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
제 1화
공무원입니다 – 1
5년 정도 전의 일이다.
“누구세요?”
“꺄아아아아악! 도련니이이임!”
“의사, 당장 의사 다시 불러!”
“도련님, 괜찮으세요? 제가 손가락 몇 개 폈는지 보이세요?”
자고 일어났더니 처음 보는 방 안에 있어서 한 번, 처음 보는 사람들이 둘러싸서 내려보고 있어서 두 번, 누구냐고 묻자마자 격렬한 호들갑이 터져서 세 번. 불과 5초의 시간 동안 세 번의 충격이 화려하게 나를 감쌌고, 그게 내 빙의 인생 첫 기억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고막이 쩌렁쩌렁 울리는 것 같기는 한데, 그럴만한 일이었으니 지금에 와서는 조금 미안할 정도였다. 가문의 장남이 낙마로 쓰러졌다가 처음으로 하는 말이 기억상실이 의심되는 말이면 당연히 기겁했겠지. 내가 거기서 조금만 더 어기적거렸으면 시종이나 시녀 몇 모가지는 책임을 짊어지고 날아갔을 거다.
“정말 괜찮으신 거 맞죠…?”
“괜찮다니까. 잠깐 어지러워서 그랬어.”
다행히 바로 원래 몸 주인의 기억이 우르르 몰려와 단순 해프닝 정도로 마무리 짓고 전부 방에서 내보낼 수 있었다. 자신을 모시는 시종과 시녀를 지키기 위한 원래 주인의 염원이었는지, 아니면 날 여기에 처박은 누군가의 아량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후자는 아닐 거다. 그런 아량이 있는 놈이면 애초에 날 여기에 처박지도 않았겠지.
“왜 나지…?”
회귀, 빙의, 환생, 통칭 회빙환. 처음 등장했을 때는 신박한 소재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없는 소설을 찾기 힘들어진 대표적인 요소. 그리고 나는 회빙환 중 빙을 맡게되었다. 와! 정말 신난다!
문제는 내가 왜 당당한 회빙환 삼대장 중 일좌를 담당하게 된 건지 모르겠다는 거다. 하꼬 소설을 홀로 완결까지 따라가지도 않았고, 작가의 드리프트에 5700자 아가리 딜을 꽂아넣지도 않았고, 갑자기 모니터가 찬란히 빛나거나 트럭에 치이지도 않았다. 자고 일어났더니 여기였고, 이 세계였다.
거기까지는 뭐, 이해할 수 있다고 치자. 사실 빙의라는 현상 자체가 불합리하고 급작스러운 일이니까 왜 빙의했는지 추리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다른 빙의 주인공들은 뭐 자기 의지로 빙의했나.
‘적어도 열성독자를 넣어줘야 되는 거 아니냐.’
정말 문제는 내가 모르는 작품에 빙의했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알긴 알지만 제대로 보지 않은 작품이었다. 영애님은 사랑… 뭐더라? 아무튼 대충 그런 제목의 로판이었는데. 먹을 것을 찾는 누렁이 마냥 사이트를 떠돌다 인기작을 웹툰 런칭 했다길래 무료분만 찍먹하고 바로 뱉었다.
딱히 취향에 맞지 않았고, 직후에 다른 볼만한 작품을 찾아서 금세 잊은 작품이었다. 시바 이럴 줄 알았으면 완독했지.
내용도 모르는 작품에 빙의한 것에 울분이 터졌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딱히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로판에서 마왕이 등장해 세상을 멸망시키진 않을 거고, 역병이나 기근이 터져 픽픽 죽어나가지도 않을 거다. 전쟁이 거하게 터지지도 않겠지. 로판은 등장인물들의 달달한 로맨스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바쁠테니까.
어? 그럼 창조주가 작정하고 개꿀 빨 수 있게 만든 세상에 빙의한 거 아닌가? 심지어 빙의한 몸은 제국 백작가의 장남이다. 푸르고도 푸른 피를 지닌 노-블 계층이다, 이 말이다. 누군지는 몰라도 빙의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인생 이지 난이도 풀렸네.”
빙의하며 얻은 기억을 정리할수록 웃음이 절로 나왔다. 몸의 원주인, 칼 크라시우스, 올해 16세. 크라시우스 가문의 장남이자 후계자. 희대의 천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친 개망나니도 아닌 그냥저냥 평범한 귀족 자제.
즉 무언가를 연기할 필요도, 변하는 모습을 열심히 보여줄 필요도 없다. 귀족으로서 해피 라이프를 즐기고 남들 정도만 하면 된다.
유일하게 거슬리는 점은 몸의 원주인은 어디로 갔느냐는 건데, 죽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니라도 내가 뭐 돌려줄 방법도 없고. 그러니 이제부턴 내가 칼이다.
그렇게 싱글벙글 신나는 이세계 해피 라이프를 즐겼다.
“우리 가문의 영화는 황실로부터 대대로 받은 은덕 덕분이다.”
딱 1년 동안만.
17세가 되는 새해를 맞이한 다음날에 가주에게 소환당한 나는 가주의 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골수 황제파 귀족이 황제와 황실에 대한 찬양을 할 때는 망설이지 않고 긍정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이 1년 동안 절실히 체감했다. 실제로 가주도 척수반사적 긍정에 만족했는지 별다른 말 없이 넘어갔고.
“본디 우리 가문은 푸른 피가 아닌 붉은 피였다. 그러나 300년 전, 아펠스 침공전에서 큰 공을 세웠지.”
