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068)
로판 속 공무원 1068화(1069/1083)
아이들의 식사를 챙겨주던 중. 북동쪽에서 강렬하고도 자유분방한 기운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처음에는 지즈가 날아오는 건가 싶었다. 이렇게 활발하고 종잡을 수 없는 기운은 지즈 외에 느껴본 적이 없었으니까.
‘아니군.’
하지만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형체는 지즈가 아니었다.
날개를 활짝 펼친 모습은 분명 지즈와 비슷했으나 지즈와 달리 팔이 달려있었다. 게다가 순백의 색깔은 지즈가 눈이라도 뒤덮은 채 날아와야 보일 수 있는 외견이다.
자세히 보니 덩치도 지즈보다는 작다. 날아다니는 생물이라는 것과 자유분방한 기운을 제외하면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적대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점점 가까워지는 하얀색 무언가를 바라보며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처음 보는 손님이지만 다행히 사특한 마음을 가지고 달려드는 건 아닌 듯하다. 무슨 용무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존재 나름의 이유로 이곳에 오려는 것뿐이야.
– 다들 물러나 있거라. 곧 손님이 올 테니 공간을 마련해야 할 것 같구나.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아이들을 전부 내 뒤로 물러나게 했다.
지즈보다 작은 것이지 객관적으로 보면 결코 작은 크기가 아니다. 그런 덩치를 가진 존재가 착지하려면 상당한 공간을 차지할 테니, 아이들이 어슬렁거리면 저 손님과 아이들이 둘 다 다칠 수 있다.
– 음?
그렇게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다시 하얀 존재를 바라보니, 그제야 하얀 존재의 외견을 온전히 눈에 담을 수 있었다.
– 드래곤?
드래곤이다. 성체에 비하면 비교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작으나 분명 드래곤이 맞다.
내가 잠에 들기 전에 몇 번 본 적이 있으니 확실하다. 드래곤은 단 한 번만 봐도 잊기 어려운 존재들이니.
“와, 가까이서 보니까 더 크다!”
갑작스러운 방문과 예상치 못한 정체. 덕분에 내 앞에 착지한 하얀색 드래곤이 날개를 퍼덕이며 감탄하는 동안에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크면 걸을 때마다 땅이 울리지는 않나? 아, 발은 안개처럼 희미하네? 신기하다!”
이내 내 발치를 어슬렁거리며 날개로 몸을 툭툭 건드리거나 발을 유심히 바라봤다.
참으로 호기심이 많은 아이다. 내가 본 드래곤들은 진중하거나 아예 말이 없는 편이었거늘, 이 아이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개체인 것인가?
“뭘 먹어야 이 덩치를 유지할 수 있지? 풀을 먹으면 산 하나는 먹어야 할 것 같은데?”
– 나는 마나를 먹는다. 풀도 먹을 수는 있지만, 네 말처럼 산 하나는 먹어야 배가 차니 비효율적이지.
“으응?”
내가 입을 열자 어린 드래곤은 눈을 크게 뜨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말도 할 수 있어!?”
– 크기만 한 소보다는 말도 하고 큰 소가 더 신기하지 않겠느냐.
“우와아아아!”
눈을 반짝거리는 어린 드래곤을 보니 어느새 입꼬리가 올라갔다.
너무나 활발하고 순수한 손님이 찾아왔다. 마치 칼의 자식들과 이 제국의 황족 아이들을 보는 기분이야.
‘드래곤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군.’
동시에 성체 드래곤이 아닌 어린 드래곤의 모습을 코앞에서 지켜보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기하고도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드래곤들은 태어날 때부터 지혜롭고 진중했을 것 같은 존재들이다. 그런 드래곤들도 어릴 때는 이런 성격을 갖추고 있었다니. 활발하고 순수한 드래곤을 직접 보게 되다니.이보다 귀한 경험과 지식이 어디 있을까.
– 말하는 짐승은 처음 보느냐?
“응! 처음 봐!”
여전히 날개를 퍼덕이는 어린 드래곤을 향해 슬쩍 묻자,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렇다면 레비아탄과 지즈, 혹은 칼과 함께하는 작은 짐승들과는 만난 적이 없다는 뜻이다. 혹여 그 친구들과 연이 있는 드래곤인가 싶었으나 그건 아니었다.
