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082)
로판 속 공무원 1082화(1083/1083)
매번 느끼는 거지만 내 아이, 조카, 남의 아이는 각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건 변함이 없으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차이점이 있지.
“큰오빠!”
그리고 내 아이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가까운 핏줄이요, 거의 20살이 넘게 차이 나는 늦둥이 막내 여동생을 보면 절로 표정이 풀어진다.
이상하게 테레사만 보면 모든 긴장이 풀린다. 우리 아이들을 돌볼 때는 엇나가지 않게 길러야 한다는 사명감, 조카들을 볼 때는 무서운 삼촌이 되면 안 된다는 다짐, 남의 아이─ 주로 황족과 만날 때는 대부 겸 귀족의 의무가 함께 불타올랐다면 테레사에게는 오직 애정만이 솟았으니까.
테레사를 막 길러도 된다는 안이함은 아니다. 그저 테레사에게는 부모님과 유모가 있으니 내가 관여하지 않아도 잘 자랄 거라는 믿음이 있는 거지.
“잘 지냈어? 아빠랑 엄마 말은 잘 들었고?”
“웅! 잘듣고 지내써!”
우다다다 달려오는 테레사를 향해 양팔을 벌리자, 테레사는 내 품에 폭 안기며 재잘재잘 입을 열었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4살 아래의 시커먼 남동생보다는 20살 넘게 차이 나는 여동생이 더 좋지, 아무렴.
‘테레사는 속을 안 썩이니까.’
반사적으로 시커먼 남동생이 아카데미 생활 동안 선보였던 기적의 눈치를 떠올렸다.
1학년 1학기 때는 리제에게, 그 이후로는 세라와 제노비아에게 과시했던 끔찍하고 경이로웠던 눈치. 내가 그거 때문에 고생한 걸 생각하면 아직까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그에 비해 우리 테레사는 어떤가. 이 오빠의 속을 한 번도 썩이지 않았잖아. 비록 지금보다 어릴 때는 어마어마한 활동력과 호기심, 울음으로 인해 정신을 뒤흔들기도 했다만, 그건 건강하다는 증거니 오히려 기꺼운 일이다.
그래, 그렇게 착하고 장한 여동생으로 자라왔는데.
‘검이라.’
아이가 가장 왕성한 활동력과 호기심을 선보인다는 5살. 우리 테레사는 활동력, 호기심과 더불어 크라시우스의 피까지 맹렬하게 발현하고 말았다.
검이라니. 이 작고 소중하고 귀엽고 앙증맞은 아이에게 검이라니. 우리 테레사한테 그런 흉한 건 너무나 이르거늘.
‘우리를 닮았다는 거니 좋아할 일이기는 한데.’
복잡한 심정이다. 테레사의 안전을 생각하면 씁쓸하기 그지없으나, 테레사도 크라시우스의 일원이라는 걸 입증하는 일이니 흐뭇하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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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러한데 아버지는 오죽하셨을까. 괜히 제도에 있던 나를 타일글레헨으로 소환하신 게 아니다.
“역시 우리 테레사는 착한 아이네. 앞으로도 계속 아빠랑 엄마 말 잘 듣고, 유모 말도 잘 들어야 한다?”
“웅! 나 유모 말두 잘드러! 유모도 나 차카대!”
“음, 기특하네.”
반드시 아버지와 함께 테레사의 안전을 지키고자 다짐한 후. 내 품에 달라붙은 테레사를 슬그머니 떼어냈다.
“참. 오빠가 우리 테레사 주려고 과자 가져왔는데, 같이 먹을까?”
“와! 조아!”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인 테레사의 시선이 내 옆에 있던 평화에게 향했다.
“뼝화두 가치 머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평화에게 눈으로 지시를 내렸다.
아직 테레사가 검을 잡기 전이니 언제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른다. 그러니 넌 너의 사명을 다해야 돼.
“으, 으음. 고맙다. 같이 먹도록 하지.”
내 눈빛에 평화는 터덜터덜 앞으로 걸어갔고,
‘오.’
테레사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평화를 낚아챘다.
