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012)
로판 속 공무원 1012화(1013/1083)
게르하르트를 만났으니 그다음은 교장이다, 같은 급진적인 행보를 보이지는 않았다.
평교사라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게르하르트와 달리 교장은 아카데미를 총괄하는 역할. 지금이 개학 시즌이 아니라 방학 시즌이었어도 여러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빴겠지. 그런 사람을 만난답시고 다짜고짜 쳐들어가는 건 공무원끼리 팀킬을 하는 행위다.
게다가 교장은 군인으로 복무하다가 은퇴를 하고, 제2의 인생으로 교육자를 택했다가 아카데미 교장까지 이른 이중 고인물이지 않나. 나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연륜을 자랑하는 어르신이니 아무리 내가 공작 대리라도 일방적으로 다루는 건 예의가 아니야.
그러니 우선 아카데미에 연락을 보내서 적절한 시간을 조절하고, 그때 쓱 찾아가 교장과 교감, 학술부 주요 교사들과 인사를 나누는 게 옳을 터.
“게르하르트 씨도 어서 학술부 수석 교사가 되셔야 할 텐데요. 쌓은 업적이 어마어마하니 시간문제기는 합니다만, 이왕이면 제 아이들이 입학하기 전에 좋은 자리에 오르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차후 행보를 결정한 후. 눈앞에 있는 게르하르트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일정을 조율하다 보면 대충 몇 주 정도 후에 아카데미 방문이 이루어지겠지. 그렇다면 그 사이에 게르하르트가 ‘공작 대리 각하와 대화를 나눴는데, 상당히 친절하고 온화하셨다.’ 라는 소문을 퍼뜨릴 수 있도록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한다.
“수석 교사라니요. 저를 높게 평가해 주신 건 감사한 일이나, 저에게는 과분한 자리입니다. 게다가 썩 좋은 자리도 아니고요.”
실제로 내 노력이 효과가 있었는지, 게르하르트는 작게 웃음까지 흘리며 나와 대화를 나눴다.
“호오, 좋은 자리가 아니다라. 혹시 그 이상을 노리는 겁니까?”
“하하, 그것도 아닙니다. 그저 학자로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에는 딱 지금 위치가 좋더군요. 수석 교사는 물론, 교감이나 교장의 자리는 저에게 과분한 훈장이고, 황금빛 족쇄입니다.”
“과연. 제가 그 생각을 못 했군요.”
진심이 가득한 게르하르트의 대답에 픽 웃음을 흘렸다.
역시 게르하르트는 학문에 진심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니 북방 연구를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온갖 편의를 준 거지만.
‘황금빛 족쇄.’
그리고 높은 자리가 족쇄에 불과하다는 말이 심장을 찌르는 기분이었다.
알지. 그 심정 너무 잘 알아. 당장 내 목과 손목, 발목에 황금빛 족쇄가 수십 개 걸려있으니까.
‘나도 족쇄 좀 벗고 싶다.’
똥색 침대에서 백수 생활을 해도 되니까 제발. 공작 대리 자리는 내가 자처한 거니 어쩔 수 없더라도, 그 외의 모든 것들은 훌훌 털어내고 싶어.
육아 휴직이 끝나면 돌려받을 감찰성 장관직이라거나, 아버지의 이른 은퇴로 승계 받은 타일글레헨 백작위라거나, 리시자리우네 기사단원이라는 휘황찬란한 명예 같은 거.
“참, 대리 각하. 대리 각하께옵서 찾으신다는 얘기를 듣고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준비한 것이요?”
이 세상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나는 상상을 하던 중. 게르하르트가 외투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개학 직전에 북방에서 발견한 광석입니다.”
그러고는 엄지 손톱 크기의 돌멩이 6개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뭐야 이거.’
상당히 독특하게 생긴 돌멩이인지라 절로 시선이 갔다.
우선 색이 밝고 겉면이 반질반질한 걸 보면 평범한 보석과 다를 것이 없었으나, 돌멩이를 가로로 나눌 경우 위쪽은 하늘색, 아래쪽은 초록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치 북방의 하늘과 초원을 표현한 것처럼.
‘보석에도 지평선이 다 있네.’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생김새라 한참이나 돌멩이를 바라봤다.
