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037)
로판 속 공무원 1037화(1038/1083)
제국 귀족들의 이목과 발걸음은 제국의회로 향했으나, 나는 그러한 열기에서 벗어나 태양전 집무실로 대피했다.
나를 만나기 위한 권리를 사기 위해서 벌어지는 경매다. 그런 경매에 당사자가 등장하면 상당히 어색하지 않겠나. 괜히 얼굴을 비치면 귀족들은 경쟁심을 더욱 뜨겁게 불태울 테고, 나는 경매가 끝나도 경매장에서 나갈 수 없는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런 주제에 대피처가 태양전이라는 건 내가 생각해도 오묘한 일이다. 지옥을 피하기 위해서 다른 지옥으로 향하는 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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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현시점에서는 가장 안전하다.’
아직까지는 귀족들이 선을 지키고 이성을 유지하고 있으나, 만일 한 명이라도 폭주하는 귀족이 나오면 내가 어디에 있든 대면을 청할 수 있다. 그리고 한 명이 시작을 끊으면 그다음은 쉬워지는 법.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황제 옆에 붙어 안전을 유지하는 게 낫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게 최선이 맞아.
“태양전을 대피소로 삼는 귀족은 백작이 처음일 걸세.”
황제도 그걸 아는지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놀렸지만, 어딜 감히 푸른피 나부랭이가 보랏빛 제관과 겸상하느냐며 쫓아내지는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나와 황제가 태양전 집무실을 공유한 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니까. 어차피 종종 있는 일이니, 나한테 빚을 하나 얹어준다 생각하고 개방한 거겠지.
실로 서글픈 일이다. 이런 걸로 빚이 하나둘 쌓이다 보면 그 끝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일 터. 빚쟁이 상태에서 황제의 제안을 거절하면 그대로 인면수심의 역적이 되어버린다.
“무례를 용서하신 폐하의 자비에 실로 감격스럽고도 황송할 따름입니다.”
그렇기에 황제의 비웃음에도 씁쓸히 고개를 숙였다.
분하다. 나한테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 기지만 있었어도…!
“황실과 제국을 위해 헌신하는 백작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지.”
그 와중에 황제의 대답은 더욱 가관이었다.
자신의 행동이 자비라는 것에는 전혀 부정을 표하지 않았다. 도리어 나니까 특별 대우를 해준 거라는 빚 1 + 1 행사 수준의 발언을 꺼낼 뿐.
‘망할 놈.’
혹시 조상 중에 누렁이가 계신가. 아주 개새끼가 따로 없다.
“헌데 백작. 백작은 누가 낙찰받았으면 좋겠나?”
“예?”
“다들 백작을 보기 위해서 열정을 불태우고 있지 않나. 그러다 보니 백작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반대로 백작이 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지 궁금하더군.”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질문이라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누가 낙찰받았으면 좋겠느냐라. 솔직하게 말하면 경매 자체가, 더 나아가 황제의 당첨 자체가 없던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최선이야.
그래도 굳이 무난한 낙찰자를 고르자면,
“딱히 없습니다.”
없다. 황족, 공작, 후작, 고위 공무원 등이 빠진 상태라면 누가 낙찰받아도 거기서 거기니까.
특정 인물의 성격을 알아야 누가 됐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라도 하지, 지금 경매에 참가한 사람들은 나를 볼 일이 드물어서 팬미팅 참가권을 얻으려고 하는 거잖아. 내가 상대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만나기도 쉽다는 거니, 굳이 경매에 참가할 필요가 없다.
“흐음, 그런가.”
그러자 황제도 예상한 답변이라는 듯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만나기 싫은 사람은?”
“그것도 없습니다. 누구여도 상관없으니, 어떤 결과가 나오든 천상의 주와 대제께서 새로운 연을 점지해 주신 거라 생각할 예정입니다.”
“과연. 교국에서 얻은 권리를 제국에서 하사하는 것이니 주와 대제의 뜻이라 해도 되겠군.”
