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026)
로판 속 공무원 1026화(1027/1083)
제국 아카데미 학생회실. 내가 아카데미 감찰관으로 지내던 시절, 내 숙소와 제과 동아리실에 버금갈 정도로 자주 머물렀던 장소다.
하루 종일 숙소에 처박혀있으면 노골적인 월급 루팡이라 양심이 아팠고, 제과 동아리실은 동아리 시간이 아닌 이상 사람이 없어서 심심했지. 반면 학생회실은 마르가 고고하게 군림하는 터전이자, 내 추천장을 받아 마땅한 미래의 인재들이 득실득실한 낙원이었다.
이는 마르가 졸업한 이후로도 변함이 없었다. 비록 마르는 아카데미를 떠났지만, 학생회에는 내가 눈여겨본 인재들이 넘쳐났기에.
‘감찰관 업무가 끝난 이후에도 꾸준히 파밍했지.’
심지어 리제와 개노답 트리오의 졸업으로 인하여 감찰관 업무가 종료된 후로도 학생회는 여전히 내 텃밭이었다.
이게 한 번 수확을 맛보니까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더라. 귀찮게 여기저기 찾아다닐 필요 없이 학생회에 추천장만 뿌리면 혈기 넘치는 신입 공무원들이 우르르 탄생하잖아. 처음부터 몰랐다면 넘어갔겠지만, 이 화수분을 발견한 이상 절대 넘어갈 수 없었다.
물론 감찰관 업무가 끝난 감찰성 장관이 주기적으로 아카데미에 방문하는 건 잔인한 짓이라 고민이 많았는데, 놀랍게도 내 1호 텃밭 수확물인 데미안이 맹활약을 했다.
“학생회 부회장, 벤자민 나츠라고 합니다! 데미안 선배를 통해 듣기만 하던 장관 각하를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런가? 나도 데미안 덕에 네 이름을 들어봤다. 작년에 현명한 신입생이 입학하여 기대가 많다고 했었는데, 역시 2학년이 되자마자 부회장직에 올랐군.”
내가 감찰관 업무가 끝나자마자 매년 아카데미를 방문하기 시작한 데미안.
분명 감찰성 장관 비서실 업무가 여유로운 건 아닐 터인데,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서 아카데미에 방문한 데미안은 매년 당대 학생회 명단을 파악하고 유유히 귀환하고 있다.
그 귀하디 귀한 명단은 비서의 손에 들어가고, 비서는 적절한 점검을 거쳐 나에게 보고를 올렸지. 덕분에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젊고 싱싱한 수확물을 꾸준히 공급받고 있다.
‘고맙다, 데미안.’
그래서인지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직접적으로 지시하거나 아쉬움을 표한 것도 아니거늘, 데미안은 누구의 강요 없이 1호 수확물로서 다른 수확물들을 이끌고 있다. 그게 자신을 필두로 한 ‘아카데미 파벌’을 만들기 위한 빅-픽처인지, 아니면 단순히 후배들을 위한 선의인지는 알 수 없다.
솔직하게 말하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꾸준히 공급되는 젊은 피니까. 그 대가로 파벌이 만들어지는 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어.
“현명하다니요! 부족한 후배에게 너무나 과분한 평가를 해주셔서 감사하고도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어쨌거나 내 대답에 부회장─ 벤자민은 더더욱 허리를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이 정도 목소리면 외친다고 표현해야 하는 게 맞다. 귀가 먼 사람도 벤자민의 목소리는 정확하게 들을 수 있을 거야.
“물론 부족하기야 하겠지. 하지만 부족한 건 시간과 경험으로 채우면 충분하다.”
그런 벤자민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당연하지만 데미안이 말한 현명함도 어디까지나 10대 후반 애송이 기준으로 말한 거다. 현직 공무원들, 노련한 귀족들과 비교하면 숨도 못 쉬고 두들겨 맞다가 기절할 정도겠지.
그러나 날 때부터 뛰어난 사람은 없다. 떡잎이 훌륭한 애송이는 시간과 경험이라는 양분을 통해 성장하는 법.
“그러니 2년 후를 준비하도록. 그때는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많은 걸 쏟아붓게 될 테니.”
“…예, 각하! 명심하고 명심하겠습니다!”
내 말에 잠시 침묵하던 벤자민은 90도를 넘어선 어마어마한 각도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흡족스러운 반응이다. 2년 후를 준비하라는 건 벤자민이 아카데미를 졸업하는 즉시 납치하겠다는 뜻이니, 벤자민 입장에서는 감격스러운 말이지 않겠나.
그것도 비서실에 근무 중인 선배가 아닌 장관의 장담이다. 무엇보다도 확실하고 믿음직한 약속일 터.
“헌데 벤자민. 다른 간부들은 어디 있나?”
“동아리 박람회를 위해 부지를 점검 중입니다! 학생회 전원이 손을 보태야 할 일이나, 지금처럼 귀한 손님이 올 것을 대비해 제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박람회 준비라.”
익숙하고도 그리운 단어다. 준비할 때는 귀찮기 그지없었지만, 막상 박람회처럼 평화로웠던 때도 드물었지.
박람회 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다른 때에 비하면 상대적 선녀였다는 거야.
“특히 오늘 확인할 부지 중에는 제과 동아리가 사용할 부지도 포함되어 있어서, 새벽부터 나가 점검 중입니다!”
“음?”
이번에도 그리운 단어가 튀어나와 고개가 기울어졌다.
제과 동아리가 아직까지 존속 중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 이왕 만든 동아리를 3년만 쓰고 폐부하기는 아깝고, 내 입장에서도 나름 추억이 담긴 곳이니 존속을 지지했으니까.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추억이 담긴 곳이라고 계속 살펴보지는 않았다. 나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은 죄다 졸업을 한 상태인데, 일개 동아리에 관심을 가지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특별 대우를 받는 듯한 말인데.’