신기한 일이다. 분명 작은 돌멩이 나부랭이인데, 초원에서 드넓은 지평선을 보는 것처럼 쾌활한 느낌을 준다. 저 하늘색마저 티 없이 맑아 푸른 하늘을 보는 것 같고.
“처음에는 이 딱 나누어진 색깔이 특이하여 몇 개 챙겼습니다만, 연구하면 할수록 기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게르하르트의 말에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이 독특한 색깔 외에도 다른 특이점이 있다니. 흥미가 더욱 커졌다.
“우선 내구도가 상당했습니다. 어떠한 충격을 줘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으며,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기사나 마법사에게 부탁해도 멀쩡하더군요.”
‘오.’
시작부터 인상적인 말이라 속으로 탄성을 흘렸다.
기사와 마법사가 힘을 써도 흠집조차 나지 않는 내구도. 그건 확실히 희귀하고 놀라운 성질이 맞다. 단단함의 상징인 다이아몬드도 기사, 마법사 같은 초인의 손에 걸리면 반으로 갈라지는 법이니까.
“그리고 마나 수용률이 티끌만큼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자갈이나 모래마저 마나를 쏟아부으면 조금이라도 수용하는 법인데, 이 광석은 아무리 마나를 주입해도 전부 튕겨냈습니다.”
심지어 압도적인 내구도 외에도 마나 수용률이 제로라는 사실 또한 충격적이었다.
게르하르트의 말처럼 어떠한 물질이든 마나를 수용할 수 있다. 그것이 효율적이냐 비효율적이냐의 차이일 뿐, 길가의 돌멩이나 모래도 마나를 담을 수는 있다.
그런데 비효율적인 수준을 넘어 제로다? 마나를 전혀 담지 못하는 물질이야?
‘그건 그거대로 놀라운데.’
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건 힘든 일이지만 0점을 맞는 것도 힘들다는 말이 있다. 그것처럼 마나를 잘 담는 것은 귀한 물질이지만, 아예 담지 못하는 물질 역시 평범한 물질은 아니다.
아니, 이건 귀하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마법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은 나조차 마나 수용률 제로의 물질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
‘이 정도면 마나 저항률이라고 해야 하나.’
무심코 책상 위에 놓인 돌멩이를 툭툭 건드렸다.
마나를 흡수하지 않고 전부 튕겨내는 물질. 그렇다면 이걸로 방어구를 만들면 마법을 전부 튕겨낸다는 거 아닌가? 마나가 담긴 검기 같은 것도 방어할 수 있고.
아니다. 이거 내구도가 미친 수준이니 방어구로 가공하는 것부터 난관이겠지. 그러면 그냥 예쁘고 신기한 돌이야.
“신기한 물건을 찾으셨군요.”
“예. 다만 내구도가 높아서 당장은 건드리기 애매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조금이라도 손을 볼 수 있어야 제대로 연구를 할 텐데 말이지요. 참으로 아쉬운 일입니다.”
게르하르트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마어마한 내구도가 긍정적인 요소기는 하다. 허나 완제품이 아닌 원재료가 금강불괴 수준의 내구도를 자랑하는 건 곤란해. 원재료를 가공하지 못하면 뭐 어쩌자는 거냐.
“그래도 이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는 법. 당장은 답이 없어 보이는 이 광석도 언젠가는 자를 수 있을 것이며, 합리적인 비용으로 가공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렇게 말한 게르하르트는 돌멩이를 내 쪽으로 가볍게 밀었다.
“그 다짐이라고 하기는 민망합니다만, 제가 찾은 것의 절반을 각하께 바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단단한 광석이니 깨지지 않을 맹세─ 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깨지지 않는 맹세라.”
실로 거창한 말이라 절로 웃음이 나왔다.
맹세는 평범하게 말로 해도 충분하다. 게르하르트의 열정은 수년 동안 직접 보고 들었으니까. 이 양반이 자기가 내뱉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어길 사람이 아니라는 건 내가 잘 안다.
“좋습니다. 대신 가공이 가능해지면 지금처럼 원석이 아닌 가공품으로 가져와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각하.”
하지만 저렇게 패기 넘치게 다짐을 하고 증거까지 바치니 어찌 사양할까. 나도 특이한 물건이라 관심이 가기는 하니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이걸 어디다 써야 할지는 느긋하게 생각해 보자.