나조차 감탄을 흘릴 정도로 완벽한 손놀림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반항을 포기했다지만 최소한의 동선과 압도적인 속도로 상대를 확보하다니. 저게 5살이 보일 수 있는 행동이 맞나?
‘떡잎이 참.’
덕분에 은근한 기대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막둥이에게 검을 쥐여주는 걸 막을 수 없다? 자고로 이길 수 없다면 합류하라는 말이 있으니, 테레사의 의지를 저지할 수 없다면 재능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게 옳을 터.
다행히 테레사의 자질은 뛰어나다. 훌륭한 가르침과 굳건한 의지가 결합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야.
‘어쩌면 에리히보다 강해질 수도 있어.’
에리히는 어린 시절을 방임주의와 유사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당시에는 아버지의 교육법이 그러했기에 어쩔 수 없었으나, 지금의 아버지는 과거의 실수를 디딤돌 삼아 더욱 멀리 나아가실 분.
누구보다 테레사를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이끌어 가실 테니, 테레사의 노력에 따라 에리히보다 강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큰오빠! 인내두 가치 먹어도대?”
“그럼. 많이 가져왔으니까 인내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줘도 돼.”
잠시 테레사의 화려한 미래를 상상하다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특하고 착한 테레사. 탐스러운 간식 더미를 보고도 나눠먹을 생각부터 하는구나. 이 오빠는 기쁘다.
백작성을 뽈뽈뽈 돌아다니며 여기저기에 간식을 하사한 테레사는 이내 훈련장으로 향했다.
“각하를 뵙습니다!”
“””각하를 뵙습니다!”””
그리고 나와 테레사, 아버지가 훈련장에 발을 들이자 기사들은 일제히 부복했다.
‘따갑다.’
분명 몸을 숙이고 있음에도 기묘하게 기사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동경과 열망, 환희와 결의. 뜨겁고도 깊은 감정이 여과 없이 나에게 향하고 있다. 아무래도 크라시우스의 기사들에게 있어 내 존재는 단순한 주군 그 이상이니까.
크라시우스의 기사로서 목숨을 걸고 섬겨야 하는 주군이요, 자신들이 속한 크라시우스의 위상을 드높인 영웅이며, 검사들의 우상 비슷한 존재가 되어버린 대륙 제일의 검사. 하나만 있어도 기사들의 충성심을 자극할 요소가 삼위일체를 이루었으니 오죽하겠나.
정작 그 삼위일체 주군이 제도에서 지내느라 볼 기회가 많지 않은데, 무려 전대 주군과 늦둥이 아가씨를 대동한 채 강림했다. 기대도 하지 않던 경험치 3배 이벤트를 목도한 게이머의 기분이지 않을까?
“일어나라. 경들의 영역에 본작이 발을 들인 것인데, 어찌 이리 과한 대접을 하는가. 본작의 마음이 편치 못하다.”
“아닙니다, 각하! 각하께서는 크라시우스의 정당하고도 유일한 주인이시며, 저희는 각하와 크라시우스를 지키는 방패이자 검입니다! 어찌 일개 무구가 주인 앞에 대등히 서겠습니까!”
일어나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가장 앞에 부복한 기사단장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패기가 넘치는 것이 듬직하기 짝이 없다. 이런 기사단장이 크라시우스의 방패로 지내고 있기에 가문이 평온할 수 있는 거겠지.
“주인으로서 무구들의 상태를 보고자 하는데, 무구가 땅을 뒹굴고 있다면 어느 주인이 좋아할까.”
어쨌거나 겨우겨우 기사들을 일으킨 후, 내 품에 안겨있던 테레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곳에 온 건 기사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막둥이의 역사적인 첫 수련을 위함이야.
‘수련보다는 놀이라고 하는 게 좋으려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당분간은 놀이라고 하는 게 좋겠다. 수련이라는 단어는 테레사가 진심으로 검을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 쓰면 돼.
“경.”
“예, 각하! 하명하십시오!”
홀로 그런 다짐을 하다가 기사단장에게 말을 건넸다.
