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034)
로판 속 공무원 1034화(1035/1083)
추첨을 시작하자마자 사제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처음부터 1번이 나왔다는 사실이 놀랍기는 하다만, 그렇다고 저렇게 술렁거릴 정도인가? 어떤 숫자든 간에 나올 확률은 동일하잖아. 1이나 444나 666이나 777이나 나올 확률은 N분의 1인 것처럼.
‘뭐지.’
심지어 타니안까지 당첨자를 확인하던 사제들에게 다가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상당히 신경 쓰인다. 같은 방 안에 있다면 수군거림 정도는 얼마든지 들을 수 있지만, 본 예배당 안에 있는 사람이 워낙 많아 의도적으로 감각을 둔화시킨 상태다. 북적거리는 곳에서 감각을 키워봤자 고막을 혹사시키는 꼴이니.
덕분에 제법 가까운 거리임에도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건지 알 수가 없어. 이럴 줄 알았으면 고막 혹사를 감수하더라도 귀를 열어두는 건데.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찝찝한 심정으로 타니안과 사제들을 보다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일단 추첨을 이어나갈 분위기는 아니다. 최대한 공정하고 공정한 추첨이 필요한 일이니, 아주 약간의 문제라도 생겼다면 바로 처리해야 뒷말이 나오지 않는다.
“문제가 생겼다면 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마침 이제 막 하나를 뽑은 것이니, 여차하면 다시 시작한다는 선택지도 있습니다.”
“아니면 신분을 증명할 수단이 분실된 겁니까? 분명 어제 확인했을 때는 이상 없다고 들었는데요?”
다행히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는지, 본 예배당에 앉아있던 성장들도 하나둘 당첨자를 확인하던 사제들에게 다가갔다.
이 추첨에 이름을 올린 자들─ 더 정확히 말하면 사전 구매를 행한 자들은 교단의 지갑에 무겁고도 찬란한 신앙을 가득 담아준 은인들이다. 교단 입장에서는 사전 구매자들에게 고마울 수밖에 없고, 그들을 향한 보답을 위해서라도 추첨을 허투루 진행할 수 없다.
그러니 성장들이 저렇게 진지한 목소리로 묻는 것이겠지. 만일 추첨 중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이, 교단이 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대륙에 퍼지면 어떻게 되겠나. 제2의 파산 위기가 왔을 때 누구도 교단을 돕지 않을 거다.
“아, 아니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신분증명서도 확실하게 있으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만…”
성장들의 질문에 사제 하나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답했다.
허나 문제없다는 말과 달리 표정과 목소리는 문제로 가득했다. 정직하고 선량한 사제 아니랄까 봐 거짓말을 참 못하시네.
“그, 1번이 이 분이십니다.”
아무튼 눈치를 보던 정직하고 선량한 사제는 성장들의 눈빛에 무언가를 내밀었고,
‘뭣.’
마침 사제를 향해 다가간 나도 사제가 내민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포효하는 사자가 그려진 인장. 그 인장이 당당하게 찍힌 백지. 사람 이름은커녕 성조차 적히지 않은 불친절한 신분증명서였지만, 저 인장만으로도 누구를 나타내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황실이잖아.’
대륙에서 저 인장을 사용하는 건 오직 황실뿐이다. 그것도 황실의 주인인 황제만이 가능한 고귀하고 존엄한 인장.
“그게 왜 여기에.”
그래서 머리가 움직이기 전에 입이 먼저 움직이고 말았다.
저 흉한 게 왜 여기서 나타나는 거지? 황제의 신분을 증명하는 인장이 왜 사제 손에서 튀어나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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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인가.’
이내 머리는 빠르게 현실 부정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난 지독한 꿈을 꾸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어떤 정신 나간 놈이 감히 황실의 인장을 도용했거나.
‘어디서 그런 추악한 역적이.’
치가 떨렸다. 추첨을 마치고 귀국하면 바로 칼춤 한 번 춰야겠다. 감찰성 장관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역적이 살아 숨 쉬는 건, 황실은 물론 나에 대한 모욕이나 마찬가지니까.
내 명예, 내 평온한 휴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잡아 죽인다. 잡아 죽여서 누렁이에게 바치면 그놈도 흡족해할 거야.
“경매장에 궁내성 황실부장이 참여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개인 자격이 아니라 폐하의 대리인으로 참여했던 모양이군요.”
“이거 참. 확실히 궁내성의 부장급 관료가 사적인 이유로 움직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폐하를 대리하여 왔을 확률보다는 높다고 생각했는데.”
“허허. 황제 폐하께서도 성스러운 분의 일대기에 관심이 많으셨나 봅니다.”
‘아.’
그런데 정신 나간 역적의 도용이 아니라, 정말로 황제가 사용한 인장이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리 나라도 태양전 누렁이를 죽일 수는 없다. 게다가 본인 물건을 본인이 쓴 걸 가지고 열을 내는 것도 이상한 일이잖아.
“헌데 1번이신 것도 모자라 첫 번째로 당첨되셨다라. 역시 천명을 수호하는 분답게 주의 총애를 받으시는 듯합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우연이 이렇게 겹치면 그것은 운명인 법이지요.”
성장들의 대화를 들으며 묵묵히 황실 인장을 바라봤다.
저 포효하는 사자가 나를 놀리는 것처럼 보인다. 평소에는 평범한 금사자로 보였거늘, 왜 지금은 누런 치와와로 보이는 건지.
“…응모 과정에도, 추첨 과정에도문제가 없다면 다시 추첨을 진행하겠습니다.”
착잡함을 억누르며 겨우 입을 열었다.
