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014)
로판 속 공무원 1014화(1015/1083)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트릭시가 세르베트 공작성에 강림했다.
어차피 올 예정이었으면서 문자 먼저 보내다니. 그만큼 트릭시가 정신이 없고 급박했다는 뜻이겠지.
‘나도 놀라우니 트릭시는 오죽할까.’
트릭시의 마나조차 전부 튕겨내며 마나 수용률 0%임을 과시한 돌멩이다. 대륙 역사상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수용률 제로의 물질을 연구 중이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사실 여기에 마나 유입된 적 있음.’ 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이게 트릭시가 아닌 다른 마법사들이 연구한 결과라면 마나 수용률 극악의 물질을 수용률 제로라고 착각했거나, 그도 아니라면 유입된 흔적 자체를 잘못 본 것이라 여겼을 거다. 그런데 트릭시의 연구 결과니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어.
“다른 다섯 개에는 아무런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지만, 여기에만 마나가 유입된 흔적이 발견됐단다. 그것도 아주 잠깐에 불과해.”
심지어 6개 중에 단 하나에서만 흔적이 발견됐다고 한다. 차라리 6개 전부에서 발견될 것이지, 6개 중 하나는 대체 무슨 의미일까.
“더욱 특이한 건 흔적의 방향이야.”
“방향?”
“그래. 보통 특정 물질이 마나를 받아들이게 되면 물질 전체에 퍼지게 된단다. 하지만 이 물질은 마치 선을 그은 것처럼 좁고 긴 부위에만 흔적이 발견됐어.”
그렇게 말한 트릭시는 손가락에 마나를 불어넣더니, 허공에 쓱쓱 손짓을 했다.
그러자 허공에 마나로 이루어진 그림이 생겨났다. 돌멩이에 금이 간 듯한 단순하고도 기묘한 그림이.
“마나가 아니라 깨진 흔적 같네.”
“정확한 표현이구나. 내가 보기에도 깨진 흔적, 혹은 깨진 것을 도로 붙여낸 흔적처럼 보였으니.”
이내 나와 트릭시의 시선이 동시에 돌멩이로 향했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마나가 유입된 것을 넘어서 한때 깨진 것으로 추정된다라. 저거 엄청 단단해서 내가 힘을 줘도 멀쩡했는데 말이야.
‘왜 저것만.’
잠깐의 놀라움 뒤에는 억누를 수 없는 의문만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저 돌멩이들은 게르하르트가 같은 지역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어떤 거는 북쪽, 어떤 거는 남쪽에서 발견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6개, 어쩌면 12개 중에서 단 하나만이 부서지고 마나까지 유입당했다. 나름 대륙 제일의 검사라 불리는 나도 부술 수 없었고, 대륙 제일의 마법사인 트릭시도 마나를 넣을 수 없었던 돌멩이가.
뭘까. 대체 무슨 일일까. 누가 그런 일을 한 것이고, 왜 저거 하나에만 그런 것일까.
‘애초에 사람이 한 짓은 맞나?’
혹시 이거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낸 결과는 아닐까?
우연히 저 돌멩이만 세월의 풍파에 시달려서 금이 갔고, 우연히 그 금에 마나가 흘러들어 봉합됐다거나 하는 그런 거.
너무 우연에 의존한 추리지만 수천 년에서 수만 년은 땅에 묻혀있던 물건이다. 자연의 변덕에 휘말리기에는 딱이지 않나.
“사람이 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아. 마치 자연의 훑고 지나간 것 같은데…”
트릭시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자연 변화설’을 입에 담았다.
그만큼 이 기괴한 상황은 자연의 변덕이라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그 뭐냐, 일을 이루는 건 사람이 아니라 하늘이라는 말도 있잖아. 대충 그런 거지.
“언제 생긴 건지만 알아도 도움이 될 텐데.”
덕분에 슬쩍 돌멩이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이 돌멩이에 금이 간 시기와 마나가 유입된 시기. 그것만 알아도 돌멩이를 가공하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다. 대충 그 시기에 발견 장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낸다면, 그 방법을 재현함으로써 가공이 가능할 수도 있잖아.
