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008)
로판 속 공무원 1008화(1009/1009)
미래의 2황자, 혹은 3황녀의 맹활약으로 인해 황후는 황후궁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임산부가 무리해서 대외 활동을 했다가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그만한 참사는 없다. 황태녀의 권위를 높이겠다고 직계 황족을 제물로 삼는다? 안 그래도 사람이 귀한 리브노만 황실 입장에서는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지.
물론 황제의 성품을 생각하면 리브노만의 직계가 수십, 방계가 수백이었어도 절대 황후를 오라 가라 하지 않았겠지만.
“조만간 태어나실 분은 활기차고 용맹한 무인으로 자라실 듯합니다. 얼마나 그 재능을 주체할 수 없었으면 벌써부터 단련 중이겠습니까.”
아무튼 황후의 이탈로 인해 마차에 탄 어른은 나와 황제만 있는 상황. 단둘만 덩그러니 있는 것도 민망하여 조심스레 위로를 건넸다.
간혹 엄마 뱃속에서부터 화려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아이들이 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드문 일도 아니니, 황후와 아이가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한 것도 아니다. 심지어 황궁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최고의 의료진도 대기 중이고.
그러니 ‘아이가 많이 활기차네요.’ 라는 말로 다독일 수 있는 상황이다. 아이가 허약한 것보다는 건강하고 활기찬 게 좋잖아.
“황후가 아이를 품은 것은 이번에 네 번째이나, 이렇게 활발한 아이는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럽다네. 혹시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천방지축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야.”
허나 내 위로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신의 걱정을 황태녀와 황자, 황녀가 들을 수 없도록.
거 넷 중에 하나가 과하게 활발할 수도 있지 너무 과한 걱정이 아닌가 싶지만, 동시에 황제가 무엇을 우려하고 두려워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Z2dKbDJFSCtSbEo3WFlpUEN0eDQxWFFWL2dkQmo3VHZNZmlBdG9vaGNVUzZSTlJrWndQV3Q1Y2laeThrNVhHZQ
거의 10년 동안 지옥불로 뜨겁게 지져지고 있을 2황자. 혹시라도 미래의 2황자나 3황녀가 그 슈퍼 망나니처럼 자라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겠지.
‘PTSD인가.’
하필 황제는 2황자의 패악질에 가장 많이 시달린 피해자다. 또한 2황자는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상황의 피를 이은 리브노만이고, 황후의 뱃속에 있는 아이도 리브노만이지. 일단은 2황자와 같은 피가 흐르고 있기는 하잖아.
덕분에 황제 가슴 깊숙한 곳에 있던 PTSD가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건 이성의 영역이 아닌 감정─ 아니, 본능의 영역이니 황제를 탓하기 어렵다. 황제의 심정은 오직 황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에.
“두 분께서 사랑으로 보듬으실 터인데 어찌 그런 걱정을 하십니까. 활기찬 성품은 올바른 방향을 가리킬 수 있다면 누구보다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고, 폐하와 황후 폐하께서는 이미 세 전하를 훌륭히 인도하고 계십니다. 곧 태어나실 전하도 마찬가지겠지요.”
“대부는 그렇게 생각하는가?”
“물론입니다. 또한 미처 두 분께서 챙기지 못하는 부분은 황태녀 전하와 황자 전하, 황녀 전하가 남매로서 다독일 것입니다. 이토록 우애롭고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천방지축으로 자라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막연한 위로보다는 지옥에 있는 2황자와 조만간 태어날 리브노만 막내의 환경이 매우 다르다는 걸 강조했다.
솔직히 좋은 군주기는 하지만 좋은 가장이자 아비라고 하기는 어려웠던 상황, 마찬가지로 좋은 어미는 아니었을 태후, 태후를 내세워 만행을 저질렀던 외척인 애실론, 딱히 화목하지 않았던 리브노만 삼형제 등. 2황자는 선천적인 성품도 파멸적이었지만 후천적 환경도 다이나믹했다.
