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Hunter’s S-class Resignation Log RAW novel - Chapter (28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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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의 예상대로 서라는 먼저 떠난 송한나를 빼고 윤재헌과 둘이서 식사까지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윤재헌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신혼인 동생을 방해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다며 그는 호텔로 향했다.
서라는 참 별 걱정을 다 한다며 웃긴 했으나, 구태여 그를 붙잡지는 않았다. 반나절 넘게 리제와 떨어져 있었으니 그가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건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내년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리제를 끌고 가리라. 더 이상 혼자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어서 와, 서라야.”
무표정한 얼굴로 발코니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던 리제는 이동 능력으로 제 앞에 불쑥 나타난 서라를 보고 반색했다.
두 사람은 반나절 동안 그리워했던 연인과 뜨거운 재회의 포옹을 나누었다. 이제야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혼자 둬서 미안해.”
“내가 원했던 일인걸. 그렇다고 외롭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리제는 서라를 끌어안은 채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리움에 바짝바짝 굳어 가던 심장이 사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내년엔 꼭 같이 가.”
서라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그녀의 체향을 깊이 들이마시던 리제의 움직임이 멎었다.
서라는 그런 리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그의 귓가에 입을 맞췄다.
“아직도 죄책감 들어?”
“…….”
리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서라는 그런 그의 머리를 조심히 끌어안았다.
“아니면 아무런 감정도 안 들어?”
허리를 안고 있던 그의 팔이 움찔 떨렸다. 서라는 웃으며 그런 그를 내려다보았다.
리제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몰랐을 리가 없잖아. 당신에 관한 건데.”
송한나와 윤재헌이 있는 곳에선 티 내지 않았지만, 서라는 이미 리제의 심정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자신이 없을 때면 늘 무표정하게 있고, 다른 이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 현저히 다른데 모를 리가 있나.
“그걸 들킬까 봐 무서워하고……. 정말 내 리제는 너무 여리다니까.”
남들이 들었다면 코웃음을 칠 말이나, 서라는 진심이었다.
오직 제게만은 세상에서 가장 여리디여린 남자였다.
“날 사랑하는 만큼 걱정도 많은 거 잘 알아. 그런데 나도 당신 사랑하잖아.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 저승까지 가서 당신 혼을 데려올 정도인데.”
“……그래도 당신 부모님과 관련된 일이니까.”
다른 거였다면 리제도 별로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4년 동안 같이 살며 느낀 서라의 사랑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으므로.
그러나 서라에게 큰 트라우마를 안겨 준 부모님에 대한 일이다.
그 일만큼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내가 다 알고 있는데, 당신을 어떻게 원망해? 잃어버렸던 감정을 되찾은 지 이제 고작 4년 정도밖에 안 됐잖아. 리제, 난 당신을 이해해. 당신의 모든 걸 이해하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하는 거야.”
서라는 겁먹은 리제의 얼굴 곳곳에 입을 맞췄다.
사랑하는 남자, 나의 연인. 행성을 멸망시킬 힘을 가졌으면서도 제게만은 한없이 약한 사랑스러운 사람.
그런 그를 어떻게 싫어할 수 있을까.
“무서워하지 마. 내 눈치 보지 마.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난 당신을 사랑해. 당신도 마찬가지잖아.”
“당연하지.”
리제가 서라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동안 홀로 얼마나 마음을 삭였는지, 어깨가 조금씩 젖어 들기 시작했다.
“윤리제.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어. 저승에서 당신의 혼을 데려와 다시 살린 후부터 당신은 내 거고, 난 절대 내 걸 놓는 사람이 아니니까. 감추지 말고 나에게 네 전부를 보여줘. 그럴수록 난 널 더 사랑할 거야.”
“너 없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어.”
고개를 든 리제가 서라를 바라보며 환히 웃었다. 눈물 젖은 미소가 참 아름다웠다.
“무슨 소리야? 날 만나기 위해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거지.”
“……그러네.”
정말 너는 못 당하겠다며 리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 자락의 고민을 겨우 떨쳐 낸 리제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서라에게 입을 맞췄다.
차가운 겨울바람도 내내 그리움을 삭여야만 했던 연인의 열기는 식히지 못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서로의 모든 것을 탐했다.
“저것 봐. 벌써 해가 뜨려고 해.”
진득했던 열락이 끝나고, 두 사람은 서로의 보드라운 맨몸을 끌어안았다. 리제는 이불을 당겨 한 몸처럼 붙은 몸을 감쌌다.
천천히 밝아 오는 빛이 그런 두 사람을 비췄다.
어느덧 밤이 지나고 새로운 해가 찾아왔다.
새해의 첫 일출이었다.
“새해 복 많이 받아, 리제.”
“이미 밤새 많이 받은 것 같은데. 서라, 네가 내 복이잖아.”
리제의 짜릿한 말에 서라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건 리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라야.”
“으응?”
새해도 됐겠다, 또 복을 나눠 주기 위해 리제의 가슴을 더듬던 서라가 고개를 들었다.
하. 얼굴도 이렇게 야하고 예쁘고 혼자 다 하는데, 몸까지 완벽한 건 반칙 아닌가. 심지어 항상 자신을 기쁘게 하는 몸의 중심 어딘가도 훌륭했다.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뭐 하나 뺄 것 없이 완벽한 연인이다.
“네게 줄 거 있어.”
“으응, 지금?”
“응. 하고 싶은 건 조금만 이따가 하자.”