“테레사가 경들의 용맹하고도 충직한 모습을 보며 크게 감동한 모양이다.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검에 흥미를 가졌으니, 이 얼마나 놀랍고도 기쁜 일인가. 실로 크라시우스의 홍복이다.”
“영광스럽고도 과분한 말씀입니다! 테레사 아가씨께서 검에 흥미를 가지셨다면 각하와 전대 가주님의 드높은 무위 덕분이지, 어찌 저희 같이 미천한 것들로 인함이겠습니까!”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무언가를 얻기 위한 노골적 아부는 듣기 불쾌하지만, 충성심으로 가득한 아부와 극찬은 흐뭇한 법이니.
“그런 말은 말라. 아버지라면 모를까, 본작이 테레사 앞에서 검을 휘둘러 봤자 얼마나 휘둘렀다고.”
“진정한 고수는 검을 휘두르지 않은 채 검집에만 두어도 기세를 풍기며, 강인한 새싹은 기세만 봐도 그 사람의─”
“그만.”
용비어천가를 읊을 기세인 단장의 어깨를 토닥이며 제지했다.
단장의 충성심은 이따가 금일봉으로 보답하기로 하고, 일단은 테레사의 흥미에 응답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금은 흥미 가득한 눈으로 훈련장과 기사들을 보고 있지만, 우리 대화가 조금만 길어지면 어디로 달려갈지 알 수 없어.
“본작이 부끄럽지만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에는 능숙하지 않다. 허나 단장은 크라시우스의 기사들을 훌륭하게 이끌고 지도하고 있지. 하여 본작, 아버지와 함께 테레사를 도와주었으면 한다.”
“웅! 잘부타캐!”
내 말에 테레사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해맑기 그지없는 눈동자와 목소리로 히히 웃는 모습. 크라시우스를 향한 충성심으로 무장한 기사가 아니었어도, 누구나 홀릴 수밖에 없는 귀여움.
“각하의 과분하고도 황송한 신뢰에 반드시 부응하겠습니다!”
실제로 테레사의 인사에 단장의 얼굴에는 감동과 사명감이 깃들었다.
그래, 각오를 다지고 열심히 해라. 테레사의 마음에 들면 크라시우스 가신단 내에서도 실세 중의 실세로 등극하는 건 순식간이야. 굳이 내가 챙겨줄 필요도 없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단장에게 총애를 베풀 테니.
“부단장! 당장 가검부터 가지고 와라! 목검이라도 상관없다! 최대한 가볍고 작은 걸로! 날은 뭉툭하게!”
“예, 단장!”
“그리고 마법사단에게도 협조를 구해서 받을 수 있는 마법은 다 받고 와!”
우렁찬 단장의 지시에 다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최대한 위험하지 않은 가검 확보와 만일에 대비한 마법 부여까지. 아주 적절한 판단이다.
***
큰 아져씨가 주는 막대기를 받앗따.
신기해! 이게 내 검! 내 막때기! 나도 아빠랑 아져씨랑 아쥼마들처럼 막대기 잇서!
‘짝아…’
근대 짝아. 다른 사람들 검은 더 큰대. 왜 내거는 이러케 짝아?
“어떠니? 마음에 드니?”
“우웅!”
그치만 큰오빠가 구해준거니 갠차나! 큰거는 다음에 가져도 대!
“자, 그럼 쥐는 법부터 배워볼까?”
“우웅?”
“우리 테레사. 검 들고 놀다가 놓치면 다른 곳으로 날아가겠지? 그걸 다른 사람이 맞으면 아프겠지?”
큰오빠 말애 막대기를 만졋따.
마자. 딱딱해. 이거 마즈면 아플꺼 가타.
“웅! 배울께!”
“옳지.”
아픈거 시러! 내가 아픈것또, 딴사람이 아픈것도 시러!
“큰오빠!”
“응?”
“큰오빠는 이 막대기 어떠케 써?”
근대 나, 그거부터 보고 시퍼!
아빠랑 아져씨, 아쥼마들 말고 큰오빠가 막대기 쓰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