반면 오늘날에는 황제와 황후 둘 다 좋은 부모다. 외척인 뉘렌 공작가는 만행을 저지르기는커녕 제국을 지탱하는 든든한 기둥이며, 먼저 태어난 꼬꼬마들도 첫째인 황태녀의 지휘 아래 일치단결하여 화목하지 않던가.
이런 환경에서 자란다면 2황자조차 갱생할 확률이 높다. 황제가 걱정할 필요는 없어.
“만약 두 분과 전하들께서도 살피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소신이 나서겠습니다. 이래 봬도 열둘이나 되는 아이들의 아비니 믿으셔도 됩니다.”
“그거 참. 너무 믿음직스러워서 웃음이 다 나올 것 같군.”
그렇게 말한 황제의 안색은 아까보다 부드러워졌다.
옆에서 열심히 다독여주니 이성이 본능을 이긴 모양이다. PTSD가 확실히 가라앉았어.
‘내가 황태녀 대부지, 이놈 대부는 아닌데.’
이윽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 미묘한 감정이 치솟았다.
황태녀와 황자, 황녀가 전전긍긍하는 상황이라면 하루 24시간을 전부 투자하더라도 달랠 의향이 넘친다. 그런데 나보다 연상인 다 큰 어른을 달래고 있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황후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진다. 원래 황제 멘탈 케어 담당은 황후거늘.
‘부디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하기를.’
속으로 황후를 위해 소소한 기도를 올렸다.
부디 리브노만 넷째의 투정이 빠르게 가라앉아서 황후가 편안해지기를. 그래야 황제의 멘탈도 건강해질 테니까.
“폐하. 이제 출발할 시간입니다.”
이윽고 마부와 대화를 나누던 황실 기사 하나가 다가와 황제에게 보고했다.
“벌써 그렇게 됐나.”
기사의 보고에 황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덧 표정도 완전히 가다듬은 것이 평소의 황제처럼 덤덤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출발하도록.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새벽부터 나와 기다리고 있는 백성들도 있다던데, 황제로서 백성들과 한 약속에 늦을 수는 없지.”
“예, 폐하.”
그러자 거대한 십두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아! 움직인다!”
“움직여! 움직여!”
“우웅, 신기해!”
세 황족의 해맑은 웃음소리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당연하지만 이 아이들이 마차라는 걸 처음 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지금 탄 마차처럼 거대하고, 지붕이 없으며, 열 마리나 되는 말이 이끄는 마차가 처음일 뿐.
사실 나도 이런 마차는 처음이다. 일개 귀족이 거대 십두 마차를 타고 다니는 건 많이 역적 같잖아. 한창때의 애실론도 그딴 짓은 안 했을 거다.
“때부? 때부 왜 거깃서?”
“예?”
그렇게 마차의 문이 굳게 닫힌 걸 확인한 후 맨 뒷자리로 자리를 옮기자,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던 황태녀가 나를 불렀다.
“때부도 우리랑 가치 잇써! 혼자 잇스면 재미업짠아!”
그러고는 등골이 절로 서늘해지는 흉악한 제안을 했다.
나보고 황족들과 같은 마차에 있는 것을 넘어, 아예 바로 옆에 앉으라는 제안을.
‘안 돼.’
그것만큼은 절대 안 된다. 유일한 비리브노만으로서 마차에 동석한 것도 어그로가 끌리는 일인데, 황족들과 가까이 앉는 건 절대 안 된다.
심지어 지금은 황후가 불참한 상태잖아. 어른이라고는 나와 황제만 있는 상황에서 내가 황족과 가까이 앉는다? 이거 누가 봐도 ‘황제가 인정하는 싱싱한 제국 2인자’라고 과시하는 꼴이야.
“전하. 이 산책은 폐하와 전하들을 위한 가족 여행입니다. 어찌 제가 그 사이에 끼어서 소중한 여행을 망치겠습니까.”
“때부도 우리 가족이야! 난 때부랑도 같이 놀고시퍼!”
그 말에 눈가가 뜨거워졌다.
우리 기특한 대녀. 이 대부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너무 감동적이라 눈물이 다 나올 것 같아.
대신 이 타이밍이 아니라 다른 타이밍에 그런 말을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소신은 호위를 위해서 저 뒤에 있는 것이─”
“가까이 잇서야 더 잘지키잖아!”
