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045)
로판 속 공무원 1045화(1046/1083)
내 나이도 어느덧 스물여덟. 17살 때 감찰부에 들어갔으니,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을 넘어 11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됐다.
그중 절반가량이 휴직 기간인 건 대륙 역사를 뒤져도 찾기 힘든 사례 같다만, 아무튼 10년은 10년이지 않나. 그 세월 동안 쌓은 경험과 인맥, 본능은 그럭저럭 정상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11년 묵은 무형의 재산이 맹렬하게 외치고 있다.
‘이건 뭔 일 생긴 것 같은데.’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 터진 것 같다고.그것도 국내 문제가 아니라 국외에서 상당한 크기의 폭탄이 터진 것 같다고.
대륙 회합을 마치고 저택에 복귀한 후, 티티와 산책을 하면서 행정부 청사를 지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다른 청사들은 멀쩡하지만 유독 외무성 청사를 지날 때마다 기이한 분위기가 감지되더라. 평소보다 부산스럽지만, 동시에 평소보다 고요한 모순적인 분위기.
실제로 감찰성에서도 외무성의 기이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장관 비서와 정보차장은 ‘전쟁이 임박했거나 그에 준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 같다.’ 라는 추측을 내놓았다.
확신이 아니라 추측. 그걸 굳이 휴가 중인 상관에게 하는 보고할 정도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 가벼운 마음으로 제도에 복귀한 것이 며칠 전의 일이거늘, 고작 며칠 사이에 이런 끔찍한 일이 터질 줄이야.
‘안 그래도 조약 기구 창설 준비로 바쁠 텐데.’
하지만 외무성의 과로와 통곡을 걱정할지언정 그 이상 신경 쓰지는 않았다.
막말로 국외의 일이 나하고 무슨 상관인가. 나는 국내를 담당하는 감찰성 장관이요, 제국의 다섯 기둥 중 하나를 관리하는 세르베트 공작 대리다. 국경 밖의 일이라면 지진이 일어나든 화산이 터지든 전쟁이 발발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래서 장관 비서와 정보차장에게도 감찰성이 나설 일이 생기면 보고하라고 말한 뒤 신경을 껐는데,
“그래, 비마법사가 본 대륙 회합은 어땠나. 볼만했나?”
“제가 비록 마법적 소양이 없어서 마법사들의 논쟁이나 대련은 보지 못했지만, 평생 볼 마법사는 전부 본 것 같아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렇군.”
신경을 끄자마자 황제의 부름을 받고 말았다.
‘망할.’
조용히 입술을 깨물며 찻잔을 매만졌다.
망할 새끼. 이 타이밍에 부른 걸 보면 국경 밖 사건 때문 같은데, 내가 다른 건 다 참아도 그건 납득할 수가 없다. 왜 남의 나라 일에 나를 소환하는 거야.
혹시 아르메인이나 유벤, 교국 관련 일인가? 그렇다면 백번 양보해서 나를 소환할 일이기는 하다. 내가 그쪽 동네 사람들하고는 그럭저럭 연이 있으니.
“짐은 대륙 회합에 참석해 본 적이 없다네. 짐이 태어난 이후로 개최된 회합이 전부 타국에서 개최돼서 그런 것이나, 마법사도 아닌 자가 억지로 얼굴을 들이미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않나. 괜히 마법사들의 행사에 군주가 개입하면 그 순수성이 사라지는 법이지.”
“폐하를 비롯한 열국 군주들의 배려 덕분에 대륙 회합이 문명의 요람으로 성장한 것이겠지요.”
그래도 일단은 국경 밖이 아닌 대륙 회합 관련으로 말을 이어간 황제기에, 나도 거기에 맞춰서 적당한 대답을 출력했다.
황제가 먼저 용건을 꺼내기 전에는 모른 척하자. 나는 공식적으로 휴가 중이요, 비공식적으로는 장관직도 내려놓은 야인 중의 야인이다. 내가 자청해서 국외 일에 관심을 보일 필요는 없어.
아마 황제가 대륙 회합 얘기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것 때문이겠지. 저 누렁이의 티끌처럼 하찮고 보잘것없는 양심조차 ‘저놈하고 국외 일을 논하기는 좀.’ 이라는 제지를 거는 중일 거다.
“참, 그러고 보니 공녀들이 마법을 배웠다고 들었는데.”