물론 수천 년이나 수만 년 전에 특정 지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기 어려우나, 이 금강불괴 물질에 타격이 갈 정도의 사건이라면 해당 지역에 전설이나 설화 같은 형식으로 힌트가 남아있을 수 있다.
아니면 영원한 푸른 하늘에게 조언을 구해도 되고. 북방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면 영원한 푸른 하늘도 알고 있을─
“저기, 칼.”
“응. 왜?”
“아직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상당히 최근에 생긴 흔적 같더구나.”
상상치도 못한 반전에 돌멩이를 매만지던 손이 우뚝 멈췄다.
“…꽤 의외네. 한 수십 년이나 수백 년 전의 일인가?”
그러나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당황하지 말자. 인류의 역사, 대륙의 역사를 기준으로 잡으면 수십 년에서 수백 년 전의 일도 최근이라고 할 수 있다. 감히 인간의 최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어.
게다가 최근의 일이라면 오히려 좋다. 최대치가 수백 년 전인 일이라면 진상을 밝혀내기 쉬울 테니.
“수일 전.”
“뭣.”
“그, 방금 말한 것처럼 확실한 건 아니란다. 마나 유입을 철저하게 튕겨내는 물질이라 연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거든.”
내 반응에 트릭시가 황급히 첨언했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다. 연구도 마나가 조금이라도 먹혀야 하든 말든 할 텐데, 마나를 전부 튕겨내는 물질이니 제대로 된 연구가 가능하겠나. 도리어 어떻게 마나 흔적이라도 발견해냈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극악의 환경 속에서도 작게나마 성과를 만들어 낸 트릭시다. 그런 트릭시가 수일 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
‘수일 전이면 내가 선물 받은 시점인가.’
이윽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수주가 아닌 수일 전이라면 게르하르트 소유가 아닌 내 소유로 넘어갔을 시점이다. 그러니 잘 생각해 보자. 내가 저 돌멩이들을 받은 순간부터 무슨 일을 했지?
‘딱히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별일 없었다. 그냥 신기해서 만지작거리고, 무덤에 가서 녀석들에게 보여주고, 그 뒤에는 바로 트릭시에게…
…
‘그때인가?’
그나마 확인해야 할 시기가 떠올랐다.
저 돌멩이들을 녀석들 묘비에 두고 하루 숙성시켰던 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내 시야에서 벗어난 그때 말고는 짚이는 시기가 없다.
아니, 그런데 고작 하루 사이에 저 돌멩이가 깨지고 마나까지 유입됐다고? 그게 말이 되나?
‘그래도 그때가 아니면 짚이는 게 없는데.’
머리가 지끈거린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한없이 제로에 가까운 확률이 유일한 확률이다.
그럼 어쩌겠어. 적어도 확인 정도는 해봐야지.
“나 잠깐만 제도에 다녀올게. 확인만 하고 올 거니까 금방 돌아올 거야.”
“그러렴. 가신들에게는 내가 잘 말해둘 테니 오늘 안에만 돌아오면 된단다.”
갑작스러운 외출 선언에도 트릭시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는 확실하지 않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수일 전이라고 확신을 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내가 직접 확인한다는 말에 기꺼워하는 거겠지.
‘영혼의 힘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영혼은 인간들의 물리 법칙에서 벗어나는 존재. 그런 영혼들이 여섯이나 돌멩이를 구경했을 테니, 그 과정에서 돌멩이에 손상이 간 건가 싶다.
‘망할 녀석들.’
그냥 여유롭게 구경하라고 두고 간 건데 망가뜨리고 말이야. 하여간 평민 출신이라 그런지 예의가 부족해.
리브노만 백작이 됐으면 품위도 챙기고, 예절도 지키고 해야 하는 법이거늘. 실로 애통할 따름이다.
녀석들의 묘비로 향하는 대신 국립묘지 관리인에게 찾아갔다.
돌멩이를 묘비 앞에 둘 때, 그리고 돌멩이를 수거할 때 유심히 묘비를 살폈었다. 허나 그 과정에서 아무런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지.
