시.
공원 벤치에 앉아서 커피를 홀짝거리던 시우는 ‘역시 누님!’같은 표정을 지으며 실없이 웃었다.
화난척 팔짱을 끼고 등장했던 키벨레도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은근히 재간둥이 같은 면이 있다.
그래서 좋았고.
“그거 몇 줄 더 쓰는 게 그렇게 귀찮던?”
“페리윙클 누님이라면 당연히 올 거라고 믿었습니다.”
“너 종종 나만 성으로 부르더라?”
“입에 붙어서 말입니다.”
우산을 함께 쓰듯 자연히 인식을 저해하는 역장을 함께 두르는 두 사람.
“왜 불렀는지 전혀 짐작도 안가긴 한데. 이제부터 뭐할 거야? 당연히 데이트 코스는 준비해뒀겠지?”
“일단 돼지껍데기에 소주부터 시작할까요?”
“그건 식상한데. 서민 체험도 한두 번이지 벌써 세 번째잖아? 날 너무 쉽게 보는 거 아니야?”
사실 별로 싫지는 않다.
오히려 마음에 쏙 드는 편이다.
함께 골목골목을 쏘다니며 구경하다 그가 데려가지 않았더라면 죽을 때까지 쳐다도 보지 않았을 허름한 노포에서, 그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죽을 때까지 입에도 대지 않았을 음식을 먹으며, 그가 권하지 않았다면 죽을 때까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을 싸구려 술을 마시는 것.
그 모든 게 참신한 여흥이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튕기는 이유는 시우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 꽤 재밌는 아이디어를 잘 짜낸다는 점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이건 또 뭔데?!”
그리하여 도착한 또 다른 가게.
키벨레는 주문 20분 뒤쯤 가스버너 위에 대령한 기묘한 음식을 보고 기겁했다.
그 뒤로 세트메뉴랍시고 김 가루가 솔솔 뿌려진 주먹밥이나 계란찜이 나오긴 했지만 양철 냄비에 담긴 메인 디쉬는 충격적인 비주얼로 눈길을 독점했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시뻘건 국물에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는 닭발.
위에 콩나물과 파 같은 것을 얹어놓긴 했지만 그 흉측함을 가릴 수는 없다.
실로 충격적인 플레이팅이다.
“아아, 이것은 국물 닭발이라는 것입니다. 매운 음식 좋아하셨죠?”
“그냥 살코기 먹으면 안 돼? 왜 돼지껍데기랑 닭발 같은 걸 먹는 거야? 심지어 제법 비싸잖아?”
“어허, 일단 드셔 보셔. 이모! 여기 후레시 한 병이요!”
잔경련이 일어날 만큼 좁아진 미간으로 국물 닭발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음식을 살피는 키벨레.
그래.
일단 돼지 껍데기도 초대면엔 충격과 공포의 혐오 음식이었지만 먹어보면 썩 나쁘지 않았다.
일단 먹어나 보자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 먹는 건데?”
“비닐장갑 끼시고 발부터 한입에 넣어서 빼 드시면 됩니다. 뜨거울 테니 조심하시고요. 아, 잔뼈는 뱉으셔야 해요.”
키벨레는 생각보다 순순히, 그러나 위험물질을 다루는 연구원처럼 신중하게 닭발을 집어들고 한입에 물었다.
“흐음.”
입에 확 번지는 매운맛과 엄청난 감칠맛, 식재료 본연의 맛보다는 양념을 즐기기 위한 요리답게 꼬들꼬들한 식감이 꽤 재밌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의기양양한 시우를 보니 은근히 열이 뻗쳤지만 뭐, 이 정도면 합격점이다.
“솔직히 맛있죠? 좋아하실 줄 알았습니다.”
“내 입맛이 어떤데?”
“자극적인 거 엄청 좋아하시잖아요. 매우면 여기 주먹밥이랑 계란찜 드시면 됩니다. 아 특히 주먹밥에 적당히 양념 뿌려주면 맛있습니다. 이게 국물이 진국이거든요.”
속도 없이 실실 웃는 시우는 그 외에도 이것저것 사이드 메뉴를 권했다.
누룽지탕도 시켜서 매운 속도 달래보고, 요상야릇한 맛이 나는 팩에 담긴 음료수도 마셔보았다.
소주도 한 잔씩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어느새 벌써 저녁.
“이다음은 뭐야? 이 병만 다 마시고 나가자.”
“다 준비해 뒀습니다.”
이후의 코스도 서민 체험이었다.
은근히 눈치가 빠른 신시우답게 페리윙클이 해보지 않았을 것 즉, 흥미를 느낄만한 것 위주로 일정이 짜여 있었다.
-깡!
“손맛 좋은데?”
“이야, 누님 잘 치시네요. 어떻게 하나를 안 놓치시지?”
“휘두르니까 되던데?”
“이것도 패시브가 적용돼요?”
난생 처음 스크린 야구장이라는 오락 시설에서 배트를 붕붕 휘둘러보았다.
시우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휘두름에도 모조리 홈런으로 넘어가는 공을 보며 감탄했다.
“좀 더 왼쪽? 오른쪽인가?”
“저건 뽑으라고 넣어둔 게 아닐걸요? 와! 이게 뽑혀?”
“별거 아니야. 너 가져.”
인형뽑기 머신에 머리를 맞대고 끙끙거리다가 말도 안 되는 크기의 미끼 상품 곰 인형을 3트 만에 뽑아버리기도 하고.
