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043)
로판 속 공무원 1043화(1044/1083)
대륙 마법계에 길이 남을 역 재롱 잔치는 조기에 마무리되었다.
열정적으로 온갖 마법을 선보이는 마법사들을 보며 느꼈다. 이거 이대로 방치하면 저 마법사들이 세쌍둥이의 공동 스승이 될 거라는 걸.
물론 싫다는 건 아니다. 대륙 회합에 모인 마법사들은, 그것도 내가 머무는 숙소까지 올 만큼 짬밥이 넘치는 마법사들은 국가 단위가 아닌 대륙 단위로 봐도 뛰어난 마법사들. 그런 존재들이 우리 세쌍둥이를 가르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나.
세쌍둥이의 친모가 트릭시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난 도저히 트릭시를 패싱하고 다른 마법사를 마법 스승으로 삼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마법을 배우고 싶어 한다고?”
“응. 아무래도 그,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잖아. 그래서 늦둥이 자식이나 손주들을 위해서 개발한 마법들이 하나씩은 있더라고. 그걸 보니 애들이 좋아했어.”
그렇기에 마법사들을 필사적으로 돌려보낸 뒤, 급히 트릭시에게 연락을 하여 상담을 요청했다.
마법이 엮인 문제라면 주도권은 내가 아니라 트릭시가 가져야 한다. 크라시우스 가주 칼보다는 마종공 트릭시의 의견이 더 중요한 상황이야. 비전문가가 함부로 결정하면 후폭풍이 어마어마하겠지.
“확실히. 마법으로 아이들을 즐겁게 할 생각은 했지만, 아예 놀이를 위한 마법을 만드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단다. 연륜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야.”
그 말에 본능적으로 열리려던 입술을 꾹 억눌렀다.
참아. 여기서 말하는 연륜이 순수하게 나이만 말하는 건 아니잖아. 어디까지나 자식이나 손주를 길러본 경험을 말하는 거라고. 그건 트릭시가 다른 마법사들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짧은 게 맞다.
아니지. 트릭시는 인간식으로 따지면 30살도 안 된 젊은 피니, 순수 나이로만 쳐도 마법사들보다 아래다. 내가 잠깐 정신이 없어서 문화 상대주의적 발상을 잊고 말았어.
“곤란한 일이구나. 아이들이 하나에 관심을 가지면 그걸 이루어야 직성이 풀리는데.”
어쨌거나 트릭시는 세쌍둥이의 마법 욕구에 살포시 미간을 찌푸렸다.
“일단 다른 마법사들한테는 다음에 얘기하자고 했어. 가르치는 사람은 여럿인데 배우는 사람은 셋이니, 마구잡이로 배우면 일정이 꼬일 거라고 하니까 다들 납득하더라.”
고심에 빠진 트릭시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명분은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가는 것을 우려한다는 거였지만, 나도 마법사들도 트릭시도 진짜 이유를 알고 있다. 친모 겸 마법의 정점인 트릭시를 패싱하고 마법에 대해 논하는 건 도리가 아니기에 유예한 것이라는 걸.
다행히 마법사들도 세쌍둥이가 트릭시에게 ‘나 저거 배우고 시퍼.’ 라는 말을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역 재롱 잔치를 펼친 거였다. 그 자리에서 즉석 스승이 되기를 바란 건 아니었지. 눈이 뒤집힌 마법사들도 트릭시의 권위는 존중했다는 뜻.
‘그나마 다행이었지.’
만약 마법사들이 트릭시의 권위마저 망각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숙소 앞에서 스승 자리를 건 마법 대련이 펼쳐졌을 수도 있다.
불과 물이 노래하고, 바람과 땅이 울부짖고, 번개가 내리치는 난장판이.
“그러니? 그럼 느긋하게 생각해도 되겠구나.”
트릭시도 난장판은 피했다는 말에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들이 진심으로 대련에 임하면 어떤 재앙이 발생하는지는 나보다 트릭시가 더 잘 알 테니까. 막연하게 상상할 수 있는 재앙과 구체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재앙 중에서는 후자가 더 끔찍한 법이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무난한 방법은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데…”
“괜찮겠어? 회합 때문에 많이 바쁘잖아.”
“그게 문제란다. 간단한 마법이라도 새로 익히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고, 그걸 남에게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이해하는 건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
회합만 아니었어도 1주면 충분할 텐데,라고 중얼거리는 트릭시의 말에 마종의 위엄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오직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해 만든 간단한 마법이라도 어떻게 보면 고유 마법이나 마찬가지다.수 대에 걸쳐서 성립된 범용 마법이 아닌, 오직 한 사람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만들고 사용하는 고유 마법이다.
당연히 학습 난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데, 그걸 익히고 분석하여 가르치기까지 1주면 충분하다라. 비마법사인 나조차 감탄이 나올 위업 아니겠나.
“칼.”
“응?”
그렇게 나와 트릭시가 각자의 이유로 침묵하던 중. 트릭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아이들의 첫 스승이 아닌 건 아쉽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걸 억누를 수는 없겠지?”
그러고는 자신의 야망을 버리고 아이들의 욕심에 손을 들어주었다.
덕분에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세쌍둥이의 1호 스승이라는 타이틀을 포기하고, 다른 마법사들에게 양보하겠다는 어마어마한 선언. 저게 얼마나 큰 각오인지 나도 알기에.
“트릭시만 괜찮다면 괜찮은 방법이기는 하지.”
그렇기에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트릭시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단이다. 그런 결단을 무조건 반대하고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는 건 도리어 트릭시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
“그러면 대륙 회합 동안에 배울 수 있는 건 배워두라고 해야겠구나.”