“예, 폐하. 놀이 때 사용할 수 있는 간단한 마법을 배웠습니다.”
“마법이면 마법이지 간단한 게 어디 있겠나. 이제 5살인데 벌써부터 마나를 느끼고 마법을 익히다니. 실로 하늘이 내린 재능이야.”
그 말에 본능적으로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자식 칭찬에 반응하는 건 부모의 본능이다. 아무리 상황이 심각하더라도 어쩔 수 없어.
“이제 공녀들은 전부 마법의 길을 걷는 건가?”
“아이들이 원한다면 그렇게 되겠지요. 허나 아직은 어린 시절의 흥미로 익히는 정도이니, 5년은 더 지나야 윤곽이 잡힐 듯합니다.”
“흠, 그도 그렇군. 5살이면 빠르게 흥미를 가지고 식을 나이니까. 너무 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겠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황제는 찻잔을 들어 올렸다.
“물론 짐은 카토반의 후예들이 마법에 재미를 붙였으면 좋겠지만 말이야.”
그러고는 픽 웃음을 흘리며 은근한 욕심을 내보였다.
남의 자식들 미래에 훈수를 날리는 거지만 딱히 노엽지는 않았다. 제국 대표 마도 명가인 카토반의 후예고, 마종공의 직계 혈육인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마법의 길을 걸었으면 하는 건 당연히 할 생각이지.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렇다. 아이들의 뜻이 최우선이기는 하나, 이왕이면 마법의 길을 걸었으면 좋겠어. 그게 아이들을 위해서도 가장 무난하며 안전한 길이니.
“마종공을 보고 자란다면 자연스레 마법의 길을 택하게 되겠지요. 소신은 그리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거 참 믿음직스러운 말이로군.”
그 말과 함께 황제는 단숨에 차를 들이키더니, 빈 잔에 다시금 차를 채웠다.
호쾌하고 재빠른 리필이라 불안해졌다. 목을 축이기 위해 차를 들이킨 걸 보면 본론으로 들어갈 생각 같고, 다시 차를 채운 걸 보면 대화가 상당히 길어질 거라는 뜻이다.
원통하다. 결국 저 누렁이의 하찮고 보잘것없는 양심이 패하고 말았구나. 작고 추레한 양심치고는 오래 버티기는 했지만.
‘어떻게 하루를 못 가냐.’
그래도 하루는커녕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죽어버린 건 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백작.”
“예, 폐하.”
“만일 황태녀나 황자, 황녀가 마법에 관심을 보이면 마종공이 스승이 되어줄 수 있나?”
“예?”
예상치 못한 말에 절로 반문이 나왔다.
뭐야.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거 아니었어? 여기서 아이들, 마법 얘기를 더 이어나간다고?
“흐.”
내 반응에 황제는 다시 웃음을 흘렸다.
“왜 그런 반응인가. 혹시 짐이 지브로트 일이라도 꺼낼까 걱정했나?”
“그, 지브로트 문제였습니까?”
“이런. 어디인지도 모르고 있었군.”
그 말에 얼떨떨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부서의 일, 다른 나라의 일이라 신경을 끄다 보니 어느 나라 일인지도 알지 못했다. 나한테 연락을 했던 장관 비서랑 정보차장도 모르던 걸 보니, 제국 내에서 외무성 관계자를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골치 아픈 일이기는 하네만, 백작에게 하소연할 일은 아니야. 백작은 외무성이 아닌 감찰성 사람이지 않나.”
아무튼 황제의 첨언에 감동하고 말았다.
의외로 저놈에게 양심과 상식이 존재하고 있었다. 나를 부른 건 그냥 대륙 회합이 끝났으니, 마법사가 아닌 비마법사의 시선으로 바라본 대륙 회합을 듣기 위해─
“허나 얘기를 꺼내 놓고 입을 다물면 백작의 속만 복잡하게 하는 거겠지. 궁금증이 생겼다면 푸는 것이 마땅한 법.”
‘뭣.’
그건 뭔 개소리야 이 새끼야. 딱히 안 궁금하니까 계속 입 닫고 있어.
“백작. 발부르 왕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그러나 내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꿋꿋하게 입을 열었다.
“…지브로트의 적법한 왕가라는 것 외에는 알지 못합니다.”
