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Of Witches RAW novel - Chapter (1244)
#1244
1.
마녀 중 유일하게 쌍둥이가 낙인을 나누어 받는 제머나이 백작가의 영애.
시우 연인 군단의 마스코트 담당 오딜 제머나이와 오데트 제머나이.
둘의 행동력은 그야말로 전차를 방불케 한다.
일단 둘의 레이더에 목표가 포착되면 무대포로 돌진해서 머리를 박아보는 성격인 것이다.
거기에 원기도 왕성하여 강남 8학군 수험생들보다 빽빽한 수업 일정이 잡혀 있으면서도 취미가 사냥, 사격, 승마이니 본래라면 ‘프러포즈’라는 이벤트가 유행을 타자마자 조수님에게 달려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쫘아악!
“이게 아니야!”
“끄아아아악!”
오딜과 오데트는 결합품인 도자기를 깨는 장인의 심정으로 벌써 몇 번째일지 모르는 기획안을 찢어 버렸다.
밤새워 열심히 작성한 ‘프러포즈 프로젝트’ 문서가 세단기에 들어간 것처럼 조각났다.
주위에는 조잘조잘 조언을 해주던 쌍둥이의 전속 시녀 페챠, 레나, 마샤, 베라가 유명을 달리한 기획안들과 나란히 널브러져 있었다.
“페챠! 레나! 일어나 봐!”
“흠냐흠냐…. 오딜님… 이젠 무리에요….”
“코오오….”
“으으으, 이 도움도 안 되는 녀석들!”
벌써 며칠째 밤샘 작업이었기 때문에 네 시녀들은 귀여운 주인님의 불호령에도 배를 긁적이며 꿈나라로 금세 떠나버렸다.
말괄량이 오딜과 오데트의 체력을 따라잡는 건 잡일로 단련된 메이드로도 무리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조수님을 위한 최고의 프러포즈를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쥐어짜 냈다.
‘예전 현세에서 봤던 영화처럼 뮤지컬 영화처럼 노래를 부르는 건 어떨까?’
오딜과 오데트의 노래 솜씨는 일류 그 자체다.
둘은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기에 열심히 작사 작곡 리허설까지 했다.
하지만 하다 보니 뭔가 영화 같은 느낌이 살지 않고 장난스럽게 느껴졌기에 폐기.
‘그렇다면 극장을 빌려 하는 편지 낭독회는 어때?’
시적인 수사로 장식한 연애편지로 하는 프러포즈라…. 적어도 로맨틱함에서는 합격점이었다.
둘은 열심히 10장 분량의 편지를 썼고 극장까지 대여했다.
하지만 하다 보니 뭔가 지루한 느낌이 팍팍 들었기에 폐기.
‘조수님이랑 뜨거운 밤을 보내다가 귓가에 속삭이는 건 어때?’
연인 관계에서 관계를 맺는 중 사랑의 페르몬이 뿜뿜 뿜어져 나오는 건 상식이다.
거기에 같이 기분까지 좋으니 완전 좋은 프러포즈 같아 보였다.
하지만 뭔가 제대로 말도 못하고 실컷 가버리다 끝날 것 같아 폐기.
그밖에도 여러 안건이 있었지만 폐기 폐기 전부 폐기되었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밀리다 보니 결국 오딜과 오데트를 제외하면 전원 프러포즈가 성사된 초유의 비상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큰일이야 언니. 우리가 마지막이 되어버렸어.”
“우리가 꼴찌라니! 이건 말도 안 돼!”
“언니!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마지막은 마지막대로 임펙트가 있어서 좋지 않을까? 원래 세상은 일등이랑 꼴찌만 기억하는 법이잖아.”
“오데트! 반대로 생각해 봐! 온갖 프러포즈를 하고 받은 조수님을 감동시키려면 더욱 근사한 프러포즈가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아뿔싸!”
오데트의 행복회로도 오딜의 냉철한 현실지적에 불타버리고, 가뜩이나 부담감에 몸부림치던 쌍둥이에게 나타난 것은 더욱 완벽해질 것을 강요하는 여건뿐이었다.
르뤼에라도 좀 미적거렸으면 부담이 덜했을 텐데 혼수로 조수님에게 항모 전단을 선물 받은 르뤼에는 요즘 볼 때마다 히죽히죽 웃고 다닌다.
아무리 그래도 조수님이 그 정도로 부자가 됐나 싶어 알아보니 향후 위치포인트의 해상거점으로 배치될 함대의 명예 함대사령관직을 준 것이라고.
“오데트.”
“응, 언니.”
“우리 망한 거 같지?”
“응….”
오딜과 오데트의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속상한 강아지처럼 축 늘어졌다.
2.
꽤 오래 지속되었던 시우와 에렐림과의 악연은 적절히 봉합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우의 아량에 기댄 봉합일 뿐 억하심정 정도는 남아있다.
“이야, 날씨 좋다.”
그런 핑계로 에렐림에게 할 일을 짬 때리고 정원을 산책하던 길이었는데 대뜸 마차가 보였다.
