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059)
로판 속 공무원 1059화(1060/1083)
외무성 장관은 집무실 문과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았다.
가깝다고 해봤자 다른 사람들과 몇 cm 정도 차이가 나는 수준이지만, 그 사소한 차이에서 외무성 장관의 굳은 의지를 볼 수 있었다.
내가 만족할 만한, 혹은 납득할 수 있는 말이 나오지 않는 이상 누구도 문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굳은 의지를. 만약 도망치고자 한다면 자신의 시체를 밟고 가라는 강인한 투지를.
‘수문장이 따로 없네.’
물론 외무성 장관의 힘으로는 나, 전승공, 재무성 장관 중 단 한 명도 막을 수 없다. 의지만 굳건할 뿐이지 실질적 방어 능력은 없다고 보는 게 옳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양심이라는 게 존재하는 법. 의도한 건 아니지만 외무성 장관에게 크나큰 엿을 먹였으니, 외무성 장관의 통제에 따르는 수밖에 없다.
“외무성 장관 각하.”
“예, 공작 대리 각하. 말씀하시지요.”
“제 작고 보잘것없는 지혜가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영광스럽고 보람 넘치는 일도 없겠으나, 제가 외교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보니 망언을 일삼지는 않을까 우려됩니다. 우선 각하께서는 어느 국가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일단 외무성 장관에게 정보 공유를 청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여기저기 흘러 다니는 말들을 주워들은 것에 불과하다. 외무성 장관이 가지고 있는 정보에 비하면 매우 하찮으니, 그 하찮음을 토대로 입을 열어봤자 외무성 장관의 속만 터뜨리겎지.
“물론이지요. 얼마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각하.”
그 와중에 나도, 외무성 장관도 서로에게 각하라고 하는 이 분위기가 숨 막혀서 미칠 것 같다.
평소라면 호칭 하나하나에 신경 쓸 필요가 없을 텐데, 하필 큰 죄를 지은 직후라 ‘아무리 처죽일 놈이지만 공작 대리 겸 장관이니 존중한다.’라고 욕하는 기분이야. 나도 죄인으로서 바짝 엎드린 거나 마찬가지고.
“우선 여기 계신 분들도 다 아시겠지만, 마지막 대국 자리는 명확한 주인이 없습니다. 쿼로노스, 류튼, 바젠, 제레노 등. 대륙 4위의 강국이라 부를 조건은 갖추고 있으나, 동시에 결격 사유도 명확하지요.”
그렇게 서두를 뗀 외무성 장관은 우리가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정보, 막연히 추측하고 있던 정보를 풀기 시작했다.
쿼로노스는 대륙 중부의 강자지만 제국에게 엿을 먹인 적이 있으니 제외. 류튼과 바젠은 둘 중 하나를 고르면 반대쪽에서 지랄을 할 것이며, 류튼과 바젠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는 아르메인, 유벤의 입지가 상승할 테니 제외. 제레노는 대륙 패권보다는 해양 장악에 관심이 많은 상업 국가니 제외.
분명 강국이지만 하나씩 하자가 있는 라인업을 언급할 때마다 외무성 장관의 얼굴은 씁쓸히 가라앉았다. 마치 많고 많은 대륙 국가 중 정상이 하나도 없는 기괴한 외교판에 한탄하는 것처럼.
“오죽하면 교국을 참관국이 아니라 대국으로 변경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들고 있습니다.”
“노고가 참 많으십니다.”
내 위로에 외무성 장관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당연히 최대한 입가만 바라보고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노고가 많은 사람에게 추가 노고를 얹어준 사람으로서 차마 눈을 마주치고도 당당할 자신이 없으니.
“어느 국가를 대국으로 선정하든 뒷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로군.”
“예, 전승공 각하의 말씀대로입니다. 모두가 만족할 결과는 불가능하지요. 그러니 어떠한 방안이든 마음 편히 말씀하시면 됩니다.”
어차피 어떤 국가를 택하든 잡음은 필연적이니, 뭔가 떠오르는 방안이 있으면 이것저것 재지 말고 일단 내뱉으라는 말.
어떻게 보면 외교 초보들을 향한 배려요, 다르게 생각하면 외교 전문가가 그만큼 궁지에 몰렸다는 뜻이기에 절로 숙연해졌다.
