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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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교단에 이를 가는 인물이 널렸던 악명에 비해 황혼 교단 토벌은 정말 무난하게 끝났다. 아무리 수백 년 단위로 날뛰던 이교도지만 몰락하는 건 순식간이구나.
사실 에넨이 종교 승리를 찍으면서 다른 신을 섬기는 교단의 몰락은 정해진 미래였다. 그걸 황혼 교단만 인정하지 않고 지금까지 버틴 거지. 그런 능력과 노력이면 무슨 일을 하든 성공했을 텐데, 하필 한다는 게 광신도네.
“교주를 생포했으니 유용하게 다룰 수 있을 겁니다.”
전 군단장의 창대에 매달리고 티배깅을 당하던 교주는 묵광대 부대장이 수습하여 특무성에 던졌다. 그래도 교주라는 직함도 있는 놈이니 쥐어짜면 뱉어낼 정보는 꽤 있을 거다.
그리고 괜히 현장에서 죽었으면 순교자로 이름이 남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교 나부랭이를 순교자로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지만, 그 이교 나부랭이가 용케 수백 년이나 이어져 왔으니 조심하기는 해야지.
– 수고했소. 감찰부장.
“감사합니다.”
아무튼 제도로 복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특무성 장관에게 연락이 왔다.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공식적으로 토벌 작전이 끝났다.
– 숨겨둔 한 수 정도는 있었더군. 그마저도 실패했지만.
“안될 것들은 뭘 해도 안되는군요.”
– 동감이오.
교주의 특무성 입주를 기념하며 가볍게 정보를 뱉어내게 하니 짠한 정보가 바로 튀어나왔다. 이것들도 나름 계획은 있었다.
고의적으로 제도에 있는 차기 성자를 암살하겠다는 정보를 흘려 어그로를 끌고, 어그로가 끌려 눈이 많은 상황에서 화려한 자폭으로 희생을 극대화하는 것. 그렇게 제국이나 신성교국이 도저히 황혼 교단의 이름을 가릴 수 없게 만든다.
단순히 황혼 교단의 존속과 양국에 엿을 먹이는 것에 의의를 둔다면 확실히 그럴싸한 계획이었다. 처맞기 전까지는.
‘에넨이 저주를 내렸나.’
병사들이 죽거나 다치면 황혼 교단에 대한 소문은 필연적으로 퍼지기에 요격을 당한 건 상관없다.
그러나 병사들은 광역 회복 장판 덕분에 쓰러지지 않았고, 교전지에서 벗어나 다른 곳을 테러할 수도 없고, 마지막 교주의 자폭도 타니안의 성법에 눌려 불발했다. 꼬여도 저렇게 꼬일 수가 있구나 싶다.
하지만 어쩌겠나. 꼬우면 개종했어야지. 라인을 제대로 잡는 것도 능력이다.
– 이교도는 심문 후 사법성에 넘길 예정이오. 어차피 결과는 처형이지만.
덤으로 처형 후 남은 시체도 화장하기로 했다는 특무성 장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에넨께서 보우하시는 제국이 이교도의 매장 문화를 존중할 필요는 없으니.
– 나도 이래저래 바쁘니 이만 끊겠소. 수고하시오.
“예, 각하.”
딱 정보 전달만 한 특무성 장관은 깔끔히 연락을 끊었다. 황혼 교단 토벌은 끝났지만, 아직 나와 특무성 장관이 할 일은 남았으니까.
슬쩍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책상 위에 놓인 종이 한 장. 그리고 종이 맨 위에 적힌 단어 하나.
시말서
‘시발.’
단 세 글자에서 오는 압박감이 장난 아니다. 실무자의 작전은 끝났어도 입안자의 책임은 현재진행형.
