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006)
로판 속 공무원 1006화(1007/1009)
중계방송 스크린을 보기 위해서 재무성 장관이 세르베트까지 행차했다.
대리인을 보내는 방법이 있고, 아니면 재무성으로 샘플 하나 보내달라고 할 수 있음에도 본인이 직접.
‘그 정도 가치가 있나?’
트릭시가 들고 있는 천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물론 저게 유용한 발명품이라는 건 인정한다. 당장 나와 가신들부터 저 스크린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났고, 통신구 하나당 복수의 스크린을 제어할 수 있다면 활용도는 더더욱 상승한다. 이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제 막 만들어지고, 단 한 번 사용한 시제품이며, 발명인 트릭시도 ‘이거 더 손봐야 할 듯’이라고 평한 물건을 위해 재무성 장관이 온다? 그것도 제도 바깥으로 출장까지 하면서?
‘수지 타산이 좀.’
아무리 생각해도 과한 행보다. 전대 공작의 발명품이니 예의를 갖춰서 요청한다고 쳐도 너무 과해.
게다가 양산이 가능하냐고 묻는 것도 이상하다. 개량품이나 최종본도 아닌 시제품을 양산해서 어디다가 쓰려고 그러는 거냐.
“설비를 마련하면 가능은 하지만, 권하고 싶은 방법은 아닙니다. 생산 설비를 마련할 즈음이면 개량한 물건이 나올 것 같으니까요.”
트릭시도 재무성 장관의 기묘한 요구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나마 재무성 장관이 내 오랜 상사인 데다 페디의 대부라서 권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거지,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단호히 쳐냈을 거야.
“그렇습니까.”
재무성 장관 또한 트릭시의 작은 배려에 고개를 끄덕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쉽군요. 황제 폐하께옵서 크게 흥미를 가지신 물건인데 말입니다.”
“폐하께서 말입니까?”
재무성 장관의 한탄에 본능적으로 반문을 했다.
의아한 일이다. 가만히 태양전에서 업무만 보는 놈이 갑자기 왜? 그놈이 중계방송을 활용할 일이 있나?
만약 이 스크린으로 쌍방 소통이 가능하다면 회의용으로 쓰나 싶을 텐데, 아직은 일방 소통만 가능한 물건이다. 굳이 사용한다면 단순히 공지 전파에만 쓸 수 있는 물건이야.
“그래. 정확히는 세쌍둥이의 퍼레이드를 인상 깊게 보셨지. 일반적인 퍼레이드는 한정된 장소에서 이루어지나, 이 물건을 사용하면 다른 장소의 사람들도 퍼레이드를 볼 수 있으니 혁신적인 물건이라 하시더군.”
그렇게 말한 재무성 장관은 팔짱을 끼며 침음을 흘렸다.
‘흥미라.’
그 모습에 나 또한 속으로 침음을 흘리고 말았다.
무려 ‘크게’ 흥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조금이나 다소 같은 수식어를 붙이거늘, 크게라는 수식어가 붙었다면 황제가 무엇보다 강렬히 원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직접 온 거구나.’
그제야 의문 투성이었던 재무성 장관의 행차를 이해할 수 있었다.
황제가 무언가를 원한다면 장관이고 나발이고 즉시 발로 뛰어서 확보해야 한다. 아무리 장관이 고귀해도 황제의 노예에 불과하니까.
“의외로군요. 폐하께옵서 마도구에 대한 관심이 깊으시거나 수집욕이 강한 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취미조차 보드카를 즐기는 게 유일하다시피 한 분인데, 설마 막 만들어진 마도구를 원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차라리 쌍방통행이 가능하거나 통신구 하나에 여러 스크린을 통제할 수 있다면 모를까, 현시점의 스크린은 그저 퍼레이드 원툴에 불과하다.
그 원툴 덕분에 살아남은 놈으로서 할 생각은 아니지만 현실이 그렇다. 오히려 알차게 활용한 놈인지라 누구보다 장단점을 잘 알고 있어.
