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001)
로판 속 공무원 1001화(1002/1009)
세르베트 공작 대리, 성 칼 세르베트 크라시우스 오브 타일글레헨.
어쩌다 보니 황제보다도 풀네임이 길어진 경이로운 상황에 실소가 절로 나왔다. 어떻게 일개 귀족 이름이 군주의 이름보다 길어질 수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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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성’을 빼면 황제의 풀네임과 같은 길이가 되지만, 미들네임이 붙은 판국에 성을 빼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아마 황제조차도 내 풀네임을 적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성까지 꾸역꾸역 활용할 터.
‘황제보다 긴 귀족.’
아무튼 멈추지 않는 실소 때문에 마른 세수를 했다.
사실 중요한 것은 풀네임의 길이 따위가 아니다. 트릭시의 은퇴와 내 공작 대리 등극이 일어나고 어느덧 1주. 그 1주 사이에 끔찍한 소문이 제국 사교계를 배회하고 있다.
“황제 폐하께옵서 세르베트 공작 대리에게 새로운 이름을 하사하셨다!”
바로 나에게 전승, 황금, 현명, 여명처럼 이명이 붙었다는 소문이.
물론 이렇게 될 것이라 짐작하기는 했다. 황제가 나를 ‘나만의 작은 공작’으로 취급할 게 아니라면, 공작에게 붙는 이름은 어떻게든 사교계에 퍼뜨릴 거라 생각했다.
다만 이 정도로 빨리 퍼질 줄은 몰랐다. 내가 공식적인 공작은 아닌지라, 황제도 이명 하사를 공식적으로 진행하지 않았다. 그저 내 귀에 ‘오늘부터 네 이름은 침묵이여.’ 라고 속삭인 뒤 홀연히 떠났지.
헌데 이게 무슨 일인가. 어떻게 1주─ 아니, 1주도 온전히 지나기 전에 내 이름이 침묵공이라는 소문이 제국 사교계의 핫-이슈가 돼버렸다.
“황제 폐하께옵서 궁내성 장관에게 지시하실 때, 세르베트 공작 대리를 침묵공이라 칭하셨다 하더군.”
“궁내성 내부의 의전 서열 문서, 거기에도 공작 대리 각하가 침묵공이라 기록되었다고 하네!”
“공작이 아닌 대리에게도 이명이 붙을 수 있는 건가?”
“그만큼 폐하께옵서 공작 대리를 신뢰하신다는 의미겠지! 게다가 전대 공작의 부군이자 차기 공작의 친부인데, 자격이라면 충분하지 않겠나?”
감찰성의 어느 원조 누렁이. 혹은 재무성의 근육 괴물이 친절하게 보내준 사교계의 반응.
놀랍게도 사교계에서는 내 이명에 놀랄지언정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라면 이명을 받을만하다고, 대리지만 마땅히 공작들과 나란히 할 자격이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착잡한 일이다. 귀족들 사이에서 반대 여론이 나온다면 침묵공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침묵했을 텐데.
“헌데 침묵공이라. 다른 분들의 이름과 달리 직관적이지 않구려. 솔직히 나는 공작 대리 각하께서 이명을 받는다면 검종(劍終)이나 참천(斬天)이 될 줄 알았소.”
“나는 침묵보다 적절한 것이 없다 생각하오만. 공작 대리 각하께서 관료의 길을 걸은 이후, 수많은 역신들과 외적들이 그분 앞에 침묵하셨지. 그럼에도 그분은 자신의 권세와 명예를 내세우지 않았고, 그저 묵묵히 폐하의 검으로서 활동하셨소. 묵묵히 나아가며 제국의 적을 처단하는 자. 실로 침묵공이라 불리기에 적합하지 않은가.”
“허어, 과연! 그렇게 생각하니 그보다 적절한 이름이 없군!”
심지어 이건 카토반의 가신들이 수군거리던 말이었다.
뭐? 묵묵히 제국의 적을 처단해서 받은 이름이야? 어떠한 적도 물리적으로 침묵시켰으니 침묵공이 적합해?
‘그냥 입 닥치고 일만 하라는 거잖아.’
요 1주 동안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그게 맞다. 침묵공의 침묵은 묵묵히 일하다가 죽으라는 선언이요, 어떤 황명이 내려와도 까라는 대로 까라는 의미야.
이 정도면 흑우(黑牛)공이 아닌 것에 감사함을 느껴야 할 정도다. 그놈이 공작 대리의 권위를 존중해서 침묵이라는 그럴듯한 단어를 붙인 거지, 막 나가는 놈이었다면 흑우나 노예, 도비공이 되었을 터.
‘다른 세계에 다녀온 건 난데.’
이윽고 마음으로 울었다.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의 문화를 접한 것은 나거늘. 어째 태양전 누렁이도 다른 세계에 다녀온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망할 새끼. 그 새끼 분명 검은 소 누런 소 일화나 워낭소리를 감명 깊게 본 것이 틀림없다.
“각하!”
그렇게 씁쓸히 깃펜을 만지작거리던 중. 시칠라 백작이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뭐야.’
순간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시칠라 백작은 아무리 바빠도 기본적인 예의를 어길 사람이 아니다. 내가 카토반의 혈육이 아닌 공작 대리라서 우습게 볼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노크를 생략하고 일방적으로 난입했다. 그 시칠라 백작이 동요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건이 터졌다는 일.
“무슨 일인가. 어지간한 일은 자네 선에서 해결하라고 했을 터인데.”
“그, 그것이…!”
착잡함을 억누르며 묻자 시칠라 백작은 거칠게 숨을 몰아셨고,
“공녀님들께서 울고 계십니다!”
