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040)
로판 속 공무원 1040화(1041/1083)
세쌍둥이에게 장기간 소풍을 넌지시 제안했다.
엄마가 한동안 저택을 떠나서 밖에서 지내야 하는데, 혹시 아빠랑 같이 엄마 옆에 있지 않겠느냐고.
“웅! 갈래!”
“나두! 나두 가고 시퍼!”
“나두~”
그리고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세쌍둥이는 내 제안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런 망설임 없는 대답이라 등골이 서늘해졌다. 만약 트릭시가 세쌍둥이를 저택에 두고 갔다면, 내가 저택에서 아이들을 돌봤다면 무슨 일이 터졌을까. 아마 세쌍둥이의 가슴 아픈 통곡을 피할 수 없었겠지. 확률이 높다는 수준을 넘어서 무조건 발생하는 이벤트가 될 뻔했다.
‘살았다.’
그렇기에 속으로 트릭시에게 진심 감사를 보냈다. 트릭시가 같이 가자는 제안 없이 홀로 이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륙 회합으로 바쁜 트릭시에게 연락을 걸어 살려달라고 외쳤을 터.
상상만 해도 추하디 추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트릭시 덕분에 남편이 추한 남편으로 전락할 위기, 세쌍둥이가 서럽게 오열할 위기를 조기에 차단했어. 역시 대륙 제일의 대마법사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아빠. 근대 우리만 가?”
“응. 우리 마리아랑 세실리아랑 카틀레아만 가는 거야.”
내 대답에 마리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심에 빠졌다.
물론 이마를 찌푸린 모습마저 귀엽기 짝이 없었다. 새하얗고 앙증맞은 이마에 금이 그어져봤자 얼마나 위압감이 있을까.
“애들은? 애들두 데려가면 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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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쪼르르 내 다리에 달라붙은 마리아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애들. 이복동생들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타이밍에 말하는 애들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들을 말하는 거다.
우리 저택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짐승 친구들. 튼튼하고 말을 할 줄 안다는 어마어마한 장점 덕분에 아이들의 훌륭한 놀이 친구가 된 성수들.
‘두세 마리 정도는 괜찮나?’
반짝이는 마리아의 눈동자를 보며 잠깐 고민했다.
세쌍둥이의 이복 오빠나 이복동생을 데려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 아이의 엄마까지 데려가지 않는 이상, 결국 세쌍둥이가 아닌 다른 아이는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 테니까.
그러니 성수 몇 마리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11마리나 있으니까 몇 마리 정도는 빠져도 뭐.
“데려간다면 누구 데려가고 싶니?”
“나는 뿡요! 뿡요 복슬거려서 조아!”
“근면이두 조아~”
짧은 고민을 마치고 아이들의 의향을 묻자, 세실리아와 카틀레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풍요 좋지. 그 특유의 복슬거리고 풍성한 양털은 내가 봐도 훌륭하니까.근면 또한 이름은 근면인 주제에 낮잠을 즐기는 녀석이라, 어쩌다 보니 카틀레아와 영혼의 단짝 비슷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니 카틀레아가 근면을 찾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마리아는?”
허나 총대를 멘 것은 언니인데 실리는 동생들이 챙기는 기묘한 광경. 졸지에 눈 뜨고 코 베인 마리아를 위하여 마리아의 원픽도 챙기기로 했다.
“나는 절쩨 데려가구 시퍼.”
“절제?”
“웅!”
의외의 픽이라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절제는 뱀이다. 우리 아이들이 동물은 가리지 않고 좋아해서 절제에게도 애정을 쏟아붓고 있지만, 그래도 다른 성수들을 제치고 마리아의 원픽을 차지할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다른 동물들에 비하면 뱀은 호불호가 갈릴 외견이잖아.
“절쩨! 하얗고 길쭉하고 미끄러워서 조아! 요기조기 움직여서 신기해!”
“그렇구나.”
하지만 호불호가 갈린다는 건 호에 발을 들인 사람도 있다는 뜻. 우리 마리아가 그 호일 수 있으니, 의외일지언정 있을 수 없는 일까지는 아니다.