“마도구 자체에는 여전히 관심이 없으시다. 네가 그 마도구를 알차게 사용해서 문제야.”
“예?”
“아까 말하지 않았냐. 정확히는 세쌍둥이의 퍼레이드를 인상 깊게 보셨다고.”
재무성 장관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저, 설마 황태녀 전하의 퍼레이드를 고려하시는 겁니까?”
이윽고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설마 그 새끼. 우리 세쌍둥이가 영민들에게 성공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해서, 영민들의 환호를 받아서 부러워하는 건가?
그렇다면 황제가 스크린에 흥미를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황제는 황태녀를 과할 정도로 아끼고 사랑해서 황태녀의 제도 외출을 최대한 지양하는 상황. 헌데 스크린을 사용하면 제도 내에 있는 황태녀를 제도 밖 백성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다.
황태녀의 안전을 확보하면서도 차기 황제의 모습을 만백성에게 보일 수 있는 물건. 리스크는 최소화하면서 리턴은 최대화하는 최고의 발명품. 황제한테는 보드카보다 시원하고 달콤하게 느껴지는 보물 아닐까.
‘딸 바보.’
조금 한심했지만 욕까지 하지는 않았다.솔직히 나였어도 딸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만인에게 자랑할 방법이 생긴다면 못 참았을 테니.
심지어 황제에게는 ‘황실 후계 구도의 굳건함과 차기 황제의 위엄을 미리 과시할 필요가 있다.’ 라는 무적의 명분도 존재한다. 리브노만은 크펠로펜 왕국 시절부터 자손이 귀한 편이었고, 실제로도 에이만카 15세의 사망으로 인해 직계가 단절되었으니까.
덤으로 상황 시절에는 황태자 자리가 오랜 세월 공백이었지. 카토반의 후계를 걱정하던 가신, 영민들처럼 백성들에게도 황실의 후계는 중요 문제다.
“고려보다는 이미 마음을 먹으셨다고 보는 게 맞겠지. 마도구를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제도 퍼레이드는 진행할 거라 하셨으니.”
재무성 장관도 그걸 알기에 씁쓸히 대답할 뿐이었다.
그렇구나. 이미 제도 퍼레이드는 확정이구나.
‘난리 나겠네.’
황태녀의 퍼레이드면 보호자인 황제와 황후는 자동 참여다. 그리고 황제, 황후, 황태녀가 참여한다면 황자와 황녀도 함께하지 않을까?
그러면 무려 다섯 명의 황족을 위해 호위를 편성하고 안전한 경로를 마련해야 하며, 그에 걸맞은 권위 넘치는 마차 또한 준비해야 한다. 제도 상공에 미친 듯이 뿌릴 꽃가루는 덤이고.
‘예산이 얼마나 필요할는지.’
나도 모르게 재무성 장관을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제도 퍼레이드는 황실의 권위와 직결된 행사니 예산을 아낄 수도 없다. 덕분에 연초부터 아주 화려하게 굴러야 하니 어찌 동정하지 않으랴.
물론 측은함 이상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나하고 관계없는 일에 과도한 감정을 쓸 필요는 없어.
“일단 세르베트에서 사용하기 위해 25개 정도는 만들었습니다. 그거라도 가져가시겠습니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 정도면 폐하께옵서도 만족하실 겁니다.”
그렇기에 트릭시에게 고개 숙이는 재무성 장관을 덤덤히 바라봤다.
위에서 까라면 까는 것이 공무원의 숙명이요, 장관 또한 결국 공무원일지니.
***
재무성 장관이 마종공의 마도구를 대여하고 돌아왔다.
그 숫자는 무려 25개. 제국 전역을 뒤덮을 정도는 아니나, 최소한의 주요 지역에 설치할 정도는 된다.
다섯 왕령과 공작령, 그리고 후작령에 하나씩. 그러면 딱 23개가 필요하지. 오히려 여유분 2개가 남을 정도야.
