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029)
로판 속 공무원 1030화(1030/1083)
요즘 들어 백작이 특이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물론 백작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특이한 존재였지만, 근래에 보인 행보는 그걸 감안해도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일하기 싫어하는 주제에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지?’
백작이 방문한 곳을 표시한 지도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일단 세 신앙의 종교 시설에 방문한 것은 그럭저럭 납득할 수 있다. 파편처럼 흩어진 정보를 조합해 보니, 아무래도 백작의 새로운 막내들과 관련한 방문 같았으니까. 정상적인 아비도 자식 문제와 엮이면 독특한 행보를 보이거늘 원래 특이했던 백작은 오죽할까.
다만 그 이후의 행보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갑자기 아카데미에 방문하여 여기저기 들쑤실 줄은 누가 짐작이나 했겠나.
‘내년에 체네스 소공작이 아카데미에 입학하기는 한다만.’
처음에는 사촌을 챙기기 위한 방문인 줄 알았으나, 청탁이라면 현 교장과 교감을 만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굳이 아카데미 전체를 훑다시피 돌아다닐 필요는 없었다.
아니지. 솔직하게 말하면 백작이 방문할 필요조차 없었다. 굳이 백작이 나서지 않더라도 아카데미는 미래의 체네스 공작을 살뜰하게 대할 것이며, 설령 백작이 더 신경을 쓰고 싶었다면 통신구로 연락을 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럼에도 백작은 직접 나섰다. 이걸 단순히 사촌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볼 수 있나?
‘그 이후에는 장인어른과 만났다라.’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건 아카데미에 방문한 백작이 뒤이어 총사령부에도 방문했다는 점이다.
머리가 복잡하다. 종교 시설, 아카데미, 총사령부. 이렇게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시설을 연이어 방문하는 것도 능력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 정도면 셋 다 건축물이라는 걸 제외하면 아무런 공통점이 없을 정도야. 억지로 공통점을 추가하자면 제국 영토에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요소밖에 없고.
‘우선은 아카데미와 총사령부의 연관점부터 찾아야 하나.’
빤히 지도를 바라보다가 제도, 아카데미를 선으로 이었다.
종교 시설은 예외다. 그건 아무리 봐도 백작의 자식들과 연관된 일이니, 건드려봤자 딱히 좋은 결말은 나오지 않을 터.
‘…교육과 군사의 공통점?’
다만 하나를 빼도 남은 두 가지가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대체 제국 아카데미와 제국군 총사령부의 공통점, 연관점은 뭘까. 명목상 제국 행정부 관할이라는 거 말고는 없잖아.
‘어쩔 수 없나.’
그렇게 한참이나 고민한 후, 작게 한숨을 내쉬며 통신구를 들었다.
사실 처음부터 장인어른께 백작과 무슨 대화를 했느냐고 물어보면 끝날 문제다. 그러나 제국군을 관리하느라 바쁜 장인어른에게 이런 연락을 하는 건 민망한 일이요, 어떻게 보면 장인어른의 행보를 감시하는 듯한 행동이기도 하지.
그래서 최대한 스스로 추리하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의문을 풀지 못하고 답답하게 지낼 바에는 민망함을 감수하는 게 낫다.
– 아카데미 교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교장이 은퇴하고 나면 사관학교의 중추로 영입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칼 군은 3년 동안 교장과 연을 맺지 않았습니까. 겨우 은퇴를 하게 된 교장이 고생하지는 않을까 염려한 모양이더군요.
“아, 그렇습니까?”
– 예. 그 뒤로는 칼 군과 사관학교의 구성에 대해 논했는데─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짧고 강력했다.
두 번째 은퇴를 앞둔 교장과 세 번째 고용을 노리고 있는 장인어른. 자신이 아닌 남의 세 번째 인생을 막기 위하여 총사령부까지 달려간 백작.
‘과연.’
여기저기 비어있던 퍼즐이 마침내 완성됐다.
뭐가 그리 급해서 쉴 새 없이 움직인 건가 했는데, 백작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다 못해 무릎까지 불타고 있는 일이었다.
‘불안했겠지.’
누가 봐도 평온한 노후를 즐겨야 할 교장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것에.
그 새로운 인생이 여행이나 저술 활동, 후학 양성이 아닌 관료 생활이라는 것에.