결과는 좋았다. 타니안을 전진배치하여 인명 피해도 없었고, 제도에서 소란이 발생하지도 않았다. 황제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없는 상태로 황혼 교단 토벌에 성공했으니 대성공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타니안을 전진배치’ 했다는 사실 자체는 도저히 덮을 수 없는 명백한 무리수라는 것이 문제.
– 신성교국에서 어찌나 열렬히 연락을 하던지. 청년 때가 생각나 흐뭇하더구려. 그때는 나도 인기가 많았었지.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외무성 장관은 뜨거운 항의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얼마나 시달렸는지 특이점에 도달하여 해탈했을 정도.
그나마 ‘애초에 너네 차기 성자가 제도에 있는 게 문제 아니냐고’ 라는 명분이 존재했고, 타니안도 부상 하나 없이 멀쩡했기에 큰 문제로 번지지는 않았다. 심지어 황혼 교단 박멸도 성공했으니 더 항의하기도 애매했겠지.
그래도 제국에서 이 일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는 모습 정도는 취해야 한다. 덕분에 내가 이러고 있는 거고. 처음 타니안을 참여시키자는 말을 꺼낸 게 나니까. 지금쯤 특무성 장관과 외무성 장관도 시말서 쓰고 있을 거다.
‘이번… 일에… 대하여… 깊은 반성을 하는… 바이며…’
참담한 마음으로 끄적끄적 시말서를 적어갔다.
‘이번 사태는 불상사 없이 마무리 되었지만, 앞으로는 이런 유감스러운 사태가 발생하지 않게 시, 시, 시정, 시, 시…’
시발놈들아, 네들도 잘못했잖아.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아.’
마음 가는 대로 쓰다 보니 갑자기 발진을 하고 말았다. 잉크라서 지우기도 힘든데 그냥 이대로 제출할까.
무심코 등 뒤의 창문으로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우중충한 내 마음과 달리 창 밖은 푸르고 푸른 하늘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한테도 저 하늘 아래에서 마음 편히 놀 권리가 있을 텐데.
오늘도 퇴직이 간절한 하루다. 시말서 제출하러 가는 길에 사직서도 내고 와야지.
재무성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면 시말서 끄적일 일도 없이 적당히 처리했을 텐데, 하필 다른 부서는 물론 외국도 얽힌 일이라 내무성까지 가야 했다.
“또 오셨습니까?”
“예, 그렇게 됐습니다.”
그리고 징계부장의 집무실로 들어가자마자 듣는 첫인사에 마음이 쓰라렸다. 넌 뭔데 또 왔냐는 눈빛. 나도 여기를 자주 오고 싶어서 오는 건 아닌데.
머쓱하게 시말서를 들어 올리니 징계부장은 헛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걸로 아홉 번째 시말서 제출이라는 경이로운 업적을 다시 달성했다. 망할.
“보통 과장만 돼도 시말서를 쓸 일은 적은데, 어째 감찰부장은 승진하시고 쓸 일이 잦군요.”
“팀장 때 쓸 일이 없어서 이제야 쓰나 봅니다.”
“하하, 그런 건 몰아서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저은 징계부장은 내가 건넨 시말서를 받고 빠르게 내용을 훑어봤다. 아니, 원래 시말서를 확인하는 게 징계부장 업무기는 하지만 당사자 앞에서 보는 건 수치스러운데.
“어째 필력이 날이 갈수록 느는군요.”
심지어 감상평도 남겼다. 나한테 이러지 마.
고개를 드는 수치심으로 몸 둘 바를 모르는 내 모습에 징계부장은 픽 웃음을 흘리며 시말서를 책상에 올려두었다. 다행히 다시 써오라고 반려당하지는 않았다. 시말서 처음 쓸 때는 몇 번 반려당했었는데.
“제가 들은 바로는 황제 폐하께서도 노하신 건 아닙니다. 처벌을 했다는 모습은 보여야 하는데, 그렇다고 감찰부장을 형무성에 넘길 수도 없지 않습니까?”
“폐하의 은덕에 황송할 따름입니다.”