아쉬웠지만, 가슴을 만지며 들을 얘기는 아닌 것 같아 서라는 힘겹게 손을 뗐다.
뭐, 항상 하얗기만 하던 남자가 새해 첫 일출에 불그스름하게 물든 걸 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우린 약속하지 않아도 평생 함께하겠지만, 그래도 난 욕심이 많아서 좀 더 확실한 형태가 있었으면 좋겠어.”
리제의 말에 서라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평생 함께하자는 말은 입버릇처럼 하지만, 이건 또 평소와 뉘앙스가 달랐다.
“내가 네 것이고, 네가 내 것이라는 걸 모두가 알 수 있는 확증이.”
“……리제.”
설마, 설마 하는 순간 리제가 서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곧 흉터 가득한 손바닥 위로 짙은 녹색의 작은 상자가 나타났다.
딱 반지가 들어 있을 법한 사이즈의.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서라의 앞에서 리제는 찬찬히 상자를 열었다. 휘황찬란한 빛과 함께 나타난 반지에 서라가 숨을 삼켰다.
“가문의 가보야. 가주만이 낄 수 있는 반지.”
나뭇잎 모양으로 세공된 엄지손톱만 한 에메랄드가 눈에 띄는 반지였다. 얇은 금이 그 주변을 마치 나뭇가지처럼 감싸고 있어, 꼭 한여름의 나무를 떠오르게 했다.
서라가 살면서 본 반지 중 가장 아름다웠다.
“가, 가주의 반지인데 왜 이걸 내가 껴? 네가 껴야 하는 거 아냐? 가문에 남은 사람은 당신 하나잖아.”
너무 예뻐서 탐이 났지만, 한 자락의 이성이 그녀를 멈춰 세웠다.
그러나 리제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네 거니까, 네가 이걸 가져야지.”
“…….”
우문현답이다. 아니, 뭔가 이상한데 하여튼 리제가 그렇게 말하니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서라가 혼란스러워하며 이 반지를 정말 자신이 껴도 되나 고민되어 쳐다보고만 있자, 리제가 웃으며 또 하나의 상자를 꺼냈다.
“난 이걸 낄 거야.”
그 안에서 나온 반지 역시 가주의 반지만큼이나 화려했다. 물방울 모양 에메랄드에 자그마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는 확실히 리제와 잘 어울렸다.
“이건 어떤 반지인데?”
“가주의 아내가 끼던 반지.”
“…….”
“나는 네 거고, 너는 내 거니까 당연히 내가 이걸 끼는 게 맞지.”
보통은 반대 아닌가. 리제는 정말 이걸로 괜찮은 걸까.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저를 바라보는 리제의 얼굴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서라는 더 이상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사실 그녀가 봐도 가주의 부인이 끼는 반지는 자신보다 리제에게 더 어울리긴 했다.
혹시 리제는 그것도 염두에 둔 게 아닐까?
“껴 줘.”
휘몰아치던 생각을 삽시간에 날려 버린 건 리제의 한마디였다.
손을 내밀며 요구하는 모습에 침을 꼴깍 삼킨 서라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리제의 왼손에 반지를 껴 주었다.
흉터가 가득한 하얀 손이지만, 다이아몬드가 박힌 에메랄드 반지는 그와 그림처럼 잘 어울렸다. 어쩐지 숨이 턱 막히는 느낌에 서라는 몇 번이나 그의 손을 매만졌다.
“그런데 여자용인데 왜 손에 딱 맞지?”
“네가 오기 전에 내가 사이즈 다 조절해 뒀어.”
치밀한 사람 같으니라고.
그제야 긴장감을 놓고 웃음을 되찾은 서라는 리제가 그랬듯 그에게 제 손을 내밀었다.
나무를 형상화한 듯한 반지가 서라의 왼손 약지에 자리잡았다. 보석이 너무 커서 걱정한 게 무색하게도 처음부터 그녀의 것인 양 꼭 잘 어울렸다.
마치 리제가 자신의 것인 것처럼.
“……좋네.”
서라는 반지를 나눠 낀 제 손과 리제의 손을 번갈아 보았다.
왜 진작 반지를 맞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기쁠 줄 알았더라면, 리제가 괜한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았더라면 진즉 할걸.
“나도 좋아, 서라야.”
리제는 그런 서라의 손을 꽉 잡고 손등에 키스했다. 이어 손가락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다가, 마지막엔 그녀가 가진 자신을 상징하는 반지에 입술을 내렸다.
“정말로 좋아.”
이로써 자신은 완전한 서라의 것이 되었고, 서라는 자신의 것이 되었다.
행복이 가슴을 물들였다.
“영원히 함께하자, 서라야. 날 떠나지 마. 네가 떠나면 내 세상은 무너지니까.”
리제가 더없이 행복한 얼굴로 애원했다. 서라가 소망하는 말을.
“나도 마찬가지야. 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도, 날 괴롭게 만들 수 있는 사람도 너뿐이야. 그러니까 어디 가지 말고 영원히 나와 함께해.”
“응. 사랑해, 서라야.”
“나도 사랑해, 리제.”
이마를 맞대고 사랑을 속삭이던 두 연인은 곧 제자리를 찾아가듯 서로의 입술에 키스했다.
뜨겁게 닿아 오는 연인의 체온과 그와 반대되는 반지의 서늘한 감촉이 온몸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서로를 향한 사랑이 너무 크고 무거워 어쩔 줄을 모르겠다.
평생 이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겠지. 영원히, 그들의 생이 허락하는 한 계속.
아,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무게였다.
-외전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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