“볼링은 쳐 본 적 있으세요?”
“꽤 좋아했지. 의외로 역사가 좀 되는 게임이거든? 내기할까?”
“누님이랑은 안 할 겁니다.”
간만에 볼링공을 잡고 퍼펙트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많이 갔지? 싶을 만큼 즐거운 시간이었다.
서민 체험을 마친 이후엔 발랄한 여운을 가슴에 품은 채 돌아온 페리윙클 호텔의 펜트하우스에 입성.
객실 안의 바에서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였다.
“아아, 재밌었다. 코스 짜는 솜씨가 제법이던 걸?”
“만족하셨다면 다행입니다.”
의도적으로 조성한 어둑한 공간 속 관능적으로 빛나는 오렌지색 조명.
분위기도 함께 무르익어간다.
과거 두 사람이 첫 관계를 나눴던 곳도 이곳이었더랬지.
“페리윙클 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 전에 잠깐, 그 전에 내가 먼저 할 말 있어.”
그러니까 끝맺음을 맺는 것도 이 장소가 좋을 것 같았다.
키벨레는 이미 답을 가지고 여기에 왔다.
그 답은 그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도망치기만 하는 것을 멈추고, 눈을 흐리게 뜬 채 세계의 주인공이 된 양 구는 것을 멈추고. 운명과 맞서보겠다는 용기를 냈다.
하지만 아마 지금 이 순간도 그녀의 자성마법은 행운의 금빛 실을 키벨레에게 이끌고 있을 테지.
신시우를 향해 느끼는 이 호감도.
신시우가 키벨레를 향해 느끼는 호감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관계도.
결국엔 분에 넘치는 행운을 손에 쥔 것뿐이다.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다.
이제 와서 행운 따위는 하나도 필요 없었다느니 뭐니 징징거릴 염치는 없다.
다만 두려울 뿐이다.
시우는 그녀를 위해 ‘행운’을 통제하는 공동연구에 들어섰다.
그리고 언젠가 연구가 본궤도에 오르는 순간.
즉, 그녀가 무의식중 발현되는 행운을 제대로 제어하기 시작한 순간.
12시가 되면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려버리는 것처럼, 이 모든 행복이 그저 행운 따위였던 것으로 치부되는 게 두렵다.
그러므로 그의 프러포즈를 받을 순 없다.
부정하지 않겠다.
또다시 도망치는 것이다.
“…….”
너는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어, 같은 멋진 말을 하고 입맞춤을 한 이후에 보내줄 생각이었는데….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입술.
다시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하는 미련과 망설임에 끝내 눈을 질끈 감는다.
“페리윙클 님.”
마치 안아주듯 그의 넓은 팔이 그녀를 감싼다.
목에 목걸이의 체인이 감기는 순간 키벨레는 느꼈다.
“뭐, 뭐야 이게?”
“전에 말씀드렸던 선물입니다. 미스틸테인을 기반으로 만든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행운을 차단하는 아티펙트에요. 목걸이 형태로 만들어 봤어요. 이거 만드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언제나 그녀를 칭칭 휘감던 금빛의 실낱이 끊어져 나가는 느낌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마녀의 마법이 깨진다.
어쩌면 이 모든 기적을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행운들이 떠나가고 있다.
“무슨 걱정하시는지 압니다. 그래도 한 번만 절 봐주실래요?”
“싫어….”
“한 번이면 됩니다. 딱 한 번이요.”
“빠, 빨리 풀어 줘… 싫단 말이야.”
언젠가 마주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행운을 걷어낸 현실을 직시하는 게 너무나도 두려워서.
그가 어떤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볼지, 자신은 어떤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게 될지 인정하는 게 무서워서 고개를 숙인다.
우스웠다.
세계의 편애에 놀아나는 것이 지긋지긋하다고 말해놓고선 정작 행운을 포기하고 현실을 직시할 때가 되자 이렇게나 두렵다는 것이.
“괜찮습니다. 정말요.”
“안 괜찮아! 내가 이 꼴 보기 싫어서…. 그래서 그만하려는 거라고! 몰라?”
“알아요. 그러니까 괜찮다고 말하는 겁니다.”
확신에 찬 자상한 목소리가 키벨레를 다그친다.
칠면조처럼 고개를 처박고 현실을 도피하던 키벨레는 그의 고집을 느끼고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터질 듯이 뛰는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그 앞엔 얄밉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는 신시우의 모습이 보였다.
“어때요? 아무것도 달라진 거 없죠?”
그는 여전히 다정한 눈빛으로 키벨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야…! 너, 너 말도 없이 이런 거 하면…. 진짜 나 수명 줄어든다니까?”
“회장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시네요.”
극점까지 치솟았던 긴장감이 풀려 다리에 힘이 풀려버릴 것 같다.
휘청거릴 뻔한 키벨레를 꽉 안아 세우는 시우.
“그러고 보니 저한테 할 말 있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윽….”
또 혼자서 설레발이란 설레발을 다 떨어놓고 찾아온 고백 타임.
볼이 아주 벌겋게 익는 것처럼 뜨겁다.
환희와 수치심이 뒤엉킨 생전 처음 느끼는 오묘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여기선 연상답게 여유를 보이며 멋지게 말해야겠지.
“…책임져.”
“뭘요?”
“나랑 결혼해서 책임지라고!”
연상처럼 멋지게 말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EP.1250 #290_프러포즈(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