이번에는 마음에 드는 답변이었는지 희미한 미소가 입가에 맴돌았다.
“축하하네, 백작. 전 궁내성 장관과 상당히 친해지겠어.”
그리고 미소와 상반되는 흉악한 죽창을 명치 쪽으로 날렸다.
이 새끼가 이번에는 또 무슨 헛소리야. 내가 그 양반하고 왜 친해져.
“백작이 원하는 사람도, 꺼리는 사람도 없다면 자본의 힘에 따라 낙찰자가 정해지겠지. 그러면 전 궁내성 장관이 낙찰에 성공할 걸세.”
“전 궁내성 장관이… 말입니까?”
그러나 상당히 진지하고 확신에 가득한 표정이라 절로 의문이 들었다.
전 궁내성 장관한테는 계승 가능한 작위와 영지가 있고, 리시자리우네 기사단원으로서 소유한 땅도 조금 있다. 심지어 수십 년 동안 한 부서의 장으로 지냈으니 결코 가난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눈이 뒤집힌 귀족들을 돈으로 두들겨 팰 만큼 부유하냐고 묻는다면, 최대한 긍정회로를 돌려도 고개를 젓게 된다. 상황 즉위 전의 전 궁내성 장관은 평범하고 평범한 귀족이었으니까. 아무래도 대대손손 부를 쌓은 백작위 가문과 비교하면 밀릴 수밖에 없지 않나?
“백작. 전 궁내성 장관이 상황 폐하를 모시며 얼마나 많은 정보를 접하고, 얼마나 많은 재물을 관리했을 것 같나. 전 궁내성 장관 손을 스쳐간 재물을 고려하면… 손에 남은 부스러기만 긁어모아도 성 몇 개는 살 거야.”
내 의문을 읽은 듯, 황제는 작게 웃음을 흘리며 전 궁내성 장관의 재력을 친절히 설명해 줬다.
그 말을 들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제국은 공무원의 무조건적인 청렴보다 능력으로 인한 국익을 중시한다. 즉 고위 공무원이 무언가를 해처먹더라도, 그것이 그 공무원의 능력으로 인한 이득보다 적다면 그럭저럭 용인하지. 이는 철두철미하고 냉철한 상황도 예외가 아니었다.
헌데 전 궁내성 장관의 능력은 제국 1등 재건공신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상황의 파트너이자 대리인, 오른팔이니 자비의 상한선도 높다. 그런 상황에서 전 궁내성 장관이 선을 넘지 않고 수십 년 동안 조용히 해먹었다면?
‘숨겨진 부자였네.’
단순하게 생각해도 전 궁내성 장관에게 친구비를 입금한 귀족들이 몇 명이고, 전 궁내성 장관이 관리한 영토가 몇 평일까.
또한 상황이 특정 귀족 가문을 쥐어 패거나 견제할 때마다 그 부산물을 열심히 파밍하기도 했겠지. 그것도 수십 년 동안이나.
“폐하.”
“말하게나.”
“혹시 전 궁내성 장관이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숨겨진 부자를 관측하고 나니, 내 마음속에서도 낙찰자가 조기 확정되었다.
이건 누가 봐도 전 궁내성 장관의 승리다. 경쟁자들을 돈으로 두들겨 팰 자본이 충분하다면 누가 전 궁내성 장관의 행보를 막겠나. 사실 돈 없이 권위만 내세워도 눈치를 볼 귀족들이 많은데, 돈과 권위가 결합되면 완전체나 다름없다.
“글쎄. 낙찰자는 전 궁내성 장관이 되겠지만, 국경을 넘는 사람도 동일할지는 모르겠군.”
“그게 무슨…”
“상황 폐하처럼 대외 활동에 관심을 끊은 사람 아닌가. 경매까지는 제도 내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흥미 삼아 왔다고 쳐도, 국경을 넘어가는 건 별개의 일이지.”
그럴듯한 말이라 심장이 철렁했다.