확실히 시말서면 아주 약한 수준의 처벌이다. 사실 처벌이라는 단어도 부끄러운 수준의 범위. 쓸 때야 수치와 빡침이 어우러져도 실제로 피해를 입는 건 없으니까.
오히려 이번 일에 시말서를 쓰게 했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적어도 이번 일을 명분으로 하여 나를 숙청할 생각은 아니라는 의미니. 오히려 이 일을 처벌하지 않고 묵혔으면 더 무서웠을 거다.
불행 중 다행. 솔직히 다행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렇다.
“이제 돌아가 보겠─”
-똑똑
“특무성 장관이오.”
“아.”
“이런.”
제출하고 바로 도망치지 않은 죄로 시말서를 쓴 윗분과 마주치게 생겼다.
어떻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렇게 민망할 수가 있지. 황혼 교단의 마지막 저주인가.
특무성 장관과 숨 막히게 어색한 시선 교환을 끝내고 감찰부 집무실로 도망쳤다. 더 머물렀다가는 외무성 장관도 볼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원. 보통 불길한 느낌은 틀리지를 않더라고.
“부장님? 아니,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리고 기껏 돌아온 부장을 맞이하는 과장은 저런 말이나 하고 있다.
“시말서 제출하러 가신 거 아니었습니까?”
“제출하고 왔다. 그냥 내고 오면 되는데 왜 소란이야?”
그 말에 3과장의 시선이 옆에 있던 1과장에게 꽂혔다. 얘기한 것과 다르지 않냐고 말하는 듯한 눈빛. 또 1과장이냐, 2과장이 떠나니 둘이 칠 사고를 혼자 담당하고 있네.
하지만 1과장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연신 갸우뚱거렸다.
“시말서 열 번이면 근신 아니에요? 저택에 가신 줄 알았는데.”
아니 이 새끼가.
“내가 쓴 시말서 절반이 너네 때문인데 그런 말이 나오냐?”
게다가 그걸 세고 있었다는 건 속으로 내가 근신 당하는 걸 원했다는 게 아닐까? 괘씸한 마음에 1과장의 입술을 잡아당겼다. 너무 자주하는 것 같아 속으로 자제하고 있었지만 이건 못 참지.
그리고 이번에 제출한 건 아홉 번째다. 아직 근신까지 목숨 하나 남았다.
‘시발.’
하나라는 구체적인 수치가 떠오르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내가 치킨집 쿠폰 모으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어느 부서 부장이 시말서 모아서 근신까지 가냐고.
그나마 아카데미 파견 기간 동안에는 시말서 쓸 일 없을 줄 알고 안심했는데 복귀하자마자 귀신 같이 쓸 일이 생겼네. 이 기세면 올해 겨울에는 정말 근신 당할 수도 있겠다.
“근신도 세 번 당하면 다음은 구금 아닙니까?”
“그렇지.”
옆에서 조심스레 입을 여는 3과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미 근신을 세 번 겪은 상황에서 또 근신 처분을 받으면 근신이 아닌 형무성 구금으로 진화한다. 기간은 길어야 며칠 정도지만 그 상징성이 크지.
내가 겪은 근신은 두 번. 이제 시말서 하나를 더 쓰고 근신을 먹으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존나 비웃었는데.’
장관은 이미 구금도 몇 번 당했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대체 무슨 짓을 하면 그러나 싶었지만, 이제 내가 구금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적어도 장관은 공무원 생활이 길기라도 하지, 난 이제야 4년이 지났다. 장관도 4년 만에 구금 당하지는 않았는데.
‘스노우볼이 꽤 크네.’
타니안의 부탁을 들어준 대가가 흐르고 흘러 구금이 눈 앞에 아른거리는 실정에 이르렀다. 각오한 일이지만 마음이 아픈 일.
그래서 다급하게 팔을 토닥이는 1과장은 무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