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005)
로판 속 공무원 1005화(1006/1009)
대륙 역사상 최초의 중계방송으로 기억될 세쌍둥이의 퍼레이드.
세르베트 전역의 대도시와 주요 거점에 나타난 세쌍둥이의 모습은 영민들의 지지도를 하늘 높이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특히 이 중계방송이 마법의 힘, 트릭시의 발명품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어마어마한 가산점이었다. 세르베트 공작령은 초대 세르베트 공작인 설검공 때부터 마법적으로 발전한 지역이고, 역대 세르베트 공작들도 마법적 소양이 깊었지. 덕분에 세르베트의 영민들은 마법에 대한 호감도, 마법 특화 영지 세르베트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한 편이다.
헌데 사랑스럽고 친애하는 공녀님들의 모습을 마법 덕분에 멀리서도 볼 수 있다? 이건 영민들의 입꼬리가 올라가다 못해 찢어질 일이야.
‘마종공은 은퇴했지만 마종은 여전하구나.’
세쌍둥이와 놀아주고 있는 트릭시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세르베트 공작 트릭시의 시대는 지났으나 마종공 트릭시의 위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니 이런 훌륭한 발명품이 나온 거겠지.
심지어 트릭시 말로는 영민들을 환호하게 만든 이 경이로운 발명품이 막 만들어진 시제품이며, 아직 개선의 여지가 많은 물건이라고 한다. 앞으로 몇 년 정도가 지나면 어떤 물건이 튀어나올까 기대가 될 정도야.
“마종공 각하 덕분에 큰 시름을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과거 설검공 각하께서는 해결하지 못할 난제가 있다면 그건 마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거라 하셨는데, 그 말씀이 실로 옳았군요.”
‘그건 뭔.’
그렇게 네 모녀를 흐뭇하게 보던 중, 시칠라 백작의 감격 어린 목소리에 실소를 흘릴 뻔했다.
난제가 있다면 그건 네 마법 능력이 부족해서 생긴 난제라니. 이 얼마나 마법 만능주의스러운 발언이란 말인가.
허나 설검공은 당대 최고의 논객이자 지략가이며 마법사로 이름 높았던 괴물. 그 양반이라면 충분히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 실제로 설검공은 천명대전 및 제국 건국 초창기의 소란을 가뿐하게 이겨낸 능력자이니.
“그분의 가르침이 3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훌륭히 이어졌기에 오늘의 기쁨도 있는 거겠지.”
해서, 조금 미묘한 말이기는 해도 일단은 동의를 표했다. 굳이 감격에 겨운 시칠라 백작의 감상을 방해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보다 이걸로 퍼레이드는 끝난 건가?”
“예, 각하. 세르베트 내 주요 도시는 전부 방문했으니, 후보군을 중소도시까지 넓혀야 다음 퍼레이드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허나 중소도시에서도 퍼레이드를 진행하려면 네 달에서 반 년 정도의 시간이 소모될 겁니다.”
“그럼 이걸로 끝내는 게 좋겠군.”
시칠라 백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정도 돌아다녔으면 할 만큼 했다. 이 이상 퍼레이드를 지속하려면 주요 도시가 아닌 그 아랫급 지역도 방문해야 하는데, 그러면 방문해야 할 곳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렇다고 어디는 방문하고 어디는 패싱하면 괜히 차별 논란이나 터질 터.
“그동안 고생 많았네. 사흘 단위 퍼레이드라는 강행군을 잡음 하나 없이 마무리하다니. 자네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야.”
“과찬이십니다, 각하. 이것이 어찌 저희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일이겠습니까. 다 공녀님들을 향한 영민들의 존경 덕분에 아름다운 질서가 만들어진 것이지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도 시칠라 백작도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5살인 아이들, 이제 막 얼굴을 보인 아이들이 존경을 받아봤자 얼마나 받는다고 그런 말을 하나. 존경보다는 아이돌을 향한 열광이라고 보는 게 낫지.
그래도 가신이 주군 가문에게 영광을 돌리는 건 일상적인 일. 짧은 웃음 끝에 시칠라 백작의 어깨를 토닥이며 치하를─
‘음?’
