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056)
로판 속 공무원 1056화(1057/1083)
아침에 눈을 뜨면 지난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사유는 별거 아니다. 우리 세실리아가 정령들이 뿜어내는 마법에 홀리기라도 했는지, 밤중에 몰래 침실에서 탈주하여 정령들과 노는 경우가 잦아졌으니까.
이렇게 말하니 엄청 별거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가 자야 할 시간에 자지 않고, 어른들의 눈이 사라지는 밤을 틈타 마법을 난사하다니. 교육성 장관이 알게 된다면 하루 종일 올바른 육아법에 대한 설교를 할만한 참사 아닌가.
“오늘 새벽에는 복도에서 모래성을 만들고 있었다. 불을 만들면 금방 들통이 나니, 은밀하게 모래만 만지작거리더군.”
“그렇구나.”
그렇게 씁쓸한 심정으로 침대에서 일어나자, 침대 옆에서 대기 중이던 장생이가 기다렸다는 듯 보고를 올렸다.
세실리아의 쇼생크 침실 탈출기. 하필 사람이 가장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밤을 노려서 이 아빠의 멘탈을 실시간으로 공격하고 있지만, 다행히 우리 저택에는 사용인들과 성수들이 존재한다.
저택의 안전 및 원활한 업무를 위하여 사용인들 중 일부는 밤에도 깨어있다. 성수들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밤에 돌아다니는 녀석들이 일부 있었고. 덕분에 낮보다는 못해도 밤 또한 일종의 감시 체계가 자리 잡은 상태.
그로 인해 세실리아가 침실을 탈출해도 성장기 수면 시간을 놓칠 뿐이지 무언가 사고가 터지지는 않았다. 저택에서 불이 난다거나 불이 난다거나 불이 난다거나 하는 그런 사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냐.
‘이런 걸로 만족하면 안 되는데.’
이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히 세실리아가 쇼생크 탈출기를 찍을 때마다 열심히 설득하고 혼을 냈었다.정령하고 노는 건 낮에만 하라고. 밤에는 언니, 동생이랑 같이 코오- 자야지,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놀면 안 된다고.
그런데 안 통하더라. 이 아빠가 몇 번이나 사정을 해도 그 순간에만 고개를 끄덕이지, 다시 밤이 되면 마피아처럼 고개를 들어 은밀하게 저택을 누볐다.
‘엄마를 똑 빼닮은 거니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세실리아의 미운 5살 행보에 탄식이 나오면서도 흐뭇했다. 미친 생각 같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꿈틀거리는 흐뭇함과 대견함은 억누를 수가 없었다.
나 혼자서는 세실리아를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아 트릭시도 동원했는데, 놀랍게도 트릭시 또한 세실리아 나이 대에 미운 행보를 보였다고 하니까. 이 얼마나 놀라운 모전여전인가.
“나도 그랬는데 무슨 자격으로 세실리아를 막겠니. 차라리 원 없이 즐기도록 두는 게 좋을 수도 있어. 원래 무언가에 꽂혔을 때는 질릴 만큼 즐겨야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으니까.”
트릭시는 8살부터 마법을 배운 것으로 유명하다. 마법의 정점은 떡잎부터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일화지만, 동시에 둘째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고충이 절절히 녹아있는 일화기도 하다.
우연히 둘째 장인어른이 마법을 쓰는 걸 보고 마법에 홀려버린 트릭시. 말 그대로 홀렸다는 단어 외에는 적절한 표현 수단이 없을 정도로 마법에 집착을 보였으며, 크면 직접 가르쳐 주겠다는 장인어른의 간절한 타협에도 불구하고 트릭시는 세르베트 공작성의 도서관이나 장인어른의 서재에 침투했다.
마치 지금의 세실리아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오히려 어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밤과 새벽을 주로 노리면서.
