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074)
로판 속 공무원 1074화(1075/1083)
셀린 황녀에게 깃든 드래곤의 가호(아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아쉽게도 황제와 대면한 그 자리에서 바로 해결책이 나오지는 않았다. 작게 보면 셀린 황녀 개인의 인생, 넓게 보면 제국의 후계 구도에 영향을 주는 일이지 않나. 절대 가벼운 마음으로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실제로 몇 년 전에는 카롤루스 황자가 태어나기 직전, 황태녀 바로 아래 동생이 황자로 태어나면 어쩌나─ 같은 고민을 한 적도 있었지. 혹시나 황태녀 대신에 황자를 차기 황제로 세우자는 의견이 나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도 제법 오랜 시간 의논을 했었다. 절대 몇 시간 만에 처리할 일이 아니야.
‘일단 문제를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지.’
황제가 새로운 자식의 탄생에 기쁨을 느끼고, 어느 정도 감정이 가라앉아 객관적인 생각이 가능해질 때. 그때 셀린 황녀와 드래곤의 가호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언질을 주는 것.
오늘의 성과는 딱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 더 나아가려는 건 욕심이니까.
“폐하께서도 고민이 많으신 것 같더라고. 자식이 위대한 존재의 축복을 받았다면 기쁜 일이지만, 하필 첫째가 아닌 넷째가 받아버렸으니.”
그렇게 저택으로 복귀한 후. 황실의 경사와 더불어 약간의 문제를 부인들에게 털어놓았다.
나와 황제는 누군가의 아빠다. 아빠의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으나, 성별의 벽은 너무나도 드높기에 엄마의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막 출산을 마쳐서 기진맥진한 황후에게 ‘이번에 태어나신 황녀 전하께서 약간의 분란 요소를 가지고 계십니다.’ 라고 할 수는 없잖아. 어떤 미친놈이 막 태어난 아기를 순식간에 근심거리 취급하겠냐고.
그러니 자연스레 부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황제도 은근히 그걸 바라고 있으니 딱히 문제 될 건 없다.
“어려운 문제네요. 드래곤께서 축복을 내리신다고 해도 사양해야 할 상황인데, 이미 내리고 가셨으니까요.”
내 설명에 마르는 쓴웃음을 지으며 난색을 표했다.
맞는 말이다. 후계 구도에 잡음이 생길 걸 고려하면 가출 꼬마 드래곤이 아니라 로드가 축복을 내려준다고 해도, 정중하게 사양을 하거나 황태녀에게, 혹은 아이들 전부에게 내려줄 수 있느냐고 사정해야 할 판국이다. 넷째만 단독으로 받는 건 상당히 좋지 않다.
‘심지어 축복도 아니잖아.’
곱씹을수록 억울하고 원통하다. 소르니에나는 날아가다가 마탑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놀러 간 거지, 절대 셀린 황녀에게 축복을 내린 것이 아니다. 솔직히 걔는 셀린 황녀가 황후 품에 있는 것도 몰랐을 거야.
그런데 그 우연한 방문을 세상 사람들은 축복과 가호로 착각하다니.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 수준을 넘어서 제로 리턴이잖아 이거.
‘아텔리우스가 아니라 로드한테 보낼 걸 그랬나.’
덕분에 그런 생각마저 스쳐 지나갔다. 소르니에나를 꾸짖고 타이르는 건 아텔리우스가 아닌 로드에게 맡기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로드 성격상 간절하게 부탁했으면 거절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니야.’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로드보다는 아텔리우스에게 보내는 게 옳았다.
로드가 권위는 확실하지만 나이가 조금 걸려. 드래곤 전체로 따지면 소르니에나 바로 위가 로드니까. 제국을 발칵 뒤집은 가출 꼬마 드래곤이라면 로드에게 애교를 부리며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을지도 모르고, 로드도 바로 아랫동생의 애교에 마음이 약해졌을 수 있다.
그건 실로 곤란한 일이다. 로드가 마음이 약해져 소르니에나를 훈방 조치한다면, 복수심과 배신감에 치를 떨 소르니에나는 나를 찾아올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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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 드래곤 분한테 다시 와서 축복 거두라고 하면 안 돼요?”
“되겠냐.”
그 와중에 남편 속도 모르는 에리 씨는 기괴한 제안을 내뱉었다.
축복이 무슨 광고 전단지인 줄 아나. 줬다가 도로 거두는 축복이 이 세상에 어디 있어. 아니, 광고 전단지조차 한 번 나눠주면 다시 회수하는 일 따위는 없다.
게다가 축복을 거두는 건 처음부터 안 주느니만 못한 저주나 마찬가지다. 사실상 ‘얘는 자세히 생각해 보니 축복받을 자격이 없다.’ 라는 낙인을 찍어버리는 거니까.
애초에 축복을 준 적도 없다는 건 넘어가고 말이다.
“단순하게 다른 전하들께도 축복을 내리는 건… 효과가 적겠죠?”
“아마도? 드래곤과 동급인 존재는 어떻게든 찾아보겠지만, 명확하게 상위의 존재는 없잖아. 그러면 뒤늦게 축복을 줘봤자 셀린 전하께서 먼저 받았다는 것만 기억에 남겠지.”
리제의 말에 씁쓸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나선다면 드래곤의 축복보다 상위의 축복이라고 볼 수 있기도 한데, 그건 정말 어지간한 상황이 아닌 이상 고려할 카드가 아니다.
내가 살아있는 성인이 되면서, 종교적 권위를 부여받으면서 어마어마한 명예도 덩달아 받은 이유가 무엇인가. 대다수 사람들에게 있어 신은 아득히 먼 존재인데, 나는 그 신과 상대적으로 가깝다는 상징성과 희소성 덕분이다.