품속에 있던 통신구가 빛을 내뿜었다.
“허면 각하. 전 이만 물러나보겠습니다.”
“아, 그러게. 다시 말하지만 수고 많았어.”
빛을 본 시칠라 백작이 눈치껏 자리를 비키려고 하기에 순순히 보내줬다.
가족이 보낸 연락이든, 아니면 공적인 업무로 온 연락이든 시칠라 백작이 들을 필요는 없다. 전자는 철저한 사생활 문제고 후자는 세르베트와 무관한 연락일 테니.
“세르베트 공작 대리, 칼 세르베트 크라시우스 오브 타일글레헨입니다.”
– 공작 대리 각하. 미천한 장관 나부랭이가 각하께 드릴 말씀이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그리고 통신구를 작동하자마자 시칠라 백작을 보내준 걸 후회하고 말았다.
“…편히 말씀하십쇼. 각하는 뭔 각하입니까.”
– 편히라니요. 어찌 일개 장관이 각하를 함부로 대하겠습니까. 제국의 법도가 지엄한데 말입니다.
온갖 호들갑을 떨며 고개를 숙이는 재무성 장관.
내가 공작 대리에 등극한 이후로 가장 열정적으로 놀리는 양반의 연락이었다.
제국 의전 서열 최상위권은 당연하게도 리브노만이 독점하고 있다.
우선 1위는 말할 것도 없이 황제이며, 2위는 황제의 배우자 중 가장 으뜸에 서는 자다. 현시점에서는 황후가 제국의 법적 2인자지. 그리고 3위는 보통 황비가 차지하지만, 현 황제에게 황비는 없으니 공석이다.
그렇게 황제 부부가 1, 2, 3위를 차지하면 차기 황위 계승자, 차기 계승자의 반려, 황자, 황녀, 황자와 황녀의 반려 순으로 의전을 받으나, 오늘날에는 제국 역사상 최초로 상황이 등장한지라 황제 부부와 자식들 사이 서열에 상황이 존재한다.
여기까지는 누구도 의문을 가지지 않는 당연한 의전 서열. 진짜 문제는 이다음부터 시작된다.
‘직계 황족과 배우자 다음은 5공작이 온다.’
황제의 동생이나 조카, 숙부나 고모 정도의 가까운 혈육이라도 직계가 아니라면 5공작보다 아래다. 당장 아인테르도 상황의 양위 이후로는 저 아래로 의전 서열이 내려가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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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주제에 공작 다음에는 후작이 오지 않고 궁내성 장관, 제국의회 의장, 제국 수석 대법관이 서열을 차지한다. 철저하게 작위 순으로 배치한 것도, 그렇다고 직책 순으로 배치한 것도 아닌 기묘한 서열이다.
아마 제국이 막 건국돼서 이래저래 혼란스러웠을 당시. 확실한 근황파인 공작과 최고위 공무원의 서열을 드높여 황제의 방패로 삼기 위함 같은데, 아무튼 이 공작 우대 서열로 인한 피해는 명확했다.
“이거 갑작스레 각하를 뵙게 되어 영광스럽고도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제가 각하를 귀찮게 한 건 아니겠지요?”
행정부 정점인 궁내성 장관조차 5공작보다 아래라 재무성 장관과 5공작의 서열 차이는 어마어마하다는 것. 덕분에재무성 장관이 의전 서열상으로는 나에게 깍듯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까놓고 말하면 나한테만 문제가 되고 나한테만 치명적인 피해다. 5공작가 족보에도 없던 내가 과분한 자리에 올라서 생긴 참사야.
“지금 그 태도가 제일 귀찮습니다.”
그렇기에 고통스럽다. 세르베트 공작성에 온 이후로 계속 굽신거리는 저 양반이, 허리는 유연하면서 입꼬리는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 저 양반이 너무 밉다.
누가 봐도 의전 서열 때문에 깍듯한 것이 아니라 놀리기 위해 의전 서열을 따르는 모습이잖아. 막말로 재무성 장관은 진짜 공작들 앞에서도 저렇게 굽신거린 적이 없는데.