논리적으로 옳은 말이라 흠칫 어깨를 떨고 말았다.
그건 그렇지. 호위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되, 호위 대상과 최대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기는 하지.
그런데 바로 옆에 앉는 건 적당한 거리를 벗어난 거 아닐까. 그 정도면 호위가 아니라 그냥 일행이니까.
“황태녀의 말대로 하게.”
“폐하?”
“대부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가족이 맞지. 아이들도 대부가 홀로 떨어져 있으면 마음이 아플 터이니 옆에 있어주게.”
이번에도 나를 향한 티배깅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다소 해탈한 듯한 표정을 보니, 황태녀를 말려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기에 빠른 포기를 한 거야.
“…허면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덕분에 씁쓸한 심정으로 리브노만 바로 근처에 앉게 되었다.
내 머리가 까만색이라 진심으로 다행이다.눈 색깔 같은 건 멀리서는 잘 안 보이니, 머리색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지.금발이나 은발이었으면 리브노만의 숨겨진 혈육으로 의심받았을지 몰라.
‘감사합니다, 아버지.’
크라시우스의 핏줄을 짙게 물려주셔서.
***
마당에 모이를 뿌리고 쇠죽을 끓이던 중. 남쪽에서 거대한 환호성이 들렸다.
아무래도 퍼레이드 마차가 광장까지 도달한 모양이다. 시민들이 일제히 환호할 정도의 공간이라면 광장밖에 없을 터이니.
‘황궁 안에서도 이 정도 소리가 들린다라.’
놀라운 일이다. 황궁에는 외부의 소음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는 마법이 걸려져 있으며, 내가 지내는 곳은 황궁 내에서도 구석진 곳이다. 헌데 이 공간까지 환호가 들릴 정도면 얼마나 큰소리가 울려 퍼지는 중이라는 건가.
기꺼운 일이다. 그만큼 제도 시민들이 리브노만의 차기 주인을 보며 기뻐한다는 의미니.
‘다른 지역에서도 퍼레이드 광경이 보인다고 했던가.’
최근에 마종공이 만든 마도구를 통해 제국 주요 거점에서도 퍼레이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마치 거대하고 평평한 통신구를 도시에 설치한 것처럼.
100년이 넘도록 제국을 지탱한 기둥이 공작위에서 물러난 이후로도 제국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실로 고마운 일이라 감사를 표하고 싶지만, 상황인 내가 대외 활동을 하는 건 황제의 권위를 위협하는 일. 덕분에 은퇴식조차 참석하지 못했다.
물론 다 늙은 상황의 인사 따위는 없어도 마종공의 마지막은 아름답게 마무리되었겠지. 크게 마음에 담아둘 필요는 없다.
“만세! 리브노만 만세! 크펠로펜 만세!”
“황제 폐하 만세! 황태녀 전하 만세! 황자 전하 만세! 황녀 전하 만세!”
“대리 각하 만세!”
‘흠.’
어렴풋이 들리는 만세 소리를 듣다가 다시 쇠죽을 끓였다.
만세를 받으면 곤란한 사람들에게도 만세가 향했으나, 흥분한 시민들의 사소한 실수라고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
우렁찬 만세 소리를 들으며 퍼레이드를 진행하다가 웬 꼬꼬마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예의상 아이에게 미소를 지어주니, 그 꼬마는 눈을 깜빡이다가 옆에 있던 모친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 엄마.”
“왜 그러니?”
“황후님은 은발이라고 들었는데, 왜 검은색이에요?”
“얘, 얘가…!”
나름 작은 대화였지만 애석하게도 내 귀는 매우 밝았다.편견이 없어도 너무 없는 아이의 의문을 전부 들을 정도로.
‘나 황후 아니야.’
네가 찾는 황후는 황후궁에서 쉬고 있어.
난 그냥 머리 검은 노예 나부랭이야…
‘은발인 건 알면서 왜 여자인 건 모르는 거니.’
편견 없이 열린 가치관을 가지는 건 중요하다만, 그래도 필수적인 편견은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