“그럼 풍요랑 근면, 절제. 이렇게 셋이랑 같이 가자.”
“와!”
“뿡요랑 가치 간다!”
“근면이두 가치 가~”
그렇게 세쌍둥이의 전담 친구가 될 세 성수가 순식간에 정해졌다. 서로 겹치는 원픽이 없어서 다행이야.
“그런데 얘들아.”
“우웅?”
“티티랑 장생이는 안 데려가도 괜찮니?”
그리고 아이들의 원픽을 듣고 나니 작은 의문이 생겼다.
우리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애완동물은 티티다. 그다음가는 2인자는 장생이지. 이건 어떤 일이 있어도 변치 않는 부동의 순위요, 일종의 영구 결번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셋 중 단 한 명도 티티와 장생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 마음속 동물 서열이 변한 건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띠띠랑 장생이는 다 가치 놀아야대.”
“으응?”
이건 또 무슨 말이람.
“띠띠, 장생이. 오빠랑 동생들도 조아해. 샤를로떼 언니도 조아해.”
“마쟈. 다른 애들은 갠찬지만 걔네는 막 데려가면 안대!”
“우웅. 그럼 다들 슬퍼해.”
‘오.’
슬며시 고개를 들었던 의문은 세쌍둥이의 첨언 덕에 금방 가라앉았다.
저 말. 티티와 장생이는 모두의 애정을 받는 1, 2위니, 누군가 독자적으로 밖으로 빼돌리면 안 된다는 말이잖아.
‘그런 규칙이 있었나.’
놀라운 말이라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 사이에 나름의 규칙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페디가 아이들의 맏이로서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고, 새로운 동생이 태어나면 맏이인 페디보다 동복 남매에게 우선권이 돌아가는 등. 대체 저 쪼그마한 아이들이 어찌 그리도 철저한 규칙을 성립한 건가 싶을 정도였지.
헌데 설마 ‘공공 재산은 사적으로 쓰지 말기’ 같은 규칙도 세웠을 줄이야. 개인의 욕심을 억제하고 공공의 이득을 추구한 거잖아.
‘우리 저택에 의회가 있었구나.’
이내 절로 웃음이 나왔다.현직 제국백인 아빠는 동생에게 짬을 때린 상태인데, 정작 아이들은 제국백처럼 법을 만들고 있다라.확실히 이 아이들의 피 중 절반이 크라시우스라는 걸 절절하게 느끼고 말았다.
‘…이 정도면 법전도 만들지 않았을까?’
잠깐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자체적으로 법을 만들 정도면 명문화된 법전도 존재하지 않을까? 규칙 하나하나를 전부 기억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잖아.
어른들의 눈을 피해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삐뚤빼뚤 적는 자기들만의 규칙. 그걸 소중하게 보관해서 까먹을 때마다 보는 아이들.
‘와.’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이미 내 마음속에는 아이들의 법전이 존재한다.
그렇게 생각해야 더 귀여우니까.
마종공, 마종공 주니어 셋, 마종공의 부군 하나. 마지막으로 양, 거북, 뱀 한 마리씩.
나열하고 보니 이게 대체 뭐 하는 라인업인가 싶었지만, 아무튼 몇 주에서 한 달 정도 소풍을 떠날 파티가 구성됐다.
“압빠 잘 다녀와!”
“뜨릭씨 엄마랑 언니들두!”
그리고 갑작스러운 아빠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울기는커녕 잘 다녀오라며 씩씩하게 배웅 인사를 했다.
아주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금세 뿌듯해졌다. 아빠가 가든 말든 관심도 없는 게 아니라 정문까지 달려와 배웅 인사를 해주잖아. 이건 우리 아이들이 아빠를 좋아하고 각별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그저 마음이 건강하고 굳건해서 아빠의 이탈에 울지 않을 뿐이지.
‘오히려 좋아.’
아빠를 좋아하되 울지 않는 아이들. 오히려 최선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자. 그게 모두가 행복해지는 생각이고, 근거 없는 정신승리도 아니니까.
“아빠가 선물 가지고 돌아올게.”
“와! 압빠 채고!”
“아빠 빨리 와야대!”
“선물! 조아!”