“크흐흫… 제가 각하의 심기를 어지럽히다니. 당장 사직서를 제출하고 야인으로 물러나야 할 중죄로군요.”
이내 재무성 장관도 웃음을 참기 어려웠는 듯, 어깨를 들썩거리며 기괴한 사과를 했다.
망할 인간. 사과를 하려면 나한테 이득이 되는 행동을 해야지, 왜 자기한테 이로운 행동을 하는 거냐. 어딜 감히 장관 주제에 퇴직을 하려고.
“뭐, 그렇게 싫으면 편하게 말하마. 어차피 너랑 나밖에 없고.”
“그러십쇼. 이제 와서 서열 따지는 것도 귀찮습니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시종장이 두고 간 찻잔을 입에 댔다.
아직 용건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벌써 기력이 바닥났다. 아주 귀찮고 끔찍한 손님이 따로 없어.
“각하께서─”
“편하게 말한다면서요.”
“너 말고 다른 각하, 새끼야. 세르베트에 각하가 너 하나뿐이냐?”
반박할 수 없는 지적에 침통히 입을 닫았다.
그렇지. 나 말고 트릭시도 각하기는 하지.
“아무튼 각하께서 독특한 마도구를 발명하셨다고 들었다. 기존 통신구에 변형을 준 물건이라던데?”
“아, 예. 차이점이 제법 있지만, 일단 통신구 기반이기는 하죠.”
무얼 말하는 건지 뻔해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통신구에 변형을 준 트릭시의 발명품. 누가 들어도 퍼레이드 중 사용했던 중계방송 스크린을 말하는 거다.
“그거 쌍방 소통이 아니라 일방 소통만 가능한 거지?”
“아마도요? 쌍방 소통이 가능하면 그건 그거대로 곤란합니다. 도시 전체의 소음이 그대로 건너오는 거니까요.”
내 대답에 재무성 장관은 슬며시 눈을 감으며 턱을 매만졌다.
“그거 잠깐 구경할 수 있겠냐?”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용건을 꺼냈다.
발명품 얘기를 꺼냈을 때부터 짐작한 부탁이라 놀랍지는 않았다. 그저 재무성 장관이 중계방송 스크린을 어디다가 쓰려고 이런 부탁을 하는 건가, 그게 의문인 거지.
“마침 트릭시가 손보고 있는 중입니다. 더 궁금한 게 있으면 트릭시에게 직접 물으면 되겠네요.”
물론 자세한 설명은 물건부터 보여주고 들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부탁을 하러 온 순간부터 급한 건 재무성 장관이니, 내가 아니니까.
갑작스러운 발명품 관람 요청에 트릭시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친절하게 도슨트 역할을 해줬다.
트릭시가 마법의 정점에 오른 것은 타고난 재능뿐만 아니라 피와 눈물이 흐를 정도의 노력, 마법에 대한 강한 흥미 덕분이지. 그러니 자신이 만든 발명품을 남에게 설명하는 건 즐거운 일일 거다.
“지금은 통신구 하나당 천 하나를 통제할 수 있지만, 언젠가는 통신구 하나로 복수의 천을 통제하는 것이 목표지요.”
“호오, 과연. 그게 가능하다면 효율이 몇 배로 뛰겠군요.”
재무성 장관도 트릭시의 열정적인 해설에 연신 감탄을 토했다.
솔직히 진심으로 감탄하기보다는 전직 공작의 설명에 척수반사적인 리액션을 출력하는 것 같지만, 누구라도 재무성 장관 입장이라면 저랬을 테니 이해한다.
“허면 각하. 각하께옵서 말씀하신 목표에는 언제쯤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이르면 올해 말, 늦으면 내년 중순 정도?”
“그렇군요.”
그러자 재무성 장관은 빤히 스크린을 바라봤고,
“혹시 지금 단계에서도 양산이 가능합니까?”
진짜 목적을 입에 담았다.
물량 확보라는 상당히 자본주의적인 목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