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003)
로판 속 공무원 1003화(1004/1009)
가족들은 다음날 아침에 제도로 복귀했지만 가족이라는 영양제를 주입당한 세쌍둥이는 다시 해맑고 팔팔한 5살 꼬꼬마들로 복귀했다.
“이참에 퍼레이드를 진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퍼레이드를?”
그리고 세쌍둥이가 공작성 이곳저곳을 우다다다 돌아다니는 사이, 시칠라 백작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예. 원래는 공녀님들께서 세르베트 생활에 더 익숙해지신 후 진행하려고 했으나, 공녀님들의 기분이 좋을 때 진행하는 것이 제일인 듯합니다.”
약간의 피로와 아찔함이 담긴 목소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시칠라 백작의 말이 옳다. 아무리 착하고 똑똑하더라도 5살 아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아이들이 필참해야 하는 행사가 있다면 미래를 기약하는 것보다 당장을 노리고 추진하는 것이 맞다.
오늘의 세쌍둥이는 울지 않지만 내일의 세쌍둥이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막말로 내일이나 모레에도 가족들이 보고 싶다며 울 수 있어.
“퍼레이드는 공작성에서 출발하여 켄느 시내를 한 바퀴 돌며 진행할 예정입니다. 아직 공녀님들이 어리시니 장기간 야외 활동은 지양해야겠지요.”
내 끄덕임에 시칠라 백작은 더욱 자세한 계획을 설명했다.
켄느는 세르베트 공작령의 중심지이자 제국 10대 도시 중 하나. 세르베트를 장악하려면 켄느부터 장악해야 하니, 우리 세쌍둥이의 데뷔 장소로는 딱이다.
다만 시칠라 백작이 하나 착각하는 점이 있다면,
“켄느가 아니라 세르베트 전체를 돌아도 아이들은 끄떡없을 테니 걱정 말게. 오히려 아이들을 돌볼 우리가 문제지.”
“아.”
어린아이와 어른의 체력을 비교하면 후자가 처참하게 패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세쌍둥이는 셋이라 그런가, 개개인의 체력이 일반적인 아이들 체력의 3배 정도인 것 같더라고. 덤으로 세쌍둥이가 한 장소에 뭉치면 3배에다가 다시 3배를 해야 하고. 이 얼마나 아찔한 일일까.
‘내가 아니었으면 아무도 못 버텼어.’
만약 이 아빠가 평범한 사무직이었다면 세쌍둥이의 체력을 버티지 못했겠지. 이게 다 대륙 제일 검의 압도적인 능력 덕분이야.
더욱 공포스러운 점은 셋 중에 카틀레아의 활동력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라서 이 정도라는 거다. 정령왕들의 축복으로 인해 잠이 많았던 카틀레아고, 부작용에서 벗어난 지금도 그때의 버릇 때문인지 활동적인 놀이보다는 정적인 놀이를 조금 더 선호하잖아.
카틀레아마저 두 쌍둥이 언니들 같았다면 얼마나 환장─ 아니, 환상적이었을까.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미래라 다행이다.
“그러니 우선은 자네 말처럼 켄느 내에서 퍼레이드를 진행하고, 다른 도시들은 차후 하나씩 돌아다니도록 하지.”
“실로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빠르게 허리를 숙인 시칠라 백작은 옆구리에 끼고 있던 종이에 무언가를 휘갈기기 시작했다.
‘명령 체계 확실하네.’
그런 시칠라 백작을 보다가 내 바로 옆에 앉아있던 트릭시를 힐끗 바라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셨던, 무려 100년이 넘게 군림했던 전대 공작이 바로 옆에 있음에도 시칠라 백작은 철저히 나하고만 대화를 했다. 오직 나에게만 보고를 일리고, 내 대답에만 귀를 기울였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당연한 일이지만 사람이 어디 이성으로만 움직이던가. 감정이 아주 티끌만큼이라도 남아있다면 자연스레 트릭시의 눈치를 볼 텐데, 이렇게 철저히 나만 볼 줄은 몰랐다.
‘역시 공작령 2인자.’
흐뭇하다. 타일글레헨의 집사장, 위리디아의 집사장, 레온 쪽 영지들을 담당하는 집사장도 훌륭하기 짝이 없거늘. 내가 상사 복은 파멸적이지만 부하 복은 잘 타고났구나.