‘뭐 말할 게 있어야 말하지.’
그리고 유감스럽지만 외무성 장관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딱히 떠오르는 방안이 없었다.
제국 외교 책임자도 골머리를 앓는 난제다. 그런 난제의 해답이 바로 튀어나오면 내가 감찰부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겠나, 외무성에서 시작했지.
그나마 외무성 장관은 정답이 아니라 오답도 기꺼이 들을 생각 같지만 오답도 오답 나름이다. 아는 게 쥐뿔도 없는 상황에서 억지로 오답을 배출해 봤자 대국 숫자 늘리기, 줄이기, 대국 개념 삭제하기 정도밖에 없잖아. 그딴 말을 하면 외무성 장관에게 뺨을 맞아도 반대쪽 뺨을 들이밀어야 돼.
“차라리 노골적으로 움직이는 건 어떻습니까? 누가 돼도 이상하지 않고, 누가 떨어져도 납득할 수 있다면 후보국 중에 제국을 더욱 흡족하게 한 국가를 선정하는 겁니다.”
그렇게 침묵이 맴돌던 중. 재무성 장관이 먼저 의견을 제시했다.
돈을 관리하는 부서의 수장답게 ‘친구비 많이 낸 새끼를 뽑자.’ 라는 차가운 자본주의 발언이었다.
“범대륙 조약 기구도 대륙의 패권과 새로운 질서를 주도하기 위함입니다. 당연히 제국에 순종적이고 우호적인 국가를, 진심을 다하여 정성을 보이는 국가를 택해야겠지요. 물론 대외적 명분은 충실한 친우를 고른 다음에 생각하면 될 문제입니다.”
“실로 옳은 말씀입니다. 어느 국가를 골라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면 제국에게 이로운 국가를 고르는 게 이치에 맞습니다.”
다행히 재무성 장관의 제안은 파멸적인 오답 수준에서 벗어났지만,
“다만 제국에 가장 큰 성의를 보인 국가가 쿼로노스입니다.”
“이런.”
이미 빨간색 빗금이 그어진 오답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하여 쿼로노스를 제외한 다른 국가들의 충정을 검토 중입니다만, 서로 다른 분야에서 충정과 우정을 과시 중이라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부가 아닌 강에 주목하는 건 어떤가?”
이번에는 전승공이 입을 열었다.
부가 아닌 강. 제국에 친구비를 입금하는 재력 대신에 해당 국가가 가진 군사력으로 줄을 세우자는 말.
“대신 대륙에 전화를 흩뿌리는 국가가 아닌, 존재 자체로 평화를 지키는 국가를 고르는 게 좋겠지. 평화를 지켜야 할 조약 기구의 대국이 호전적이라면 곤란하니까.”
전통 놀이 수준으로 치고받고 싸우는 어느 두 국가를 저격하는 발언이라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전승공의 의견대로 간다면 류튼과 바젠은 자동 탈락이며, 만약 대국이 되기 위해 평화 노선을 추구한다면 대륙의 유구한 전통인 N차 류튼-바젠 전쟁이 끝날 거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대신 류튼과 바젠이 정말 평화 노선을 택하면 또 그 둘이 나란히 대국 후보가 된다는 게 문제겠지. 결국 군사력을 기준으로 잡아도 원점으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
‘군사력이 강한데 조용한 국가는 오히려 드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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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사실 군사력이 상당하지만 대외 활동이 극히 드문 국가가 하나 있기는 하다. 국내 문제로 자기들끼리 아웅다웅하기에 바빠서,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대외 활동을 자제하는 침묵의 국가가 하나 있어.
문제는 그게 유벤이다. 이미 대국 자리를 당당히 차지한 국가가 마지막 대국 자격도 갖추고 있다. 아주 환장할 노릇이야.
‘어쩌지 이거.’
어느새 봇물 터지듯 의견을 쏟아내는 전승공, 재무성 장관을 보며 찻잔만 매만졌다.
다들 어디서 저렇게 아이디어가 샘솟는지 모르겠다. 나는 육아 휴직만 수년 째라 머리가 많이 굳어버렸으니 원.
***
차를 마시며 장인어른과 재무성 장관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외무성 장관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으로 인해 이런저런 의견을 제시했던 둘이었으나, 외무성 장관의 고개는 끄덕여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러다 밤까지 태양전에서 토론을 하는 거 아닐까 우려스러울 정도로.