그래도 한 번은 말리는 것이 예의인가 싶었으나, 트릭시는 내가 고민할 시간도 주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내가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단다. 남을 가르치는 것과 가족을 가르치는 건 다를 수밖에 없잖니. 내 아이들이니 너무 오냐오냐 가르칠 수 있고, 반대로 과한 기대를 하며 압박을 줄 수도 있어. 차라리 시작은 다른 마법사에게 배우는 게 좋을지도 몰라.”
감히 반론을 꺼낼 수 없을 만큼 확신에 찬 표정을 지은 채.
세쌍둥이를 위해서, 카토반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자신이 아닌 다른 마법사들이 나서는 게 옳다는 결단을 내린 채.
“물론 리제도 지금은 가족이지만, 처음 가르칠 때는 남이었으니까.”
이윽고 작게 웃음을 흘린 트릭시는 품속에서 통신구를 꺼냈다.
마치 신도에게 신탁을 내리려는 신의 모습 같았다.
트릭시와 부탑주, 마도의회 의장의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대륙 회합 개최국이 제국이기에 트릭시는 제국 대표로서 자리를 비울 수 없다. 동시에 트릭시가 버티고 있다면 제국 마법계 2인자인 부탑주는 자리를 비워도 무방하다.
“영광스럽게도 대륙 회합 기간 동안에는 제가 공녀님들의 수석 임시 선생으로 지낼 예정입니다.”
‘수석 임시 선생…’
그 결과, 부탑주는 대강당에서 빠져나와 ‘수석’ ‘임시’ 선생이라는 기묘한 직함을 달게 되었다.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세쌍둥이에게 놀이 마법을 가르칠 마법사들은 전부 정식이 아닌 임시 선생인 거고, 임시 선생이 한둘이 아니라서 부탑주에게 수석이라는 이름을 붙인 거겠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니, 사공들을 굳건히 통제할 수 있는 대장이 필요하지 않겠나. 부탑주만큼 그 권위에 걸맞은 인물은 없다.
‘의장이 올 줄 알았는데.’
다만 부탑주가 든든한 것과 별개로 조금 의외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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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앞에 모였던 마법사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우리 세쌍둥이에게 가장 먼저 놀이 마법을 보여준 사람은 의장이었다. 그러니 수석 임시 선생은 부탑주가 아닌 의장이 맡는 게 무난하지 않나?
‘외국 대표라서 자리를 못 비우는 건가.’
차마 귀한 시간을 내준 부탑주에게 ‘왜 의장이 아니라 당신이 왔나요.’ 라는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홀로 고민하다가 그럭저럭 설득력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제국 대표인 트릭시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외국 대표인 마도의회 의장도 함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예의다. 주인이 손님을 존중해야 하는 것처럼 손님도 주인에게 공손해야 하니까.
“부탑주께서 선생으로 나서주신다면 제가 더 영광이지요. 저희 아이들을 잘 부탁합니다.”
생각을 마치자마자 웃는 얼굴로 악수를 청했다.
지금은 마탑주의 부군이자 세르베트 공작 대리가 아닌 학부모로서 부탑주와 대면하는 거다. 그러니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 옳─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륙 회합은 여러 주제로 나눠서 진행하니, 발표를 마친 마법사들은 곧장 이곳으로 달려올 겁니다. 저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마법사들도 열정을 다하여 공녀님들을 가르칠 것이니, 실망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뭣.’
부탑주의 말에 본능적으로 주변을 훑어봤다.
이 자리에 있는 임시 선생들도 충분히 많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늘어난다고? 그럼 대체 몇 명이나 모이는 거냐.
‘가르칠 시간이 부족할 것 같은데.’
대륙 회합이 한 달 동안 진행된다고 가정해도 우리 세쌍둥이가 전부 배울 수 있을까? 아무리 선생이 열정적이고 학생이 똑똑해도 시간적 한계는 어쩔 수 없거늘.
“참으로 기쁜 말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웃는 얼굴을 고수했다.
뭐, 시간 배분은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지. 가르칠 시간이 부족한 건 선생의 고민이지, 학부모가 할 고민이 아니다.
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할부지! 이것빠! 불나비!”
“대단하십니다! 벌써 불로 형체를 만들다니요!”
“나두 눈 만들엇서.”
“오오…!”
한 달이라는 제한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해일처럼 몰려오던 선생 웨이브가 쫄쫄 흘러나오는 수돗물로 보일 정도로 세쌍둥이의 습득력은 경이로웠다.
‘저게 말이 되는 건가.’
마법에 대해 문외한이 내가 봐도 알 수 있다. 저 학습 속도는 절대 정상이 아니다.
마법사들이 마나에 대해 설명하고, 마법을 한두 번 보여주자마자 바로 그 마법을 따라 하는 세쌍둥이. 저게 어딜 봐서 정상이겠냐고.
“본능입니다.”
“예?”
“저건, 저건 이론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마나를 느끼고 움직일 수 있는 겁니다. 말 그대로 마법의 길을 걷기 위하여 태어난 분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눈이 반쯤 뒤집힌 부탑주를 보다가 다시 세쌍둥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나를 본능적으로 느끼는 단계라. 이론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그저 몸이 저절로 터득하는 경지.
‘정령 때문인가.’
카토반이라는 이름, 엘프라는 종족 특성, 트릭시가 물려준 재능. 그 세 가지가 종합된 것도 큰 기여를 했겠지만, 어쩌면 세쌍둥이의 친구인 정령들의 존재도 활약했을 것 같다.
뭔가 마나 하면 자연이고, 자연이면 정령이라는 이미지가 있으니.
‘엄청나네.’
대단하다, 우리 딸들. 아주 대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