‘나머지 2개는 변경백령으로 보내면 되겠군.’
심지어 여유분이 2개인 것도 절묘하기 그지없었다.
마침 이 제국에는 단 두 개뿐인 행정 단위가 있지 않던가. 소르덴 변경백령이 일반 백작령으로 격하되면서 2개로 조정된 변경백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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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국경을 지키는 충신들이라면 황태녀의 얼굴을 볼 자격이 충분하다. 이 정도면 마종공이 내 마음을 읽고 미리 준비한 게 아닌가 싶어.
‘예상보다 빠르게 데뷔하게 됐어.’
그렇게 제국 지도를 바라보다가 픽 웃음을 흘렸다.
황태녀를 제도 시민들이 아닌 다른 신민들 앞에 공개하는 건 최소 3년 뒤 정도로 생각했었다. 3년 뒤면 황태녀도 10살이니, 성인은 아닐지언정 아빠 품에만 있을 나이 또한 아니니까.
헌데 10살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이 황태녀의 모습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그것도 막 만들어진 최신예 기술로.
‘보편화되기 전에 진행해야 한다.’
시작은 백작이 끊었지만 카토반 공녀들의 퍼레이드는 세르베트 내부로 국한되었다. 새로운 마도구를 목도한 사람들은 세르베트 영민들뿐이며, 대개 영지 내부의 소문이 바깥까지 퍼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모된다.
그 사이에 이 마도구로 황태녀의 모습을 과시해야 한다. 황태녀를 보는 것도 신기할 텐데, 그 방식도 직접 대면이 아닌 처음 보는 마도구라면 얼마나 흥미롭고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겠나.
‘황태녀의 존재감은 누구보다 강렬해야 한다.’
제국 역사상 어떠한 황위 계승자보다도 강렬해야 한다. 황태녀의 즉위를 보지 못할 노인들도 황태녀를 영원히 기억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에이만카 15세의 사망으로 인한 직계 단절과 역사상 최초의 방계 즉위. 흔들린 리브노만의 정통성을 우려하여 장기간 황태자 책봉을 보류하셨던 상황 폐하. 그 뒤를 이은 황제는 황후 소생이 아닌 황비 소생인 서자.
이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오늘날 황실은 권위와 별개로 정통성이 썩 튼튼하지 못하다. 압도적인 권위와 실적으로 정통성을 보강하는 판국이지.
그런 상황에서 적장녀 황태녀가 태어나 황실의 숨통이 트였으니, 우리 보물인 황태녀를 최대한 화려하고 웅장하게 알려야 한다. 이것은 아비로서의 기쁨이 아닌 황제로서의 판단.
‘황자와 황녀까지 포함하는 게 좋겠어.’
또한 퍼레이드는 황태녀 외에도 황자와 황녀도 참여하게 만든다.
다행히 우리 삼남매는 매우 우애롭고 친밀하다. 황태녀를 보필할 동생들이 누구보다 황태녀를 좋아하고 따르는 모습을 백성들에게 과시할 수 있는 기회일 터.
‘우리하고는 달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상황 폐하 아래에서 태어난 삼형제가 여러 의미로 난장판인 것과 달리, 이번 세대의 황족들은 우애롭다라. 백성들에게 있어서도 기꺼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아.’
그러다 문득 지도에 그려진 세르베트 공작령으로 시선이 향했다.
내가 어지간하면 막 공작 대리가 된 백작을 귀찮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공작위는 황위를 제외하면 무엇보다 거대하고 무거운 짐이기에.
그러나 황족들이 퍼레이드를 한다면 대부인 백작을 빠트릴 수 없다. 황태녀의 권위와 존재감을 위해서는 백작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미안하네, 백작.’
속으로 백작에게 사과를 했지만 그 이상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공작 대리도 결국은 귀족 중 하나요, 귀족은 황실과 제국을 섬기는 신하일지니.
마종공처럼 백작에게 100년 동안 쌓은 권위가 있다면 또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