이미 나는 탐색에 실패한 놈이다. 한 번 실패한 놈이 두 번 시도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겠나. 그럴 바에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
게다가 돌멩이가 방치되었던 하루의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관리인이 잘 알지 않겠나. 혹시 나 말고 다른 방문객이 있었다거나, 갑자기 묘비 앞에 벼락이 내리쳤다거나 그런 거.
“특이한 일, 말입니까?”
“그래. 내가 자리를 떠나고부터 다시 돌아오기까지. 사소한 것이라도 아는 걸 말해줬으면 한다.”
그러자 관리인은 침묵을 지켰다.
내가 생각해도 좀 막무가내인 질문이기는 하다. 어디 동네 공동묘지도 아닌 제국의 국립묘지다. 처음 오는 사람은 길을 잃을 정도의 면적을 자랑하는데,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바로바로 파악할 수 있으면 그게 사람이겠냐.
하지만 관리인 말고는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 막무가내인 건 알아도 이러한 방법 외에는 답이 없어.
“잘 모르겠습니다. 순찰 중에 각하께서 방문하신 구역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가.”
침묵 끝에 입을 연 관리인의 대답에 주머니에 있던 돌멩이를 꺼냈다.
“그러면 이 돌멩이는 계속 그 자리에 있었나? 누군가 가져가거나 그런 일은 없었겠지?”
“제가 봤을 때는 계속 같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누가 감히 각하의 물건에 손을 대겠습니까.”
그 말에 씁쓸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공작 대리의 전우가 잠든 묘비이며, 리브노만 백작의 묘비기도 하다. 그런 묘비 앞에 놓인 물건을 건드린다면 제국에서 추방당하고 싶다는 자기과시일 터.
“제 부주의로 각하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음?”
그렇게 씁쓸한 한숨을 토해내던 중. 관리인이 허리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무엇보다도 단단한 물질이 하필이면 국립묘지에서 손상되었습니다. 소인이 관리하는 곳에서 생긴 문제는 관리 소홀로 인한 참사. 무슨 말로 각하께 사죄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말을 말도록. 드넓은 국립묘지를 관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요, 자네에게 말도 없이 두고 간 본작의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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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잇다가 위화감이 들어 입을 다물었다.
“자네.”
“예, 각하.”
그리고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내가 이 돌멩이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었나? 무엇보다도 단단하다니, 그건 아는 사람이 극소수인 사실인데.”
“참으로 송구하오나 각하께옵서 전우 분들과 대화를 하실 때. 마침 그 근처를 지나가던 중이어서 각하의 대회를 엿듣고 말았습니다.”
내 질문에 관리인은 더욱 허리를 숙였다.
합리적인 이유다. 묘지 전역을 뽈뽈뽈 돌아다니는 관리인이니, 우연히 내 말을 들었을 수도 있지.
“근처에 아무도 없는걸 몇 번이나 확인했었는데?”
허나 정말로 근처에 있었다면 내 탐지 범위에 잡혔을 거다. 탐지 범위 바깥에 있었다면 내 목소리를 못 들었을 거고.
‘뭐 하는 인간이지?’
관리인의 머리를 빤히 내려다봤다.
돌멩이의 의문을 해소하려다가 더한 의문을 품게 됐다.
***
다른 사람도 아닌 리브노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신하의 질문이었다.
저 물질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모른 채로 넘어갔다면 끝까지 침묵했겠으나, 무언가 눈치채고 물었기에 일단은 사과를 했다. 내 실수로 문제가 생긴 것은 맞으니까.
대신 정체를 들킬 수 있기에 다른 이유로 사과를 했지만, 그 과정에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너무 가볍게 말했다.’
속으로 자책했다. 로드로 지내던 시절에는 누군가에게 거짓을 말할 필요가 없었고, 로드 자리에서 내려온 이후로는 그이의 반려로서 대접받았기에 더더욱 거짓과는 멀어졌다.
덕분에 이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과거의 나라면 이런 어이없는 실수는 하지 않았을 텐데.
‘당신하고 있던 수십 년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천상에 있는 그이를 조금, 아주 조금 원망했다.
내가 이렇게 허술해진 건 다 그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