“세실리아가 나를 닮았다면 막으려고 할수록 탈출에만 능숙해질 거란다. 그러니 조금만 참으렴. 그러면 알아서 밤에는 잠만 자고, 낮에만 정령술을 쓸 테니까.”
“확실한 거지…?”
“아마도…?”
그 결과. 세실리아의 은밀한 야간 활동은 누구도 막지 못하는 저택 행사가 되었다. 부디 트릭시의 말대로 세실리아의 흥미가 빨리 식기를 바라면서.
“내일도 특이 사항 생기면 바로 알려주고.”
“알겠다, 주인.”
다시 터져 나오려던 한숨을 참으며 장생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역시 장생이. 성수들 중 대장격 존재 아니랄까 봐 세실리아의 은밀한 야간 행동도 바로바로 파악하고 있다. 내가 그나마 얘 덕분에 세실리아의 돌발 행동에도 안심할 수 있는 거야.
정확히는 장생이가 나 대신 지켜보고 있다는 믿음 덕분에 세실리아를 걱정하기만 할 뿐, 세실리아를 바로 옆에 끼고 잠에 든다는 강경 대책은 참고 있는 거지만.
만약 믿을 존재도 없었다면 모전여전이고 뭐고 눈이 뒤집어졌을 수도 있다. 그때는 아빠랑 딸의 자존심을 건 숨바꼭질이 시작됐겠지.
‘안 돼.’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라 손이 부르르 떨렸다.
한밤중에 세실리아와 술래잡기, 혹은 숨바꼭질을 한다면 필연적으로 소란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 소란을 듣고 아이들이 깨어나면 자기들도 같이 놀고 싶다며 합류할 터.
태양도 취침 중인 시간에 열이 넘는 아이들과 저택을 누비는 빅-이벤트. 아무리 나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이다. 대륙 제일의 검사는 체력이 많은 거지 무한이 아니니까.
“주인? 왜 그러나?”
“아니, 아무것도.”
갑작스러운 진동에 장생이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애써 고개를 저으며 얼버무렸다.
장생이는 플로렌스의 병을 순식간에 치료할 정도로 이름값을 하는 존재요, 성수를 넘어 ‘장생’이라는 새로운 신격을 쌓아가는 존재다. 그런 존재 앞에서 불길한 얘기를 하면 현실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부정탈라.’
그렇기에 격렬히 장생이의 머리를 매만지며 부정을 털어냈다.
난 너만 믿는다, 장생아.
***
자는 사이에 무슨 업무가 쌓였을지 두려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언제는 외무성 장관의 업무가 적은 적이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만, 그걸 감안해도 근래 생긴 문제는 불면증이 생기기에 충분했다.
‘슬슬 정해야 하는데.’
차갑게 식은 커피를 물처럼 들이키며 연신 보고서를 살폈다.
범대륙 조약 기구 설립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이 흐름에 올라타지 못한 국가는 그대로 낙오될 것이라는 걸 모두가 알기에, 모든 외교 업무가 이랬으면 좋을 정도로 순탄했다.
하지만 조약 기구 설립 시기가 다가올수록 한숨이 절로 나오는 문제도 같이 다가오고 있다.
‘마지막 대국은 어디로 선정해야 하지?’
바로 범대륙 조약 기구 내에서 제국 바로 다음가는 위치를 차지할 세 대국들. 그 대국 중 마지막 자리를 누구에게 줘야 할지 고민이다.
일단 세 자리 중 두 자리의 주인은 너무나 명확하다. 외교의 ‘외’자도 모르는 초보를 데려와도 아르메인과 유벤을 대국으로 지정할 만큼. 이건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반면 대륙 2위, 3위의 뒤를 잇는 4위의 국가를 고르라고 하면 전문가들도 탄식이 절로 나온다. 차라리 교국도 포함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교국을 대국으로 넣을 터인데, 교국은 어디까지나 참관국 자격으로 조약 기구에 합류할 예정이지.
‘그렇다면 대체 누가 4위인가.’