아빠가 떠나기도 전에 귀환을 바라고 있으니 분명 그럴 거다.
“왜 너희가 가는 거지? 우리도 아가씨들을 잘 모실 자신이 있는데.”
“먼 곳에서 장기간 동안 모셔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언제든 품에 안길 정도로 작은 녀석이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병아리보다 큰 녀석들은 전부 비켜라.”
“여기도 작은 주인님들 많이 남아있잖아… 불만 가지지 말고 그냥 집에 있어.”
그 와중에 성수들은 ‘왜 네가 파견을 가는 거지?’ 같은 주제로 작은 말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물론 풍요와 근면, 절제를 선택한 건 저 녀석들이 울부짖는 작은 주인님들, 아가씨들이다. 자기들끼리 떠들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하여간 외출에 환장한 녀석들.’
내가 주기적으로 타일글레헨에도 보내고, 에리히 서식지로도 보내고, 제도 산책도 시켜주거늘. 어찌 저리 외출에 목말라 하는 건지.마치 산책에 환장하는 보더콜리나 리트리버를 보는 기분이다.
정작 진짜 리트리버인 티티도 저 정도로 외출을 갈망하지는 않지만.
***
이번 대륙 회합은 제국에서 개최되었다.
내 나이가 나이인지라 다음 회합이나 다다음 회합이 인생 마지막 회합이 될 것 같았는데, 죽기 전에 제국에서 열리는 회합을 보게 되어서 감개가 무량하다.
‘조국에서 열리는 회합도 즐기고, 마종공 각하의 조국에서 열리는 회합도 즐겼다.’
마도의회 의장으로서도, 한 사람의 마법사로서도 만족스러운 결과. 이제 대륙 회합을 즐기고 귀국한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
물론 내가 죽어버리면 마도의회와 연합왕국이 소란스러워질 터. 정말 죽는 순간이 다가오면 최대한 피해야 하겠지. 어쩌면 20년이 아니라 30년, 40년은 더 살아야 할 수도 있다.
‘이 나이를 먹고 40년을 더 산다라.’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40년이면 막 마법의 길을 걷기 시작한 마법사가 원로로 성장할 정도의 시기다. 그 시기만큼 조국과 의회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면, 과연 나는 온전히 버틸 수 있을는지.
‘보람과 별개로 육체와 정신이 망가지기 시작하겠지.’
나는 마종공 각하처럼 고귀하고 위대한 분이 아니기에.
“의장 각하.”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경치를 보던 중. 익숙한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마종공 각하를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마법사. 대륙 마법사 중에서는 가장 2인자에 가까운 인물.
“오랜만입니다, 부탑주.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마탑의 부탑주. 사실상 마종공 각하의 대리인이나 마찬가지인 인물이 다가왔다.
대륙 의전 서열상으로는 부탑주의 서열은 썩 높지 않다. 일개 연구 기관의 부책임자가 일국 입법 기관의 수장과 비슷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니.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대륙 의전. 철저히 마법사들의 서열로 보면, 마법사들의 행사인 대륙 회합에 참여한 상태라면 부탑주는 나와 대등한 존재다. 이 대륙의 그 어떠한 마법사가 마탑을 평범한 연구 기관으로 볼까.
“저야 언제나 잘 지내고 있지요. 바쁘기는 합니다만, 그 바쁨도 마법사의 혼을 불태우기에 적합한 바쁨 아니겠습니까?”
“과연. 부탑주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 뒤로 적당한 안부 인사를 나누며 따뜻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제국에 오자마자 만난 사람이 부탑주라는 건, 마종공 각하께서도 나를 중히 여긴다는 뜻이니.
“그러고 보니 의장 각하. 그 소식 들으셨습니까?”
“막 제국에 온 참이라 아는 것이 없습니다. 부탑주께서 말씀해 주신다면 경청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웃는 낯을 유지하던 부탑주는 자연스레 본론을 꺼냈고,
“부군 각하와 공녀님들께서도 이곳에 오실 예정입니다.”
‘뭣.’
놀랍고도 감격스러운 정보를 건네주었다.
마법계의 우상만이 아니라 미래도 함께 오다니. 실로 영광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