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1)
제 11화
원치 않았던 주연 집결 – 2
요주의 6인방에 대한 감시 방법을 사실상 보류하고 침대에 누웠던 나는 그대로 잠에 들어버렸었다. 재무성에서 치이고, 마차 안에서 시달리다가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누우니 어찌나 편하던지.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마법이다. 그렇게 아카데미 파견 2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물론 자고 일어났다고 갑자기 없던 방법이 떠오르는 건 아니니 눈을 떠도 감시 방법이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차라리 삼국 놈들한테 당당히 쳐들어가서 ‘거 우리 알 거 다 아는 사람들인데 적당히 눈 감아주십쇼.’ 라고 말해버릴까, 라는 생각마저 스쳐 지나갔다.
‘진짜 미친 척 들이박을까.’
하지만 그랬다가는 장관과 외무성 장관이 사이좋게 나를 찢어 죽이려 할 것 같으니 포기했다. 활동 지침이라도 있으면 편했을텐데 이런 일이 선례가 있었어야 말이지.
애꿎은 머리만 몇 번 긁적이다가 일단 본관으로 출근하기로 했다. 본관에서 아카데미 돌아가는 꼴을 보면 뭔가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까? 그리고 명목상이지만 감찰하는 시늉은 해둬야지. 감찰관인데 감찰을 하지 않으면 아카데미에 주둔할 명분이 없으니까.
그렇게 의무적인 마음으로 본관에 입성한 내 눈에 분홍색의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쟤가 왜 여깄지.’
어딘가 힘 없는 발걸음으로 털레털레 걸어가는 분홍 머리의 소녀, 루이제. 곧 있으면 1교시가 시작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 본관까지는 무슨 일이지?
“루이제.”
잠시 고민하다 루이제를 불렀다. 첫날에는 부담감에 피했지만, 루이제와 안면을 트고 있어야 활동이 편하다. 다국적 민폐 놈들은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루이제 곁으로 모이겠지. 그러니 루이제와 어느정도 친밀도만 확보해도 절반은 편해진다. 다행히 루이제에게 나는 친구의 형이라는 다리 하나 건너의 관계가 존재한다.
생각해보니 그닥 다행은 아닌 것 같네. 에리히 이 못난 놈.
본인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루이제가 나를 기억하는지 힘이 빠져있던 표정에 다시 생기가 차올랐다. 그러고는 쪼르르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얘가 사람이 좋긴 좋아.
“칼 오라버니, 안녕하세요!”
확실히 좋다. 고개를 끄덕여준 나는 루이제의 손에 들려있는 종이로 시선을 보냈다. 흠, 저거 때문에 본관까지 온 건가. 일단 지나가다 만나서 반가운 척 입을 열었다.
“하루 만에 다시 보네. 그런데 본관까지는 무슨 일이야?”
“동아리를 만들려고요. 고문을 맡아주실 선생님을 찾고 있었어요.”
“동아리?”
아까 눈에 들어온 종이에 다시 시선이 갔다. 소중히 들고 있던데 저게 신청서라도 되나. 내 시선이 종이로 향하는 것을 눈치 챘는지 ‘이게 신청서에요!’ 라며 들고 있던 신청서를 내게 들이밀었다. 아니, 굳이 나한테 줄 필요는 없는데.
“내가 봐도 괜찮을까?”
“괜찮아요!”
본인이 괜찮다면야 뭐. 사실 원작 주인공이 직접 만드는 동아리는 뭘지 조금 궁금하기는 하다. 동아리 명은 제과 동아리, 무난한 동아리다. 개설 사유는 학업에 지친 학우들의 심신을 달래줄 간식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괜찮은 이유다.
동아리 인원은 루이제 나이어드, 당연히 부장이다. 두번째로 에리히 크라시우스, 예상했다. 마지막 세번째가…
‘벌써 2호로 잡혔었나.’
3황자 아인테르 리브노만. 그 이름을 보자마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어제 루이제 근처에서 관측되길래 혹시나 했지만, 이미 2호 상태일 줄은 몰랐다. 아직 3호는 없나? 3황자가 끝인 걸 보면 아직은 없겠지?
착잡함 반, 경이로움 반을 담아 루이제를 바라보았다. 이제 입학하고 열흘이 조금 넘게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평생 보지도 못했을 황자를 순식간에 홀려버렸다. 심지어 처세술 좋기로 유명한 그 3황자를.
“그, 좋은 동아리네.”
딱히 할 말이 없어 신청서를 다시 돌려주었다. 그러나 괜찮다는 칭찬에도 루이제는 시무룩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런데 어제부터 아무도 고문을 맡아주지 않으세요…”
‘당연히 그렇겠지.’
누가 미치지 않고서야 황자가 있는 동아리를 맡겠다고 수락 하겠는가. 운이 좋으면 황자의 눈에 들어올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확률 공개가 되지 않은 가챠에 진짜 인생을 걸고 꼴아박는 것이다. 고문을 맡는 순간이 고문이 다른 의미의 고문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물론 나는 상관없다. 이미 업무적으로 황실 인원과 몇 번 부딪히다 보니 이제와서 3황자에게 부담을 느낄 일이 없다. 애초에 감시하려고 왔는데 감시자가 피감시자에 위축되면 되겠는가.
‘고문이라.’
마침 요주의 인물들에게 합법적으로 접근할 명분이 필요했다. 루이제가 동아리만 만든다면 아직 보지 못한 것들도 자연스레 꼬일테고, 그 동아리만 집중 관리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내가 고문이 가능한지가 의문이기는 한데, 이건 교장에게 확인해봐야겠다.