중후한 검은 빛으로 도색된 마차의 문에는 각기 희고 검은 새 문양이 음각되어있다.
말이 마차이지 안에 공간 확장 마법이 걸려 있어 이동식 별장으로 써도 손색이 없는 제머나이 백작가의 특제 마차다.
“훗.”
정원과 덩그러니 정차한 마차라….
어쩐지 기시감이 잔뜩 느껴지는 풍경이다.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관리인 시절, 갑자기 아멜리아 부교수가 보더타운까지 동행을 요청한 바람에 전초기지에서 기다리던 쌍둥이를 바람 맞혔었지.
그때도 이렇게 마차가 찾아왔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잔뜩 뿔이 난 오딜과 오데트가 다리를 꼰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대가로 사랑의 묘약을 통해 동정을 징수당했고 말이다.
추억이다 진짜.
아련한 향수를 느끼며 문을 열자….
“어서 와 조수님.”
“조수님 안녕하세요.”
그때 그 시절 코디의 오딜과 오데트가 보인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둘의 표정이 약속을 파투낸 관리인에게 견습마녀의 위압감을 보이기 위해 굳어있는 대신 굉장히 퀭하다는 것이다.
깜짝 놀랐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 딱히.”
“얼굴이 반쪽인데요?”
“아녀요 조수님. 그냥 피곤해서 그래요.”
게다가 텐션도 뭉그적 뭉그적 바닥을 기는 상태.
오데트가 입이 찢어지라 하품을 하는 게 곁눈으로 보인다.
시우는 어리둥절하며 마차 문을 닫았다.
“자. 조수님. 가볼까.”
“오늘 하루 일정 전부 캔슬해주실거죠?”
“우와…. 텐션 엄청 낮네요.”
겉보기만 그런 게 아닌지 !가 들어가야 할 곳에 죄다 .이 찍힌 듯한 맥 없는 목소리.
아무래도 무척이나 피곤한듯했다.
“스케줄은 비울 수 있는데….그나저나 어디로 가나요?”
시우의 물음에 오딜과 오데트는 동시에 답했다.
““라티푼디움.”이요.”
그조차 참 그리움이 느껴지는 화법이었다.
3.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라티푼디움을 향하는 마차 안에서 오딜과 오데트는 시우의 품에 기대 꾸벅꾸벅 졸았다.
“으으, 푹 잤네.”
“조수님 어깨 잘 썼어요.”
그덕분인지 컨디션을 좀 회복했달까?
도착할 무렵엔 둘 다 안색에 좀 혈기가 돌아 피크닉 바구니를 들고 씩씩하게 앞장섰다.
딱히 올 일이 없었기에 다시 찾은 건 처음이었지만 여전히 초현실적인 요정의 숲 그대로였다.
“사람도 없고 좋지? 우리가 조수님이랑 데이트하려고 다 비워달라고 했어.”
“오랜만에 와도 예쁘네요. 아니지, 전보다 더 멋진 걸요?”
인공적으로 조성된 마력수의 강이 졸졸 흐르는 풍경이며,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마력수액들이 전구처럼 거목 사이사이에 걸려있는 모습이며, 도깨비불처럼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마력반사광이며, 곳곳에 파릇파릇 자라나는 작물들까지.
“그때는 휴지기였어서 최소한의 작물만 남겨 뒀었으니까요.”
“지금은 한창 재배 중이고 말이야.”
“이야…. 지금은 식물원 저리 가라네요.”
확실히 저번에 왔을 때와는 재배 규모가 다르다 했더니 그런 사정이 있었던 모양.
오직 차원이동식을 연구하던 야매 마녀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곳곳에 피어난 꽃, 버섯, 이끼 따위의 이름과 용도까지 알게 된 시우다.
새삼 감회가 새롭다.
“자, 오렌지 주스. 조수님 꺼.”
“멘델 구릉 포도주도 세 병이나 챙겼어요!”
달랑달랑 피크닉 바구니를 옆구리에 낀 채 커다란 고목의 꼭대기에 달린 트리하우스에 입성한 오딜과 오데트는 주섬주섬 이것저것을 풀어놓았다.
참고로 제머나이 특제 오렌지 주스는 맛이 끝내준다.
“그리고… 이건 저희가 만든 클럽 샌드위치에요!”
“어, 음.”
등골이 서늘해졌다.
오딜과 오데트의 살 떨리는 요리솜씨를 알고 있는 까닭이다.
“그렇게 긴장할 것 없어. 정말 레시피대로 한 거니까.”
“맞아요, 저희 예전처럼 막 집어넣고 그렇지 않다구요.”
“오, 진짜 잘 만드셨는데요?”
확실히 맛이 괜찮다.
특별할 건 없지만 워낙 좋은 재료를 썼기에 나올 수 있는 안정적인 맛.
거기에 과육이 탱글탱글 잘 살아있는 오렌지 주스와 향긋한 멘델 구릉 와인이 함께라면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이 트리하우스는 라티푼디움을 내려볼 수 있는 관리동이기 때문에 환상적인 뷰를 마치 전망대에 올라간 것처럼 관람할 수 있는 특등석이기도 하니 말이다.