그런 상황에서 벤자민의 말을 들으니 의문을 억누를 수 없었다.
오늘 확인할 부지 중에 제과 동아리의 부지도 있어서 새벽부터 점검 중이다? 마치 제과 동아리를 중요시 여기고, 특별하게 관리한다는 듯한 발언이다.
“그러고 보니 학생회 소식만 전해 듣다 보니 제과 동아리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군. 내가 한때 몸담았던 곳이 어떻게 돌아가나 알고 싶은데, 설명해 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각하!”
어느새 허리를 들어 올린 벤자민은 후다닥 걸음을 옮기더니, 책상 위에 놓인 두루마리를 낚아챘다.
“우선 이 지도가 각 동아리에게 배분된 부지입니다! 이곳이 제과 동아리에게 할당된 땅이지요!”
‘허.’
이윽고 두루마리 형태의 지도를 펼친 벤자민은 누가 봐도 가장 거대한 영역을 짚으며 말했다.
뭐지. 뭐 이렇게 큰 땅을 동아리 하나에 배정한 거지? 동아리에 제국 황자, 타국 왕자, 차기 성자가 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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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개교 이래 유례없는 조치입니다! 허나 이는 제과 동아리의 특수성으로 인한 결과이니,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특수성이라. 내가 아카데미를 떠난 이후로 많은 일이 있었나 보군.”
“예! 고귀한 분들께서 만든 동아리고, 그분들이 남긴 레시피 또한 그대로 남아있는 동아리입니다! 제과 동아리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권위가 되었으니, 적지 않은 고위 귀족가의 자제들이 제과 동아리에 입부했습니다!”
대충 상황을 알 것 같기에 쓴웃음이 나왔다.
명문 대학에 입학하면 위엄 넘치는 선배의 이름을 빌릴 수 있듯, 우리가 떠난 후의 학생들도 아인테르와 류티스, 라테르, 타니안의 이름에 홀려 제과 동아리에 다이빙한 것이다.
노골적이지만 확실하고 명확한 이유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히려 다른 이유였으면 더 귀찮았을지도 몰라.
“그리고 아카데미 내에서는 제과 행위가 일종의 교양이 되었습니다! 보랏빛 제관에서 태어나신 분들도 직접 과자를 구우시고 빵을 만드셨으니, 푸른피들이 마땅히 그 뜻을 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로 인해 제과 동아리는 이름에 걸맞은 활동을 보이고 있으며, 박람회가 열리면 학생들과 외부 손님들이 몰리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렇군.”
이어지는 설명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즉 제과 동아리 부스는 일종의 대형 카페, 명소 카페가 됐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부지가 넓은 것도, 학생회가 유심히 살피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박람회 제일의 명소 카페라면 흥행과 수익을 위해서라도 세심히 살펴야지. 나였어도 그랬을 거다.
“벤자민.”
“예, 각하!”
“이왕 온 김에 다른 간부들도 보고 싶군. 안내해 주겠나?”
내 말에 벤자민은 다시 책상으로 달려가더니, 이번에는 열쇠를 들고 왔다.
말 대신에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는 훌륭한 친구였다.
‘이번 박람회 때는 나도 와볼까?’
생각해 보니 박람회 기간 동안은 외부 인사가 아카데미에 들어올 수 있으니, 나도 손님으로서 당당히 입장할 수 있다.
박람회 기간에 할 일이 없다면 오랜만에 추억을 곱씹을 겸 가보자.
***
공작 대리가 아카데미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다.
옛날이었으면 무슨 일인가 싶어 불안했겠지만, 공작 대리가 사촌의 입학 문제로 왔다는 걸 알기에 평온할 수 있었다.
물론 공작 대리가 직접 찾아와서 잘 봐달라 부탁을 할 정도로 신경을 쓰는 사촌이다. 심지어 사촌 본인도 차기 체네스 공작인 거물 중의 거물. 그런 귀족이 내년에 입학한다는 건 교직원들에게 있어 큰 걱정거리이나,
‘나는 내년에 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년 교직원들이 짊어질 의무다. 늙고 허약한 노인이 걱정할 것은 아니다.
‘두 번째 은퇴라.’
차를 마시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봤다.
맑은 하늘과 푸릇한 초목. 이제 이 광경을 보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이겠지. 교장실에서 보는 드넓은 아카데미의 광경은 더 이상 보지 누리지 못하겠지.
‘나도 참 정신없이 살아왔군.’
은퇴를 앞에 두고 나니 온갖 잡념이 떠올랐다.
그래, 참으로 정신없는 삶이었다. 군에 소속된 전투 마법사로서 첫 번째 인생을 살았고, 후배들의 박수 속에 은퇴를 하며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으니 결코 평범한 삶은 아니다.
그것도 교육자의 길을 택했으니 더더욱. 군인이었던 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지만, 누군가의 현재를 없애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미래를 살리고 싶었기에.
그래도 정신없는 삶, 우발적인 선택치고는 훌륭하게 나아갔다. 설마 아카데미 교장이라는 명예로운 자리까지 오를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세 번째 삶은 어떨까.’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두 번째 은퇴를 앞둔 이 늙은이에게 세 번째 삶을 권유한 분이 계셨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다. 세 번째 삶은 평온한 노후로 마무리할지, 아니면 그분의 권유대로 앞으로 나아갈지.
‘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수염을 매만지며 푸른 하늘을 올려다봤다.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불태워 만들어갈 세 번째 삶이다. 그러니 급하게 결정하여 후회를 남기지는 말자.
어차피 사관학교 개교까지는 몇 년의 여유가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