“뭐, 남의 나라 왕가에 대해 자세히 알 필요는 없지. 아직까지도 족내혼이 이루어지는 가문이라는 것만 알면 된다네.”
“예?”
족내혼이라는 단어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갑자기 무슨 족내혼이야. 그거 역사 교과서에서도 천 년 전에야 나오는 단어잖아.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말게. 무려 수백 년 정도 이어온 전통인데다, 발부르 왕가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니까. 지브로트는 외척의 전횡에 시달린 역사가 길고 많거든.”
“그렇, 습니까?”
“그래. 얼마나 시달렸으면 외척을 둘 바에는 족내혼을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겠나.”
어딘가 씁쓸함까지 느껴지는 말에 슬며시 입을 다물었다.
외척의 전횡에 시달린 역사는 제국에도 존재하며, 황제는 그 피해자였다. 헌데 그런 황제의 입에서 ‘길고 많다’는 말이 나온다라. 제국으로 치면 애실론이 개지랄을 떤 게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어.
“아무튼 그런 발부르 왕가가 왕세자비는 발부르 왕가 외부의 인물로 삼겠다고 했지.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알겠나?”
그리고 애실론 연타에 시달린 왕가가, 무려 수백 년이나 이 악물고 족내혼을 유지한 왕가가 족외혼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했다.
그것도 계승 서열 떨어지는 왕족이 아닌, 차기 국왕의 결혼을 걸고.
‘그게 말이 되나?’
이해할 수 없다. 족내혼이 수백 년 전통인 것도 좀 인상적인 일이기는 한데, 그렇게 쌓아온 전통을 한 방에 날리려고 하는 건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전자는 적어도 왕가의 존립과 안정을 위함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잖아. 반면에 후자는 왕가의 전통을 일개 국왕이 날리는 꼴이다. 수백 년 전 조상의 뜻을 까마득한 후예가 짓밟는 행동이니, 오히려 왕가에게 큰 타격을 주는 일이다.
“폐하. 혹시 발부르 왕가가 사람이 귀한 편입니까?”
그렇기에 합리적인 의문을 제시했다.
족내혼을 유지하기 위한 왕족이 없어서 족외혼이 강제되었다는 경우. 이 경우는 전통이 무너져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결혼할 상대가 없는데 족내혼만 고집하는 건 좀 그렇지.’
막말로 영혼결혼식을 할 것도 아니고 말이야.
“글쎄. 많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귀하다고 하기도 애매하군.”
“허어.”
허나 돌아오는 대답은 합리적인 가능성마저 단숨에 박살 냈다.
그럼 대체 왜?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수백 년 전통을 박살 내려는 거지?
Z2dKbDJFSCtSbEo3WFlpUEN0eDQxZUdZTnBlbERlM1liR01aSXRPamhFT1V6NVBqZk8yL1hPZ3ZGSEZoR3VFTQ
“지금 백작이 느끼는 감정이 짐과 외무성 장관의 심정일세.”
황제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외교와 아무런 연이 없는 나조차 혼란스러우니, 황제와 외무성 장관의 심정은 나보다 더할 것이다.
며칠 후에도 황제의 부름을 받았다.
외무성에서 발부르 왕가 관련으로 새로운 정보를 물어왔으니, 같이 와서 논의 좀 하자는 소환령이었다.
‘잠깐만.’
혹시 의문을 해결해 줄 소환령인가 싶어 황급히 외출 준비를 하던 중. 근원적인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왜 가려는 거지?’
왜… 타국 왕가의 일을 나하고 논의하려는 거지?
물론 발부르 왕가가 족외혼을 택한 게 궁금하기는 한데, 그 호기심이 귀찮음을 감수할 정도로 거대한 건가?
지금 태양전으로 가면 100% 업무에 휘말릴 텐데, 그걸 각오하고도 발걸음을 옮겨야 하나?
‘망할.’
훅 치고 들어온 의문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머리로는 가지 말라고 외치지만 마음은 가라고 외치는 중이다. 이미 나는 발부르에 대해 깊은 호기심을 가지고 말았다.
‘빌어먹을 누렁이.’
내가 외무성 장관도 아니니 나한테 하소연할 일은 아니라며.
황제 그놈. 자연스럽게 나한테 독을 심어버렸다. 이제 나는 이 일에서 발을 뺄 수 없다.
다른 것도 아닌 내 호기심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