아니지. 부하들도 감찰부 출신 간부들은 파멸적이니, 그냥 가신 복을 잘 타고났다고 치자.
“아, 각하.”
“말하게.”
“공녀님들을 영민들 앞에 선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롭게 세르베트를 이끌어 갈 대리 각하의 존안을 보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 말에 머쓱히 웃고 말았다.
민망하지만 그 또한 필요한 절차기는 하다. 나도 에리히에게 레온 왕국에 있던 후작령 하나를 준 후, 영주니까 가서 얼굴 좀 비치라고 하지 않았던가. 덕분에 에리히는 후작령의 영민들 앞에서 손을 흔들고 시가행진까지 했었지.
부족하고 부족한 동생마저 타국 후작령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니 자국 공작령을 위해서라면 그와 비슷하거나 능가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트릭시도 옆에 있는 게 좋겠지?”
“예. 카토반의 큰어른이시자 각하의 부인이시고, 차기 공작이 될 분의 어머니 아니십니까. 빠진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입니다.”
교과서에 나올 듯한 완벽한 대답이라 감탄을 토할 뻔했다.
트릭시의 권위와 위치를 강조하면서도 은근슬쩍 전대 공작이라는 단어, 그를 유추할 표현은 전부 배제했다. 내가 카토반 가신들을 이전부터 보고 지내지 않았다면 ‘혹시 트릭시가 공작일 때 불만이라도 있었나?’ 라고 오해했을 정도로.
그래서인지 이미 MAX에 이르렀던 시칠라 백작을 향한 신뢰도가 더욱 올랐다. 대충 더블 MAX 상태라고 치자.
“그럼 최대한 빠르게 준비하게. 영민들도 갑작스러운 대리 등극에 혼란스러울 텐데, 차기 공작의 얼굴을 봐야 안심하지 않겠나.”
“영민들을 생각하는 각하의 마음씨가 이리도 아름다우니, 실로 감격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렇게 말한 뒤 집무실로 돌아가는 시칠라 백작의 뒷모습은 매우 홀가분해 보였다.
어째 켄느 내의 길이란 길은 전부 돌아다니는 퍼레이드가 될 것 같다.
“신기하구나.”
“트릭시?”
“저 아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모시는 걸 보게 될 줄이야. 설마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
괜히 뭉클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트릭시의 허리를 껴안았다.
아쉬움이나 쓸쓸함은 아니었다. 시칠라 백작의 충성이 자신이 아닌 남을 향했다는 것에 언짢아하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트릭시 스스로가 한 말처럼 예상치 못한 광경을 보게 돼서,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순간이 찾아와서 복잡한 감정이 드는 거겠지.
“우리가 물러나도 걱정할 게 없으니 좋지 않아? 내가 대리직에서 물러나 마리아가 공작이 돼도, 우리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마리아만 섬길 테니까.”
내 말에 트릭시의 귀가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손에 넣어서 아무것도 부럽지 않을 트릭시다. 그런 트릭시가 유일하게 걱정할 문제가 있다면 세쌍둥이의 미래뿐인데, 미래도 제법 튼튼할 확률이 높으니 기쁠 수밖에.
“물론 마리아가 공작이 될 즈음이면 다른 사람이 집사장이겠지만.”
“그렇겠지. 아무리 빨라도 집사장이 70은 넘어야 새로운 공작이 즉위할 테니.”
나와 트릭시의 시선이 동시에 정면으로 향했다. 더욱 정확히는 시칠라 백작이 사라진 방향으로.
우리 집사장.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0살만 젊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부디 차기 시칠라 백작도 현 시칠라 백작처럼 유능하고 듬직한 사람이기를.
시칠라 백작을 위시한 가신들의 열정적인 야근으로 인하여 카토반 가문(+ 부군 하나)의 퍼레이드 준비는 이틀 만에 마무리되었다.
공작가의 위신과 안전 문제, 켄느 시내 통제 문제를 고작 이틀 만에 해결한 것이다. 이건 가신들이 내 대리 등극 이전부터 퍼레이드를 준비했다고 볼 수밖에 없어.