‘순수하게 외출을 나온 아이.’
그런 결론을 내리며 내 뒤에 있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어린 드래곤을 응시했다.
아무리 어리더라도 드래곤은 드래곤. 남이 기르는 동물을 함부로 잡아먹거나 다치게 할 성품은 아닐 터.
– 이 아이들과 놀아보겠느냐? 처음 보는 아이들도 많을 거다.
“맞아! 저기 코 긴 애랑 목 긴 애! 뿔 긴 애도 처음 봐! 저기 쟤랑 쟤도!”
내 제안에 어린 드래곤은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들을 향해 달려갔다.
날아가는 게 아니라 달려갔다. 내 덩치가 덩치인지라 바로 뒤에 있다고 해도 제법 거리가 있는데, 그 거리를 두 다리로 뛰어가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다.
– 꿔어어어억!
‘음.’
칼이 맡기고 간 아이도 깜짝 손님을 환영하듯이 빠르게 달려갔다.
– 꿔어어억!
그러고는 입을 쩍 벌리며 날개를 펼쳤다.
YW9peUx5cktZYXhyU2hzY1VsMkQ0WGwyQnAvQjB0QlZaOE5NSWF4UG44Y2hhaUF1am1jdnhzbjBCOFZXenA5MA
볼 때마다 특이한 인사법이다. 나한테는 물론 기린이나 코끼리, 하마에게도 저런 인사를 건네고는 했지.
“응? 얘는 뭐야?”
– 펠리컨이라는 아이다. 네가 반가워서 인사를 하는 것이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오오…”
그러자 어린 드래곤은 한참이나 펠리컨을 바라봤고,
“크아아아아아!”
자기도 펠리컨을 향해 입을 쩍 벌렸다.
– 으, 음머어어어!
– 뿌우우우!
우렁찬 울부짖음에 다른 아이들이 놀라기는 했다만, 다행히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허둥거리지는 않았다.
이 아이들도 저 어린 드래곤이 단순하게 큰 소리를 냈을 뿐이라는 걸 알기에. 만일 살기나 투지를 담은 외침이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겠지.
– 베히모스으으으으으!
– 으음?
서로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어린 드래곤과 펠리컨을 보다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다시 북동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지즈?
이번에는 정말 지즈였다.등에 자그마한 사람의 형체도 있는 걸 보니 칼도 함께 온 것 같다.
어린 드래곤에 이어 이번에는 지즈와 칼이라. 찰나의 시간 동안 반갑고도 의외의 손님들이 연달아 방문하는군.
‘이 아이가 원인이겠지.’
지즈의 목소리에 북쪽으로 고개를 돌린 어린 드래곤.
정황상 이 아이가 지즈와 칼도 이끌고 온 것이 분명하다.
***
다행히 가출 꼬마 드래곤을 따라잡는 것에 성공했다.
아직도 가출이라는 단어가 드래곤에게 붙을 수 있는 건지 의문이기는 하나, 애석하게도 이 세상에 실존하는 생물인데 어쩌겠어. 굳이 탓을 하려면 호기심이 왕성한 꼬마 드래곤을 탓하고, 애 관리를 제대로 못한 부모 드래곤을 탓해야지.
물론 어느 쪽이든 필멸자 나부랭이가 항의를 제기할 존재는 아니다. 정말 애석한 일이야.
– 말없이 가출한 드래곤이었다고?
“그래. 심지어 제도에서 쉬었다가 이쪽으로 이동한 거지. 덕분에 제도 전역이 이래저래 혼란스러웠다.
이 애석함을 베히모스와 공유하자 베히모스도 탄성 같은 탄식을 흘렸다.
베히모스는 과거 신으로 군림했으며, 신격을 상실한 후에는 트리카 제국의 방패로 지냈다. 비록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들어 그 기간은 짧지만 아무튼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온 존재다.
그런 베히모스도 부모의 방심을 틈 타 가출한 꼬마 드래곤은 처음 보는 모양이다. 사실 가출 드래곤이 대륙 역사상 여럿이나 있다면 그게 더 문제지만.