마음 같아서는 무효를 외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정당한 과정을 거쳐 구매했고, 응모를 했으며, 선정이 됐다. 내 개인적인 의지로 정당한 당첨자를 취소하는 건 교단에게 무례를 저지르는 일.
‘망할 놈.’
태양전 누렁이를 욕함과 동시에 나 스스로를 원망했다.왜 많고 많은 공 중에서 이걸 뽑은 거냐. 그냥 옆에 있던 거나 뽑지.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던데, 내가 딱 그 꼴이다.
시작하자마자 중단되었던 추첨을 재개했다.
단순히 기계에 있는 공을 무작위로 뽑고, 공에 적힌 번호를 외치기만 하면 되는 과정이니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1번 누렁이 때문에 수군거린 시간을 추첨에 투자했다면 50명은 선정했을 정도로.
그렇게 추첨은 누렁이의 미친 존재감을 제외하면 무난히 끝났다.
“보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그래도 성스러운 분께서 직접 만날 사람들인데.”
“괜찮습니다. 이런 건 모르고 마주해야 더 즐겁지 않겠습니까? 미래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겠습니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성스러운 분의 뜻이 그렇다면야.”
정확히는 누렁이 이후로 당첨된 사람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라고 말하는 게 옳겠지만.
‘당첨자 중에 황제 같은 사람이 또 튀어나오면 못 버텨.’
물론 언젠가는 맞아야 할 매니까 미리 맞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하지만 그것도 매를 맞고 버틸 체력이 있을 때 통하는 말이다.
신성교국에서 황제와 팬미팅을 하게 생겼는데 내 멘탈이 멀쩡하겠나. 아주 작은 충격만 날아와도 쿠크다스처럼 바스스 부스러질 미래가 뻔히 보인다. 그렇다면 최대한 충격을 피하고 유예해야 돼. 내가 후속타를 맞고도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아, 정식 판매 이후의 추첨은 교국에서 책임지겠습니다. 대륙 전역에서 응모가 진행된다면 수차례 추첨을 해야 할 텐데, 그때마다 성스러운 분께 추첨을 부탁드리는 건 과한 일이겠지요.”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오히려 저희가 감사드려야 할 일입니다. 사전 판매로도 상당한 수익을 얻은지라, 정식 판매가 시작되면 어느 정도의 수익이 생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재무기획성 성장의 말에 미소로 화답했다.
그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수익의 일부는 내 지갑으로 꽂힌다. 교단만 일방적으로 이득을 보는 게 아니지. 그럼에도 나를 향한 감사를 멈추지 않으니 흐뭇할 따름이다.
***
슬슬 저녁을 먹고 마저 업무를 처리할까 고민하던 중. 통신구가 밝게 빛을 내뿜었다.
‘벌써 귀국했나.’
통신구를 보자마자 백작이 신성교국으로 넘어간 시간을 떠올렸다.
늦은 아침에 갔으니 빠르게 용무를 마쳤다면 슬슬 돌아올 시간이기는 하다. 헌데 돌아왔으면 가족끼리 식사나 할 것이지, 왜 나한테 연락을 하는 거지?
빠르게 머리를 굴려도 딱히 짚이는 건 없다. 내가 짐작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면, 교국에서 새로운 일이 생겼다는 뜻일 터.
“짐일세.”
그렇기에 턱을 매만지다가 통신구를 잡았다.
그래, 백작이 국경까지 넘었는데 조용히 넘어갈 리가 없지. 오히려 아무런 일도 터지지 않았다면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가는 곳마다 온갖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백작이지 않나.
이제는 조용한 것이 의심스럽고, 무언가 일이 터져야 마음이 편해진다. 적어도 백작의 정상은 고요함이 아닌 요란함이기에.
– 크라시우스 가문의 가주, 세르베트 공작 대리이자 타일글레헨 백작인 성 칼 세르베─
“아, 됐네. 중요한 일일 테니 그 정도만 하고 넘어가지.”
끔찍할 정도로 길어진 인사에 대충 손을 내저었다.
황제를 제외하면 백작의 자기소개가 제국 안에서 제일 길 거다. 어쩌다 일개 귀족이 저토록 휘황찬란한 명함을 가지게 되었을까.
“막 교국에서 귀국했을 터인데, 무슨 일로 연락을 한 건가?”
– 폐하의 말씀처럼 교국에서 추첨을 마치고 복귀한 참입니다.
내 질문에 백작은 짧게 고개를 숙였고,
– 그리고 추첨 결과. 실로 감격스럽게도 폐하께옵서… 수많은 사전 구매자들 중 첫 번째로 선정되셨습니다.
“음?”
이어지는 말에 내 고개가 기울어졌다.
내가 선정됐다고? 온 대륙에서 덤벼든 사전 구매자들 중에서 내가? 그것도 첫 번째로?
‘왜?’
아니, 대체 왜? 당첨 확률이 높다면 또 모를까, 결코 만만한 확률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교국이 나를 배려하여 추첨 없이 선정했을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제국과 교국은 우호 관계지, 이런 소소한 부분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상하 관계가 아니기에.
“놀라운 일이군. 하필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짐이 걸렸단 말인가.”
어쨌거나 백작의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곤란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백작의 일대기라고 하니 황실부장을 보내 구매하기는 했다만, 어디까지나 ‘내가 네 일대기를 사전 구매한 충성 독자다.’ 라는 농담을 건네기 위함이었다. 결코 추첨을 노리고 구매한 건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매일 보는데 무슨.’
그것도 집무실에서 일대일로 오붓하게. 그런 내가 뭐가 아쉬워서 백작과의 만남을 갈망한단 말인가.
“백작.”
– 예, 폐하.
“이거 양도도 가능하나?”
그 말에 백작의 표정이 급속도로 밝아졌다.
막상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 서운하면서도 언짢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