식사를 마치고 게르하르트를 배웅한 후. 국립묘지로 걸음을 옮겼다.
게르하르트가 선물로 준 6개의 돌멩이. 내가 봐도 신기한 것이기에 어디에 쓸지 고민이 많았다. 처음에는 딱 6개니까 부인들에게 선물로 줄까 싶었지.
그런데 이게 생긴 거는 특이하지만 결국은 가공을 거치지 않은 원석 그대로다. 부인들에게 줄 선물로는 너무 투박해. 반질반질한 겉면과 달리 워낙 울퉁불퉁 한지라 부인들이 만지다 다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서랍에 보관하기 직전, 생각을 바꾸어 국립묘지로 향했다.
‘마침 6개.’
저 하늘에 있을 녀석들도 딱 6명이다.
‘마침 북방.’
심지어 이 돌멩이가 발견된 곳도 북방이다. 그것도 제국군이 군사 활동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 아닌, 제국의 민간인 학자가 북방을 연구하다가 발견한 물건.
제국이 북방을 평정하고 평화를 이루어 낸 상징으로 이보다 적절한 것이 어디 있을까. 게르하르트가 나에게 이 돌멩이를 토대로 깨지지 않을 맹세를 했다면, 나는 이걸 통해 그 녀석들 앞에서 깨지지 않는 명예를 보장하면 된다.
YW9peUx5cktZYXhyU2hzY1VsMkQ0VkpSb0JXcGxjYlBTZkdMY25FQkdxaXV2cDFFcHMwenc2RE9vRjBUdHBkRQ
너희의 이름, 명예, 업적은 이 돌멩이처럼 단단하고 영원할 것이라는 보장.
“나 왔다.”
그렇게 어기적어기적 녀석들의 묘비에 도착하였고, 묘비 앞에 돌멩이를 하나씩 내려놓았다.
“처음 보지? 최근에 북방에서 발견한 물건이야. 단단하기도 더럽게 단단하고, 마나를 전혀 수용하지 못하더라.”
그래서 얘네한테 보여준 이후에는 트릭시한테 줄 생각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런 신물질은 나보다 트릭시가 연구하는 것이 대륙적 이득일 테니.
“이제서야 발견된 걸 보면 아주 지하 깊숙한 곳에 있던 광석 같은데, 그런 물건을 유목민도 아닌 제국인 학자가 발견했어. 느긋하게 발굴을 할 정도로 북방이 평화롭다는 뜻이지.”
작게 웃음을 흘리며 돌멩이를 살짝 짓밟았다.
이내 발을 들자 땅에 박혔을 뿐, 흠집 하나 없는 돌멩이가 반겨주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힘을 주었음에도 부서지지 않는 돌멩이가.
“게다가 이거 이 정도로 튼튼하다. 당장은 써먹을 곳이 없지만 언젠가는 대륙 역사에 한 획을 긋겠지.”
그 말을 끝으로 슬쩍 몸을 돌렸다.
번거롭게 길게 말할 생각은 없다. 괜히 주절주절 길게 떠들면 저 녀석들도 귀찮아하지 않겠나.
그러니 느긋하게 그 돌멩이나 구경하고 있어라. 난 그거 내일 가지러 올게.
“내일 또 보자.”
내일은 술이라도 가져올 테니 기대해라.
***
황태녀의 대부가 돌아갔다.
‘점점 짧아지는군.’
날이 갈수록 짧아지는 대화에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예전에는 망자에 대한 미련이 많았는지 길게 대화하던 편이었거늘. 이제는 딱 할 말만 하고 물러나고 있다. 그리워할지언정 미련과 후회는 없다는 뜻이겠지.
실로 긍정적인 변화다. 차기 리브노만과 크펠로펜의 주인을 보필할 대부이니, 그런 대부의 정신 건강이 완화되는 건 기꺼운 일이다.
‘신기한 물질이로군.’
이윽고 슬며시 묘비로 다가가 바닥에 박힌 물질을 바라봤다.
전대 드래곤 로드로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나조차 처음 보는 물질이다. 말하는 걸 들으니 북방에서 발견한 모양인데.
‘아.’
무심코 손을 뻗어 물질을 만지니, 미약하게 금이 가버렸다.
‘이런.’
황급히 마나를 주입하여 도로 붙였다.
하마터면 영혼에게 바치는 선물을 망가뜨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