황제가 경매에 올린 권리를 다시 팔아먹는 건 눈치가 보이니 2차 경매는 없겠다만, 전 궁내성 장관이 누군가에게 팬미팅 권한을 양도할 수도 있다는 말.
‘대체 누구지?’
만약 그런 일이 이루어지면 누구 손에 권한이 들어가는 거지? 전 궁내성 장관이 사사롭게 무언가를 내어줄 정도라면 상당한 친분이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있나?
빠르게 머리를 굴려도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그나마 고르자면 상황의 왼팔이라 할 수 있는 아우스엔 시장 정도? 그런데 그 양반도 엉덩이 무겁기로 유명한 양반인데.
“뭐,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는 말게. 백작에게 도움을 주면 줬지, 짐을 던질 사람은 아니니까.”
“아, 예.”
먼저 복잡한 말을 꺼낸 주제에 뻔뻔하기 그지없는 태도였으나 지금은 황제의 말을 믿기로 했다.
실제로 그 양반이 궁내성 장관이었던 시절에도 상황의 대리인이라 대하기 어려웠던 거지, 성품이 개차반이라 어려웠던 건 아니었으니. 나한테 똥을 투척하지는 않을 거라 믿는다.
…
‘그래서 그 양반이 좋아하는 건 뭔데.’
어느새 내 질문은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전 궁내성 장관이 자기 권한을 남에게 양도할 수 있지만, 반대로 자신이 직접 올 수도 있다. 그런 경우를 고려하여 어떤 차나 음식을 좋아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나?
‘혹시 이놈도 모르나?’
이내 합리적인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이놈도 전 궁내성 장관의 취향을 몰라서 넘어가려는 것 같아.
예상대로 경매 승리자는 전 궁내성 장관이 됐다.
“거 비싸게도 팔렸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리고 황제의 통신구를 통해 낙찰금액을 전해 듣자마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금화 3천 장을 조금 넘는 가격. 철저히 귀족들의 경매인 걸 감안해도 정신 나간 금액이다. 수십 년 동안 제국 2인자로 지낸 숨겨진 부자니 각오는 했다만, 설마 이런 가격으로 경쟁자들을 제압할 줄은 몰랐어.
‘이걸로 부동산을 샀다면 남작령이 하나 더 생겼을 텐데.’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다소 싼 지역을 중심으로 땅을 구매했다면, 제국 어딘가에 제2의 안트라흐 남작령이 생기지 않았을까.
“그나마 이것도 싸게 끝난 편이라고 하네. 마지막까지 경쟁을 이어가던 귀족들도 전 궁내성 장관이 진심이라는 걸 알았는지, 도중에 발을 뺐으니 말일세.”
“뺀 게 이 정도라니. 실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황제의 말에 실소가 흘러나왔다.
즉, 전 궁내성 장관이라는 억제기가 없었다면 귀족들은 금화 3천, 4천, 5천 이상까지 부르짖었을 가능성이 높다. 차마 상황의 최측근이자 과거의 2인자와 진심 펀치를 나눌 수 없어서 적당히 빠진 거지.
“짐은 놀랍다기보다는 조금 아쉬워. 더 비싸게 팔 수 있었는데 말이야.”
“이보다 높게 가격이 형성되었다면 귀족들의 감정이 필요 이상으로 상했을 것입니다. 전 궁내성 장관이 충정으로 적정치를 조절한 것일 테니,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하긴. 그도 그렇지.”
내 은근한 두둔에 황제는 통신구를 책상에 내려두었다.
수익 면에서는 조금 아쉽지만 귀족들의 과한 경쟁 및 분란은 막았다. 그렇다면 그럭저럭 감수할 수 있는 아쉬움 아니겠나.
“흐으음.”
“폐하?”
“막상 금화 3천 장이 개인 자금으로 생기니 고민되는군. 이걸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겠어.”
그렇게 중얼거리는 황제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3천 장이 조금 넘는 금화. 하늘에서 떨어진 눈먼 돈치고는 상당히 큰 액수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