“여기서도 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조수님이 호문쿨루스 잡으셨잖아요. 그때는 정말 무서웠는데 조수님한테 반했어요.”
“맞아맞아. 마법도 제대로 배운 적 없었으면서.”
“매번 그때 얘기하시네요.”
“그걸 어떻게 잊겠어?”
오딜과 오데트는 이렇듯 종종 옛날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지금의 시우는 그림자 고양이 수준의 호문쿨루스는 수천 마리씩도 때려잡을 수 있음에도, 언제나 그때의 조수님이 멋졌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건 아마도 세 사람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이, 단순한 호기심에서 호감으로 감정이 넘어가던 시점이 그때부터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의 첫 페이지는 누구에게나 깊게 기억에 남는 법이니까.
오딜 오데트와 엮이지 않았더라면 아마 조용히 차원마법식을 연구하다가 훌쩍 현세로 나왔겠지.
호문쿨루스를 격퇴하고 그노시스의 알을 통해 그림자의 법칙을 습득할 일도 없었을 거고.
마녀가 될 일도, 이렇게 고마운 연인들과 함께하게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쥐뿔도 없던 노예를 뭐가 예쁘다고 그렇게 살갑게 대해줬는지….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엔 오딜과 오데트의 다정함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딜은 골골골 와인병을 병나발 불더니 한숨을 탁 쉬며 입을 열었다.
“조수님, 사실 우리 오늘 프러포즈할 거야.”
“엑! 언니! 그걸 말하면 어떡해!”
“뭘 어떡해. 조수님이 옛날 순둥이 조수님인 것 같아? 어차피 다 눈치채셨을 거라고.”
“그게 정말이에요?”
“뭐…. 뭔가 준비하셨다고는 짐작했습니다.”
“거봐.”
“으으….”
어깨를 으쓱하는 오딜과 시무룩해하는 오데트.
“근데 다 망한 것 같아. 뭔가 엄청 대단한 걸 하려고 할수록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으으으, 저희도 나름 노력했다고요! 기획서도 작성하고 했는데….”
“특별해야 할 게 있나요? 두 분이랑 이렇게 피크닉 보내는 것만으로 기쁩니다.”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에요. 약간 예전 생각도 새록새록 나고 좋네요. 시간 되시면 전초기지도 같이 갈까요? 타로 타운 밤산책도 좋고요.”
시우도 비슷한 고민을 했지만 프러포즈가 반드시 특별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진심이 이어진다는 거,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서로에게 그 진심을 전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거죠. 전 두 분이랑 함께 있기만 해도 너무 행복합니다.”
“조수님….”
“거참…. 감동먹게. 뭐, 그렇다면 조수님. 잠깐만 창밖을 봐줄래?”
“창밖을요?”
“네네.”
어리둥절한 시우는 두 사람의 지시에 따라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름답고 몽환적이던 풍경이 일순 반짝 빛난다.
동시에 라티푼디움의 지면에서 일렁이던 형형색색의 마력반사광이 일제히 반딧불의 군무처럼 날아오른다.
비눗방울처럼 두둥실, 트리하우스의 부감까지 올라온 불빛들은 작은 우주선을 타고 별의 바다를 헤매는 듯한 장엄한 풍경을 선물해준다.
“와….”
이제껏 많은 경험을 해왔다지만 이만한 장관은 좀처럼 보기 쉽지 않다.
요정처럼 날아올라 불꽃놀이처럼 흩어지는 불똥을 바라보던 시우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작전 성공! 어때요?”
“어제 밤새 촉매제를 미리미리 심어뒀어.”
“아주 고생이었지만, 조수님 반응을 보니 대성공이네요.”
“후후, 어때? 전혀 예상 못 했지?”
이 넓은 라티푼디움 전체에 촉매제를 심어놓아 이런 장관을 연출하는 것은 견습마녀인 두 사람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쩐지 피곤해 보인다더니 이런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별 거 준비 못 했다는 시무룩함까지 연기였을 줄이야.
“여기가 조수님과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된 곳이니까.”
“여기서 프러포즈하는 게 뜻깊다고 생각했어요.”
괜히 눈시울이 시큰해진다.
“그래서 말인데 조수님. 이제 조수님 말고 남편 해 줘.”
“어때요? 이렇게 로맨틱한 프러포즈는 처음이죠?”
“뭔가 어색하네. 조수님은 백날 천날 조수님일 것 같았는데.”
“그러게. 언니가 처음 포획해 왔을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 몰랐지.”
마치 일상 대화처럼 흘리듯이 빠르게 지나간 프러포즈.
오딜과 오데트도 평정을 가장하며 말했지만, 콩닥콩닥 들려오는 두 사람의 심장 소리가 이 고백에 얼마나 큰 무게가 담겼는지를 알려준다.
그에 대한 시우의 대답은?
“오딜 님, 오데트 님.”
그야 당연히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것 아닌가?
EP.1251 #291_결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