물론 그걸 감안해도 이틀 컷은 어마어마한 기록이지만. 나도 타일글레헨에서 퍼레이드를 준비한다고 하면 며칠 정도 걸릴 텐데 말이야.
“얘들아. 우리 산책 나갈까?”
아무튼 이틀 사이에 초췌해진 안색으로, 그러나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퍼레이드 준비가 끝났다고 말한 시칠라 백작을 치하한 후. 오순도순 모여있던 세쌍둥이에게 손짓했다.
“산책?”
“어디루가? 아빠랑 엄마두 가는거?”
“다 가치 가는게 조아~”
“그럼. 아빠랑 엄마랑 마리아랑 세실리아랑 카틀레아랑. 다 같이 가는 거야.”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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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산책 선언에 세쌍둥이는 활짝 웃으며 달려왔다.
그리고 달려온 세쌍둥이를 그대로 마차까지 인도했다. 천장이 막힌 일반적인 마차 대신에 지붕이 열려있는 오픈형 마차로.
이래야 우리 사랑스러운 세쌍둥이의 모습을 영민들에게 더 자세히,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다. 만약에 대비하여 마법도 아주 빼곡하게 둘러두었으니 전복 사고나 저격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이 마차! 신기해! 위가 업써!”
“근대 엄청 널버! 엄청 커!”
“말들이랑두 가까워.”
그렇게 오픈형 마차에 탑승한 세쌍둥이는 마차 안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호기심을 불태웠다.
확실히 일반적인 마차와 비교하기에는 특이한 점이 많은 마차다. 과장 좀 보태면 작은방 하나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니 얼마나 신기하겠어.
이런 대형 마차를 끌어야 할 말들이 조금 안쓰러웠으나, 마차에 경량화 마법을 걸었거나 말들에게 근력 향상 마법이라도 걸었겠지. 제국 제일의 마도 명가가 지배하는 영지니 그 정도 조치는 취해져 있을 거다.
“엄마! 엄마두 이거 타! 이거 신기해!”
뒤이어 트릭시도 성에서 나와 마차를 향해 걸어왔다.
눈을 반짝이며 엄마를 찾는 세쌍둥이를 보니 내가 다 흐뭇했다.
***
누군가 나에게 조국을 묻는다면 당연히 크펠로펜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어디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크펠로펜인이 아닌 세르베트인, 혹은 켄느인이라 답할지도 모르겠다.
80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나는 이 켄느에서 살아왔다. 한 번도 다른 영지에 가본 적이 없고, 이 켄느조차 몇 년에 한 번 벗어날까 말까였지.
그렇기에 내 정체성은 이 세르베트다. 과거의 황제 폐하들께서 이상한 행동을 보이셔도 굳건했던 세르베트 사람이고, 100년이 넘게 군림하신 마종공 각하의 영민이다.
그러한 내 정체성이 흔들리는 일이 생겼다. 바로 우리의 중심, 우리의 기둥, 우리의 자랑이신 마종공 각하께서 은퇴하신 것.
‘이 늙은이가 죽기 전까지는 당연히 각하의 치세일 줄 알았는데.’
당혹스러웠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공작이신 분이 갑자기 물러나시다니. 각하가 물러나는 것보다 이 늙은이가 죽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거늘.
그나마 그분의 뒤를 잇는 자가 각하의 부군이신 분이고, 공녀님들이 장성하고 나면 즉시 공작위를 계승한다고 하셨다. 당황스러울지언정 불안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허전함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내 인생에서 당연했던 요소가 사라졌으니.
“오… 오오오…!”
하지만 그 허전함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저 멀리 보이는 공작성에서 빠져나온 거대한 마차. 지붕이 없고 벽도 낮아서 내부가 보이는 마차.
그 안에 안아있는 마종공 각하와 부군 각하. 그리고 마종공 각하를 똑닮은 세 여아.
‘저분들이…!’
다 늙은 놈이 추하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 저분들이구나! 저분들이 우리 세르베트의 자랑, 카토반의 보물인 공녀님들이시구나!
‘어찌 저리 천사 같을꼬!’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시는 천사님들의 모습에 눈을 감고 말았다.
이 늙은 몸이 100살까지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내 저분들이 공작이 되는 건 보고 죽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