“그 덕에 에이만카 대제께 작위와 영지를 하사받고 귀족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의 뒤를 이은 에이만카 2세께서는 크라시우스 가문을 제국 백작으로 삼으셨죠. 크라시우스 가문의 후계자로서 그 두터운 은덕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 잘 아는구나.”
‘매주 한 번씩 듣는 얘기를 잊으면 그게 사람 새끼냐.’
가주의 흡족한 반응에 마주 웃는 얼굴을 보이며 대충 넘겼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도 황실을 위해 더욱 정진하거라.’ 라는 말을 듣고 돌려보내겠지. 뻔하다.
“그 은덕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예?”
이건 예상 못했는데.
내 되물음에도 가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류 한 장을 꺼내들며 말을 이어갔다.
“북방에 소란이 생겼다. 감히 제국의 천하에 반발하는 어리석은 것들이 주제를 모르고 날뛰고 있지. 그러나 그 소란이 좌시할 수 없는 규모인지라 폐하께서 우려를 표하셨다.”
“안타까운 일이군요.”
“그렇지. 그렇기에 크라시우스 가문은 황제 폐하의 봉신인 제국 백작으로서 그 분의 신경을 거스르는 역도들을 뿌리 뽑는 것에 일조하고자 한다.”
“출정하시는 겁니까?”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는 가주. 크라시우스 가문은 황제의 직속 봉신인 제국 백작 중 하나, 타일글레헨 백작위를 지니고 있다. 가주가 타일글레헨 백작령에 존재하는 사병을 이끌고 북방 토벌에 일조하고자 한다면 황제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자리를 비울 자신을 대신하여 백작령 관리를 맡으라고 하는 것이 용건이겠지.
‘뭐야, 별일 아니네. 어차피 일은 집사장이 다 하잖아.’
후계자니, 백작 대리니. 그냥 적당히 도장만 찍으면 그만이다. 가주도 백작령 업무는 상당수 집사장에게 맡기고 있으니까. 갑자기 대화 주제가 틀어지기에 걱정했더니 괜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가주는 다시 한 번 주제를 틀었다.
“이제 너도 관직에 진출해도 되겠지.”
“예? 제가요?”
“그래. 17살이면 아카데미에 진학할 수도, 관직에 진출할 수도 있지 않느냐.”
“저도 백작령을 비우면 업무는 누가 보고요?”
“어차피 일은 집사장이 다 하니 괜찮다.”
그걸 네 입으로 얘기하면 안되지 이 폐급 영주야.
“자리는 알아봐뒀다. 몸만 가면 할 일은 그쪽에서 알려줄 거다.”
‘골수 황제파 새끼…’
17살에 관직 진출. 제국법으로 가능은 하다. 하지만 아카데미에 진학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그야 이제 막 성인 딱지를 단 17살 애송이가 관직에 진출해봤자 뭘 얼마나 하겠는가. 차라리 아카데미에 가서 이것저것 배우고, 같은 귀족 자제나 능력 있는 평민과의 인맥을 다지는 것이 더 이득이다.
하지만 눈 앞의 가주는 그런 거 싸그리 무시하고 장남을 관직으로 보낸다고 한다. 왜? 황제께서 심기가 불편하시니 가문의 잉여 인력을 관직에 내보내 노동력으로 삼아야지.
그리고 당당히 외치는 것이다. ‘우리 가문은 막 성인이 된 후계자가 황실과 제국에 봉사하기 위하여 관직에 진출했다!’ 라고. 뻔한 일이다. 이 양반이 무언가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하면, 그것이 황제 눈에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으니.
‘나쁘진 않… 나?’
그런데 의외로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아카데미? 빙의 전에 초중고대 논스톱으로 달렸다가 대학원에 납치되기 직전에서 탭댄스 추던 것을 생각하면 딱히 가고 싶지는 않다. 아카데미 교육도 이미 어지간한 대귀족들은 개인 과외로 떼고 오고, 인맥도 아카데미 재학 3년이 아닌 그 전이나 후에 충분히 다진다.
반면 관직은 ‘그’ 크라시우스 가문의 가주가 마련한 자리다. 개쩌는 황권을 자랑하는 크펠로펜 제국 황제의 직속 봉신인 제국 백작이자 대표적인 명문 무가. 아직 17살이니 큰 걸 바라진 않을테고, 빽이 으리으리하니 편하게 지낼 수 있을 테고… 어, 진짜 괜찮은데.
“황제 폐하를 위해 이 한몸 다 바쳐 기꺼이 봉사하겠습니다.”
그 말에 가주도 미소 짓고, 나도 미소 지었다. 서로 다른 의미에서 웃은 두 부자는 제도로 향하였다. 가주는 사병을 이끌고 북방 토벌군에 합류하기 위해, 나는 가주가 마련했다는 젖과 꿀이 흐르는(추정) 자리를 뜨듯하게 데우기 위해.
그렇게 다시 4년이 흘렀다.
“시발 그때 이 악물고 아카데미를 갔어야 했는데.”
가주가 마련한 자리는 젖과 꿀이 아닌 피와 눈물이 흐르고 통곡이 들려오는 자리였다. 4년 동안 개판 5분 전을 넘어 개판 5분 후까지 경험했었다. 그 4년은 꿀을 빨 생각에 희희낙락했던 17세 청년을 세상풍파 다 경험하고 은퇴를 희망하는 21세 어른이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장관에게 2시간이나 우렁찬 외침을 당하고 겨우 탈출했지 않았는가.
“개같은 공무원 생활 진짜.”
아카데미… 21살도 입학 받아주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