덕분에 퇴근은 기약 없이 멀어진 상황. 장인어른과 재무성 장관으로서는 머리를 한계까지 쥐어짜서 아무거나 내뱉어야 하니, 처음과 비교하면 격렬할 정도로 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침묵공.”
실로 처절한 둘의 사투를 보다가 침묵 중인 침묵공에게 시선을 돌렸다.
건방진 놈. 가장 죄가 큰 놈이 자기 이름대로 없는 척이나 하고 있다니. 아주 괘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너도 당장 저 사이에 끼어서 온갖 의견을 제시해야 하거늘.
“자네 생각은 어떤가?”
그래서 은근슬쩍 소파와 하나가 되어가던 침묵공을 지목했다.
그제야 장인어른과 두 장관의 시선도 침묵공에게 향했다. 너는 뭔데 여태까지 입 다물고 있느냐고 따지는 것처럼.
“그, 저, 말씀이십니까?”
“그래. 우리 중 가장 젊은 건 침묵공이지 않나. 젊은 피의 창의성을 좀 듣고 싶네.”
실제로 침묵공은 우리 중에서 유일한 20대인 막내다. 노련함보다는 창의성과 활발함이 돋보일 나이지.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겨울 삼국이 하나로 묶여 유력 후보로 등극하게 생겼습니다.”
내 요구에 침묵공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제 늦어도 1, 2주 후면 대륙 전역이 그 사실을 알게 되겠지요. 대국 자리를 노리던 후보들은 물론, 당사자가 된 겨울 삼국도 말입니다.”
“그렇지. 그래서 우리가 이리 대책을 논의 중인 거 아니겠나.”
“이왕 이렇게 된 거 그 점을 이용하는 게 어떻습니까?”
본인이 말하면서도 자신이 없는 듯한 침묵공의 모습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계속 말해봐라. 듣고 나서 판단할 테니.
“대륙의 열국들은 겨울 삼국이 동등한 경쟁자가 될 수 있음을 인식했습니다. 이제는 겨울 삼국의 사소한 행보 하나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이겠지요. 또한겨울 삼국은 감히 대국 자리를 원치 않겠지만, 졸지에 제국이 겨울 삼국을 이용한 꼴이 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약간의 보상은 필요할 듯합니다.”
“보상이라면?”
“다른 국가들이 겨울 삼국의 눈치를 보게 만듭시다.”
“음?”
난데없는 발언에 절로 반문이 나왔다.
타국이 겨울 삼국의 눈치를 보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어야 그런 게 가능하지?
“마지막 대국은 모든 국가가 협의하여 뽑는 것으로 합시다. 어차피 대륙 4위는 명확하지 않으니, 시간이 흐르면 변동될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까.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상시 대국이 아니라 선출 대국으로 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 말에 바로 겨울 ‘삼국’이라는 단어가 다르게 들렸다.
국력은 처참하지만 아무튼 겨울 삼국은 국가다. 그것도 무려 삼국이다. 서로 동등한 발언권을 가졌다면 겨울 삼국의 결정에 3표가 움직인다.
그리고 겨울 삼국은 제국의 충실한 친우. 제국의 표는 사실상 겨울 삼국과 합해서 4표가 된다.
‘흐음.’
잠시 턱을 매만지다가 외무성 장관을 바라봤다.
비록 하나라지만 대국 하나를 매번 새로 선출하는 건 번거로운 일이다. 그러나 머리를 쥐어짜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으면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고려할 요소기는 한가 보군.’
외무성 장관도 턱을 매만지다가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개의 상시 대국과 하나의 선출 대국. 점점 조약 기구의 형태가 기묘해지고 있다.
***
오늘도 멀고 먼 북방에서 이 루센까지 온 지즈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매번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먼 거리를 날아오는 게 피곤할 텐데, 언제나 웃고 있어서 고맙고도 미안하다.
“전하!”
하여 지즈와 함께 평소보다 열성적으로 영원한 푸른 하늘을 향한 기도를 올리던 중. 외부대신이 급하게 달려왔다.
“제국의! 황제의 은총이 내려왔습니다!”
“으음?”
다급하면서도 환희에 찬 얼굴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 또한 외부대신과 비슷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정말 제국과 황제의 은총이 떨어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