덕분에 살아있는 성인이라는 직함을 외교적, 정치적으로 잘 써먹고 있거늘 세 명의 황족들에게 추가적인 종교적 권위를 부가한다? 최소로 삼아도 황태녀에게 드래곤의 축복 이상 가는 축복이 내려져?
‘그건 좀.’
에넨이나 영원한 푸른 하늘, 콘스탄티나가 축복을 내려주느냐 마느냐는 둘째치고, 나한테 얹어진 휘광이 분산되면 제국이 사용할 수 있는 패가 약해지는 것과 다름없다.
덤으로 신의 축복이 특정 국가의 황족에게 내려진다면 다른 국가들이 동요할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황실과 교단이 우호적이라도 신은 중립적이고 공평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신마저 리브노만을 총애한다고 느껴지면 좀 그렇지.
‘물량전이 답인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드래곤보다 상위 개체의 축복이 무리라면 물량전으로 승부를 봐야 하나?
마침 황태녀는 바람의 정령왕의 축복을 받았다. 정령왕들에게 부탁해서 다른 정령왕들도 동원하면 무려 넷의 축복을 받는 거지. 드래곤 하나와 정령왕 넷이라면 후자가 더 좋을 터.
“오빠.”
“응?”
저번에 상황비의 묘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화려한 자연 퍼포먼스를 보이면 괜찮지 않을까 고민하던 중. 린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축복을 없던 걸로 만들지 못한다면, 셀린 전하가 아니라 리브노만 황실 자체에 내리는 축복으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리브노만 전체의 축복?”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절로 고개가 기울어졌다.
축복을 개인이 아니라 전체의 축복으로 만들자? 축복이 복사되는 것도 아니고 그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이미 아텔리우스의 동굴로 압송된 소르니에나를 불러와도 불가능할 것 같은데.
“어떻게?”
허나 린이 대책 없이 입을 열지는 않았겠지. 좋은 방안이 있기에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을 거다.
“다행히 드래곤께서 직접적으로 셀린 전하께 축복을 내리신 건 아니에요. 그냥 제도에 나타나셨다가 떠나셨을 뿐이지, 드래곤의 축복과 가호가 깃들었다는 건 사람들의 추측에 불과하니까요.”
“그건 그렇지.”
린의 말에 격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르니에나는 분명 제도에서 한마디도 한 적이 없다. 그저 사람들이 수백 년 만에 나타난 드래곤이니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나타난 것이고, 그 이유를 셀린 황녀에게서 찾았을 뿐이야.
“그러면 추측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면 되지 않을까요? 마침 셀린 전하께서는 넷째시고, 상황 폐하께서는 슬하에 셋의 아들을 두셨었잖아요. 손이 귀한 황실에 전 세대보다 많은 자식이 태어났으니, 드래곤께서는 그걸 축하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면 어때요?”
‘아.’
제법 그럴듯한 말이다. 적어도 여러 사유로 인해 상당수의 패가 봉인된 상태에서는 그거만한 방법이 없다.
리브노만은 제국도 아닌 왕국 시절부터 손이 귀하기로 유명했다. 어떻게든 명맥은 이어왔지만 결국 에이만카 15세 때 직계 혈통이 끊겨버렸고, 에이만카 15세의 12촌인 상황이 황제로 즉위하는 미친 계승이 발생하지 않았던가.
덕분에 상황이 셋의 아이를 본 건 죽어가던 리브노만의 홍복이었고, 서른이 조금 넘은 황제가 벌써 네 번째 황족을 만든 건 드래곤이 축하할 일이 맞다. 맞기는 한데…
‘그래도 되나?’
린의 주장을 실현하려면 필연적으로 ‘상황과 세 아들’을 언급해야 한다.
일단 세 아들 중 첫째와 셋째는 괜찮다. 첫째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고, 셋째는 북방에서 두덕리 온라인을 즐기고 있으니 제도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으니.
문제는 둘째다. 상황의 세 아들 중 둘째는 보통 시발 새끼가 아니어서, 오늘날 제국 정계와 사교계에서는 감히 입에 담아서도 안 될 흉측하고 혐오스러운 존재.
‘그놈을 언급해야 한다고?’
눈앞이 절로 아득해졌다. 생각만 해도 위액이 역류하는 기분이다.
물론 세 아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언급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게는 세 자식이 있었다.’ 정도로 간단히 언급하는 거지만, 그것만으로도 제국 귀족들은 반사적으로 도르고스를 떠올릴 거다. 이건 인간의 본능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리고 난데없는 도르고스 언급은 황궁에서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 상황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
‘안 돼.’
어느새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좋은 아이디어지만 이건 절대 내 선에서 진행할 일이 아니다. 내 행동으로 인해 상황이 움직인다면 황궁 앞에서 효수돼도 할 말이 없어.
“좋은 생각이네. 더 자세하게 검토해 볼게.”
그래서 급히 대화를 종료했다. 혹시라도 린의 말이 외부로 새어나갈까 봐. 내가 효수되는 게 아니라 린이 상황의 분노를 맞을까 봐.
다음날. 다시 태양전으로 향해서 조심스레 린의 아이디어를 언급했다. 제안자가 린이라는 건 제외하고 말이다.
“뭐?”
그리고 황제의 반응은 상당히 강렬했다.
단 한 글자. 뭐라는 한 글자만으로도 내 어깨를 짓눌렀다.
“백작. 그거 백작 생각 맞나?”
“예?”
“백작도 짐처럼 그놈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을 터인데, 그런 생각을 백작이 스스로 해냈다고? 그럴 리가.”
제국에서 그놈에 대한 감정이 좋은 귀족이 어디 있느냐는 말이 입안을 맴돌았지만 참았다.
지금은 어설프게 반박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