외무성 관료로 살아온 이래 최대 난제인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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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조약 기구가 수십 년 전에, 한 40년에서 50년 정도 전에 만들어지는 기구라면 레온 왕국을 꼽았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레온은 아르메인을 바짝 따라붙을 정도로 맹렬한 기세를 자랑했으니까.
허나 오늘날의 레온은 4위는커녕 제국과 아르메인의 공동 이권 지역으로 전락했다. 대국이 아니라 약소국인 상황.
‘쿼로노스 놈들이 헛짓거리만 안 했어도.’
뒤이어 유력한 4위 후보였던 쿼로노스를 떠올렸다.
레온 왕국이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이후, 레온의 후방을 타격한 쿼로노스는 대륙 중부의 패자로 부상했다. 그 위엄을 유지했다면 마지막 대국 자리는 마땅히 쿼로노스였을 터인데,
‘외교로 흥한 것들이 그 모양이 될 줄이야.’
제국과 아르메인의 공동 군사 작전에서 쿼로노스가 보인 행태는 도저히 쿼로노스를 4위로 취급할 수 없는 추태였다.
대륙 1, 2위의 얼굴에 나란히 똥을 뿌린 걸 대국 자리에 앉힐 바에는 영구 공석으로 두고 만다. 내 일생일대의 숙원을 망칠 수는 없어.
‘그럼 제레노?’
잠시 제레노가 머릿속을 차지했지만 금방 털어냈다.
제레노는 해양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는 국가지, 대륙적으로 존재감을 뽐내는 국가가 아니다. 심지어 황금공 각하께서 레비아탄을 끌고 온 이후로는 해양 영향력마저 상당히 후퇴했다.
‘발크로스?’
아니, 발크로스도 아니다. 문화의 나라답게 인지도는 상당하나, 그게 국력으로 이어지는가 하면 고개를 젓게 된다.
‘그러면 류튼과 바젠인데.’
솔직히 현시점에서 4위를 고르라고 하면 가장 유력한 두 국가는 류튼과 바젠이다.
그러나 이 둘 중 한 국가에만 대국 자리를 줘야 한다면, 대국이 되지 못한 국가가 온갖 난리를 칠 확률이 높다. 경우에 따라서는 조약 기구가 출범하자마자 삐걱댈 수도 있다.
‘대국을 세 자리가 아니라 네 자리를 만들 걸 그랬나.’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대국이 넷이나 되면 그게 더 골치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류튼과 바젠의 대립을 생각하니 네 개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아.”
그렇게 한참이나 끙끙거리던 중. 책상에 두었던 통신구가 보랏빛으로 빛났다.
“황제 폐하 만세! 로타어 가문의 가주이자 제국 외무성 장관, 클레멘스 로타어 오브 메테르─”
– 인사는 됐다. 외무성 장관의 노고는 짐도 잘 아니 편히 말하라.
“황송하옵나이다.”
황제 폐하의 연락이었다.
도저히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고민을 품다가 폐하의 연락을 받으니 한탄스럽기 그지없다. 1시간 전에 태양전으로 조약 기구 관련 보고가 올라갔으니, 폐하께서 친히 연락을 주셨다면 대국 관련으로 연락을 주신 거겠지.
– 그래, 장관. 마지막 조각은 맞추었나?
“…송구하오나 아직 찾지 못하였나이다.”
– 그러한가.
실제로 폐하께서는 바로 마지막 대국에 대해 물으셨다.
– 짐도 여러 번 고민해 봤지만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더군. 오죽하면 겨울 삼국을 유벤처럼 하나로 묶어 대국으로 삼을까 했는데, 애석하게도 겨울 삼국은 묶어봤자 겨우 1인분이니 포기했다네.
그 말씀에 겨울 삼국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삼국이 연합하면 대륙 4위는 무리더라도 5위는 돼야 할 것 아닌가. 5위 정도만 돼도 우리가 적극적으로 지지했을 텐데.
실로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