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066)
로판 속 공무원 1066화(1067/1083)
드래곤이 마탑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다.
분명 짧디짧은 한 문장에 불과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주어와 서술어, 목적어가 전부 들어간 명확한 문장임에도 말이다.
‘꿈인가.’
급하게 달려오기라도 했는지, 숨을 몰아쉬는 집사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내가 꿈을 꾸는 모양이다. 제국 건국 이래로 동굴이나 산속에 박혀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 드래곤이지 않나. 대제와 전대 드래곤 로드의 맹약에 따라 주기적으로 제국에 피를 제공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인간과 조우할 일이 전혀 없는 존재가 드래곤이다.
헌데 그런 드래곤이 자신의 터전을 나오는 것도 모자라 제도로 날아왔다? 그것도 마탑이라는 랜드마크를 향하여 당당하게?
‘뭔데 대체.’
혼란스럽다.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기 위하여 머리가 노력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내가 드래곤이라는 존재에 대해 무지하다면 ‘드래곤이 잠깐 바람을 쐬려고 나온 건가?’ 라며 행복회로를 풀-가동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텔리우스 덕분에 드래곤에 대한 지식이 그럭저럭 풍부한 편이다. 드래곤은 절대 바람 좀 쐬고 싶다는 사소한 이유로 자신의 터전을 벗어날 성격이 아니야.
이는 아텔리우스뿐만이 아니라 드래곤 로드도 본 사람으로서 장담할 수 있다. 그 양반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명확히 아는 존재들이니까.
‘드래곤이 아니라 도마뱀인가?’
이내 그런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마탑으로 날아가고 있다는 드래곤은 드래곤이 아니라 날개 달린 도마뱀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미친 생각이지만 은근 가능성이 높은 가설이다. 내가 아는 드래곤들은 절대 가볍게 행동할 존재들이 아니며, 집사를 비롯한 제도 사람들의 대다수는 드래곤의 발톱조차 보지 못한 사람들이지 않나. 날개 달린 도마뱀을 드래곤으로 착각했을 수 있다.
물론 날개 달린 거대 도마뱀이라는 희귀하고 기이한 존재가 갑작스레 등장할 확률은 상당히 낮지만, 적어도 드래곤이 자기 터전을 뛰쳐나올 확률보다는 높아.
“잠깐 마탑에 다녀올 테니 사용인들이 동요하면 잘 다독여줘.”
“예, 주인님. 부디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집사의 말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만일 마탑으로 날아가는 게 도마뱀 나부랭이라면 하늘 베기부터 날리고 시작한다. 어떠한 생물이라도 기강을 잡고 시작하면 소통이 편해지는 법이지.
설령 진짜 드래곤이라도 상관없다. 나한테는 아텔리우스라는 고인물 드래곤 지인이 있고, 황제에게는 드래곤 로드라는 빽이 있으며, 저기 국립묘지에는 그 둘을 능가하는 존재가 버티고 있으니.
‘이렇게 위기감이 없을 수가.’
그렇게 걸음을 옮기다가 실소가 터져 나왔다.
드래곤, 혹은 그에 준하는 비행 생물체의 제도 습격. 분명 위기감이 넘쳐야 할 긴박한 이벤트지만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
이 세계의 드래곤은 리브노만을 아끼고 사랑하는 로드를 제외하더라도 대개 친 제국 성향이 짙은 존재들이다. 그런 드래곤이 제국을 습격하고자 나타난 건 아닐 것이며, 만에 하나 습격을 위해 나타난 드래곤이라면 다른 드래곤들이 우르르 달려와 집중 구타를 할 터.
그래서인지 드래곤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접했음에도 당혹감 외에는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마치 사하라 사막에서 아델리 펭귄이 나타났다고 들은 기분이야.
‘아델리 드래곤…’
아직 색깔도 보지 못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그냥 아델리 드래곤이다.
불만이 있다면 드래곤 로드를 통해 정식으로 항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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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제도는 갑작스러운 대형 이벤트로 인해 혼란에 휩싸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일생 동안 비늘 하나, 발톱 하나도 볼 수 없는 존재가 대낮부터 날아왔으니 혼란에 빠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라면 혼란에 빠졌을 뿐이지, 제도 시민들이 공포에 잡아먹혀 피난길을 떠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제국과 드래곤의 우정은 제국민들에게도 유명한 일화니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존재가 나타났지만 위험한 존재는 아니라는 믿음. 저게 대체 왜 나타났냐는 의문을 가지지만 도망칠 정도의 공포는 느끼지 않는 기묘한 상황.
‘누가 보면 시위라도 일어난 줄 알겠네.’
마탑에 가까워질수록 상당한 인파와 마주할 수 있었다. 대제와 전대 드래곤 로드 사이의 아름다운 일화를 기억하는 제도 시민들은 드래곤의 등장에 도망치는 대신 마탑으로 달려가 구경하는 걸 택했다.
참으로 용맹하고 대담한 시민들이 아닐 수 없다. 천상의 대제도 이 광경을 보면 기뻐하겠지.
“지나가겠다.”
다만 용맹하고 대담한 시민들이 너무 많아, 결국 시민들의 양해를 구하면서까지 걸음을 옮겨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낯설고 민망하다. 누구도 내 발걸음을 막은 적이 없었거늘. 제국의 실권자로 취급받는 나조차 백성으로 만들어진 파도 앞에서는 무력한 통통배에 불과하구나.
“치, 침묵공 각하!”
“세르베트 공작 대리 각하께서 지나가신다! 전부 비켜!”
“고개를 조아려라! 공작 대리 각하의 행차시다!”
‘어후.’