‘남의 미래가 아닌 자신의 미래가 될 수도 있으니까.’
아직 서른도 안 된 주제에 벌써부터 멀리도 보고 있는 백작이다. 얼마나 눈이 좋아서 그렇게 멀리 보는 건지, 혹시 조상 중에 유목민의 피가 섞인 건가 의문일 정도로.
그러니 백작이 교장이라는 선례에 격렬히 반응하고 두려움에 떠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늙어서 겨우 은퇴에 성공했는데 다시 새로운 관직을 받아서 관료 생활을 한다?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지.
‘흐으.’
동시에 꿈틀거리는 입꼬리를 겨우 억눌렀다.
장인어른의 말씀을 들어보니 백작은 교장의 세 번째 인생을 막으려다 실패한 듯하다. 그러면 지금쯤 불안감에 잡아먹혀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지 않을까?
애석하다. 왜 나는 교장을 사관학교에 투입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서, 백작이 나를 찾아오도록 만들지 못해서 이런 진귀한 구경거리를 놓친 것인가. 내가 먼저 교장에게 사관학교 근무를 건의했다면 총사령부로 갔을 백작은 태양전으로 왔을 터인데.
‘그렇다고 더 자극하면 어디로 튈지 모른다.’
이미 백작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정신적으로 몰려있다. 이 상황에서 조금만 충격을 받는다면 백작은 눈이 뒤집혀서 온갖 돌발 행동을 할 것이 뻔하다.
제국의 기둥이자 황실의 방패인 백작이 미쳐버리면 실로 곤란한 일. 비록 나로 인해 궁지에 몰린 건 아니지만, 황제로서 신하의 불안을 자비롭게 달래는 것이 도리지 않겠나.
‘벌써 망가지면 곤란해.’
백작의 무병장수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
전승공과의 대면을 끝낸 이후로 고민이 많아졌다.
우선 교장을 영입하려는 전승공의 야망은 굳건하다. 이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꺾을 수 있는 게 아니니, 교장의 세 번째 공직 생활을 막으려면 교장을 설득하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난 이미 교장을 향한 전승공의 야망과 의지, 대의를 직접 들은 상태다. 그런 주제에 교장에게 달려가서 ‘사관학교에서 일하는 건 별로지 않을까요?’ 같은 말을 한다? 전승공이 크게 서운해해도 이상하지 않다.
덕분에 머리는 지끈거리고 사지는 부들부들 떨렸다. 대체 어떻게 해야 이 지옥을 막아낼 수 있을까. 무슨 방법을 동원해야 내 노후를 박살 낼 악습을 차단할 수 있을까.
‘의회를 동원해야 하나?’
순간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제국의회가 황제의 거수기이자 호위 집단이기는 하다만, 그래도 일단은 제국법을 만드는 입법기관이다. 의원들이 뜻을 모으면 ‘특정 나이 이상의 전직 관료는 다시 관직에 오르지 못한다.’ 같은 법안을 만들 수 있다.
대신 황제가 지랄 말라고 반송시키면 좌절되지만 말이야. 결국 돌고 돌아 황제가 문제인가.
‘응?’
그렇게 오늘도 황제를 욕하던 중. 옆에 있던 통신구가 보랏빛으로 빛났다.
망할 새끼. 용케 자기 욕하는 걸 알아내고 연락을 하는 건가? 어떻게 이런 절묘한 타이밍에 연락을 하는 거지?
“크라시우스 가문의 가주, 세르베트 공작 대리입니다.”
찝찝하고도 오묘한 심정으로 통신구를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무시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 상황에서 황제의 원한까지 사다니.그건 죽겠다는 선언과 다름없지.
– 어째 인사가 점점 짧아지는군.
“어떠한 이름도 폐하 앞에서는 초라한 필부의 이름이요, 화려한 찬사도 천명 앞에서는 당연한 외침에 불과하옵니다. 어찌 길고 복잡한 말로 폐하의 귀를 어지럽히겠나이까.”
– 그거 참, 듣기에는 좋은 말이야.
피식 웃음을 흘린 황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 짐도 백작에게 좋은 말을 할 생각이니 태양전으로 오게.
언제나처럼 소환술을 시전했다.