이성이 판단을 내리기 전. 내 다리는 집무실을 뛰쳐나가 아이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울고 있다면 동요할 일이 맞다. 어떠한 일보다 우선적으로 수습해야 할 대참사야.
“가, 각하! 같이 가─”
시칠라 백작의 애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달렸다. 백작의 외침이 희미해지는 지경까지 달리고 달렸다.
마리아! 세실리아! 카틀레아! 아빠가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
세쌍둥이는 사흘 전부터 세르베트 공작성에 머물고 있었다.
카토반의 가신들과 한 약속에 따라 5살이 된 세쌍둥이는 일정 기간 세르베트에 머물러야 했고, 마침 나도 공작위 인수인계 문제로 세르베트에 있어야 하니까. 어차피 둘 다 머물러야 한다면 같은 시기에 머무는 것이 좋지 않나.
우리 세쌍둥이는 아빠랑 같이 있어서 좋고, 나는 우리 세쌍둥이랑 같이 있어서 좋고. 이 얼마나 좋은 일이야.
“오빠아아아! 쁘리드리히이이! 알리나! 뻬렌쯔! 메리이이! 보고시퍼어어!”
“율리아 어딧써어어어! 쁠로랜쓰랑 리온두! 배로니까아아!”
“엄마드으으을… 보고시퍼어어어…”
‘아.’
하지만 옹기종기 모여 앙앙 울고 있는 세쌍둥이를 보자마자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오빠와 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고, 엄마들을 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는 세쌍둥이. 보기만 해도 가슴이 찢어지고 눈물이 절로 나올 광경이다.
‘아빠만 있는 건 부족한 거니.’
이내 씁쓸한 심정으로 세쌍둥이에게 다가갔다.
나도 세쌍둥이가 다른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건 조금 위험하지 않나 고민했었다. 그러나 제도에 있는 아이들은 엄마가 옆에 있어서 잘 버티고 있으니, 세쌍둥이도 아빠가 곁에 있으면 충분히 이겨내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착각이었다. 아빠의 존재가 위안은 돼도 완벽하지는 않았어.
“우리 숙녀님들. 왜 이렇게 울고 있어?”
“압빠아아아!”
세쌍둥이를 슬며시 품에 안자 마리아가 더욱 거세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울지 마. 너희가 울면 이 아빠도 울 것 같잖아.
“집애 가고시퍼어어! 여기두 조치만, 가족뜰 보고시퍼!”
“나두! 나두!”
“나두우우우…”
뒤이은 세실리아와 카틀레아의 애원에 입꼬리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쩌지 이거. 나도 마음 같아서는 우리 애들을 제도로 보내고 싶다만, 세쌍둥이가 세르베트에 머무는 건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다.
20년에서 30년 정도가 지나면 마리아는 세르베트 공작이 된다. 세실리아와 카틀레아는 마리아의 혈육으로서 충실한 보좌관이 되겠지. 세르베트와 카토반의 명실상부한 수뇌부가 되는 것이다.
헌데 수뇌부(세르베트에서 자란 적 없음)은 곤란하잖아. 선천적으로 타고난 카토반의 피도 중요하나, 후천적인 환경도 중요한 법이니.
“각하.”
이 가슴 아픈 참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세쌍둥이의 방으로 들어온 시칠라 백작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공녀님들의 가족애가 실로 훌륭하고 아름다울 따름입니다. 허나 각하께옵서도 아시다시피, 공녀님들을 무작정 제도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나도 잘 알고 있다. 당장 편하자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망치는 꼴이지.”
내 확답에 시칠라 백작의 표정이 복잡 미묘하게 변했다.
내가 세쌍둥이를 냅다 제도로 보내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 제도로 보내지 않으면 세쌍둥이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 이 두 감정이 복잡하게 어우러진 표정이었다.
“트릭시라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시칠라 백작을 보다가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
트릭시도 은퇴식 이후로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느라 바쁘다. 어제는 마탑에 하루 종일 있었고, 오늘은 급히 이종족 보호 구역으로 향했을 정도로.
‘…그건 또 아닌가?’
트릭시의 공백을 절절하게 느끼다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세쌍둥이는 트릭시의 이름이 아닌 오빠, 동생, 엄마들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나와 트릭시가 연합하여 세쌍둥이를 돌봤어도 결국에는 이런 일이 터졌을 거다.
“저, 각하.”
“말하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으나, 일단 가족분들을 세르베트로 초청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공녀님들이 제도로 가지 못한다면 가족분들이 세르베트에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현재로서는 가장 무난한 방법이라 씁쓸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칠라 백작의 말처럼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가족들을 세르베트에 계속 거주시키는 게 아닌 이상, 세쌍둥이의 그리움만 잠시 달래는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은 임시방편이라도 동원하여 세쌍둥이를 달래야 한다. 우리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계속 울게 둘 수는 없잖아.
“집사장.”
“예, 각하.”
“아이들은 내가 달래고 있을 테니, 마르에게 세르베트로 와달라고 전해주게. 가족들은 물론, 동물들까지 전부. 그러면 뒷일은 마르가 알아서 할 거야.”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내 지시에 시칠라 백작은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빠른 걸음조차 지양하는 귀족이 5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력 질주를 한다라. 그만큼 세쌍둥이의 존재가 카토반에게 있어 중요하다는 뜻이겠지.
“얘들아, 들었지? 조금만 기다리면 다들 여기로 올 거야. 그때 잔뜩 놀자.”
“우우웅…”
그리고 나와 시칠라 백작의 (대놓고 들으라고 한)대화에 세쌍둥이의 오열도 가라앉았다.
‘시간은 벌었다.’
덕분의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지만 아무튼 시간은 벌었다.
나중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당장 현재를 수습하는 것도 벅찬데, 미래를 내다보는 건 교만한 짓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