이윽고 파도가 좌우로 갈라지는 모습에 속으로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평범한 시민들이 귀족의 얼굴을 기억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나, 애석하게도 나는 황족의 퍼레이드에 합류하여 제도 곳곳에 얼굴을 알린 적이 있었다. 덕분에 이렇게 내 얼굴을 알아보는 시민들이 나오는 편이다.
이걸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의문이다. 귀족이 평민들 사이에서 유명하려면 어마어마한 선정을 베풀었거나 악정을 펼쳐야 하는데, 양심상 나는 전자가 아니란 말이지.
“칼.”
내 이름이 백성들에게 어떤 존재로 기억될지 걱정하며 마탑 앞으로 다가가자, 다른 마법사들과 함께 마탑 밖으로 나와있던 트릭시를 볼 수 있었다.
“트릭시? 밖에 있었어?”
말하고 나서야 내가 이상한 질문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트릭시만이 아니라 마탑의 마법사들은 당연히 밖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서 보니 장관이네.’
마탑 꼭대기에는 하얀색 드래곤이 살포시 착지한 상태였으니까.
자기가 머무는 건물 꼭대기에 드래곤이 착지했다면 밖으로 나가는 것이 당연하다. 꿋꿋하게 건물 안에 있다면 안전 불감증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어.
‘일단 적대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트릭시에 이어 부탑주와도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꼭대기에 있는 하얀색 드래곤을 바라봤다.
순식간에 마탑을 자기 둥지로 삼은, 제도 시민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드래곤은 마탑 꼭대기에 앉은 채 멀뚱히 지상만 바라보고 있었다. 제도를 습격하고자 했다면 저렇게 느긋할 수가 없고, 제국에 요구할 것이 있다면 저리 조용할 수 없다.
그래서 혼란은 더욱 커졌다. 요란하게 등장했다면 그다음 행보도 보여야 하지 않나? 왜 가만히 있는 거지?
“나 오는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어?”
멍하니 드래곤을 보다가 슬쩍 트릭시에게 물었다.
어쩌면 내가 저택에서 달려오는 동안 다음 행보를 보였을 수 있다. 지금은 마탑에게 요구를 한 뒤, 트릭시의 반응을 기다리는 대기 시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아니. 아무것도 없었단다. 갑자기 북쪽에서 날아와 마탑에 앉은 것이 다야.”
“그래?”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냉정하고도 잔혹했다. 저 드래곤은 정말로 아무 발언이나 행동 없이 마탑 꼭대기를 차지했을 뿐이다.
‘아.’
일단 마탑으로 모여드는 시민들을 자택으로 귀가시켜야 하나 고민하던 중. 품속의 통신구가 빛을 내뿜었다.
은은한 보라색 빛이 새어 나오는 걸 보면 황제의 연락 같다. 확실히 제도에 등장한 드래곤은 황제도 기겁할 일이지.
“황제 폐하 만세. 크라시우스 가─”
– 마탑인가?
“예, 폐하. 트릭시와 함께 있습니다.”
– 그건 참 안심이 되는 이야기로군.
앞뒤 다 잘라먹은 직설적 질문에 반사적으로 대답하자, 통신구 너머의 황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드래곤이 황실과 제국에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는 건 황제가 가장 잘 알 거다. 그럼에도 제국 역사상 단 한 번도 없던 사태가 벌어졌으니, 군주로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게 마땅하다.
나와 트릭시과 드래곤과 교전해야 하는 사태를.
– 그래. 마탑에 방문하신 손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나?
“그것이, 아직 아무 말씀도 없으십니다.”
– 허어.
“다만 어떠한 말씀이 없으신 것처럼 어떠한 행동도 없으십니다. 그저 마탑에 앉아 지상을 내려다보는 것 외에, 는…?”
말을 끝마치지 못한 채 멍하니 입을 벌리고 말았다.
하얀색 드래곤이 다시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그대로 남쪽을 향해 날아갔다.
아주 높게, 아주 빠르게. 이 제도에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이 금방.
– 백작?
“그, 폐하. 방금 막 제도를 떠나셨습니다.”
– 뭐?
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한 황제의 반응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나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왜 온 거야 대체.’
혹시 드래곤들 사이에 제도 출석 이벤트라도 생겼나?
다행히 우리에게는 드래곤의 기행에 대해 설명해 줄 존재가 있었다.
“제도에 드래곤이 다녀갔다고?”
“아주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분명 제도에 방문했다가 다시 떠났습니다.”
드래곤들 중에서도 원로 중의 원로로 군림하는 아텔리우스. 순수 연륜으로만 따지면 현 로드조차 아득하게 능가하는 고인물에게 문의했다.
웬 드래곤 하나가 마탑에 착지했다가 다시 떠났는데,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기이한 일이군. 드래곤이 자신의 터전을 떠나 외출을 했다고?”
내 물음에 아텔리우스도 의아한 기색이 역력했다.
같은 드래곤이 듣기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사태. 그만큼 제도에는 어마어마한 폭풍이 지나간 것이다.
“하얀색, 하얀색 드래곤이라.”
그래도 이 기이한 사태는 아텔리우스의 흥미를 끌었는지, 꼬리로 바닥을 툭툭 내리치며 내가 전달한 정보를 중얼거렸다.
“아.”
이내 나지막한 탄성을 내뱉었고,
“그 드래곤. 북쪽에서 나타났다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크기는 어땠지?”
“그게, 일단 어르신이나 로드와 비교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작기는 했습니다만.”
“누군지 알 것 같군.”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스르륵 낮췄다.
“미안하다. 아직 철없는 녀석이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고를 친 것 같다.”
“예?”
순식간에 드래곤의 습격 이벤트가 철없는 아이의 사고로 전락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