이쯤 되면 태양전 옆에 내 전용 숙소를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 텔레포트 마법진 하나 설치하고, 언제든지 황궁과 저택을 오고 갈 수 있게.
‘망할 새끼.’
휴가 중에도 상사의 집무실로 걸어가야 하는 내 입장을 조금이나마 생각해 줬으면.
생각해 보니 망할 새끼는 나였던 것 같다.
아무리 머리가 복잡하고 폐하의 존귀함이 지상의 모든 것을 뒤덮을지라도, 어찌 감히 폐하께 짧은 인사를 건네었던 말인가.
“대충 보고 서명하게. 짧게 쓴 거라 왜곡해서 해석할 여지도 없어.”
그 말에 황급히 종이 옆에 있던 깃펜을 집었다.
[ 크라시우스 가문의 칼 크라시우스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행정부에서 은퇴할 경우, 제국백 고유의 의무를 제외한 다른 부서로의 재임관을 금한다. ]동시에 종이에 적힌 짧고도 강렬한 문장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가 걱정하던 끔찍한 미래를 명확하게 차단한 문장. 내가 감찰성 장관으로 구르고 구르다가 은퇴할 경우, 제국백으로서 제국의회 의원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의 경우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약속.
‘완벽해.’
마치 명장이 일생을 투자하여 만든 명작처럼 아름다운 내용이다. 제국의회 의원은 예외라는 조항이 있지만 그런 건 고려할 수준이 아니다.
내가 은퇴할 정도면 타일글레헨 백작위도 페디에게 넘어갔을 확률이 높다. 여전히 내가 타일글레헨 백작인데 장관직에서 물러난 거라면, 내가 내 예상보다도 빠른 은퇴에 성공했다는 뜻. 의원 생활을 기꺼이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3연속 공무원 생활은 황제가 봐도 아니었던 모양이지.’
마음이 급속도로 평온해졌다.
내가 아카데미와 총사령부를 들쑤시자마자 황제가 반응했다는 건, 황제도 내가 품은 우려를 명확하게 파악했다는 의미다.
헌데 내 우려를 방관하기는커녕 서류로 계약을 맺었다. 이는 황제조차 ‘은퇴한 관료를 다시 쓰는 건 좀.’ 이라는 마인드를 가졌다는 거겠지.
‘제국이 그래도 선은 지키는구나.’
빠르게 서류에 서명을 하고 황제에게 넘겼다. 이미 내가 서명할 공간 위쪽에는 황제의 서명이 박혀있었으니 이로써 저 계약은 효력을 발휘한다.
“이제 걱정이 좀 가셨나?”
“폐하의 덕이 드높고도 두터울진대, 소신이 무엇을 근심하고 걱정하겠습니까.”
황제의 말에 이마가 책상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오늘만큼은 태양전 누렁이가 아니라 태양전 현인신이다. 이 다짐이 얼마나 갈지는 몰라도 오늘만큼은 그렇다.
***
백작은 연신 굽신거리다가 물러났다.
이걸로 백작의 고뇌는 사라졌고, 초췌해지던 정신도 원래대로 복구하겠지. 제국의 큰 신하가 무너질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별 이상한 고민을 다 하고 있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내가 백작을 늙어 죽을 때까지 부리면 부렸지, 고심 끝에 은퇴시킨 신하를 다시 쓸 생각은 없다. 애초에 백작을 감찰성이 아닌 다른 곳에 넣어봤자 뭐 얼마나 활약을 하겠나.
그래서 제국의회 의원의 경우만 제외하고, 다른 부서로의 재임관을 금지하다며 명확하게…?
‘잠깐만.’
뒤늦게 위화감이 들어서 서류를 다시 훑어봤다.
다른 부서로의 재임관을 금지한다는 내용. 여기서 말하는 다른 ‘부서’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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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이 행정부 소속이기에 입법부, 사법부, 군부 등에만 보내지 않으면 되는 건가? 아니면 세세한 부서를 따져서 궁내성, 재무성, 외무성 등에도 적용이 되는 건가?
‘이런.’
가벼운 마음으로 써서 그런지, 순식간에 다른 해석이 적용될 내용을 찾고 말았다.
전자를 적용하면 아무튼 행정부 내의 다른 부서로는 재임관해도 되고, 후자를 적용해야 백작이 원하는 자유가 펼쳐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