그 뒤로 무어라 투덜거리는 루이제에게 더 찾아보면 고문을 맡아줄 사람 하나는 나오지 않겠냐고 달래며 돌려보냈다. 물론 나오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의 마지막이 되서야 누구 하나가 희생양이 되서 짬 당하기 전에는 말이지.
그 가련한 희생양이 탄생하기 전에 내가 나서는 것이 맞다. 루이제는 동아리를 만들 수 있어 좋고, 교직원들은 폭탄을 피해서 좋고, 나는 합법적 감시를 할 수 있으니 좋고. 이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인가 그런 게 아닐까?
“고문을요?”
교장이 예상치 못한 소리를 들은 것처럼 반응했다. 이해한다. 나도 여기까지 와서 동아리 고문을 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가능하겠습니까?”
“글쎄요. 선례가 없는 경우인지라…”
곤란한 표정으로 길게 기른 수염을 쓰다듬는 교장. 선례가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있었다면 놀랐을 거다. 도대체 어떤 머저리 같은 놈이 감찰관 딱지를 달고 동아리 고문을 하려고 한단 말인가? 일단 내가 그 머저리 1호를 하려는 게 유감이긴 하네.
그래도 감찰관의 부탁, 그리고 3황자라는 폭탄을 서로 떠넘기려는 교직원들의 상황을 알고 있는 교장이기에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조항들을 확인해보겠습니다. 가능성이 보이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부탁을 드려 죄송합니다, 교장.”
“하하. 괜찮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1시간 만에 해결법이 나왔다. 식은땀을 흘리는 교감이 그 해결법을 찾은 주인공.
“감찰관의 권한을 보면, 감찰관은 아카데미의 업무에 관여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불법적 자금이 투입된 정황이 보이면 그 업무를 엎을 수 있게 준 권한이지요.”
얇은 책자를 가져와서 설명하는 교감. 요지는 이거다. 감찰관이 아카데미 업무에 관여할 수 있다는 권한, 이것을 감찰관이 아카데미의 일 중 하나인 동아리에 관여할 수 있다는 권한으로 써먹을 수 있다는 것.
“솔직히 편의주의적 해석입니다만, 감찰관의 동아리 개입을 원천 금지한다는 조항이 없기에 주장을 할 수는 있습니다.”
“너무 과한 해석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이게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네가 동아리 고문 하고 싶다지 않았냐, 라는 원망이 살짝 담긴 교감의 눈빛이 나를 향했다. 그렇지, 내가 그랬지… 결국 교감이 말한 방법대로 추진하기로 했다. 솔직히 아전인수격 해석이기는 하지만, 정말 이 방법 말고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교장에게 아카데미에 주둔 중인 삼국 전력을 슬쩍 떠보도록 부탁했다. 그렇지 않아도 경계 대상인 감찰관이 갑자기 동아리 고문이라는 기행을 벌인다면 당연히 신경이 쓰이겠지. 자꾸 교장을 차장 다루듯이 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그래도 다 대의를 위한 일이니 이해해줄 거다.
답변은 다행히 무난했다.
[ 아국은 제국의 권한을 존중하며, 신의에 어긋나지 않는 한 간섭하지 않을 것. ] [ 감찰관의 행동이 월권이 아니라면 엄연히 제국의 의사에 맡길 일. ] [ 신께서는 성실함을 미덕으로 여기신다. ]차례대로 아르메인 왕국, 유벤 연합왕국, 신성교국의 답변이었다. 어차피 지금 감찰관이 자신들 마냥 아카데미에 주둔하는 것은 상수, 굳이 이상한 일에 다투지 않고 적당히 넘어갈 계산으로 보인다. 여기서 이 악물고 반대하여 감찰관의 고문직을 반대해봤자 삼국은 딱히 얻을 것이 없으니.
오히려 시작부터 제국과 얼굴만 붉히는 것이라 손해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발 물러나고, 차후 삼국이 다소 억지 해석을 내밀 일이 생길 때 제국에 이번 일을 상기시키는 것이 이득이라 여겼을 것이라. 딱히 틀린 계산은 아니다.
‘자기들 주요 인사가 동아리에 가입할 줄 알았다면 결사반대 했겠지.’
현재 동아리 인원은 셋, 전부 제국인이다. 하지만 앞으로 아르메인, 유벤, 신성교국의 인사들이 줄줄이 가입하겠지. 그때 삼국 전력이 얼마나 넋이 나갈지 절로 측은해질 정도다.
“가엽게도…”
아무리 주요 인사 호위를 위한 주요 전력이니 뭐니 해도, 근본적으로 그들 역시 위에서 까라는 대로 구르는 가련한 존재들에 불과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동질감에 나는 무심코 눈을 감아버렸다. 같은 중간 관리자 동지에게 본의 아닌 엿을 날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못했다.
하지만 어쩌랴,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지. 남을 걱정하는 것도 나에게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사치였다. 꼬우면 그놈들도 빙의자 모셔오면 된다. 있다면 말이다.
그렇게 내 ‘제과 동아리 고문’이 모두의 동의 속에 통과되었고, 점심시간이 되어서도 고문을 찾아 헤매던 루이제에게 다가가 내가 고문을 맡게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활짝 웃는 게 귀엽긴 하더라. 칙칙한 남동생만 보다 여동생을 보는 기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남주 빨아들이는 블랙홀 동아리에 뿌리 박는 것에 성공한 칼(21세, 백수 희망자)
새벽 공지에도 언급했지만 벽돌체와 시점 혼동 문제를 수정했습니다. 부디 작품을 보는데 조금이나마 편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상한올리브님! 검성님! 그리고 비공개를 원하신 지나가던 후원자님! 후원 감사드립니다!