– 꿔억, 꿔어어어억!
“크아아아아!”
– 크아아앙!
‘아.’
조금씩 희미해지던 정신을 겨우 붙잡으려던 찰나. 베히모스 뒤편에서 들리는 세 울음소리에 질끈 눈을 감고 말았다.
성격이 하도 지랄맞아서 베히모스에게 맡긴 꿕꿕이. 이 용맹하기 그지없는 녀석은 드래곤을 상대로도 굴하지 않았고, 드래곤과 지즈는 꿕꿕이의 행동을 인사 겸 놀이라고 인식하여 같이 울부짖기 바빴다.
대체 저건 무슨 광경일까. 안 그래도 머리가 아픈데 왜 저런 모습까지 봐야 하는 걸까.
– 상당히 순수하고 선량한 아이인 것 같다. 드래곤도 어릴 때는 저렇게 자란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수천 년을 더 살아가도 겪지 못할 진귀한 경험이었지.
“그건 그렇지.”
그러나 탄식도 잠시. 베히모스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가출 드래곤을 옹호했다.
비록 가출이라는 대형 사고를 쳤지만 악한 의도가 있던 건 아닐 테니 너그러이 용서하라고. 저 드래곤은 그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넘쳤던 아이에 불과하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옹호하지 않아도 용서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일개 필멸자가 드래곤에게 항의하거나 화를 낼 수는 없으니까.
“제국을 종단한 덕에 많은 백성들이 놀라기는 했지만, 그걸 제외하면 아무런 피해도 없었고.”
게다가 항의를 할 명분도 애매하다.
저 드래곤은 그저 하늘을 날아다닌 죄밖에 없다. 막말로 하늘에 새가 날아다녔다고 화를 낼 사람은 없잖아. 그 새가 압도적으로 크고 강하며 지혜로운 존재라는 게 문제일 뿐이지.
–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어떻게라.”
이어진 베히모스의 물음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러게. 이제 어쩌지. 가출 드래곤과 조우하는 데 성공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나, 딱 거기까지만 성공했는데.
“위대한 분이시여. 분명 위대한 분의 부모님께서도 크게 걱정하고 계실 겁니다. 이제 그만 동굴로 돌아가시지 않겠습니까?”
– 싫어! 내가 어떻게 나왔는데! 지금 돌아가면 100년은 동굴에 갇혀서 지낼 거라고!”
베히모스와 함께 있는 하얀색 드래곤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대화를 시도했으며, 부모가 걱정할 테니 집으로 돌아가자는 절절한 설득을 했다.
그런데 안 먹히더라. 46살 용생 최초로 바깥세상을 구경하게 된 가출 꼬마 드래곤─ 소르니에나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며 버텼다.
자기도 아는 거지. 희대의 가출쇼를 펼쳤으니 집으로 돌아가면 더욱 엄중한 감시, 감금 생활이 기다릴 거라는걸.
“너, 칼 맞지? 아텔리우스 아저씨랑 친한 인간! 네가 나 좀 도와줘!”
“예?”
그래서일까. 소르니에나는 도리어 나를 설득하려고 했었다.
그 와중에 막내 드래곤이 내 존재를 안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이런 꼬꼬마도 알 정도면 사실상 모든 드래곤들이 내 존재를 안다는 거잖아. 대체 어쩌다 일개 인간의 이름이 드래곤 사이에 퍼진 건데.
“네가 우리 아빠랑 엄마 좀 설득해 줘! 아빠랑 엄마가 안 혼내겠다고 약속하면 돌아갈게!”
당연하지만 얼굴도 보기 힘든 드래곤들 사이에 이름이 퍼진 것보다, 자식의 가출에 분노했을 부모를 달래야 한다는 사실이 더 가슴 아팠다.
‘인생 참.’
작게 한숨을 내쉬며 소르니에나를 바라봤다.
소르니에나가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티면 옆에 붙어서 호위 겸 감시 겸 안내 역할을 할 생각이기는 했다. 그러나 역으로 자기 부모를 막는 방패가 되어달라고 부탁받을 줄은 몰랐다.
역시 현명함의 상징인 드래곤답게 필멸자의 예측을 가뿐히 벗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